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
그렇게 충격과 공포의 하루가 지나고, 시간이 흘렀다.
의식을 보자마자 잠을 청했던 이세린은 당연하게도 악몽을 꾸었다. 그 악
몽에서는 머리만 남은 온갖 동물들이 나타나서 떼로 몰려다니며 하늘을 날
아다니는 장면이 나왔고, 마치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밟듯이 머리로 만든
다리를 밟으며 지휘관처럼 자리 잡은 진성의 모습이 보였다.
'이거 무슨 예지, 예지몽 같은 거 아닐까?,
[개꿈이다.]
자신이 꾼 꿈이 분명 상징학(Symbology)과큰 연관이 있으며, 분명 어떤
의 미 가 있을 거 라고 박박 우기 던 이 세 린은 인터 넷과 저택 의 서고를 뒤 져 가
며 악마에게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증명하려 했고, 악마는그와는 반대로 자
신이 오랜 세월 살아가며 보았던 주술과 그 기반 지식을 떠올리며 추측하려
했다.
하지만 둘의 노력은 수포가 되 었다.
충격적인 의식을 본 지 이틀이 지났음에도 이세린과 악마는, 그날의 의식
이 .어떠 한 물건.을 만들기 위 한 것이 라는 것만을 짐 작할 수 있었을 뿐, 그게
어떤 지역의 주술이고 어떤 메커니즘을 가졌는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그렇 기 에 이 세 린은 ,비 혈연 호적 리스 동거메 이 트이 자 생 물학적으로 원수
로 프로그래 밍 되 지 않은 사람이 이 상하다1라며 그녀를 찾아온 이 아린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다만 자신들에게 잘 대해주려고 노력했던 진성의 모
습을 떠올리며, 결코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의식은 아니었을 거라는 추측만
을할수있었을뿐.
" 이 아린, 오빠가 조금. 조금 이상해졌지만 그래도…."
"아〜 해 끼치지 않는다고? 그건 아는데에〜"
이 아린은 노란 잠옷의 가슴께를 펄럭거리며 말했다.
"아 더워〜’,
"더운데 왜 그런걸 입어…."
"아〜 그 옷 때문에 더운게 아니라, 알잖아. 그, 아모르겠네.’,
이 아린은 펄럭거리는 것을 멈추고 살짝 한숨을 쉬 었다. 살짝 붉어진 얼굴
은 더위나 열 때문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오라비 놈이 자기 몸에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야, 내 말은.’,
n
摬.
이세린은 부끄러워하는 이아린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가 그녀가
자신을 정색한 얼굴로 노려보자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괜찮을거야. 아마….’,
[ 그렇다. 아직 종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있으니 위험하진 않으리라. 다만
완전히 안전을 확언할 수는 없으니 걱정된다면 그 남자의 건강 상태를 수시
로 확인하는 것도 좋으리. ]
이아린은 괜찮다고 말하는 쌍둥이의 음침한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웃었다.
"뭐, 이상한 짓이야항상하던 거고. 건강하면 문제없겠지 뭐."
쬞 쬞 쬞
"건강하다.’,
진성은 반 안에서 가부좌를 튼 채로 중얼거렸다.
■지금 이 시점의 내 몸은, 매우 건강하다.,
그는 소규모라곤 하지만 의식을 치렀음에도 몸이 멀쩡하자 작은 감동마
저 느꼈다.
그가 회귀하기 전에는 의식을 하면 피를 토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심하면
갈기갈기 찢긴 내장조각이 기침에 섞여 나오기도 했었다. 살이 산채로 썩어
문드러지 기도 했고, 곰팡이 가 몸을 뒤 덮은 적도 있었다.
'의 식을 했음에 도 사흘 동안 감기 기운이 살짝 머무는 것으로 끝이 라니.
참으로 만족스럽 다.,
의 식 이 라는 것은 반드시 대 가를 치 러 야 했다.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든, 커다란 것이든.
그런데 문제는 그 대 가라는 것이 참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의 식 이 라는 것은 보통 대 규모로 진행되 는 만큼 복수의 주술사가 진행 한
다. 주술 의식이라는 것은 엄청난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대신에 악몽 같은 난
이도를 가지고 있으며, 리스크 역시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의식을 진행했어도 그 의식의 대가는 다 다르게 치른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쓸개 에 돌이 가득 차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고작 검
버섯이 잔뜩 피 어나는 것으로 끝나기도 한다.
이것만 본다면 그냥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되는게 아니냐 할수있겠지만,
종잡을 수 없는 ,의 식의 대 가,는 같은 사람이 같은 주술 의 식을 했음에도 어
떤 때에는 피를 토하고 병원에 실려 가게 하고, 어떤 때에는 눈에 다래끼가
나는 것으로 끝낸다.
분명 무언가 규칙 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 규칙을 도저히 알 방법 이 없다.
따라서 주술사들은 이러한주술 의식의 대가를 일컬어, ■하늘의 뜻,, ■혼돈
의선택,이라고하였다.
■하지만 리스크를 줄일 방법은 분명히 있다.'
하지 만 대 가가 다르다고 하여 그것을 가볍게 만드는 방법 이 없는 것은 아
니었다. 무언가를 제물로 바쳐 재앙을 분산시키고 액을 막는 방법은 모든 이
능 중에서도 주술이 압도적이 었다.
