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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6. 새로운 가족 (135/136)


외전 6. 새로운 가족
2023.02.13.



 
다행히 티파티는 별다른 일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귀족 부인들에게 임신과 출산과 관련된 정보를 들었을뿐더러 아이샤도 브라운과 친해졌다.

그 때문일까. 그날 이후로 아이샤는 부쩍 브라운에 관한 얘기를 자주 꺼냈다.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샤의 변화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언니. 내 편지 좀 봐줘! 어때?”

“응. 아이샤. 글씨 엄청 깔끔해졌네!”

아이샤가 브라운과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될 줄이야.

아이샤의 편지는 몇 번을 보아도 신기했다.

이전과 달리 깔끔해진 글씨는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했던 건 편지 내용이었다.

‘나도 네가 보고 싶어. 브라운’이라니! 이거 뭔가 심상치 않은 냄새가 폴폴 풍긴단 말이지.

아이샤와 브라운 사이에 오가는 편지를 볼 때마다 괜히 내가 더 들떴다.


“그리고 내용도 잘 썼는걸?”

“정말? 언니, 고마워! 역시 언니가 최고라니까!”

아이샤는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아이샤를 바라보던 리타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요즘 아가씨 얼굴에 꽃이 폈네요.”

“그러게. 정말 잘 맞는 친구를 만나서 그런가 봐. 델카인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샤와 브라운이 친해지면서 델카인이 혹시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지는 않았을까.

마음에 있는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걱정되던 찰나였다. 리타가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아, 그러고 보니 도련님도 요즘 펠리르 님과 부쩍 친해지신 것 같더라고요.”

“펠리르 씨랑요?”

“네. 전부터 펠리르 님과 연락을 주고받던데, 무척 신나 보이셨어요. 요즘엔 펠리르 님의 연구실에 자주 가시더라고요.”

문득 티파티를 열었던 날, 아이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델카인이 펠리르를 보러 갔다고 했었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델카인이 그토록 신나 하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갔다는 게 사실 잘 믿기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미루고 나랑 아이샤 곁을 지켜주던 그 델카인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던 애들이 벌써 이렇게 성장하다니.

내가 없이도 다른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쌍둥이의 모습을 생각하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뿌듯하면서도 울컥하는 복잡한 마음에 대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 마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던 거예요? 울지 마셔요.”

리타가 안절부절못하며 내게 허겁지겁 손수건을 내밀었다.

내가 여기서 더 울면 리타가 당황스러울 텐데.

나는 어떻게든 눈물을 그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은 줄줄 흘렀다.

이상하게도 갑자기 감정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널뛰는 듯한 기분이었다.

***

나는 복잡한 마음을 추스를 겸 밖으로 산책을 나왔다. 걸으면서 바람을 쐬니 한결 기분이 괜찮아졌다.


“미안, 리타. 나 때문에 많이 놀랐지?”

고개를 내저은 리타가 멋쩍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아니에요. 임신 중에는 감정 기복이 심할 수도 있대요! 제가 빨리 파악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어쩐지…… 그래서 기분이 널뛰던 거였구나.”

“감수성이 풍부한 아기님이신가 봐요.”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라. 그럼 잘 웃고 잘 울기도 하려나?

나는 조심스럽게 배를 문질러 보았다. 약간 단단하면서 조금 부푼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티가 많이 나진 않지만, 확실히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라크하가 얼른 아이샤에게 임신 소식을 말해야 할 텐데…….”

라크하가 알아서 잘 말해보겠다고 했으니 믿고 맡기면 되는 건데 괜히 불안했다.


‘이것도 감정 기복이 심해서 그런 걸까.’

또다시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계속 내 눈치를 살피던 리타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마님, 기분이 우울할 땐 단 게 최고래요. 마침 주방에 갓 구운 브라우니가 있는데, 그거라도 드셔보는 게 어떠세요?”

“응, 고마워.”

