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화 > 축제를 즐기는 법
손짓은 교묘했다.
얼핏 신경을 쓰지 않으면 손으로 보여 신경이 쓰이게 하고, 신경을 쓰면 어
느새 파도의 포말로 변해 다시 사람을 농락하는 모습이 었다. 그러 다가도 포
말은 다시 손으로 변하고, 그 모습에 넋을 잃다보면 시선과 신경이 그쪽으로
집중되 며 점차 손의 형상을 뚜렷하게 인지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절로 홀리게 되는 구조였다.
사람을 홀려서 빠져 죽이려 하는 수살귀들의 전형적인 수법이기도 했다.
"떼로몰려다니는데다가수법까지 교묘하구나. 아주 잘숙성된 놈들이로
고.’,
하지만 진성은 오히려 그 모습에 반색하며 가지고 온 짐을 풀었다.
그가 꺼 낸 것은 손바닥보다 조금 커 다란 크기 의 단지.
사가현의 이 마리 도자기 마을에 서 구해왔다고 하는 내구성 이 좋은 단지
였다.
그 단지에는 내용물이 빼곡하게 차 있었는데, 그 모습이 잿더미를 끈적
거리는 무언 가에 잘 반죽한 모습 같았다. 거 기 다가 왠지 모를 비 린내와 악취
가 코를 찌르고 있었고, 꼬물꼬물 움직 이는 하얀 구더 기 가 군데군데 머 리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단지의 뚜껑 에 는 노란 괴 황지 가 붙어 있었는데,거 기 에는 무언가 그려져
있었다. 빨간색 글자와 검은색 글자가 혼용되 어 만들어진 문양은 평범한
부적이라기보다는 조금 섬뜩한 예술 작품 같아 보이 기도 했고, 의 미 없어 보
이는 어린아이의 낙서 같아보이기도 했다.
진성은 그 단지들에 기다란 새끼줄을 제각각 잘 묶어주고는 20개 전부를
허공에 띄워 철망 밖으로 집어 던졌다.
제가 날개가 달린 듯 저 멀리 날아가는 단지는 귀신들이 손짓하는 구역까
지 무리 없이 비행했고, 추라도 달린 것처럼 잘 날아가다바닥으로 뚝뚝 떨어
지기 시작했다.
첨一벙
첨-벙.
단지는 물보라와 함께 물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진성은 다시 짐에서 하얀 비단뭉치를 꺼냈다.
광택 이 흐르는 하얀색 비단은 만지 기만 해도 손이 녹아내릴 것 같은 감촉
이었고, 그것을 손으로 살며시 들어 올리면 공기를 들어 올리는 듯 아무런 무
게 가 느껴 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런 고급스러운 비단의 끝에는 갈색 덩어리가비단에 싸여 있었는데, 그
모습이 한국의 메주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라 보였다.
일본식 된장인 미소(味洬),그중에서 쌀로 만든 코메미소(米味洬)였다.
비단뭉치는 총 孀개.
그는 비단뭉치를 단지처럼 허공에 띄운 뒤 철망 너머로 집어 던졌다.
하늘거리는 비단은 자신이 천이 아니라는 듯 철조망의 가시조차 무시한
채 부드럽게 위에 걸렸고,하늘거리는 커튼처럼 철망을 덮으며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첨-벙
이 윽고 첨 벙 거 리 는 소리 孀개 와 함께 코메 미 소가 바다로 가라앉았다.
철-썩!
첨-벙!
촤아악! 촤악!
그리고 코메미소가 떨어지는 것을 신호로 수살귀들이 발광을 시작했다.
피 라냐 떼가 넘치는 강에 고기를 던진 것처 럼, 상어가 모인 곳에 피를 뿌리
듯 수살귀는 제 각기 앞다투어 난동을 부리 며 물장구를 쳤다. 그 기 세 가 어찌
나 격렬한지 진성이 위치한곳까지 물이 튈 정도였다.