재물.
제물.
대규모 주술 의식의 단맛을 잊지 못했던 권력자와 주술사들은 끊임없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수단을 취했고,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바로 저 두
가지 요소였다.
액 (厄)을 대신 받아낼 제물을 바쳐 대가를 가볍게 만들고, 재물을 바쳐 다
시 한번 대가를 가볍게 만드는것.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대신에 대가를 가볍게 만드는 방
법만큼은 찾아낸 것이다.
죽음을 중상으로.
중상을 경상으로.
그렇기에 오늘날 주술사들은 대규모 주술 의식을 행해야 한다면, 반드시
값비 싼 재 물과 제 물을 동원 해 한없이 리 스크를 줄여 버 리 는 방식 을 택 한다.
거기에 더해 부정이 타지 않게 조심하고, 목욕재계 등을 통해 몸을 정갈하게
유지한다.
당연하게 도 이 러한 과정 에 드는 돈은 천문학적 이 었지 만….
그래도 의식 한 번 치를 때마다 주술사가 픽픽 죽어 나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지만왜 그 방법이 리스크를 줄여주는지 아무도 모르지.,
주술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어째서 리스크를줄여주는가,에 대한 답은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주술사는 역사를 통해 저러한 방법이 의식의 리스크
를 줄여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어느새 주술 의식의 매뉴얼이자 바
이블이되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주술 의식이라는 것이 대가를 기묘하게 계산
한다는 사실을….,
그것은 살아 움직 이는 송장 같은 몸으로 끝없이 주술을 추구했던 진성의
광기가빚어낸 결실이었다.
■룰렛.,
진성은 세계 툩차 대전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용병으로 떠돌며 수많은 주술
의식을 접할수 있었다. 유적에서 발굴하기도 했고, 망해버린 세력의 잔해에
서 찾아내기도 했으며, 어떤 때에는 용병 의뢰 보상으로 내걸기도 했다. 자신
과 긍정적인 관계의 단체에 부탁해서 주술 의식에 참여하기도 했고, 반대로
사이가 좋지 않은 곳에는 협박이나 무력행사를 통해 강탈하듯 주술 의식법
을 빼앗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은 주술 의식들에 용병 활동을 하며 벌어들이는 돈
을 꼬라박으며 살아가던 어느 날.
진성은 무언가를 깨닫게 되 었다.
『무작위로구나. 禳
주술 의식 이라는 것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논밭 한 마지 기 가 풍족하기를 기원하는 주술은 마을 하나로, 마을 하나에
서 국가로.
땅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속에서 한모금의 물을 원하며 사용하는 주술은
비 를 바라는 주술로.
인간의 권역이 확대되고 사회의 범위가 넓어짐과 함께 주술 역시 그 범위
를 함께 넓혔고, 종국에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단위 였던 '국
가,까지 넓어졌다.
당연하게도 소규모 범위에 소규모 혜택을 부여하는 옛 주술 의식은 자연
스럽게 잊혔고, 대신에 대규모 범위에 대규모 혜택을 부여하는 주술 의식이
주류가 되 어 살아남게 되 었다.
하지만주술에 미쳤던 진성은 ,비효율적이다,, '노력과 비교하면 얻는 것이
없다.,, '옛날 방식 이 라 쓸모가 없다,라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그런 주술
의식을 마구잡이로 모았다. 그리고 준비물도 오롯이 자신의 돈으로 구하고,
도와주는 다른 주술사도 없이 혼자 의식을 주관하여 진행했다.
그런데 잊힌 옛 주술 의식들을 끊임없이 치르던 진성은 기묘한 사실을 알
아냈다.
눕 완전히 잊힌 옛 주술은 지불하는 대가가동일하다. 禳
위화감을 느꼈던 것은 회복용 주술 의식을 사용했을 때였다.
용병이라는 몸을 험하게 굴리는 일을 하는지라 다칠 일이 잦았고, 개중에
는 생명을 직접 위협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는 반드시 영향을 주는 부상
도 있었다.
예를 들어 위장이나 장에 상처를 입었다거나, 눈에 강한 충격을 받았었다
거나, 머리에 혈전이 생겼다거나하는 부상들.
이런 부상은 잠깐은 멀쩡한 듯 보이나 내버려 두면 병원 신세를 지거나오
랫동안 용병 일을 쉬는 등 후유증이 따르곤 했기에 의식의 리스크를 감수하
고서라도 회복 주술 의식을 통해 치료하곤 했다.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것보다야 잠깐 리스크를 감수하는 게 훨씬 나
았으니까.
다행히 그가 모은 주술 중에는 회복과 관련된 주술도 많았고, 내상을 치
료하기 위한 주술도 많았다. 내부를 진탕 시키고 망가트리는 방식은 암살로
사용하기 편리했고, 그 방식에 대응하기 위해 내상을 회복하고 독을 해독하
는주술 역시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의식마다 효과는 조금씩 달랐고, 진성은 제각기 상황
에 맞게 다른 주술을 사용하곤 했다.
그러 던 어느 날, 내 장을 치유하는 주술 의 식 인 성광은상제 (星光恩象祭)
를 세 번째로 사용하던 날 진성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저번과대가가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