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화 > 라스푸틴이대혹하듯
아나스타시아는 초콜릿을 한 아름 가지고 와서 침대에 놓고 엘라의 무릎
에 누웠다. 그 태도가 어찌나 자연스러웠는지 엘라는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자신의 무릎이 베 개 가 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엘라가두 눈을 끔뻑거리며 아나스타시아에게 항의를 하려고 했지만….
"동생! 나초콜릿 좀 넣어줘요!"
"네, 네?’,
"초콜릿!’,
아나스타시아는 재촉이라도 하듯 머리를 뒹굴뒹굴 움직이며 눈치를 주었
다.
엘라는 자신이 왜 그래 야 하는지,이 언니 라고 주장하는 기묘한 존재는 왜
자신의 무릎에 누워서 자신을 부려먹고 있는 것인지,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맞는 것인지 등의 수많은 의문을 떠올렸지만 계속되는 재촉에 초콜릿 하나
를 들어 그녀의 입속으로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달아요! 동생도 먹어요!’,
아나스타시아는 엘라가 초콜릿을 입에 넣어주자 기쁘다는 듯 웃으며 초
콜릿 하나를 집어 엘라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그러자 엘라 역시 입안을 가득
메우는 진한초콜릿과 헤이즐넛의 향기에 매혹된 듯 얼굴에 들어간 힘이 슬
쩍 풀리고, 행복하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 었다.
아나스타시 아는 초콜릿을 몇 개 더 집 어 들고 엘라의 입 안에 집 어넣고 나
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문 쪽으로 달려가더니 엘라를 향해 손바닥
하나를 쫙 펼쳤다.
하나씩 손가락이 접혔다.
5.4. 3.2.1.
그리고 마침내 손가락이 모두 접혔을 때.
덜컹.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추, 추워….’,
"뭐 가 춥다고 그래 ? 맨날 방 안에서 틀어박혀서 운동도 안 하니까 그런 거
야.’,
"그, 근육이 많으면 오히려 추워. 이 멍청이야…. 그리고 내가 추, 추운건
눈을 맞아서 그래.’,
"에 이, 겨우 그거 맞았다고 그렇게 추워 ? 응? 그 뭐냐, 내 친구는 영하 20
도에도수영복 입고 강에서 놀았다는데?’,
이 세 린과 이 아린이 었다.
이 세 린은 잘 정돈되 지 않은 기 다란 머리 카락을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 사이 에 는 물기 가 보였다. 그것도 물세 례를 맞아서 만들어진 물기 가 아
닌, 눈에 맞아서 생긴 듯한물기였다. 그리고 그 옆에선 이아린이 깐족대고 있
었는데, 그녀는 대충 머리를 땋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아린의 머리
카락은 물기 한 점 없는, 마치 사막에 서 시 간을 보내 다가 온 것처럼 뽀송뽀송
하고 건조한 상태 였다.
눈덩이를 던진 사람과 맞은 사람의 차이였다.
"어? 아나스타시아! 나 마중 나온 거야?!’,
그렇게 깐족대 던 이 아린의 눈에 아나스타시 아가 들어왔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는 백발 소녀의 모습에 이 아린은 재빠르게 그녀의
앞에 다가가 그녀를 붙잡고 위 로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이 마치 트로피 를 들
어 올리고 자랑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아-린? 무거울텐데 내려줘요〜’,
"하나도 안무거운데?’,
"내려줘용〜’,
"안무겁다니까?’,
"내려.’,
"...으"
O •
이아린은 무인 특유의 넘치는 힘과 체력을 자랑했지만, 아나스타시아가
정색하자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내려주었다. 아나스타시 아는 땅
에 내려오자마자 언제 정색했냐는 듯 배시시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
대로 대마녀와 아그네스 앞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이세린은
눈치껏 그 둘의 뒤를 따랐다.
"앗, 안녕하세요.엘라와아나스타시아의 절친, 이아린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세린이에요….’,
"그래. 어서 오렴.우리 엘라랑 아샤와친하게 지낸다고들었어.’,
둘의 공손한 인사에 아그네스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둘에게 회답해
주었다. 하지만 오딜리아는 둘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슬쩍 인상을 찌푸리
고는, 고개를 그대로 다른 데로 돌렸다.