첨-벙!
조금 전까지 진성을 향해 손짓하던 것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물귀 신들은 전부 바다로 가라앉은 단지와 코메 미소의 주변을 맴돌았다. 물
귀신들은 방금 전엔 홀리지 못해 안달이었던 진성에 대해서는 잊기라도 한
듯 자기들끼리 싸워 가며 단지와 코메미소 주위를 맴돌기 바빴고, 그 덕분에
진성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리 위에서 물귀신이 아귀다툼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발광이 얼마나 지났을까.
물귀신들의 움직임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첨-벙
촤악!
물장구치는 소리 가 들리 기는 하나 아까보다는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고,
첨벙거리는소리 역시 드문드문들릴 정도였다.
진성은 슬슬 때가 되 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향을 하나 꺼내서 불을 붙
였다.
파스스스.
일반적인 향과는 다르게 불이 붙자마자 폭죽처럼 격렬한 소리를 내며 타
오른 향은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양의 연기를 뿜어내었다. 일반적인 향에서
나는 연기가 아닌, 약간 붉은 색을 띤 연기는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며 진성
의 주변을 맴돌았고, 진성의 손사래에 슬쩍 밀려나며 철망을 향해 날아가
더니 퍼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듯 옆으로 퍼지는 연기.
연기는 그렇게 한참을 퍼지더니 출구라도 찾은 듯 구멍을 뻥뻥 내기 시작
했다. 그 모습이 구멍이 뻥뻥 나 있는 치즈 같은 모양새였다.
■역시 결계에 빈틈이 있군.,
결계 라는 것은 장벽 이 다.
장벽은 경계를 뜻하고, 경계는 단절을 뜻한다.
즉 결계가 제대로 세워졌다면 물귀신에 의해 사람이 죽는 일도 없고, 진성
의 존재를 눈치챈 물귀신들이 홀리려고 난리를 피우지도 않았을 것이란 이
야기다.
매년 다리 에서 자살자가 속출하는 것은 분명 자살 명소라는 이 야기를
듣고 온 사람들 탓도 있겠지만분명 저 결계의 빈틈 역시 한몫하고 있었으리
라.
'보아하니 돈 때문에 제대로 만들지 않을 것 같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으리라.
이는 일본의 음양사와스님들이 제대로 결계를 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
마 예산문제 때문에 대충 할수밖에 없었을 것이니까.
주술이라는 것은 돈이 많이 든다.
특히 이렇게 기약 없이 강력한물귀신 떼를 막아낼 결계를, 그것도 이 거대
한 다리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결계를 만드는 것은 현에서도 큰 부담이 될
정도였을 터.그렇기에 예산이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만든 결
계를 만들고 철망과 철조망으로 가로막은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노
력 이었으리라.
'보자. 철조망에 난구멍이. 옳지. 여기구나.,
진성은 결계의 구멍을 잘 살펴보다가 철조망 위쪽에 난 큼지막한 구멍을
발견했다.
첨-벙!
첨-벙!
진성의 손이 다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아까와 똑같은 첨벙 거리는 소리와 함께 진성이 던졌던 단지와 비
단 뭉치가 바다에서 빠져나와 허공으로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떠
오른 것들은 천천히 허공을 날아올라 철조망 위 에 난 구멍을 통해 진성의 앞
에 차곡차곡 쌓였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덜그럭 덜그럭덜그럭 .
덜그럭덜그럭 덜그럭덜그럭 덜그럭 .
진성의 앞에 쌓인 단지들은 물고기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렸
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강한지 단지가 깨져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격렬한 움직임이 있는데도 단지는 쓰러지거나 기울어지지도
않고 있었다.
쿵-!
쿵--!
단지 안에 있는 것은 흔들어서는 자신이 탈출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일까.