“뭘 이런 걸로요! 금방 다녀올게요! 여기 앉아 계세요.”

어느새 나를 벤치에 앉힌 리타가 저 멀리 사라졌다.


“후.”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던 그때, 갑자기 내 다리에 말랑거리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뭐, 뭐야?”

“야옹.”

화들짝 놀라 다리를 쳐다봤다. 노란 고양이가 벤치 아래에 늘어져 있었다.


“녹스가 사라진 이후로 어디 갔나 했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만나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괜히 친밀감이 느껴졌다.

내가 손을 뻗어 고양이의 머리를 어루만지자, 고양이도 기분이 좋은 듯 갸르릉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계속해서 찾고 있던 한 사람, 아니 한 신이 떠올랐다.


“……테리투스는 잘 지내려나?”

사실 그 이후로 테리투스를 몇 번이나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수차례의 시도에도 테리투스는 어떤 대답도 없었다.


“고맙다는 말도 아직 못 했는데.”

함께 보낸 시간 동안 정이 들기라도 한 걸까. 마지막엔 나를 제 딸이라며 도와주기도 했으니까.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신 걱정이라는 건 알면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대체 어디에 가 있는 거야.”

나는 내 곁을 배회하는 노란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테리투스라면 나를 어디에서든 지켜볼 수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직접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테리투스 님, 이제 장인어른이 되셨어요.”

“야옹.”

하지만, 내 말에 대답한 것은 테리투스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고양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내가 고양이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고양이도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고개를 내저은 나는 천천히 고양이를 내려놓았다.


“조심히 가렴.”

내 작별 인사에도 고양이는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설마.


“……테리투스 님?”

아까만 하더라도 느껴지지 않던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묶지 않고 놔뒀던 머리칼이 허공에 휘날리면서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누가 마음대로 장인어른으로 만드는 거야!”

“……!”

뻔뻔하면서도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다시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고양이의 시선은 이전과 달리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익숙한 눈빛에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을 외쳤다.


“테리투스 님!”

“메이아야, 내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내가 장인어른이라니!”

“그게 어쩌다 보니…….”

예전이었으면 치를 떨었을 그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테리투스가 천천히 나를 위아래로 살피더니 조그마한 입을 쩍 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내가 손을 얹고 있던 배 위였다.


“너, 너! 그 배 안에 있는 아이는 설마……!”

“역시 가짜 신은 아니셨나 보네요?”

“내가 지금 장난하는 것으로 보이느냐! 그 건방진 자식을 아주 그냥 요절을 냈어야 했는데!”

야옹, 야옹.

자꾸 시끄럽게 울어대는 고양이 소리에 아까의 반가움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아이가 듣겠어요!”

“너 지금 내 앞에서 다른 녀석의 편을 드는 거냐!”

배신감에 몸을 파르르 떨던 테리투스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팩, 돌렸다.


“됐다! 얼굴이라도 볼까 싶어서 찾아온 내가 멍청이지, 멍청이야!”

“서운하게 무슨 말이에요!”

“흥!”

자리에 앉아 있던 테리투스가 몸을 일으켜 공작가의 뒷마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세요?”

“다른 곳도 어떤지 살펴보려면 지금도 빠듯해.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아느냐!”

“벌써 가신다고요?”

서운함이 가득 실린 내 말에 테리투스의 몸이 멈칫거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메이아야.”

“네?”

테리투스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따스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네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다. 홧김에 했던 말이니 그냥 잊거라.”

“…….”

“너는 사랑 받아야 하는 내 딸이니 항상 웃으면서 그렇게 지내거라. 알겠느냐?”

“네, 감사해요.”

아까 겨우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러나올 것 같았다.

이제 헤어지면 아마 한동안은 만날 수 없겠지.

입술을 깨물면서 울음을 참고 있으니 테리투스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래, 그거면 됐다. 잘 지내거라.”

“테리투스 님도요. 항상 고마웠어요.”

나는 최대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테리투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작별의 시간이었다.

