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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 신혼여행, 그날의 밤 (131/136)


외전 2. 신혼여행, 그날의 밤
2023.01.30.


아직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탓일까. 그저 서로의 살갗이 닿을 뿐인데도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듯했다.


“부끄러우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가만히 있어요.”

“음…… 기대되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라크하가 느른하게 웃었다. 보라색 눈동자에는 은근한 기대가 들어차 있었다.

어쩐지 제 발로 먹잇감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맹수처럼 보인달까.

어느새 다시 여유로워진 라크하를 보며 나는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였다.


“어…… 그게 말이죠.”

“아무래도 먼저 날 유혹해야 하지 않겠어?”

라크하가 내 손목을 휘감아 잡더니 천천히 제 입술 위로 올렸다.

손가락 끝에 말캉한 감각이 느껴졌다.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그의 입술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진득한 갈망을 담은 보라색 눈동자가 내 입술로 향했다.


“다음 단계는 그대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당황해하는 것 같던 모습도 어쩌면 내가 잘못 봤던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대로 라크하에게 휘말릴 생각은 없었다.

오늘은 기필코 어떻게든 저 여유로운 얼굴을 깨뜨리고, 부끄러워하는 얼굴을 보고야 말리다.


“그럼요. 저도 잘 알고 있죠.”

나는 라크하에게 몸을 바짝 붙였다. 그러고는 그의 탄탄한 가슴팍을 살며시 쓸어내렸다. 근육의 굴곡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

별안간 라크하가 흠칫하며 몸을 굳혔다. 내 손길이 점차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울퉁불퉁한 근육이 움찔거렸다.

그의 목에서 으르렁거리는 듯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미세한 반응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접어 웃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할 때마다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라크하가 왜 저를 자극하고 싶어하는지 알 것 같네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라크하의 허리춤에 매어져 있는 매듭을 잡은 그 순간이었다. 단단한 무언가가 닿았다.

아. 이건 나도 예상 못 했던 건데.

당황해서 멈칫한 순간, 입술이 겹쳐졌다. 예고도 없이 입을 맞춘 라크하가 내 아랫입술을 베어 물었다.


“아……!”

찌릿하면서도 아찔한 감각에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입술이 살짝 벌어진 틈을 타 말캉한 것이 침범했다.

평소와 달리 조급하고, 거친 키스였다. 내 정신까지 휘젓는 듯한 감각에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자욱했다.

눈앞이 번쩍거릴 정도로 아찔한 키스에 정신없이 휘말리던 때였다.

다리에 무언가 걸렸다. 몸이 뒤로 넘어가기 전에 허리에 단단한 팔이 감겼다.

풀썩. 몸이 완전히 뒤로 넘어가며 푹신한 감촉이 등에 닿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귓가에 따뜻한 숨결이 느껴지더니 귓불이 살짝 깨물렸다.


“읏!”

라크하의 입술이 귓불, 턱선을 타고 깃털처럼 가볍게 입을 맞추며 내려갔다.

내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그의 손은 끊임없이 내 몸을 괴롭혔다.

얇은 가운을 입고 있는 탓에 그와 맞닿아 있는 몸이 맨살에 닿은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침내 그의 입술이 닿은 순간이었다. 별안간 정신이 번뜩 든 나는 황급히 그의 넓은 어깨를 잡아챘다.


“자, 잠시……!”

다행히 움직이던 손길은 멈추었다. 라크하가 살짝 내리깔고 있던 눈을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왜?”

라크하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낮게 잠겨 있었다. 금욕적이면서 색정적으로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이대로 본능에 따라 휩쓸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오늘만큼은 단단히 마음을 먹은 참이었다.


“……제가 알아서 한다고 했었을 텐데요.”

“메이아.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거야?”

“라크하도 기대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빌어먹을. 그래…… 그랬었지.”

낮게 탄식한 라크하가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그러고는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목덜미에 닿는 뜨거운 숨결에 몸이 흠칫거렸다.


