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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55화 (55/526)

<55화 > 축제에 필요한 것은

의식을 시작하겠다 선언한 진성은 텐트 안에 얼기설기 나무를 쌓아 만든

제단에 올라갔다.

콰드득.

진성이 올라가자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 파열음을 내며 부서졌

고, 대충 쌓아 올린 나무토막들은 와르르 무너져내리며 바닥에 흩어졌다. 하

지만 진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 단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자리에 우

뚝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용병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축문이 라도 읽는 것처럼 품속에 서 대충 무두질된 가죽을 꺼 내 읽

기 시작하였는데, 이상한 것은 무두질에는 핏방울만이 어지러이 널려있었을

뿐 글자는 눈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에 코를 찌를

듯한 노린내와 피의 향기 만이 날 뿐이 었다.

"고하노니, 숲의 왕. 나무의 가지 사이에 흐르는 바람의 주인이요, 흔들리

는 잎새의 모든 정당한 소유권을 가진 자.위대한 대지 속에서 기거하시는 고

대의 지주이며 마땅히 땅위에 있는모든것을손아귀에 넣고계신 분의 이름

으로 의식을 시작하니 참으로 거룩하고 뜻이 깊은바 마땅히 칭송의 말을 외

치라.’,

진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병들은 사전에 들었던 대로 바닥에 부복하

며 소리쳤다.

"숲의 왕! 산의 주인 그권세는 영원할것입니다!’,

"숲의 왕! 산의 주인 그권세는 영원할것입니다!’,

"숲의 왕! 산의 주인 그권세는 영원할것입니다!’,

진성은그들의 외침이 그치자다시 입을 열었다.

"사악한 자. 잿빛의 땅에서 건너온 모래의 냄새가 나는괴물. 피를 빨아먹

는 괴물보다도 더 끔찍하고 사람 사이에 몸을 숨겨 그 이득을 취하는 것보다

도 더 악독한 괴물이 있었느니. 그 사악함에 이르기를 속삭이는 자, 잘못된

길로 이끄는 자, 꿀에 절여 죽이는 자, 부풀려진 오만의 괴 물. 위스퍼링 이 라

하였느니.’,

진성은 그렇게 말하다가 왼손을 들어 올렸다.

"보라! 손톱으로 사람을 미치게 하는 괴물의 공포를! 마땅히 고통으로, 핏

자국으로 그 괴 물을 기 억하고 또 경 계 해 야 하느니 라!’,

뿌드득!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왼손 약지 의 손톱을 뽑아 자신 이 밟고 있는

제단을 향해 떨어뜨렸다. 진성의 손에서는 손톱이 뽑히면서 나온 피가 바닥

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나, 그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용병들을 쳐다

보았다.

용병들은 진성이 보인 행동에 압박감이라도 느낀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

면 스스로 손톱을 뽑아서 하는 의식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그 구성원이 되

어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까보다도 더 큰 소리로 외 쳤다.

"숲의 왕! 산의 주인! 가련한 권속을 구원해주소서!’,

"숲의 왕! 산의 주인! 가련한 권속을 구원해주소서!’,

"숲의 왕! 산의 주인! 가련한 권속을 구원해주소서!’,

진성은그들의 외침 속에서 계속해서 의식을 진행했다.

이어지는 의식은 마치 이야기꾼이 옛날이야기를 하듯, 숲의 현자가 어린

아이들을 모아놓고 전설을 말해주듯 그렇게 이 어졌다.

"숲의 왕! 위 대한 존재 ! 마땅히 땅 위 에 나는 모든 것을 손아귀 에 쥐고 태

양 빛에 자라나는 모든 것을 재산으로 가진 이의 땅 위에 우리는 살고 있었

느니 라.’,

"숲의 왕! 산의 주인!’,

"숲의 왕의 은혜란 깊고 넓어 떠돌던 이들이 굶주리지 않게 해주었고, 제

몸뚱어리조차 가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잎새와 줄기를 내려주어 그 몸을 가

릴 수 있게 해주었나니. 그 은혜로움은 짐승을 인간으로 만든 것과 같으니 어

찌 감복하고 경외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 은혜로움은 넓은 하늘과 같아 그 끝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질투한존재가 있었으니, 저 멀리 이교도의 땅에서 온 괴

물이 바로 그것이라! 사악한 마법을 사용하고 모습을 바꾸며, 끝없이 인간을

괴롭히는괴물! 불에 타면 손톱을 던져 사람을 미치게 하고, 칼로두 번 가르

면 되 살아나는 그 사악한 존재의 자손이 당도하였다!"

"위대한 존재 여! 우리를 구원해주소서!"

뿌드득!

진성은 다시 한번 손톱을 뽑았다.

이번에는 소지 였다.

"위스퍼링! 괴물의 사생아이며 저주를 받아 태어난 섭리를 벗어난

악물(惡物)아! 귀에 파고들어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

도하는 괴물아! 이 괴물의 꾀에 속아 수많은 이가 겪지 않아도 될 파멸을

겪었고, 뇌가 파먹히는 최후를 맞이하였다! 하여 숲의 현자가 숲의 왕께

간절히 청하기를, 찾아내기 힘든사악한괴물이 있으니 부디 이 미천한권속

들에게 평화를 내려달라하였느니 !’,

"숲의 왕! 자비의 용!"

"숲의 왕께서 이르기를, 너 인간아. 나의 권속아! 여기 풀과 나무를주노니

여기에 마땅히 행해야 할 예절과 함께 태워 연기를 만들어라. 그리하면 연기

가괴물을 내쫓고죽여 너희에게 평온을 가져오리라.’,

진성은 그 말과 함께 제단에서 내려왔다.