단지 위 에 난 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 만 단지 위쪽에 붙은 괴 황지는 종이 주제에 자신이 강철로 만든 뚜껑
이라도 되는 양 밖으로 빠져나가려 하는 것의 저항을 모조리 막았고, 늘어나
고 진동할지 언정 결코 찢어지려 하는 모습 없이 그대로 뚜껑을 밀봉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뚜껑에 붙어있던 괴황지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 이제
는 전서체로 무언가 적혀있는 부적의 형태가 되어있었다는것.
괴황지를 예술작품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검은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
고 붉은색 주사만이 남아 그 글자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글자가 봉할 봉(封)
을 전서체로 휘 갈겨 쓴 모양새 였다.
진성은 단지 속의 수살귀 가 헛된 발악을 하는 것을 가만히 지 켜보다가 비
단을 들어 올렸다.
비 단은 물에 젖어 있을 뿐 아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 만 진성 이 비 단의 끝을 풀자 거 기 싸여 있던 코메 미소 덩 어리 가 바닥
에 철퍽 하는소리와함께 떨어졌고, 진성이 처음 코메미소를 넣을 때에는 없
었던 길쭉길쭉한 색색의 머리카락들이 걸쭉한 갈색 덩어리 밖으로 삐죽삐죽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성은 코메미소에 있는 모든 머리카락을 다 끄집어내고 허공에 띄워 물
을 탈탈 털어내 었다. 그리곤 민들레 홀씨를 불 듯 살짝 후- 하고 숨을 불었다.
그러 자 머 리 카락은 바람을 탄 종이 비행 기 처 럼 흔들거 리 며 제 각기 다른 단
지로 이동해 내려앉았다. 어떤 단지에는 길쭉한 검은 생머리가, 어떤 단지에
는 짧은 금발 염색 머리 가, 어떤 단지에는 하얀 머리 카락이.
그렇게 머리카락이 제 주인을 찾아가자 그는 짐에서 켄지가 챙겨준 인형
을 꺼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툩등신 인형들.
일본에서는 넨도로이드(듃髾 쁆 d 煇 쁆)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피규어들
이었다.
진성은 넨도로이드를 제각기 단지의 위에다가 올리고는 챙겨온 수탉의
피를 인형의 위에다가 부어버렸다. 그리고 주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H H
문장이 라고 하기 에는 형태 가 없고, 단어 라고 하기 에는 뜻이 없으며, 말이
라고 하기에는 짐승의 울음소리나 비명과 가까운 주언이 었다. 하지만 주언
은 높낮이를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단지의 주변을 맴돌았고, 점차 그 소리가
날카로워 지 고 다듬어 지 며 이 윽고 마지 막에는 고주파같은 소리 가 되 었다.
그리 고 그 고주파 같은 소리 가 날카로움과 반대 로 아래 로 가라앉는 듯 무
겁게 되었을 때, 진성은 허공을 움켜잡아 모든 단지에 붙은 부적을 떼버렸다.
촥!
동시에 떨어져 나간부적.
그리고 그 위에 올려져 있던 인형은 사람이 바다에 추락하듯 전부 단지로
빠졌고,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단지 안에 봉인되 어 있던 물귀신들이 물비 린
내를 확 풍기며 인형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인형과 맞닿아
있던 머리카락이 인형을휘감더니 녹아들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물귀 신이 들어 가서 움직 이 는지 인형은 한참이 나 덜그럭 덜그럭 움
직였고, 인형의 몸에 묻어 있는피는무언가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핥아먹기
라도 하는 듯 점차 희 미해 지 더 니 새 것 같은 모양새 가 되 었다.
그렇게 물귀신이 인형 안으로 들어가자리를 잡자 진성은 그제야움직여
인형들을 허공에 띄우고 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물귀신 20위(飯).
"좋구나, 좋아!’,
진성은 물귀신 소굴로 변해버린 가방을 쓰다듬으며 흡족한 듯 미소를 지
었다.
.....
쬞 쬞 쬞
시간이 지나 별장에 갈 날이 왔다.
"차기 신관님, 모시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