***

단풍이 지는 가을이 찾아왔으나 아이샤에게는 따스한 봄날처럼 느껴졌다.

최근 들어 기분 좋은 일만 가득하기 때문이었다.

라크하가 매일 같이 산책해주는 데다가 최근에는 브라운과 친해지기까지 했으니.

연달아 일어나는 기분 좋은 일에 아이샤의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질 일이 없었다.


“브라운이 나한테 꽃을 보내줬는데, 너무 예뻐서 여기에다가 심어놨어!”

정중앙에 있는 화단으로 달려간 아이샤가 라크하에게 브라운이 준 꽃을 보여주었다.

꽃은 시든 것 하나 없이 활짝 피어 있었다. 아이샤가 정성 들여 가꾼 티가 확연히 났다.


“요즘 브라운 피크젤과 친하게 지내는구나.”

“음…… 브라운은 친절하고 다정하거든.”

“그래. 새로운 친구가 생겨서 다행이다.”

“친구? 아,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 특별히 친구로 인정해줘야겠네.”

인심 쓴다는 말투와 달리 아이샤는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아이샤의 입에서 친구라는 단어가 나올 줄이야.

라크하는 처음 보는 아이샤의 모습에 미소 지었다.

아이샤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한 아이였다. 그래서 아이샤에게 또래 친구가 생길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브라운한테 친구가 된 기념으로 선물을 해줘야지! 뭘 해주지?”

잔뜩 들뜬 아이샤가 고민하는 듯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렇지. 언니한테 가서 물어봐야겠다!”

“메이아에게?”

“응! 요즘 언니가 편지를 쓰는 것도 도와주고 있거든.”

라크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들어 아이샤가 메이아의 방을 자주 방문한다더니.

이러다가 메이아의 임신 사실이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제는 정말 미룰 수 없었다. 아이샤가 눈치채기 전에 아이에 대한 것을 먼저 얘기해야만 했다.


“아이샤.”

“응?”

갑작스러운 부름에 놀란 아이샤가 뒤를 돌아봤다. 라크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서 빠르게 질문했다.


“만약에 아이샤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면, 지금처럼 반갑게 맞아줄 수 있겠어?”

“새로운…… 가족? 그게 무슨 말이야?”

라크하의 말을 되짚던 아이샤가 뒤늦게 그 단어가 의미하는 말을 깨닫고 되물었다.


“설마…… 언니한테 아이가 생긴 거야?”

“응, 아이샤의 가족이자 친구가 될 아이이기도 하지.”

“…….”

아이샤는 생각에 잠긴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얘기를 나눌 친구가 생겼으니 조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역시 아직 일렀던 걸까.

라크하는 초조한 눈으로 아이샤를 바라봤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아이샤의 애정 결핍은 선대 공작 부부로부터 비롯된 것이었고, 그 때문에 메이아에게 유독 애정을 갈구하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라크하는 몸을 숙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샤와 시선을 맞추었다.


“혹시 걱정되니?”

“……응.”

라크하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던 그때, 아이샤가 라크하의 손을 잡았다.


“아기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나랑 같이 못 있을 거 아니야. 그래서 무서워. 솔직히 그게 싫긴 한데…….”

“…….”

“그래도 이젠 알아.”

아이샤가 라크하와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언니는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고, 언제나 나를 많이 사랑해준다는 걸.”

“……아이샤.”

“언니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제일 친하게 지내야지!”

해사한 미소를 지은 아이샤가 꺄르르, 웃었다.


“그건 오빠라도 양보 못 해!”

표정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라크하도 마음을 내려놓고서는 덩달아 미소 지었다.


“어디 한번 해보시지?”

“흥!”

맞잡은 손으로 느껴지는 온기가 유달리 포근했다.


“아, 언니 보고 싶다. 빨리 보러 가자!”

“그래, 그러자.”

두 사람은 나란히 손을 잡고 메이아가 있을 방으로 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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