뿌드득.

그가 내려오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제단이 휘청이며 나무토막이 와르르

쏟아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내려와 제단 옆에 놓여있던 풀을 간신히 형

체 만 유지 하고 있는 제 단의 위 에 얹었다.

그가 올린 풀은 허브라고 불리는 것들이 었다.

"하여 현자는 마땅히 행해야할 예와 함께 받은풀을 태우니, 불꽃이 붙었

음에도 번지지 아니하고 오직 자욱한 연기를 뿜어내 었다. 그 향은 감미로워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해도 끼치지 아니하였지만, 오직 귀 안에 숨어있는 괴

물에 게 는 독이 되 었도다! 오오! 숲의 왕이 여 , 위 대 한 용이 여 . 마땅히 경배를

받으소서!’,

"경배를 받으소서!’,

"내려주신 과실로 술을 마셔 기쁨을 바치고, 내려주신 곡물로 빵을 만들어

살을 찌워 의무를 행할 것인즉, 위대한 용이여! 뿌리부터 꼭대기의 마지막

남은과실까지 그모든 것의 마땅한주인이신 분이여! 우리를 가호하소서!’,

진성은 마지막 말과함께 불붙인 성냥을 제단 위에 던졌다.

화르륵!

제 단은 말린 나무토막과 방금 막 딴 허브밖에 없었지 만 마치 기름이 라도

먹인 것처럼 순식간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올랐으며, 진성이 제단 위에

떨 어뜨렸던 손톱은 제 가 살아있기 라도 한 것처럼 스스로 움직 이 며 불이 붙

지 않은 곳으로 움직 이 며 골고루 불을 붙였다.

그렇게 제단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하지만 불길에 휩싸이기도 잠

시, 마치 스스로 사그라들기 라도 하는 듯 불꽃은 순식 간에 사라졌으며, 대 신

에 숯 더미처럼 변해버린 허브와 장작에서는 연막탄이라도 피운 것처럼 엄청

난 양의 연기가쏟아지기 시작했다.

"와우!"

용병 중 한 명이 깜짝놀라며 저도 모르게 허리춤에 매단 방독면에 손을

가져갈 정도로 자욱한 연기였다. 하지만 연기가 그렇게 자욱한데도 그 누

구도호흡에 곤란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향긋한허브 냄새가폐부를 훑고

지나가며 청량감마저 들게 했다.

연기는 텐트를 가득 메우고 모든 사람을 훑더니, 이윽고 텐트에 난 틈을

통해 바깥으로 날아가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그모습이 마치 연기가 여

러 갈래의 뱀이 되어 사방으로흩어지는 모습과 같았다.

"되 었다. 오늘 밤 그 누구도 이 신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으

리라.’,

옛날 유럽에서는 위스퍼링이라는 괴물이 있었다고 한다.

중동 지역에서 나타났던 구울(Ghoul) 이라는초월종에서 비롯된 이 괴물

은 사람크기와 비슷한 다른 구울과는 다르게 눈에도 잘보이지 않을 정도로

몸이 작았다고 하며, 요정처 럼 날개 가 달려서 하늘을 날아다닐 줄 알았다고

한다.

위 스퍼 링은 사악한 이 유로 유럽 으로 이 동해왔고, 그곳에 서 사람들에 게

끔찍한 짓을 자행했다고 한다.

이 괴물은 갓 죽은 사람의 따끈따끈한 뇌를 진미로 여겨 수많은 사람을 해

쳤다고 하는데, 이 먹이를 구하는 방법이 참으로 간악하였다.

위스퍼링은 자신의 작은 몸을 이용해 먹이로 삼을 사람의 몸으로 기어들

어 갔다고 한다. 그리고 귓구멍을 제 몸으로 틀어막고는 끊임없이 숙주에게

듣기 좋은 말을 속삭였다고 하는데, 그 속삭임을 들은 사람은 아무리 어두침

침한 사람이어도 밝은 성격으로 변하고 다시 활발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

었다고 한다.

하지만 좋은 말만 들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

을 리가 없었고, 결국에는 하나같이 비참한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렇게

숙주가 죽으면 귓속에 자리 잡고 있던 위스퍼링은 그대로 안쪽까지 기어가

숙주의 뇌를 파먹고 다른 숙주를 찾아 떠 나간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당연하게도 이 끔찍한괴물의 존재에 몸서리쳤으며, 숲의 왕

이라고 불렸던 초월종에게 지혜를 구해 무사히 퇴치할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구전을 통해 좋은 말,만듣는 것이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끔

찍한 일이 되 는지 에 대 한 좋은 본보기 가 되 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위 스퍼링 이 야기 가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읽 어주는

동화 같은 하잘것없는 존재가 되 었을 무렵. 한 주술사가 이 이야기를 토대로

주술 의식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이 주술 의식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 주술사는 그 의식을 만들

어 낸 이후 그대로 목숨을 잃어버렸고, 전해진 것은 축제의 형태로 변질되

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나마 축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도 극단적

인 미신 타파운동인 마녀사냥의 불길 속에서 다시 한번 파괴됨에 따라축제

에서는 의식의 원형조차 찾을 수 없게 되 어버렸다.

그 때문에 오직 동굴에 새긴 기록만이 남아시간과 함께 그렇게 묻혀버렸

다.

.

.........

그리고 먼 미래.

세계 툩차 대전이 터지고, 유럽 전역이 전화로 신음하고, 수많은 폭격 때문

에 가려져 있던 동굴이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먼 미래가 되어서야 이 주술은

발견되었다.

그리고 지금, 시간을 초월해서 진성의 손에 의해 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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