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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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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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 결혼식
2023.01.27.
후우. 숨을 길게 내뱉은 나는 눈앞에 있는 화장대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달리 화려하게 치장한 머리와 화장. 새하얀 드레스. 거울 속에 비치는 나는 영락없이 오늘 결혼할 신부의 모습이었다.
딱 한 가지만 제외하고는.
바로, 심각할 정도로 잔뜩 굳어 있는 표정이었다.
“웃자. 웃어야지. 메이아.”
긴장할 필요 없어. 오늘은 좋은 날이잖아.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억지로 웃는 탓일까. 내 미소는 어색하다 못해 험악해 보이기까지 했다.
설상가상으로 안면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드레스가 구겨지지 않도록 도와주던 리타가 내 표정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까지 억지로 웃으시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요?”
“역시…… 이상하죠?”
결혼식인 만큼 사람들 앞에서 행복한 신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내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구자, 리타가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이, 이상하다는 게 아니에요! 메이아 님이시라면, 식장에서 자연스럽게 웃으실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이었어요.”
“……정말 그럴까요?”
“그럼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심장은 여전히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연거푸 심호흡하던 그때였다.
똑똑. 대기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쌍둥이들이었다.
아이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장 뛰어들었다.
“언니…… 으악!”
“어딜.”
아니, 뛰어들려고 했다. 델카인에게 붙잡혀버리지만 않았더라도.
“형수님 드레스에 네 발자국을 남길 셈이야?”
델카인의 일침에 아이샤는 심통이 난 듯 볼을 부풀렸다.
“언니가 저렇게 예쁜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
“그럼 네가 형수님 결혼식을 망치는 거지 뭐.”
“그건 안 돼!”
아이샤가 기겁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델카인은 그제야 아이샤를 놓아주더니 헝클어진 옷차림을 손봐주었다.
매번 싸울 것처럼 굴면서도 서로 잘 챙겨준다니까.
사랑스러운 쌍둥이들의 모습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리타 씨 말대로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오네요.”
결혼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었지. 라크하도 있고, 더군다나 쌍둥이들도 식장에서 신랑과 신부에게 꽃을 뿌리는 화동을 맡기로 한 참이었다.
그러니 내가 결혼식장에서 굳어 있을 리가 없었다. 한결 긴장감이 물러간 마음속에 설레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
구름 한 점 없을 정도로 맑은 날이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창한 날씨가 우리의 결혼식을 축복해 주는 듯했다.
길게 이어진 붉은 카펫의 끝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앞으로 나와 평생을 함께하고 소소한 일상과 감정까지도 누릴 사람.
살랑살랑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에 가슴이 간질거렸다.
“메이아.”
웨딩 아치 아래에 서 있던 라크하가 세상을 다 가진 남자처럼 환하게 웃었다.
라크하를 따라 웃은 나는 천천히 붉은 카펫 위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식장에서 웃지 못할까 봐 걱정하다니.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바라만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고, 웃음이 나오는 사람인데.
웨딩 아치 아래에 서자 라크하가 손을 내밀었다. 언제 보아도 믿음직하고 든든한 손이다.
“앞으로 행복하게 해줄게.”
“여기서 더 행복할 수가 있나요?”
“흠흠.”
라크하의 손을 잡고 속닥거리자, 대신관이 헛기침했다.
결혼식의 주례를 맡아주기로 한 사람은 대신관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대신관에게 묵례했다.
대신관은 내 인사에 답하듯 가볍게 웃은 뒤 주례를 시작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던 두 사람은 비로소 같은 길목에 섰습니다. 라크하 아인티아와 메이아는 어떤 시련과 고난이 있더라도 같은 길을 걸어갈 거라고 맹세합니까?”
“네. 맹세합니다.”
나와 라크하는 동시에 답했다. 그런 우리 둘을 보며 대신관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라크하 아인티아는 메이아를 평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이겠습니까?”
“네, 메이아를 평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여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라크하의 대답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대신관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뒤 나를 바라보았다.
“메이아는 라크하 아인티아를 평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이겠습니까?”
“네. 받아들이겠습니다.”
그제야 모든 게 실감이 나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늘로써 정말로 라크하와 한 가족이 되는 거다.
이 순간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하지만 우리는 극복해냈고, 결국 같은 곳에 서 있었다.
“이로써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대신관의 마지막 선언과 함께 줄곧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쌍둥이들이 꽃을 흩뿌렸다. 새파란 하늘에 연보라색의 꽃잎이 흩날렸다.
나와 라크하는 다시 붉은 카펫 위를 걸었다. 혼자 들어올 때와 달리 이번엔 함께.
우리가 걸을 때마다 하객들의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모두의 축복 속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오는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메이아 님! 정말 너무 예뻐요! 행복하세요!”
레이나가 훌쩍거리며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뒤로 안절부절못하는 키네스까지 보였다.
내 눈으로 직접 소설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해서 기분이 묘했다. 나는 살며시 레이나를 향해 덩달아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붉은 카펫의 끝에 섰을 때였다. 나와 라크하는 약속했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할 맹세의 키스가 남아 있었다.
흩날리는 꽃잎 아래에 라크하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맹세의 키스를 잊은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절대 빼놓을 수 없죠.”
