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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24화 (24/526)

<24화 > 일본행

아침 식사가끝나고, 모두 제 방으로뿔뿔이 흩어졌다.

방으로 돌아온 진성은 어색했던, 하지만 분명히 자신을 존중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씨 가문은원래 이러했지.'

굴러들어온 돌이자 어찌 보면 호국회와 애국단 둘 모두에게 불편할 수 있

는 존재인 진성을 이렇게 대우해주는 것은 분명 이들의 심성이 선하기 때문

일 것이다. 또한, 주술에 미쳐서 제대로 정을 쌓지 도 않은 그에 게 이렇게 어

색하게나마 계속 다가오려 하는 것 역시 그들의 따뜻한 심성일 터였고.

특히 온몸으로 어색하다는 분위 기를 풍기는 이세린과는 달리 이아린의

경우 적극적으로 그에게 다가오며 가족으로 받아들이려는 모습이 보였다.

당장조금 전만해도 오라비, 오라비 하면서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던가.

그랬기에 진성은 이아린이 일본에 당첨되기를 바랐다.

적어도 저택을 나가 독립하기 전에 선물 하나는 주고 싶었으니까.

모두가 행복한 일이 아니던가.

진성은 자신이 일본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 세우는 운명을 두 자매를 이용

해 비껴 낼 수 있고, 이세린은 신물(神物)을 얻을 수 있고, 이 아린은 각종 무가

의 비급과 실전경험을 할 기회를 얻는다.

윈-윈(Win-Win)이 아닌가!

하지 만 문제 가 하나 있다면.

■흠.,

그것은 바로 이 아린의 정신 상태 였다.

이세린이야 회귀 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교토를 초토화하는 것을 보았

으니 트라우마나 PTSD에 시달릴 걱정 따윈 없다 쳐도, 이아린은 회귀 전에

도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적어도 진성의 귀에 들어올 정도의 두각은 없었다. 회귀 전에 누군가와 결

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으니 소시민처럼 조용하게

살았거나, 무슨 일을 겪고 좌절해서 무인의 길을 포기했다는 이 야기 인데 .

전자라면 일본에서 얻어줄 수 있는 것이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지

만, 후자라면 이아린의 성장세를 당장 꺾 어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 □□□."

용병 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이들을 많이 보았다.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고, 몸 상태도 좋은 데다가 혈기도 왕성한 신병들이

첫 임 무를 나간 다음 악몽에 시 달리 다 그만두는 경우. 그들은 육체는 충

분히 강했지만, 정신은 강하지 못했고, 정신을 단련하는 법도 나약한 정신에

딱딱한 갑옷을 씌우는 법도 모르는 풋내 기 였다.

정신.

위대한정신.

오직 그것의 중요성을 모르기에 벌어진 일이다.

아무리 육체 가 중요하다 한들 그것은 생 명 에 한한 것. 단련된 육체 가 있다

고 한들 그것을 제대로 움직 이지 못할 삼류 무공을 익히고 있으면 의 미 가 없

으며, 장수할 수 있는 수명을 타고났다고 한들 게으름에 찌든 정신이 라면

굴러다니는 고깃덩어리만 못한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정신은 병든 육체를 초월해 움직이게 하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수명에 저

항할 순 없어도 정해진 종말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무형의 힘 이다.

당장 진성만 하더라도 시체나 다름없는 몸을 이끌던 것이 오직 정신,

정갈한 정신이 아니었던가.

하나를 마음으로 원하고, 진심으로 바라면 자연히 정신은 단련되는 법.

"□□□□□□□□□ □□□."

이 아린은 어느 쪽인가?

진성처럼 정신을 하나로 단련할 수 있는 사람인가?

세린처럼 결여된 정신에 갑옷을씌워 살아가는사람인가?

"□□□□□□□□□ □□□."

진성은 과거를 떠 올렸다.

서로 족쇄가 되는 미래를 피하고자 박차듯 저택을 나왔던 그때를.

그때에는 가진 것이 없고 제 앞가림을 하기 바빠 선물 하나 제대로 주지

못했다. 그 이후에는 오직 초월만을 바라보며 쉼 없이 달렸고, 훗날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주술과 함께 산화하였으니 .

새롭게 얻은삶에 어떠한 일이 있을지는 모른다.

다만 미 래 가 달라지 고 능력 이 생 겼으니.

선물 하나 정도는 챙 겨줘 야 하지 않겠는가.

이 아린은 선물을 받아야 한다.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한들 그것 역시 해결해주면 그만이 아닌가.

선물을 받을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역시 선물이 되리라.

다만 선물이 라는 것은 원하는 것이 어야 하니, 이 아린이 원하는 바가 무엇

인지는 확실히 알 필요는 있을 것이다.

입에서 내뱉어지는소원이 아닌, 눈에서 발하는소원이 아닌.

오로지 마음에서 바라고 진심으로 원하는 소원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를 조금 더 쥐어짤 필요가 있으리라.

패는 많을수록 좋고, 정보는 쌓일수록 좋으니.

■그야말로 무형의 황금이로다.,

끼-익.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이세린은 이아린에게 말했다.

"일본 안가는게 좋을것 같아.’,

"뭐?’,

맥 락도 없이 튀 어나온 말에 이 아린은 자신의 동생을 돌아보았다. 하지 만

세린은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을 그녀와 마주

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일본말고 다른데 가."

아린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다시 물으려 하다가, 그녀의 표정이 생각보다

진지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른 것을 물었다.

"왜?,.

