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
이틀 전 이세린은 기묘한 느낌에 자다가 눈을 떴다. 그 느낌은 온몸의 솜
털이 이질적인 무언가를 감지하고 솟구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본능과
관련된 기관이 위협을 감지하고 깨어난 것도 같았으며, 방문을 닫고 잤음에
도 어 딘 가에 서 흘러 나오는 산들바람에 느끼는 기묘한 위 화감과 같은 느낌
이기도 했다.
그때 이세린은눈을 번쩍 뜨며 침대에서 내려왔고, 악마가그녀의 귀에 속
삭였다.
[뭔가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붉은 낙타의 형 상을 한 악마는 그대 로 그녀를 태 우고 소리 없이 움직 였다.
사막의 모래를 사뿐히 밟는 것처럼 악마의 발굽은 땅에 푹푹 박히면서도 그
어떤 흔적도,소리도남기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도달한 곳은….
[ 이곳은 벌레를 그렇게 좋아하는 네 오빠가 머무는 방이 아니더냐? 挖
'그렇게 말하지 마…. 이상하잖아….,
그녀의 오빠이자, 혈연이 없음에도특별한 사정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가
족으로 지내는 기이한 관계의 남자. 박진성의 방문 앞이었다.
[그렇다면 어찌 말해야할까. 네 언니처럼 말해야하느냐? 네 언니라면 그
래. 비혈연 호적리스 동거메이트, 정도로 표현했을 것 같기는하구나. ]
■그렇게 말하니까 더 이상하잖아….,
악마와 이세린은 하나도 긴장하지 않은 채 문 앞에서 서로 투덕거렸다. 낙
타는 은발굽을 바닥 면에 깊이 박은 채로 귀까지 찢어져라 씨익 미소를 지으
며 계속해서 이세 린을 놀려댔고, 이세 린은 그 짓궂은 장난에 슬쩍 눈을 흘기
면서도 악마의 말을 다 받아주었다.
[하하하, 네 언니가했던 말을 그대로 했는데 나에게만 투정이구나.]
■언니 아니야.동생이야….,
[ 먼저 세상에 발을 디뎠으니 언니가 아니더냐? 挖
■내가뱃속에서 양보해서 그래. 언니의 아량으로….,
[ 하하, 어찌 쌍둥이라는 족속들은 이리도 위아래를 왔다 갔다 하는지 모
르겠구나. 악마고 인간이 고 쌍둥이 만 되 면 서로 자기 가 첫째라 그러 니 …. 내
가 아는 타천사 녀석도 자기 형보다 윗줄에 서려고 안간힘을 쓰더구나. ]
낙타는소리 없이 웃으며 발을 들어 문고리를 가리켰다.
[자, 나의 계약자야.과거를투시해 기어코태어난선후(先後)를 알고자
했던 귀여운 나의 계약자야.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너에게 여기 눈앞에 비밀
이 있노라.]
■구, 궁금한건 어쩔수 없었어….,
[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본디 인간이 귀여운 것은 비밀을 파헤치고자 하는
호기심에 이곳저곳 찔러보는 모습 때문이 아니더냐. 나 역시 비밀을 찾는 것
이 취미이니 만큼 그러한 모습에 사랑스러움을 느끼노라. ]
으, 응. 사람은 다 비밀이 있으면 알고 싶어해…이건 정상인거야...,
꿀꺽.
이세린은 자신도 모르게 문고리에 손을 가져가다가 멈칫했다.
■그, 그래도…. 오빠 비밀을 보는건 좀, 좀 망설여지는데….,
그녀가 아무리 호기심이 넘치고 궁금한 것은 반드시 풀어야 직성이 풀리
는 성격이라지만, 왠지 모르게 어색한 사이였던 진성의 방을 몰래 훔쳐본다
는 것은 묘한 죄 책 감이 들었다. 가족끼 리 방을 보는 게 어떤 가 하는 생 각이
들면서도 피 가 이 어 지 지 않았다는 생 각에 생 판 남을 관음하는 것은 범죄 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같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가 지나면 독립해서 만날 일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그
러했다.
[ 그러니 지금 보아야 한다. 무슨 의식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지금 안
보고 넘어간다면….]
