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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12화 (12/526)

<12화 > 벌레의 은혜

누군가에게 평범한 하루가누군가에겐 최악의 하루가될 수 있다.

남자는 그 사실을 뼛속 깊이 통감하고 있었다.

『 밥버러지 새끼야! 불량새끼들이 이렇게 많은데 밥이 넘어가?! 禳

"씨이〜팔 진상 새끼들이 돈 안 갚는 걸 나보고 지랄이야….’,

사채 업 이 라는 것은 수익 률이 높지 만 그만큼 위 험성 이 큰 직 업 이 었다. 이

자를 30%나 먹을 수 있으니 돈 놓고 돈 먹기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

작 빌려주는 사람 측에서도 개고생이 반드시 따르는 직업이었다.

악성 채무자.

사채업자들 사이에서는 불량, 혹은 뻔뻔한 씹새끼라고 불리는 이들이 넘

쳐났다.

사채를 빌리는 사람들은 당연히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사람들, 혹

은 빌릴 만큼 빌렸음에도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더 떨어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란 이 야기.

돈을 성실하게 갚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지만, 어차피 인생 늏됐으니 그냥

내 배 째라면서 나오는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 사채업이었다. 정말로 자기

몸을 자해하기도 하고, 어디 외국으로 도망가기도 했으며, 급전 땅겨놓고 어

디에 은거하는 예도 많았다.

개중에서도 정말 악질 중의 악질 새끼들은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아놓은

것처럼 행동한다. 어차피 자기들이 죽으면 빚이 붕 떠서 본전도못 찾을 게 뻔

하니, 오히려 내 가 돈을 갚을 수 있게 자신에 게 잘 보여야 한다는 미친 소리

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인다.

그런데 더 열 받는것은사채업자처지에서도그말이 크게 틀리진 않다는

것.

아예 못 갚을 것 같으면 어디 팔아치우기 라도 하겠는데, 능력도 있고 갚긴

갚는다.그런 주제에 뻔뻔하게 나와서 진짜육시를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

뚝 같으면서도, 그럴 때마다 기가 막히게 분위기 파악을 한다.

소싯적에 기가막힌 연애를해본 게 아닌가의심이 될 정도의 밀고 당기기

의 고수들이다.

"그 밀당을 지랑 떡치는 새끼랑 할 것이지 왜 사채업자한테 하고 지랄이야

지랄이 씨발!’,

남자는 씨팔, 씨 이팔 소리를 입 에 계속해서 담으면서 으슥한 뒷골목을

향해 이동했다.

"씨 이 팔, 늏같은 직 장같으니 . 깡패 새끼들이 왜 흡연은 안 해서 …."

사람눈에 띄면 안되는 짓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냥 흡연을 위해서 굳이 건물에서 나와서 축축하고 바퀴벌레가 나올 것

같은 냄새 나는 뒷골목으로 가는 것일 뿐이었다.

"돈도 많은데 흡연실 하나 만들면 덧나서 뒈지나, 니미럴 씨부럴….’,

복지 따위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대부업체와 흡연자가 아예 없는 환경이

만들어낸 환장의 콜라보레이션.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늘 같으신 형님들은

담배를 안 피우고, 월급을 주시는 위대한 오야께서는 굳이 돈을 들여서 복지

를할생각이 없으신데.

남자는 한숨을 쉬며 슬리퍼를 질질 끌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구깃구깃해진 담뱃갑을 꺼 냈다.

"이런 씨발, 돗대잖아….’,

남자는 한숨을 쉬 었다.

그래도 돗대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생 각 같아서는 평소처럼 줄담배 라도 피고 싶지만 한대로 만족해 야 하는

게 아쉬울뿐이다.

'요새 담뱃값도비싸져서 힘든데.,

!.

...

후-우.

남자는 연기를 빨아들일 때마다 노곤해지는 몸에 안정감을 느꼈다.

'어디 돈이라도나오지 않으려나.복권…. 아니 씨발복권이 아니어도좋으

니까 돈 나올 구석 이 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그렇게 돈이 쉽게 벌리면 자기가이렇게 빌빌거리며 살겠는가.

'이 염병할 엠생 인생 같으니.,

엠생.

엠늏 인생.

인생 패배자.

인생의 낙오자.

남자는 깊게 숨을쉴 때마다눈에 띄게 줄어드는 담배의 길이를 보며 자신

같다고 느꼈다.

벌리지는 않고 소비되기만하는 인생.

엔간히 지랄하고 아등바등 노력해도 볕이 들 것 같지 않은 인생.

코인을 해도, 토토를 해도, 복권을 사도.

뭔 짓을 해도 돈이 모이질 않았다.

월급으로 들어오는 돈은 형님들 술자리에 불려 나가고 동생들 앞에서 가

오를 잡는다고 순식 간에 녹아내 리고, 비 어 가는 통장을 볼 때마다 위 기 감이

들어서 사는 일확천금의 기회는 번번이 빗나가기만할뿐.

복권 1등은 바라지도 않는다. 佝등이라도 되면 온종일 난리를 피우면서 기

뻐할 준비가 되 었으련만 4등조차 당첨된 적이 없다. 토토는 인터넷에서 전문

가라고 자부하는 새끼들의 말을 들어도 죄다 빗나가기만 하고, 열이 뻗쳐서

선수 놈들에 게 욕이 라도 써 볼까 하다가 고소라도 당하면 엿될 것 같아 참는

다.

멀쩡히 위로 올라가던 코인은 그가 사는 순간 아래로 추락하고, 주식을 해

볼까 하다가도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어들과 도무지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

는 용어들에 눈이 핑 글핑 글 돌면 그 생 각도 싹 사라져 버 린다.