그 모습에 이세린은 자신들이 무언가 잘못한 게 있나 싶어 고민했다.
[ 계 약자야, 나의 계 약자야. 신경 쓸 필요가 없느니라. 얼마 전 저 토끼 같은
아이가 통화를 걸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 답이 나올 것이니. 저 여자의 심성
이 워낙곱지가 않아서 그런 것이며, 대마녀라는 직함에 걸맞게 그 성정이 고
약한 늙은 마녀와 닮았기 때문이로다. ]
'아.,
이세린은 위로하듯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는 그레모리의 말에, 엘라에게
온갖 구박을 하던 그때의 통화 내용을 기 억해냈다.
그것을 떠올리자 엘라에게 슬쩍 동정심이 생겼다.
'저, 저런 사람이랑 어떻게 살았지…?,
[보자. 흐음. 힘들기는했어도 견딜 만은 했겠구나. 둘의 접점이 크게 보이
지 않으니 직접 마주 보는 것은 별로 없었을 것이고, 당연히 마주 볼 일이 없
으니 연락할 일도 별로 없었을 터. 그러니 폭언이 곧 일상은 아니었을 것이나
•••. 그렇다 한들 고약한 심술의 대상이 되었으니 평탄하다고 하기에도 힘들
었을 터. 아마 독일에서 살 적에는 잔뜩 주눅이 들어 살았을 것이다. ]
이 세 린은 슬쩍 시 선을 돌려 이 아린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자신처럼 잘못한 게 없나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걱정이 들어서
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다.
마치 예상했던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처럼,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 계약자야. 네 언니는 바로 눈치를 챘나 보구나. 동물적 감각으로 모든 것
을 꿰뚫어 보았으니, 참으로 대 단하다. ]
도, 동물적 감각…이 아니라. 그, 그냥동물이 아닐…까?,
이세린은 자신의 혈통메이트이며 간발의 차이로 자신의 위에 서게 된 사
람이 칭찬을 받자 거슬렸는지 슬쩍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그녀가 얼굴을 구
기는 모습을 본 아나스타시아는 무언가 착각이라도 한 것인지 이세린의 손
을 쓱 잡더니 침대 쪽으로 이끌었다.
"자, 이리로 와보세요〜맛있는초콜릿이 있답니다〜먹으면 기분이 좋아져
요〜"
"그, 아니…. 그. 잠깐.’,
아나스타시아는 그대로 이세린을 침대에 앉히더니 초콜릿 하나를 까서
그녀 입에다가 넣어주었다.
"마, 맛있어…!’,
입에 들어 가자마자 퍼지는 단맛에 이세 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
을 본 아나스타시 아는 배시시 웃더니 초콜릿을 또 집어 들더니 엘라에게 다
가갔다.
몸을 기 대 고 있던 엘라는 그녀 가 다가오자 괜찮다는 듯 손사래 를 쳤지 만,
아나스타시 아는 막무가내로 그녀의 입에 초콜릿을 밀어 넣었다.
"어허. 언니가주면 얌전히 받아먹어야되는 거예요!"
그 모습에 이세 린은 의 아한 듯 악마를 바라보았다.
'그…. 언니로 정착된 거야?,
[그런듯하구나.]
'우, 우리 나가기 전에….둘이 서로 자기가 언니라고 싸우긴 했는데….,
..
.
[ 아무래도 승자는 저 조그마한 아이 가 된 듯하구나. ]
이 세 린은 문득 호기 심 이 들었다.
대체 무슨 과정으로 아나스타시아가 언니로 인정된 것인지.
그리고 실제로 아나스타시 아가 언니가 맞는 것인지 .
혹시 본래 언니가 아닌데, 그 사실을 비밀로 하고 언니라고 일방적으로 주
장하는 것이 아닌지.
이세린은 솟구쳐오르는 호기심이 자신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몰래 권능을 사용해 아나스타시 아를 훔쳐보기로 했다.
궁금증이 들면 풀어야 하는 게 맞으니까.