“그럼…… 참아볼 테니 오늘은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해 봐.”

휙. 라크하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시야가 뒤바뀌더니 나와 라크하의 위치가 바뀌었다.

라크하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게 된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토록 원했던 상황이었는데 라크하가 막상 판을 깔아주자니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런 내 속을 읽었다는 듯이 라크하가 입꼬리를 씩 끌어올려 웃었다.


“단, 할 수 있다면.”

라크하의 도발에 잠시 사그라들었던 오기가 다시 생겨났다.

나는 다시 그의 가운 매듭을 잡으며 다른 손으로는 그의 허벅지 안쪽을 쓸었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예요.”

 

 

***

나는 이불 위로 얼굴을 묻으며 신음을 흘렸다.


“아아…….”

허리와 다리, 아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셨다.

분명 내가 그의 우위를 점하고 위에 올라탄 것까진 좋았다. 아니, 그 위에서 라크하를 자극하는 것까지도.

문제는 다음 단계였지. 라크하는 내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미안해. 몸이 많이 안 좋아?”

침대 끝에 걸터앉은 라크하가 내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쉬면 괜찮아질 것 같긴 한데…… 이러다간 오늘도 주변을 못 둘러보겠어요.”

“그대의 몸이 우선이지. 아직 하루가 더 남아 있기도 하고.”

라크하가 손을 아래로 내려 내 허리를 안마해 주었다.

라크하의 손이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부위를 꾹 눌렀다. 뭉친 근육이 풀리는 느낌에 탄성이 절로 튀어나왔다.


“으…… 딱 좋아요.”

별안간 내 허리를 마사지해주던 라크하의 손길이 멈추었다.

아, 딱 시원하고, 좋았는데.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돌리자, 내 허리를 만져주던 자세 그대로 굳어 있는 라크하가 보였다.


“왜 그래요?”

“…….”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 내가 슬쩍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라크하가 나를 눌렀다.


“……가만히 있어.”

엉겁결에 엎드린 채 옴짝달싹 못 하게 된 나는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이내 다시 안마를 해주는 손길에 의구심을 느낄 새는 없었다.


“아…….”

시원해라. 라크하가 꾹 눌러주는 곳마다 뭉쳐 있는 근육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눈까지 감으며 안마를 받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라크하가 손을 거두었다.

벌써 끝난 건가? 나는 아쉬운 눈으로 라크하를 힐끔거렸다.

라크하가 내게 등을 돌린 채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왜 그러는 거지? 나는 그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라크하?”

나는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키고는 라크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빨간 건 둘째치고, 저 복잡 미묘한 표정은 뭐람.

고운 미간에는 고뇌의 주름이 잡혀 있었다.


“으음……?”

물끄러미 라크하의 얼굴을 관찰하고 있자니, 라크하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나를 다시 눕혔다.


“……피곤할 테니 조금 더 자.”

“갑자기요?”

“잠을 얼마 못 잤잖아. 그대가 얼른 몸을 회복하면 좋겠거든.”

라크하가 이불을 끌어당겨 내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 포근한 이불이 몸을 감싸자 하품이 터져 나왔다.


“……라크하도 같이 누워요.”

“난 괜찮으니 눈 감아.”

라크하의 커다란 손이 내 눈 위를 덮었다. 어둠이 찾아오고, 어깨에는 규칙적으로 토닥이는 라크하의 손길이 느껴졌다.

많이 피곤했던 걸까. 나는 금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진 이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잠들기 직전까지 내 곁에 있던 라크하가 없었다.


“라크하?”

어딜 간 거지? 의구심이 든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보았다.

허리가 조금 뻐근하긴 했으나, 확실히 몸 상태가 낮보다는 괜찮았다.

사라진 라크하를 찾으려고 방안을 두리번거리던 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더니 라크하가 방으로 들어왔다. 라크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메이아. 일어났어?”