그래.

남자는 그저 그렇게 ….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회에 널린 한 사람일 뿐이었

다.

다만 말단이 긴 하지 만 사채 업 에 종사한다는 점 이 특이 할 뿐.

■형님들은 좋은 정보를 얻어서 배때기에 기름칠 좀 하고 다니는 것 같던데,

나는 언제 그런 거 들어보려나….,

남자는 다 타버 린 꽁초를 땅에 내 다 버 리곤 자리 에서 일 어섰다. 그리곤 근

처 편의점에 들러서 담배를사고 다시 돌아가려 했다.

"성-공하고 싶-나?’,

흠칫.

그때 남자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들리지 않았다면 분명 그랬으리

라.

남자는 지옥으로 통하는 구덩 이 에 서 말하는 듯한 목소리 에 화들짝 놀라

며 뒤를 돌아보았다.

"으아악! 씨팔!"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마자 기절할 듯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도그럴 것이 그의 뒤에 있는것은도무지 인간이라고는생각되지 않는

괴인(怪人)이었기 때문이다.

어디 전쟁터라도 나가려는 것처럼 온몸을 검은 갑옷으로 두른 꼽추. 등이

어찌나 굽었는지 낙타의 혹이 떠올랐고, 검은 광택으로 반짝이는 혹은 혐오

스러운 무언가의 알을 연상하게 했다.

갑옷이 덮여있지 않은 손은 무슨 중병이라도 있는지 하얀색과 회색이 얼

룩덜룩 묻어 마네킹을 떠올리게 했고, 몸에 걸치고 있는 군데군데 찢긴 넝마

조각은 괴물이 사람 흉내를 내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켰다.

그중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얼굴.

혐오스러운 해충을 연상케 만드는 검은 가면은 진짜로 거대 곤충 같았다.

아니, 이 괴인이 남자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진짜로 괴물이 나타났다

생각했으리라.

"크-흐, 성공. 자네는, 성공을 원해. 그렇-지 않-나?’,

괴인은 마치 방독면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기묘한숨소리를 냈다. 거기에

호흡을 하는 것이 불편하기라도 한 듯 말은 군데군데 끊어졌고, 가면 때문인

지 목소리가 기묘하게 울리면서 사람이 아니라 사람 흉내를 내는 기계가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그 기괴함 때문일까.

남자는 눈앞의 사람이 범상치 않다고 여겼다.

악마.

아니, 악마와 비슷한 무언가일지 모른다.

"원해…. 아니, 원합니다.’,

툭.

툭.

괴 인은 멍한 표정을 한 남자에 게 다가갔다.

꼽추인 데다 육중해 보이는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가벼운 발소

리와 함께.

'씨발진짜벌레 같네.'

남자는 그 발걸음을 보고 소리 없이 방바닥을 기어 다니던 벌레를 떠올렸

다.

그리고 벌레를 떠올리는 순간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고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자-네는 행운아야.’,

괴 인은 공포와 기 대 가 혼재 된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위대한주술. 자네의 운기(運氣)와, 크-흐. 갈망이 나의 눈을 끌었어. 아-

암.그렇고말고….’,

괴 인은 그리 말하며 남자의 머 리 채를 쥐 고 머 리 털을 한 뭉텅 이를 뜯었다.

뿌드득!

"으아악! 이게 무슨 짓이요!"

남자는 갑작스레 느껴진 고통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괴 인을 노려보았지

만, 곧괴인의 끔찍한가면과 기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다시 눈을 깔았다.

"자네는, 운이-좋아.그리고, 그리고.흐-.크-흐.운이 더 좋아질거야.’,

화르르륵.

괴인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새까만손바닥에서 마치 채 꺼지지 못

한 불씨라도 있었던 것처럼 나타난 작은 불꽃은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 며

손에 쥔 머리카락을 태우기 시작했고, 단백질이 타면서 내는 역겨운 냄새와

함께 남자의 염색 머리는 한줌의 잿더미로 변했다.

괴인은 그 잿더미를 손가락에 찍어 바르더니 남자의 복부 한구석을 쿡 찔

렀다.

,.윽!,.

그러자 마치 문신이라도하는것처럼 남자의 복부에 검은 점 하나가콕 박

혀버렸다. 그 점은 물감이 번지듯 그 세를 넓히려다가 울퉁불퉁한 원의 형태

가되자 증발하듯이 서서히 피부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 이게 뭡니까?’,

주술.

그것도 제대로된 주술이다.

남자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 주술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능력 자들 사이 에 서도 기 인 (奇人)으로 취 급되 지 만, 동시 에 그만큼 특별하

게여겨지는존재.

남자는 자신이 평소에 그렇게 원하던 행운을 얻었음을 직감했다.

지금 이 주술사와의 만남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줄 분기점이라는

것을 이성이 아닌 본능으로 느꼈다.

그렇기에 남자의 태도는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운, 운이 좋아진다고했는데.그럼 이게 운이 좋아지는주술입니까?’,

괴 인은 공포 대신에 기대감이 가득 들어찬 남자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크-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직접. 겪어보는 게 맞겠지."

반들거리는 벌레의 얼굴.

유리알을 끼운 것 같은 눈.

가면의 틈새로 보이는 석고 같은 피부.

"흐흐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젠 그 모습이 두렵지 않았다.

남자는 헤벌쭉 웃으며 감사 인사를 했고, 연신 고개를 숙이는 그를 보며

괴인은 말했다.

"위대한 주술의 힘을 느껴보도록. 나는 한동안 이곳에 있을 테니. 행운이

더 필요하다면 찾아오라.’,

다만 다음에는 약간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괴 인은 그리 말하며 뒷골목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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