이세린은 온갖 비밀을 꿰뚫어 보는 그레모리의 권능을 사용해 아나스타
시 아를 훔쳐보았다.
그리고….
『언니』
눕 쌍둥이 禳
『독립적』
『동생』
『꿈』
눕 가변적 禳
『역설』
『상징 변화』
『변이』
눕 통제』
『변수 혐오』
이세린은 쉴 새 없이 변하는 키워드와 상징의 향연에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버그라도 걸린 것처럼 키워드가 변하고, 상징이 모양을 바꾸며 제대
로 비밀을 살펴볼 수 없게 방해하고 있었다.
[계약자야. 아직은미숙한나의 계약자야. 지금너의 수준으로는알수없
겠구나.]
그레모리는 혀를 내밀어 자신의 코를 핥았다.
[ 자신의 상징을 쉴 새 없이 바꾸고 이용할 줄 아는 아이니라. 제 뜻에 따라
부여된 성질을 바꾸고, 그 성질에서 파생되는 상징적 의미로 힘을 발현하는
•••. 내가 아는 몇몇 재능있는 마녀가행했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힘을 발현할
줄 아는 것으로 보이 니 , 쉬 이 그 본질을 파악하기 는 힘들 것이 다. ]
당황하는 이세린에 게 악마가 해준 답은 간단했다.
아나스타시 아가 쓰는 힘 이 그녀와 상성 이 맞지 않는다는 것.
[보아하니 '지키는존재,인 언니로서의 상징과 ,지켜지는존재,인 동생으
로서의 상징을 자유자재로 바꾸어가며 이용하는 모양인데. 이건 권능이 좀
더 성장하고난다음에야어느쪽이 본질에 가까운지 알수 있겠다.]
이세린은 악마의 설명에 의욕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다만 그 의욕은 건전한 의욕이라기보단, 반드시 남의 비밀을 훔쳐보고야
말겠다는 조금은 음습한 욕구였다.
그리고 그 욕망 가득한 시선을 느낀 것일까?
"초콜릿 하나 더 줄까요?’,
"나! 나 줘 !"
아나스타시 아는 초콜릿을 하나 더 집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어느
새 침대까지 도착해있던 이아린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벌렸고, 아나스타시
아는 꺄르르 웃으며 그녀의 입에 초콜릿을 넣어주었다.
보기만 해도 훈훈해 지는 모습을 보며 아그네스는 흐뭇하게 웃었고, 오딜
리 아는 뭐 가 그리 못마땅한지 얼굴만 구겼다.
"쯧. 시끄러워서 더 못 있겠구나. 네스야, 나 잠깐 나갔다오마.’,
그리곤 결국 짜증을 참을 수가 없었는지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 방
밖으로 나섰다.
쬞 쬞 쬞
"쯧. 오라는 주술사는 안 오고 어린 계 집애들이나 잔뜩 들어와서 시끄럽 게
구는 꼴하고는!’,
오딜리아는 호텔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불만을 토해내었다.
아그네스가 안에 있기에 입 밖으로 토해내지 못하고 꾸욱 삼켰던 불평이
었으며, 그녀의 마음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짜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
는 방법이었다.
"쯧쯧쯧.손님이 와 있는데 저렇게 시끄럽게 떠드는꼬락서니하고는.도대
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이런 기본적인 예의도모르는지….’,
그녀는 늙은 사람이 나 할 법한 불평을 쉴 새 없이 터뜨리 며 복도를 걸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늙은이 같은 불평불만과는 달리 그녀의 육체는 젊은
미 인 그 자체 였다. 특히 나 그녀 가 입 고 있는 자주색 슬릿 드레 스는 관리 가 잘
된 그녀의 몸매와 아기처럼 뽀얗고 탱탱한 피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으
니.
그 모습은 동화 속에 나오는 사람을 홀리고 유혹하는 마녀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렇기에 꽃에 벌과 나비가몰려드는 것처럼.
그녀에게 남자가 다가서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안녕하세요. 시간 좀 있으신가요?"
젊 어 보이는 여자에 게 귀 여워 보이는 남자가 다가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며.
"잠시 이야기 좀 할수 있을까요?"
이야기하자고권유하는 것 역시 이상한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