나는 팔을 뻗어 라크하의 목을 휘감았다. 피식 웃은 라크하가 상체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영원히 서로를 사랑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경건하고, 황홀한 키스였다.
***
피로연까지 성황리에 마치고, 나와 라크하는 미리 계획했던 신혼여행지로 향했다.
신혼여행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진 후였다. 출발하기 전에 함께 가겠다는 아이샤를 떼어놓느라 시간이 지체된 탓이었다.
창문 앞에 선 라크하가 어두컴컴한 하늘을 바라보며 험악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아이샤. 이 녀석만 아니었어도…….”
“오히려 잘 됐어요. 안 그래도 오늘은 피곤해서 안에서 쉬고 싶었거든요.”
“아이샤가 모처럼 도움이 되는 행동을 했군.”
라크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표정을 풀었다. 왠지 잘 길들인 맹수를 보는 기분이 드는지라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손을 뻗어 라크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렇죠. 내일 오전부터 돌아다녀도 충분한걸요.”
내 손을 붙잡은 라크하가 손바닥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럼 오늘은?”
“오늘은…….”
늦은 밤에 결혼한 부부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만으로도 얼굴에 열이 후끈 올랐다.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얼버무리자 라크하가 장난스럽게 눈꼬리를 휘어 웃었다.
“같이 씻을까?”
“저, 저 혼자 씻을 거예요!”
목청을 높인 나는 부리나케 욕실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쾅!
욕실로 들어와 닫힌 문에 등을 기댄 나는 달아오른 뺨을 문질렀다.
내가 일주일 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난 이후로 라크하는 내 건강 때문이라도 선을 지켰다.
즉, 라크하가 황궁으로 떠나기 전에 밤을 보낸 게 마지막이란 거지.
무엇보다 지금까지 같이 씻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라크하는 어쩜 저렇게 태연하게 같이 씻자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걸까. 그것도 맨정신으로 말이다.
“……나만 과민반응인 거야?”
아무렇지 않게 같이 씻자고 했던 라크하의 얼굴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은근히 내가 부끄러워하는 걸 즐기는 것 같던데…….
어쩐지 그런 라크하가 얄미우면서도 오기가 생겼다.
어디 한번 나도 라크하를 당황스럽게 만들어 볼까?
마침 신혼여행으로 온 별장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오늘만큼 완벽한 상황은 없으리라.
나는 의지를 다잡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라크하가 씻으러 간 사이에 나는 방안을 쓱 둘러보았다.
들어가기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테이블 위에 와인과 와인잔이 올려져 있었다.
내가 씻고 있는 사이에 라크하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던 건가?
나는 유심히 와인을 살펴보았다. 와인을 따놓기만 하고 마신 흔적은 없었다.
“아무렴 어때.”
안 그래도 앞으로 계획한 일을 생각해 보면 술기운을 조금 빌리고 싶던 참이었다.
나는 긴장을 풀기 위해 와인잔을 들었다. 한 잔, 두 잔. 계속해서 술을 마셔대자니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났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기분. 비록 근거 없는 자신감일지라도 상관없을 것 같은 이 느낌.
“그렇지. 완벽해.”
사실 대체 뭐가 완벽한 건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술기운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홀로 긍정적인 말을 쏟아냈다.
그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짠 기운을 담은 밤바람이 들어왔다.
“근처에 바다가 있나……?”
도착하자마자 씻으러 들어갔기에 창문 밖으로 뭐가 있는지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네.
문득 호기심이 든 나는 창문 가까이에 다가갔다.
창문이 살짝 열려 있었던 건지 또다시 바람이 불자 커튼이 펄럭거렸다. 나는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보았다.
창문 밖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얼핏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좋다…….”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 소리를 만끽하고 있던 때였다. 등 뒤로 뻗어진 커다란 손이 창문을 닫았다.
“아직 바람이 차. 감기 걸려.”
나는 핏줄이 불거진 남자다운 팔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뚝뚝. 그러다 뒤늦게 어디선가 떨어지는 물방울이 내 어깨를 적시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천천히 몸을 돌리자 막 욕실에서 나온 듯 가운을 입고 있는 라크하가 있었다.
아직 젖어 있는 라크하의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살짝 벌어진 가운으로는 오목조목 잘 잡힌 탄탄한 근육이 보였다.
자극적이다 못해 침까지 뚝 흐를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맨정신으로는 절대 빤히 바라보지 못했을 텐데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이게 술의 힘인 건가?’
괜히 기분이 좋아진 나는 배시시 웃었다.
“저보단 라크하야말로 감기 걸리겠는걸요.”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라크하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그러자 가운 사이로 보이는 근육들이 멋스럽게 움직였다.
“와 섹시해.”
생각으로 그쳐야 할 말은 필터링 없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 순간, 라크하가 멈칫했다.
어쩐지 당황한 것 같은 라크하의 얼굴을 보며 나는 더욱 해맑게 웃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부끄러워요?”
“…….”
대답이 없는 라크하의 모습에 나는 기회를 엿보았다. 드디어 라크하를 당황하게 할 차례였다.
“아, 그러고 보니 감기 걸릴 일은 없겠네요.”
한 발짝 라크하에게 가까이 다가간 나는 그의 가슴팍 위로 손을 올렸다.
“어차피 뜨거워질 테니까요.”
툭. 라크하가 들고 있던 수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