<139 화 > 훈로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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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 축지를 여러 차례 사용해 집으로돌아오자보인 것은 뒤집히고 있
는 정원이 었다.
진성이 가기 전에는 엉망진창이기는 했지만그래도 나름의 규칙을 유지하
고 있던 정원이, 이제는 땅거죽이 뒤집히고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
했다.
하지만 엉망이 되 었다고 해도 생명은 존재하는 법.
개판이 되 어버린 정원에는 꽃과 나무가 돌아다니며 아직 정원이 건재함
을 알려주고 있었고, 꽃이 제 이파리를 이용해 작은 돌을 옮기고 나무가 커다
란 돌을 가지로 옮김으로써 아직 이 땅에는 선의 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
었다.
진성은 이 감동적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일인가?’,
그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 고는 인기 척 이 느껴 지는 곳을 향해 움직 였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는 꽃이나 나무와 부딪치기 딱 좋았기 때문이었다.
자갈을 옮기고 있던 꽃을 찰 뻔한 것은 셀 수도 없으며, 뾰족한 뿌리를 문
어의 다리처럼 움직여서 돌을 나르는 나무와부딪칠 뻔한 것이 세 번이었다.
게다가 부딪칠뻔하자 나무가 조심하라는 듯 가지를 흔들며 그에게 경고하
기까지 했으니 , 참으로 기 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보
인 것은 교통경찰처 럼 팔을 이 리저리 움직 이는 이 아린의 모습이 었다.
이아린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큼지막한 돌 위에 올라서서 까르르 웃고 있
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래쪽에는 꽃들이 있었는데, 그 꽃들은 이아린의 움직임
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 였다. 꽃은 뿌리를 다리처럼, 이파리와 줄기를 손
처럼 움직이며 그녀의 지시를충실하게 따랐다.
이 아린이 어떤 장소를 가리 키 면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 가 자갈을 쏟아
내거나 자갈을 주워 담았고, 그녀가 손짓하면 정해진 길을 따라 일렬로 움직
였다. 게다가 이 아린이 장난스럽게 경례를 하면 그에 답하듯 줄기를 움직여
서 꽃잎에 이파리를 가져가 경례를 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기묘한 광경 이 었다.
하지 만 기묘한 모습은 이 것으로 끝이 아니 었다.
이 아린과 좀 떨 어 지는 곳에는 어 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모래 더미 가 가득
있었는데, 이세린은 거기서 모래찜질을 하고 있었다.
능력을 사용한 것인지 따끈따끈하게 데워진 모래를 제 몸에 이불처럼
덮고, 마치 겨울철 전기장판으로 들어가몸을 녹이는 사람처럼 행복하기 그
지없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양옆에는 자그마한
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나무들은 그녀가 안락하게 쉴 수 있도록 서로 몸
을 기대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그녀가 입을 일정 시간 이상 벌리고 있으면 뿌
리를 움직여 바구니에 들어있는 과일을 까서 그녀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
..
.........
'그늘이 꽤 큰 것으로 보아 저기에는 악마가 있겠구나.,
진성은 이세린에게 시선을 뗀 후 이아린을 향해 걸어갔다.
꽃을 지휘하며 놀고 있던 이아린은 진성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
었다.
"어, 오라비. 어디 다녀오는 거야?’,
"잠깐 관광 좀하고 왔느니라.’,
진성은 타박하듯 자신에게 묻는 그녀의 말에 가볍게 대꾸하고는 차렷 자
세 로 서 있는 꽃들을 손가락으로 가리 키 며 물었다.
"이것들은 무어냐?’,
"응? 꽃인데?’,
"그건 보면 아느니라.’,
"아, 왜걸어 다니냐는 거지? 그 뭐냐. 위치크래프트? 그거 쓰면 이렇게 할
수 있대!’,
"그것 역시 알고 있느니라. 다만 내가 묻는 것은 이것이 어찌 가능한가 하
는 것이 아닌, 어찌하여 정원이 이렇게 되었고 꽃이 왜 일을 하고 있냐는 것이
니라.’,
그 질문을 들은 이 아린은 눈을 빛냈다.
그러 더 니 돌에 서 폴짝 뛰 어 내 려 바닥에 착지 한 후 진성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이야, 오라비. 그게 말이지. 진짜대단했다니까?"
이 아린은 마치 진성이 묻기만을 기 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을 쏟아내 었다.
수다쟁이 가 입을 사흘간 꿰매고 있다가 풀려난 것 같았다.
"대마녀 님이 그 뭐냐. 정원 보고 표정이 썩었잖아? 그리고 집안 장식물 보
고도 불편한표정 지었고. 그런데 오래비가어디로 간다음에 식사했는데 그
걸 보고 폭발을 해버렸지 뭐 야. 이딴 국적 없는 식사는 도저히 못 참겠다고,
코스모폴리 탄이 라고 봐주기도 힘든 이 딴 키 메 라 같은 집구석을 내 가 다 뜯
어 고쳐주겠다면서 …."
진성은 그 말의 홍수 속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정보를 능숙하게 찾아내었
다.