원래 묻고자했던 것보다도 더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세린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끌고 가서 침대에 앉혔다. 얄팍하기 짝이 없는 팔은 잘 단련된 이아린을 끌고

갈 힘 이 있을 리 가 만무하건만, 이 아린은 무언가 홀린 듯 그 팔에 잡혀서 질

질 끌려갈 뿐이 었다.

그것은 직감이 었을까, 아니면 이세린이 계약한 악마의 힘이 었을까.

이세린은 그녀를 침대에 강제로 앉힌 후 입을 열었다.

!....

"이아린.내 말잘들어. 악마가말했어.뭔가깊숙한곳에 숨겨놓은비밀이

있는데, 도대체 뭔지를 모르겠다고. 지푸라기에 덮인 햇빛이랑쇠의 냄새가

난다고….’,

"햇빛? 쇠?"

이 아린은 그녀를 쳐다보며 머리를 박박 긁었다.

"아니, 그. 하…. 나는 그런 상징학 모른다고요〜 그냥쉽게 설명해주면안

돼?’,

"무식한이아린.’,

"뭐?!’,

세린은 숨 쉬는 것처럼 비난을 내뱉었다.

"지푸라기라는 건 일용하고도 남은 은혜이자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것. 즉

,이 로운 형태 로 다변(多變)하는 형태를 뜻하는 거 야. 가축에 게 먹 이 면 먹 이

가 되고, 꼬아서 형태를 만들면 짚신이 되 기도 하고 평범한 밧줄이 되 기도 해

. 태워서 장작으로 쓸 수도 있고, 옷 속에 형태를 채워 허수아비의 몸체를 구

성하는 거야.’,

"오〜"

"오, 가 아니라…. 아, 가 나와야 하는 거 아냐…? 이거 1학년 교양필수 때

배웠잖아….’,

"그런 게 있었구나.’,

"그런 게 있었구나가 아니야….생활과상징 기억 안나…?’,

충격에 빠진 이세 린의 얼굴과는 달리 이 아린은 해맑게 웃었다.

"몰라. 1학년 때는 맨날 잤는데?’,

그 청순하기 짝이 없는 발언에 이세린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을 포기했

다.

"그냥 대충 말할게 •••. 우리에게 도움이 되긴 하는데,마냥 도움만 될 것

같지는 않다는…. 그런거야.’,

"도움이 되는 거면 되는 거지 〜도움만 되지 않는 건 뭐 야.’,

■무공 익히는사람들되게 머리 좋던데….왜 이아린은….,

익힌 무공이 문제인 걸까?

본능과 감각으로 익히는 무공 때문에 생긴 부작용인 걸까?

이세린은 1차원 이상으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 그녀의 청순한뇌에 한숨

을 쉬었다.

■가끔 보면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짐승 같아….,

[ 저런 것이 귀엽지 않으냐? 무릇 쓸데없이 영악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이

귀여움을 받을 때도 많은 법이니라. ]

지푸라기.

햇빛.

쇠.

이세린은귀엽다귀엽다 말하는 악마를 무시하곤, 세 가지 단어를 머릿속

에 각인했다.

■무언가를 얻는 대신 무언가를 지불한다…? 무언가를 얻는 대신 그만한

위기를 겪는다? 대체 뭘까….,

이세린은 대체 악마가자신에게 말한, '진성이 감춘비밀의 냄새,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성이 말한 '좋은 정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좋은 정

보,를 어디서 어떻게 얻어냈는지.

그 모든 것을 알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같이 일본에 간다면 알수 있지만….비밀의 냄새가찝찝해….그렇다고

모르는건….궁금한건 어쩔 수 없는데….,

하지 만 이 내 고개를 젓고 제 방 침 대 인 양 뒹굴뒹 굴하는 이 아린을 쳐 다보

았다.

'뺑뺑 이로 나오는 나라…. 그래. 어떤 나라가 나오든, 내 가 따라가면 되 겠

지….,

지푸라기는 이로운 형태의 다변을 말한다.

짚이 라는 것은 땅에 서 난 것을 먹고 살았던 이들에 게는 선물이요 자재 였

으니. 그것은 머무는 집이 되기도 하고 입는 신발이 되 기도, 서로 묶이고 엉켜

서 만들어지는 가방이 되기도 하였다. 장작이 없을 때는 불을 붙이고, 장을

담그는 필수용품이 며 태워 만든 잿더미마저 쓸 수 있는 참으로 요긴한 물건

이었다.

다만 이 이로움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라는 함의 또한

내포되어 있음이니.그상징성엔 분명히 '사람,이라는 것이 들어있다.

사람에게 이로운 것.

이로운 것.

바뀔 수 있는 것.

하지만 사람에게 이로운 것.

형태가 끊임없이 바뀌고 또 바뀌 어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듯, 지푸라

기는 작고 볼품이 없다 한들 반드시 사람에게 이로워 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

떤 형태가되든 반드시.

"시틀 불긔 드래 밤드리 노니다가드러사자리 보곤가르리 네히어라.가르

리 네히어라. 가르리 네히어라.’,

지푸라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람에 게 이로울 것이란 조건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주술적 의 미를 담은

형태가될 수 있으니. 참으로 사용하기 쉽고 좋은 물건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촘촘하게 짜이고 묶여 오롯이 지푸라기로만 만들어진 형상이 진

성의 눈앞에 있었으니.

밝은 횃불의 빛에 아른거리며 음영을 드리우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이를 일컬어 제웅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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