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81화 (81/526)

<8!화〉요얼

똑똑.

딱딱한 것으로 문을 두드리 는 소리.

하지만 그 소리는 너무나 작고 힘이 없어서 어린아이가 문을 두드리는 듯

한 소리와도 한없이 닮아 있었다.

또렷한 '똑똑' 소리 가 아닌, '톡톡’에 가까운 소리.

밤중에 자다가 들었으면 쥐 나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이 문에 살짝살짝

머리를 박고 있는 소리로 착각할법한 앙증맞은 소리 였다.

게다가그소리가들리는 곳 역시 일반적인 노크의 위치와는 달랐다.

소리가들리는 곳은 그아래.

한없이, 한없이 아래로 내 려 가야 다다를 곳.

보통 사람의 정강이 위치 정도에서 들리고 있었다.

똑똑똑.

그 소리에 이세린은 슬그머니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문밖에 누가 노크를 하는지 영시를 하려고 했다.

[멈춰라.]

악마가 막아서지만 않았다면, 분명 영시를 했으리라.

이세 린은 자신을 가로막은 악마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왜, 왜?’,

[ 저런 것은 함부로 영시를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악마는 그렇게 말하며 영시를 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듯 문 쪽을 제

몸으로 가렸다.

[ 전에 네 오빠에게 영시가 들켜서 고통을 느꼈듯, 고약한수작을 부려놓

았다면 영시를 타고 너에게 저주가 옮겨붙을 수도 있느니라. ]

■저, 저주?,

[보는 것만으로도 액(厄)이 달라붙는종류의 것은꽤 많다. 게다가문밖

에 있는 것이 악령 같은 것이라면 더더욱 위험하다. 그것들은 누군가가 자신

을 인식 한다면 달라붙는 경우가 많고, 최 악의 경우에는 빙의 까지 당할 수

있느니라.]

물론 그 정도 수준의 주술은 보기 드물지만 말이다.

악마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목을 쭉 빼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귀를 가

져다 댔다.

톡톡톡.

[흠.]

악마는 소리를 듣고 무언가 떠올린 듯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 영시는 하지 말고. 가까이 다가가서 내가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해라. ]

이세 린은 악마의 말을 믿고 문 앞으로 다가가 바닥에 주저 앉은 뒤 , 소리 가

들리는 쪽을 쳐다보았다.

[요정님, 요정님. 집 안일을 도와주러 오셨나요? ]

"요정님, 요정님. 집안일을 도와주러…오셨나요?"

그녀의 말이 나오자 문을 두들기는 소리는 뚝 끊겨버렸다. 대신에 작고

경쾌한 목소리 가 돌아왔다.

"나는 털이 없다네 ! 나는 털이 없다네 ! 심술쟁이 보가트(Boggart)-! 바보

같은 브라〜우니 (Brownie)! 나는 털이 없다네!"

어린아이 같은 그 경쾌한 목소리에 이세린은 안심했다는 듯 슬쩍 가슴께

를 쓸어내리곤, 악마가불러주는 말을 다시 따라했다.

[요정님, 요정님. 내기하러 오셨나요? ]

"요정님, 요정님. 내, 내기하러 오셨나요?’,

그러 자 아까와는 달리 으르렁 거 리 는 굵직 한 목소리 가 들렸다.

"나는 말라깽이가 아니다.’,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닮았던 아까와는 달리 사납고 거칠기

짝이 없는목소리.

이 세 린은 불안한 듯 슬쩍 악마를 쳐 다보았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말을 따라 했다.

"요정님, 요정님. 무언가를 찾고 계시는가요?’,

"휘 이-호! 휘이-하! 나는 땅을 파는 것을 싫어하지!"

"요정님, 요정님. 장난을 치려 하시나요?’,

"끄르르르. 나는 장난이 싫어, 발을 걸고목을 메다는 장난이 싫어.’,

"요정님, 요정님. 잠을 자지 않는 나쁜 아이를 재우러 오셨나요?’,

"나는 나쁜 아이를 좋아한다네! 나는 아이가 좋다네!"

"요정님, 요정님. 선물을주러 오셨나요?’,

"그래! 나는 너의 소원을 들어주러 왔어!"

이세린의 질문이 던져질 때마다 그 답은 다른 목소리로 돌아왔다.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여린 여자의 목소리로, 장난기 많은 아이의 목소리

로, 짐승이 사람 말을 흉내 내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徦개의 질문이 던져졌을 때.

