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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103화 (103/526)

<103 화 > 독립이다가온다

주술이 진행될수록 악마의 의문은 거세졌다.

[ 대관람차바로 아래에 제단을 쌓는 것을보면 그리스식 번제 같은데 ….]

"그, 그리스식…?’,

[홀로카우테인(6빢0撏뎁囊쯞成롃)이라고 한다.하지만 어린 염소를구하라고

한 것이나, 염소의 털 색을 신경 쓰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무언가를 섞은 것도

같은데…. 변형된 것인듯하다.]

악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미묘하게 다른 진성의 의식에 고개를 갸웃

거렸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었다.

본래 주술이라는 것은 파생되고 변질이 될 수 있는 것.

일본의 콧쿠리상(例웱쵃屠 髾扷 주술이 한국에 넘어와규칙이 변하며 강령

술로 변질되었듯, 의식 역시 사람의 기억과 기록 속에서 변형되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뒤바뀌는 등의 과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 었다.

진성이 사용하는주술 역시 변질된 것.

고대 그리 스에 사용되 었던 주술이 다른 지 역으로 건너 가고, 그것이 그 지

방의 환경과풍습에 맞춰지며 달라진 것이다. 거기에 보통 이렇게 변형되는

경우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우연과 실력 있는 주술사의

힘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되 었으니.

어 쩌 면 이는 홀로카우테 인의 아종이 라고 볼 수 있으리 라.

그리고 생명으로서의 아종이 그러하듯, 주술의 아종 역시 천차만별이다.

추운 지역의 동물이 보호색을위해 털 색을 하얗게 바꾸고, 체격이 커지며,

몸에 근육 대신에 지방을 채워 넣는 것처럼 주술 역시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

이 다. 비슷한 효과를 내되 전혀 다른 대 가를 지불해 야 하는 것도 있고, 아예

다른 효과를 보이는 것도 있다.

마치 물고기 가 땅으로 올라와 짐승이 된 것처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아종이 원형을 잡아먹고 더 큰 인지도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식이면…. 흠.]

악마는 입술을 스윽 핥았다.

무언가 의혹이 하나 떠올랐지 만 제 동생 에게 그런 짓을 시킬까 하는 생 각

이 들었기에 바로접어버린 것이다.

"고, 고대 그리, 그리스?’,

하지만 악마의 혼잣말을 들은 이세 린은 무언가를 떠 올렸는지 얼굴을

붉혔다.

"지, 짐노스 (gymnos)~."

그녀는 '고대 유럽의 역사와생활,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이 떠올렸다.

나체로 운동하는 것을 권장했으며, 제 몸을 드러내는 것을 아끼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의 문화.

강의에서는 수많은 그림과 조각상을 예시로 들며 그들의 문화를 상세

하게 설명해주었다.

학교에서 의례적으로 가르치는 성교육보다도 더 충격적이고, 더 적나라

한 내용을 담아서 말이다. 당연하게도 학부모에게 항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교사는 그 항의 전화에 오히려 보란 듯이 수위를 더 올려버리며 충격과 공포

의 수업을 진행했었다.

그때 이세린은 고대 그리스에 대해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서, 설 마. 알몸으로 의식을 해야, 하나…?"

이세린은 얼굴을 붉히며 대관람차에 뭔지 모를 액체를 뿌리는 진성을

슬쩍슬쩍 바라보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악마는 안심하라는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아마도 그러진 않을것이다.]

"으, 응?’,

이세린은 악마를 향해 고개를 홱 하고 돌리고는 되물었다.

그러자 악마는 귀 엽다는 듯 이세린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 본래 홀로카우테인이란 깜깜한 밤에 행해지는 것. 거기에 공물 역시 눈

에 뜨이 지 않도록 밤의 색과 흡사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 다. 하지 만 반대로

알몸은 과시를 위한 것. 말하자면 미덕에 가까운 것인즉, 의식의 성질과 반대

된 다. 계 약자야, 계 약자야. 무슨 생 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나의 계 약자야. 너

는 몸을 더 꽁꽁 싸맬지언정 아마 발가벗지는 않을 것이니라. ]

"과, 과시….’,

[ 고대 그리스에서 알몸이라는 것은 문명이요, 편안한 자유이며, 자신의

매 력을 드러 내는 것이 었느니 라. 물론 그것이 매 력 이 되 기 위 해 서는 수학적

으로 완벽한몸이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들 잘 단련된 몸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며 가치 있는 것이었느니라. 또한, 그들이 멸시하는 야만인의

알몸은 문명적이지 못한, 야만적인 것이 었지만 그 역시 적에게 자신의 용맹

을 과시하기 위한 것인즉. ]

악마는 발굽으로 슬쩍 땅을 긁으며 말했다.

[ 적어도 저것이 고대 그리스에서 파생된 것이라면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즉,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악마는 준비를 끝내고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진성을 바라보며 혀를 핥았

다.

진성은 거침없이 이세린을 향해 다가오더니 무표정하게 말했다.

"준비 가 끝났다. 네 가 먼저 해 야 하느니 라.’,

"저, 저부터….’,

"몸만오면 된다.’,

이세린은 진성의 말에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 적당한곳에 침낭을 돗

자리처럼 깔고 앉아 있는 이 아린을 바라보았다. 이 아린은 자신의 쌍둥이 동

생과눈이 마주치자슬쩍 손을 올려 흔들었다.