'아, 앞으로…. 언제, 언제 볼지 모른다?,
[그러하다. 앞으로 의식을 하지 않을지도모르고, 나중에 우연히 또 기회
가 찾아온다 하여도 다른 의식일 가능성이 크고, 거기에 만약 네 오빠가 주
술사로서의 실력을 확 끌어올려 누군가 훔쳐보는 것에 대해 대비를 할 수도
있지.]
'하, 하지만….'
[ 거기에 독립하면 더 그러하다. 네 오빠가 이제 남남이 되었는데 이 저택
에 와서 굳이 의식을 치르겠느냐? 필시 자기가 마련한 집에서 의식을 치를
터 인데 , 그것을 볼 수 있으리 라 생 각하느냐? ]
결국, 이세린은 악마의 속삭임을 이기지 못했다.
아니, 아예 이길 생각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문고리를 잡았다.
그녀는 못 이기는 척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죄책감을 집어 던
져버리고 호기심에 몸을 맡긴 채 문을 살짝 열었다.
몸을 숨기는 악마의 권능으로 문은 아무 소리 없이 열렸고, 간신히 방 안
의 풍경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틈새 가 벌어지 자 이세 린과 악마는 눈을 가져다
대고 방 안을 살펴보았다.
■윽!,
그런데 훔쳐보려고 얼굴을 가져다 댄 순간 이세린은 참을 수 없는 신음을
흘릴 뻔했다.
'이게 무슨 냄새야?,
고기 굽는 냄 새 같기 도 하고, 머 리 카락을 태우는 냄 새 같기도 했다. 거 기
에 오랫동안 부패한 고기의 향기도 났고, 시큼한 향기와 하수구에서 퍼 올린
오물 같은 냄새도 났다. 그야말로 코안의 점막을 바늘과 칼로 난도질을 하
는 듯한 강렬한 냄새 였다.
[ 허어, 대체 무슨 짓을 하길래 이런 냄새 가 나는고? 맥 각균에 취 한 마녀 가
끓이는 가마솥보다도 끔찍한 냄새 가 나는구나. ]
'내, 냄새가너무심해.그런데…. 이런 냄새가왜 밖에는 안났지?,
[..흠.]
악취 에 괴 로워하며 코를 부여 잡은 이세 린은 투덜투덜 불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뒤에 있는 악마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 살짝 사나워진 눈매로 방 안을
살펴보았다.
방 안은 무언가를 태웠는지 하얀 연기가 안개처럼 사방에 퍼져 코앞조차
살펴볼 수 없을 정도였고, 안에서 팔을 휘젓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진성이 아
닐까 짐작만 할 수 있었다. 검은 그림자는 바닥에 놓인 촛불에 이리저리 흔들
리며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면서 방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휘 젓는 팔은
촉수처럼 연기 속을 맴돌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림자의 뱀,그림자의 뱀이 보이는구나.]
악마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투시의 권능을 일으켜 자신과 이세린
의 눈에 씌웠다.
'어?,
그리고 투시의 권능이 사용되는 순간, 이세린은 놀라움에 입을 틀어막았
다.
'저, 저게 다뭐야?,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단상.
잔뜩 썩 어 악취 마저 풍기 지 않을까 싶은 썩은 나무로 만들어진 그것의 위
에는 부엽토가 카펫처럼 깔렸고, 그 위에는 마치 제사라도 지내는 것처럼 얼
기설기 만들어진 찰흙 그릇들이 놓여있었다. 쩍쩍 갈라져서 당장이라도 부
서져 내릴 것만같은찰흙그릇의 위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담겨 있었는데,
그것들이 하나같이 역겨움을 불러일으켰다.
'머리…. 머리가있어.'
머리.
온갖생물들의 머리가그곳에 있었다.
뱀의 머리.
생선의 머리.
산처럼 쌓인 벌레의 머리.
비 쩍 말라 죽은 지 한참은 되 어 보이는 고라니의 머리까지 .
온갖 머리들이 단상 위에 올라가 진성을 향해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며
있었다.
"-보라, 생을 마감해 업에 파묻혀버린 가련한 것들아. 여기 안과 밖이 뒤
집혀 자아가 한없이 무거워졌으니, 그대들이 맡고 있던 생명의 길을 따르라.