그녀의 뇌리로 내려꽂히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너에게 徦개의 답을 말했지. 이제 나의 차례가왔어. 나의 차례가왔

어.’,

이세린은 왠지 문밖의 무언가가 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털이 없다네. 나는 빼빼 마르지도 않았고, 장난이 싫고, 땅을 파는 것

을 싫어하고, 아이를 좋아한다네! 다만 소원을 들어주러 왔으니, 소원을 이

뤄주러 왔으니! 나는 참 착한 요정 이구나! 너무 착한 요정 이구나!’,

[흠….]

"자.나의이름은뭘까?’,

악마는 노래를 부르듯 앞서 말했던 답을 줄줄이 늘어놓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자신의 계약자에게 속삭여주기를.

[ 룸펠슈틸츠헨(Rumpelstilzchen). ]

"룸펠, 슈틸츠헨!’,

답을 듣자문밖에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더니 주먹으로 있는 힘껏 내려치는 굉음과 함께 문이 크게 흔들렸고,

요정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은 빵을 굽고, 내 일은 술을 빚으리 (Heute back ich, morgen brau i

ch,)"

모레는 왕비에게서 아이를 데려오리니(Cbermorgen hoi ich mir der

Konigin ihr Kind;).

노랫소리 는 처음에 는 고래 고래 소리 를 지 르는 주정 뱅 이 같은 목소리 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점점 뒤로 이어질수록 점차 소음에 가깝게 변했고, 이윽고 도저히

뜻이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끔찍한 소리로 변했다.

그 때문에 요정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악마뿐.

그레모리만이 룸펠슈틸츠헨이 짜내는 괴성에서 뜻을 찾아내고, 그 뜻을

노래로 짜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분해된 거 미줄을 한데 모아 실로 만드는 것과 같았다.

흞 아, 신나는구나. 그 누구도 이걸 모르니. 내 이름이 룸펠슈틸츠헨이라는

것을(Ach, wie gut, dass niemand wei쨁, dass ich Rumpeistiizchen hei

이!」

나는 룸펠슈틸츠헨 , 룸펠슈틸츠헨 .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이름, 룸펠슈틸츠헨!

이름을 알고 있으면 꼼짝을 못하네 !

난쟁이는 이름이 약점이니 어쩔 수가 없겠지!

하지 만 난쟁 이 에 겐 운이 따르는 법!

이름을 아는 것은 하나!

이 름을 모르는 것은 둘!

이름을 모르면 나는 모든 걸 가져갈 수 있겠지!

다만 나는 아이 가 좋으니 !

오직 나는 아이 만을 가져 가겠다네!

콰앙

룸펠슈틸츠헨은 문을 부수기 라도 할 것처럼 문을 후려치고 있었다.

굉음이 울려 퍼지며 문이 당장이 라도 떨어질 것처럼 흔들렸고, 그 진동과

굉음은 문을 넘어서 방 안 전체까지 퍼질 정도였으니 그 힘은 그야말로 인

외(人外)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끼기기직!

문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 가 울려 퍼 졌다.

그리고 거대한 소음에 가까웠던 요정의 목소리는 다시 노래가 되 었고, 모

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변했다.

"처녀야, 처녀야! 소원을 이루어주겠으니 대가로 네 몸뚱이에서 첫 번째로

빠져 나올 아이 를 다오! 나는 아이 가 좋아, 나는 아이 가 좋아! 나는 세 상의

그 어떤 보물보다도 살아있는 것이 더 좋아(etwas Lebendes ist mir lieber

als alle Schatze der Welt)!"

쩌렁쩌렁 울리는 요정의 목소리는 위습을 끌어안고 덜덜 떨고 있는 엘라

에게로 닿았다.

엘라는 몸을 진탕 뒤흔드는 힘을 가진 룸펠슈틸츠헨의 목소리에 몸을 휘

청이며 제 몸을 가누지 못했고, 옆에 있던 이아린이 깜짝놀라며 몸을끌어안

고 보호해주고서야 안정을 되 찾을 수 있었다.

"네 첫 번째 아이를 준다면 소원을 이루어주리! 그게 싫다면 내 이름을 맞

춰보아라! 이름을 맞추면 나는 물러설 수밖에 없으니! 내 이름은 무엇이지?

내 이름은 무엇이지?!’,

콰앙

문을 부술 듯 굉음이 다시 울려 퍼졌다.

엘라는 창백해진 얼굴로 그 질문에 답을 하려고 했다.

조금 전 이세린이 말했던 그 이름으로.

[ 막아라! ]

"룸펠…. 읍!"

하지만 악마가대경실색하며 이세린에게 소리치고, 이세린이 번개같이 뛰

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 ■룸펠슈틸츠헨,이라는 답을 내놓는 것을 간신히 막

을 수 있었다.