잘 다녀오라는 뜻이 었다.

동시에, 구경 잘하겠다는 뜻이기도 했고.

이세린은 자신의 혈연 메이트의 배웅을 받자 왠지 모르게 부담감과 긴장

이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히, 칙.’,

하지만 긴장이 사라진 것도 잠시.

제 단 코앞까지 오자 긴장은 아래 로 내 려 가다 말고 하늘을 뚫어 버 릴 듯 솟

구쳐올랐다.

"이, 이게. 이게….’,

가장 먼저 그녀를 맞이해준 것은 코를 찌르는 피 냄새 였다.

피의 정수만을 모아서 사방에 뿌리 기 라도 한 듯, 콧속을 넘어서 뇌 에 직접

꽂히는 비릿한 냄새가 가득했다. 어찌나 강한지 코뿐만이 아니라 혀에도, 목

구멍에도 그 냄새가 맴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에 그녀를 맞이해 준 것은 제단.

자작나무 장작은 일반적인 제단과 달리 낮게 만들어졌다. 사람의 허리 높

이도 되지 않는, 얼핏 보면 높이가 낮은 벤치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아주

낮게 말이다. 게다가 비가오지 않았는데도 표면이 촉촉하게 젖어있는 것이,

그녀가구해온 눈을 장작에 문지른 것 같았다.

제단의 중앙에는 그녀에게 똥오줌을 갈겼던 염소가 있었는데, 언제 깬 것

인지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염소는 기이하게도 자유를 찾아 온갖 난리를 쳐댔던 아까와는 달리 발이

땅에 붙기 라도 한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주변에 강렬한 피 냄새가 풍기고 있음에도 말이다.

진성은 염소를 앞에 두고 잠시 눈을 감더니 품에서 작은 방울을 꺼냈다.

작은 방울은 꺼내지자마자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듯 몸을 부풀렸고, 진성

은 풍선처럼 커지는 방울을 새끼손톱으로 톡 쳤다.

데-엥.

그러자 종을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진동이 울려 퍼 지고, 놀이공원 주변에

서 나던 벌레와 짐승이 자아내는 소음이 뚝 그쳤다.

그리고 정적 속에서 헤엄치듯, 무언가가소리 없이 진성에게 날아왔다.

그것은눈을 불꽃처럼 환하게 빛내고 있었는데, 펼친 날개의 길이가 어찌

나 큰지 그 길이 가 사람 하나와 비슷해 보였다. 심 지 어 날카로운 발톱은 어두

운 곳에 서도 슬쩍 슬쩍 빛을 받으며 그 예 기 를 드러 내 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사람을 잡아채는 갈고리를 연상케 했다.

[수리부엉이로구나.]

부엉이는 네 가 나를 불렀냐는 듯 진성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몸을 부풀렸

다.

진성은부엉이의 행동에 피식 웃더니 손가락을튕겼다.

따-악!

그러자 정적을 찢는 소리와 함께 수리부엉 이 가 흠칫 놀라서 고개를 들었

다가 다시 아래 로 내 렸다. 마치 잠에 취 하기 라도 한 듯 고개 를 꾸벅꾸벅 흔

들며 숙이고, 동그랗게 떴던 눈은 반개한 상태 가 되 어버렸다.

이윽고 수리부엉이는 고꾸라지듯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진성은 잠에 취해버린 수리부엉이에게 다가가 향기를 맡았다.

"훌륭하다.’,

진성은 그렇게 중얼거리곤 수리부엉이를 허공에 띄워 제단의 앞까지 데

려갔다.

그리곤 손에서 불을 피워냈다.

"부, 불?’,

[화염주술이 아니라삼매진화로구나.허. 저 나이에 저것을 사용한다고? ]

진성은 염소에게 삼매진화를 이용해 불을 붙였다. 그러자 불꽃은 선명한

빛을 뿜으며 염소를 집 어삼켰지만, 산채로 타는 고통을 느껴 야 할 염소는 그

어떠한고통도 느끼지 않고, 그 어떠한 생명의 위협도 느끼지 않은 채 불 속

에서 아까처럼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보기만 할뿐이었다.

이는 진성이 비물질만을 태우기를 원했기에 가능한일이었다.

하지만 불은 무언가를 태워 야만 존재할 수 있는 법.

현세에서 불은 오롯이 존재할 수 없으며, 무언가를 태우며 그 형태를 발하

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물질을 태우는 불꽃은 장작 역시 비물질로 이루어져야 하는 법.

그리고 그 장작은 여기에 널려있었다.

딸-랑!

진성의 손에 들린 작은 방울이 이번에는 작게 울렸다.

!...

.

.

음산하기 짝이 없는, 몸을 진동시키는 것이 아닌 영혼을 유혹하는 듯한 소

리로.

그러자 결계에 붙잡힌 악령들이 일제히 방울을 향해 고개를돌렸다.

"재료가 이렇게나 많으니, 참으로 좋은 일이로다.’,

진성은 악령이 불꽃을 향해 달려올 수 있도록 결계를 풀어주었다.

하지만 결계를 전부 풀지는 않았다.

또한, 트럭 아래에 깔린 간수 악령 역시 풀어주지 않았다.

이는 주술에 불필요하기 때문이 아닌, 앞으로 찾아올 손님들을 위한 것이

니.

■선물도 주고, 인맥도 쌓고. 모두가 좋은 일이로다.1

진성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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