살아생전 너희의 생에 붙었던 흔적이 바로 너희가 향할 길이니, 이곳으로 와
그것을 따라 자아를 추구하라.’,
수많은 머리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진성의 모습은 그야말로 귀기(鬼氣)
가 서려 있다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진성은 한 손에는 작은 원통을 쥐고
흔들었고, 반대편 손에는 검지 손톱 크기의 방울을 쥐고 흔들었다.
딸-랑.
[ 감염 주술(Contagios Magic)? 아니, 그것보다는훨씬 원시적인….]
악마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 렸다.
딸-랑.
"오라, 생명을 따라 굴속으로 오라. 안식을 취하라. 벌레는 날개가 돋지 않
아도 날 수 있고, 뱀은 용이 되 지 않아도 돋아나리 라. 다리 가 없어도 땅을 박
차며 물이 없어도허공을 헤엄칠 수 있으리라.오라, 향의 바다를 건너 연기의
날개옷을 두르고 이곳으로 오라.’,
진성의 의식은 이윽고 막바지로 치달았다.
초에서 피 어오르는 하얀 연기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단상으로 이동했고,
진짜로 선녀 가 날개옷을 두르듯 찰흙 그릇에 놓인 머리를 휘 감았다. 그리고
머리는 누군가 손으로 쥐 기 라도 한 것처 럼 허 공으로 붕 뜨기 시 작했고, 하나
의 개체라도된 것인지 동시에 고개를원통을 향해 돌리더니 빠른속도로 날
아갔다.
투-웅
투---웅
마치 손으로 집어 던져 원통에 공을 집어넣듯,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수많
은 머리는 원통을 채우기 시작했다. 뱀의 머리, 벌레의 머리, 뱀의 머리, 벌레
의 머리,생선의 머리….
이윽고 고라니의 머리 차례가되었을 때, 고라니의 뼛조각이 모래처럼 부
서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벌레떼라도되는 것처럼 맹렬히 날갯짓하며 원통을
완전히 꽉 채워버렸다.
탁.
원통이 저절로 뚜껑을 닫고, 원통의 표면에 눈 모양의 푸르스름한 형상이
떠오르자 진성은 미소를 지 었다.
파스스스 ”•.
그리고 의 식 이 끝난 것을 알기 라도 하는 듯 방 안의 촛불이 일제히 꺼 지 며
연기를 뿜는 것을 멈췄고, 방 안을 가득 메웠던 연기는 진성의 코와 입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단상은 마치 여름철 강한햇살에 얼음이 녹아내리듯
거뭇한 액체의 형상으로 변하더니, 의지라도 가진 것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
가며 방의 벽면에 녹아내렸다.
그렇게 방 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해졌다.
"후-우.’,
작은 한숨.
만족스러운미소.
진성은 방의 중앙에서 미소짓고 있었다.
[물러나자.]
'으, 응?,
[ 주술이 끝났으니 자칫 잘못하면 들킬 수도 있을 터. ]
f
'으응.
[ 흐음, 주술이라 하기에 이 반도 인간들이 하는 제사를 생각했더니 참으
로 원시적인 형태였도다…. 이것을 무슨 주술이라 불러야 하는고…. 호기심
이 솟는구나….]
이세 린과 악마는 살짝 열렸던 문을 다시 닫고 소리 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
아갔다.
[ 나의 계약자야, 시간이 늦었으니 빨리 잠들어야 하노라. ]
■응…. 이왕 이 시간까지 깬 거, 그냥조금만 더 있다가 자면 안돼?,
[ 아니 되노라. 성장기에 제대로 잠을 안 자면 제대로 크지를 못하노라. 무
릇 성장이라는 것은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인간의 아름다움이 꽃핀다 할 수
있으니,어서 잠을 청해야 할 것이다. ]
'알았어….,
악마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이세린을 재우기 위해 닦달했고, 이세린이 잠
에 빠져드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그제 야 눈을 떼고 창가로 향했다.
[흐음, 참으로 기묘한주술이었다. 이 반도의 것은 아니고.그렇다고 내 고
향의 것도 아니니….]
낙타의 형상을 한 악마는 혀를 내밀어 코를 날름 핥으며 그 의식을 계속해
서 곱씹었다.
그러다가 악마의 머릿속에 갑자기, 정말로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연기가 뱀처럼 움직이던 그때.
수많은 머 리 가 하늘을 날고 통으로 파고들던 바로 그 순간.
진성과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