악마는 간발의 차로 답을 말하는 것을 막자 안도의 한숨을 내 쉬 고는 문을

노려보았다.

[대답했으면 큰일이 날뻔했다.]

낙타는 혀로 제 입술을 날름 핥았다.

[ 참 간악한 놈이로다. 룸펠슈틸츠헨을 불러놓고, 그것을 반전(反轉)시켜

서보내다니.]

아주 옛날 유럽에 실을 잣는 것을 잘하는 처녀가 있었다.

하지만 이 처녀의 아비는 허풍이 심해 제 딸이 황금 실을 잣는다고소문을

퍼뜨리고 다녔고, 그 소문을 들은 왕이 처녀를 데려와 그것을 증명해보라

하였다.

성공한다면 왕비로 맞아들일 것이되 만약 거짓이라면 크게 경을 칠 것이

라하였고, 아비는 제 혀에서 비롯된 재앙에 크게 절망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절망을 느끼고 찾아온 요정이 하나 있었으니.

눕 방에 쌓인 짚을 금실로 바꿔주겠다. 그 대가로 다음 해 똑같은 날, 첫

번째 낳은 아이를 가져갈 것이니 ! 다만 사흘 안에 내 이름을 맞추면 아이를

데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난 사라지겠다! 禳

처형당할위기에 처해있던 처녀는 아비와 제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요정과 거래를 했고, 요정은 방 안에 쌓인 짚더미를 모두 금실로 바꿔주고 자

리를 떠 났다고 한다. 그리 고 하루가 지 나 방에 들어온 왕은 산더 미 처 럼 금실

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처녀를 왕비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 아이 가 태 어났으나.

경사와 함께 요정 이 찾아와 마땅히 요구해 야 할 대 가를 요구했다.

눕 아이를 데려가겠다! 그게 싫다면 사흘 안에 내 이름을 맞춰보아라! 禳

요정은 왕비의 애 걸복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왕비 가 말하는 그 어 떤 이 름에도 자기 이름이 아니 라고만 말했으며.

천금과 보물을 주겠다는 말에도 오직 아이만을 요구하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마침내 요정이 아이를데려갈 날이

다가왔다.

마침내 왕비가 체념하려 할 때.

제 혓바닥을 잘못 놀려 모두를 죽일뻔했던 아비가 나서서 요정의 이름을

알아오겠다고 말한다.

아비는 조심조심 요정의 뒤를 쫓아가숲에 다다랐고, 그곳에서 요정이 모

닥불을 피우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요정은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기를.

눕 아, 신나는구나.그누구도 이걸 모르니. 내 이름이 룸펠슈틸츠헨이라는

것을(Ach, wie gut, dass niemand wei쨁, dass ich Rumpelstilzchen hei

이!』

그 노래 에는 고스란히 답이 담겨 있었고, 아비는 제 가 들은 것을 그대로

왕비에게 일러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날이 밝자 요정이 희희낙락하며 왕비의 앞에 도달해 물었

다.

『 왕비야, 내 이름이 뭐지?』

눕 하인츠인가요? 禳

『틀렸어!』

눕 쿤츠인가요? 禳

『아니야!』

『 혹시 룸펠슈틸츠헨인가요?』

왕비는 제 아비가 일러준 이름을 말했고, 요정은 공포에 질려 줄행랑을 쳤

다고한다.

.......

눕 왕비 가 악마와 계 약했어! 악마가 알려줬겠지! 악마가 알려준 거야! 禳

이 야기에서 보듯, 룸펠슈틸츠헨의 약점은 자신의 이름.

비밀을 꿰뚫어 보는 그레모리와 천적 관계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비밀을 꿰뚫어 본다는 것이 전지(全知)한 것은 아닌바.

[ 성질을 반전시켰으니 오히려 이름을 부르면 이곳에 들어왔을 터.]

어처구니없는 함정에 걸려들 뻔했다.

[ 첫 번째 이름이 불렸을 때는 제 존재를 확립시 키고, 두 번째 불렸을 때야

암수가 발동하도록 했구나. 참 교묘하기도 하다. ]

악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슬쩍 표정을 구겼다.

[ 제 아무리 힘 이 강한 것들이 많다고 한들 교활한 것은 인간이 제 일이로다

.]

이세린이 그레모리와 계약했다는것은 모를 터이니 악마를 속이려 저렇게

반전해서 보내지는 않았을 터.

그렇다면 대체 누구를 경계해서 저런 암수를 섞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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