허리를 숙인 라크하가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 감각이 간질간질하여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방금 막 일어났는데, 없어서 찾았잖아요.”

“다행히 딱 타이밍을 맞춰서 왔네. 몸은 이제 어때?”

“더 자고 일어났더니 조금 회복된 것 같아요. 이젠 허리만 뻐근한 정도랄까요.”

내일이 되면 완전히 회복해서 활동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라크하는 내가 잠든 사이에 밖을 둘러보고 오기라도 한 건가?

온종일 늘어져 있는 나와 달리 어쩜 이렇게 멀쩡한 건지. 불퉁한 표정을 짓자 라크하가 내 뺨을 콕 찔렀다.


“뭐가 불만인 걸까?”

“저는 이렇게 온종일 누워 있는데 당신은 멀쩡하잖아요.”

“미안해. 다음엔 더 조심할게.”

라크하는 나지막이 웃음을 터트리더니 내 귓가에 입을 맞추며 작게 속삭였다.

그나저나 라크하도 잠을 얼마 못 잤을 텐데.


“라크하는 안 피곤해요?”

“난 그대가 밤새 괴롭혀도 다음 날 멀쩡할걸.”

느닷없이 훅 치고 들어온 노골적인 말에 나는 당황해서 입을 벙긋거렸다.


“지, 지금 그게 무슨 소리를…….”

“많이 피곤해 보여서 과일을 준비해 왔어.”

하지만 라크하는 태연하게 말을 돌리면서 침대맡 서랍 위에 있는 접시를 들었다.

접시 위로 초록빛이 나는 탐스러운 포도가 올려져 있었다.

라크하는 포도를 한 알 떼어내더니 내 입술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

자연스럽게 그의 보라색 눈동자가 내 입술로 향했다. 그저 내가 입을 벌리길 기다리는 걸 텐데.

이상하게도 묘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벌렸다.

입안에 포도를 넣어주느라 라크하의 기다란 손가락이 입술을 스치고 지나갔다.

애써 그 감각을 떨쳐내며 라크하가 준 포도를 씹었다.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서 터졌다.


“어때?”

“……맛있어요.”

“그럼 키스해줘.”

“뭐, 뭐라고요?”

“장난이야. 그냥 칭찬해달라는 의미였어.”

라크하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살짝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자 라크하가 내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댔다.

부드러운 그의 머리카락이 목선과 어깨를 간질이자 몸이 살짝 떨렸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극적으로 느껴지다니. 이게 전부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이다.


‘의식하지 말자. 메이아.’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청포도를 하나 집어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내가 라크하에게 받아먹는 것보다 잡생각이 덜 들었다.

좋아. 계속 라크하한테 먹여주자. 나는 그 뒤로도 계속 라크하에게 청포도를 먹여주었다.

어쩐지 고분고분 내가 주는 대로 잘 먹는 라크하를 보고 있자니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라크하가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내 손목을 붙들었다.


“……왜요?”

“그대를 위해 준비한 거야. 내가 아니라.”

불그스름한 혀로 과즙이 묻은 내 손가락을 핥은 라크하가 눈매를 접어 웃었다.

그의 눈빛과 행동은 야릇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도 라크하와 밤을 보낸다면…… 분명 내일이 없을 거야.


“라크하를 먹여주는 것도 절 위한 거라고 하죠.”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다시 라크하의 입에 청포도를 물려주었다.

하지만 라크하는 이전과 달리 바로 삼키지 않았다.


 
라크하가 청포도를 입에 문 채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

청포도가 입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니 라크하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청포도는 처음 먹었던 것보다 훨씬 더 달고, 달았다.


“이러면 나와 그대가 원하는 것 모두 충족하는 건가?”

나는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렇긴 한데…….”

이러다간……. 라크하는 내 속을 읽기라도 한 듯 내 귓가에 악마처럼 달콤하게 속삭였다.


“오늘은 힘들게 안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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