■끌끌. 제 성질머리를 이기지 못했구나.,
진성은대마녀가화내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성질머리 나쁘기로는 위에서부터 세어야 할 인간이다.
그나마 정원과 예술품을 보았을 때는 진성이 있었기에 아슬아슬 통제가
가능했지만, 진성이 사라진 데다가근본 없는 식사에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한식사를 보고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인내심에도 한계가찾아왔으리라.
'회귀 전에는 그 성질머리가 어마어마해서 용병들 모두가 기피했거늘. 이
번에는 어땠을는지 모르겠구나.,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아린의 말을 계속들었다.
"우리 꼰대가 그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봤다니까? 이야, 진짜원조 꼰대는
다르긴 다르더라. 엘라한테 하던 것 봐서 알았는데 그 뭐지.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시 어머니 따위는 아주 비교도 안 돼. 진짜…. 흠.’,
이 아린은 말을 하다 말고 슬쩍 눈치 를 보았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오딜리아가 들을까 봐 무서운지 그의 귓가에 입을 가
져가서 소곤소곤 말했다.
"그, 성격 파탄난건 엘라괴롭힐 때부터 알아봤는데.와. 감탄스러울 정도
로 꼰대더라.’,
그녀는 그렇게 소곤소곤 말하면서 진성의 옆으로 달라붙었다가, 자신의
몸에 땀이 가득한 것을 눈치채고는 슬쩍 멀어졌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살짝 벌리곤 말을 이 어갔다.
"우리 꼰대가 별문제 없다고, 자기 나름대로 꾸민 건데 뭐가문제냐고 막
그랬거든. 그리고 일본식 정원이 어쩌고 영국식 정원의 자유분방함 어쩌고
하면서 막 무슨 그. 예술? 그- 하, 그 뭐지. 어쨌든 학교에서 미술관에 갔을
때 예쁜언니가설명해주는 것처럼 엄청 어렵고뭔가있어 보이게 설명을했
단말야. 응, 그랬더니….’,
이 아린은 자신의 머리 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더 니 피 식 웃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다시 웃음이 터져 나오는 모양이었다.
"와, 진짜. 보통은 우리 꼰대 가 욕을 봤으니까 나도 화가 나야 하는데. 하
는 말이 너무 황당하고 웃겨서 화도 안나더라.’,
"흠.’,
"이렇게 말했거든? 오래비, 잠깐만 기다려봐.’,
이아린은 몇 번 피식 웃고는표정을 싹고치더니, 마치 대마녀의 흉내를 내
려는 것처 럼 근엄해 보이는 표정을 지 었다. 그러 더니 얼굴을 와락 찌푸리 더
니 살짝톤을올려 대마녀의 성대모사를 했다.
"어디서 어른이 말하는데 따박따박 말대꾸야! 너 몇 살이야-!’,
"허."
"어디서 두 눈 똑바로 뜨고! 어른이 말씀하시는 거라면 좋은 말이구나, 옳
은 말이구나 하고 경청을 하고 조심스럽 게 의 견을 내 야지 어 디서 그렇게 버
르장머 리 없이 말대꾸해 ! 내 가 피 가 되 고 살이 되는 조언도 해주고 정 리도
해주겠다는데 뭐가문제야-!’,
이 아린은 흉내를 끝내고는 뭐 가 그리 웃긴지 피식피식 웃었다.
"와, 진짜. 겉으로 보기에는 언니 나 다름없는 사람이 그러니까 어이 가 없더
라. 근데 우리 꼰대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맞기도 하고…. 참….’,
"흠. 그래도 무례한 건 맞기는 하구나.’,
진성이 그렇게 말하자 이아린은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찮아. 뭐 무례한 건 맞는데, 기분 나쁘기보다는 황당했거든. 게다가 말
을 내뱉고 나서는 제정신이 들었는지 존댓말로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고. 그
리고 사과의 뜻으로 직접 정원과 실내장식을 다 바꿔주겠다고 했거든. 전부
자기 부담으로. 게다가 광양 그룹이 독일에 진출할 때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도 했으니 이 정도면 남는 장사 아니겠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비밀이라는 듯 입가를 슬쩍 가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나도 인테리어랑 식사 같은 거 좀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으니.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이아린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 돌 위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손짓을 해서 다
시 꽃들을 불러모으곤, 아까하던 것처럼 꽃에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진성은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방으로 가는 길, 대마녀와 마주치 게 되 었고.
"칙.’,
대 마녀는 뭐 가 그리 찔리는지 진성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오딜리 아는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놀라더니 슬쩍 진성에
게서 한 발자국 멀어졌다. 그리고는 살짝살짝 진성의 눈치를 보더니 헛기침
을 작게 하고는 말했다.
"그…. 오셨습니까?"
눈동자를 한쪽으로 돌리는 모습이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강아지 가 시선
을 회피하는 것과 닮아있었다. 진성은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그녀에게 다가
가물었다.
"어찌 그런 무례를 저질렀느냐?"
"크흠. 흠.’,
그의 추궁에 대마녀는 작은 기침 몇 번을 하고는 진성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진성의 시선에 이기지 못하고 변명하듯 말
을 쥐어짜내었다.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마치 어린아이가할 법한 변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