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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미친 게 틀림없어 (74/136)


74. 미친 게 틀림없어
2022.07.15.


펠리르가 주먹을 꽉 쥐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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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에게 실종 사건의 원흉이 누군지 알고 있다고 하면 얘기라도 들어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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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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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그 마물 때문이라는 걸 어떻게든 알려야 해. 그 남자라면 빌어먹을 마물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펠리르가 무슨 목적으로 말하는 건지, 그게 무슨 말인지 파악할 겨를도 없었다.

펠리르가 결연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나갈 것처럼 일어난 탓이었다.

다행히 라크하가 펠리르의 어깨를 붙잡아 그를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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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놔. 어떻게든 그 마물을 죽여야 한다고! 지금 너랑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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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황궁으로 찾아간다고 해서 황제가 너를 만나줄 만큼 여유로운 사람으로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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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도라도 해 봐야 할 거 아니야! 더구나, 실종 사건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다는데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잖아!”

펠리르가 눈을 부릅뜬 채 제 어깨를 잡고 자신을 만류하는 라크하를 쏘아보았다.

나는 불안하게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이러다가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라크하와 펠리르의 사이가 더 나빠지기 전에 나는 서둘러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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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르 씨, 조금 감정을 가라앉히고 난 뒤에 행동하시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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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진정을 해! 녹스, 그놈이 내 조수를 죽였다는데!”

펠리르가 내 말을 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씨근덕거리는 모습과 달리 펠리르의 눈가가 촉촉했다.

놀라서 주춤 뒤로 물러난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나는 그제야 내 실수를 깨달았다. 조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죽었다는 의미와도 다름없었다.

위로가 우선이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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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조수분 일은 유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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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펠리르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리고 착잡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아픔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테니까.

그렇게 펠리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나와 라크하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묵묵히 펠리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펠리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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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수상하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어떻게 해서든 황제에게 알릴 방법을 찾아봤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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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라면 녹스를 죽일 수 있어서요?”

펠리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묻자 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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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전설에서 테리투스의 힘으로 녹스를 봉인했다고 했으니까.”

나는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펠리르가 어째서 황제를 찾아가겠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황제의 신력이야말로 테리투스의 힘이니까.

하지만 황제는 더 이상 신력을 쓰면 안 되는 상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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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황제에게 녹스의 존재에 대해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아가씨가 오기 전에도 계속 그 얘기를 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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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법은 안 되니 다른 방법을 더 찾아보라고 했을 텐데.”

라크하가 낮은 목소리로 펠리르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 모습에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라크하마저도 녹스 일을 펠리르에게 맡기라고 했다면 꽤 곤란했을 것이다.

이미 키네스의 몸은 신력을 더 쓰면 안 되는 상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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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펠리르 씨.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예요.”

아니, 다른 방법이 있어야만 했다.

이미 키네스의 몸은 불안정한 상태이다. 그 상태에서 신력을 더 썼다간 쓰러져서 깨어나지 못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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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그런 일만은 있어선 안 돼.’

키네스가 신력을 써서 쓰러진다면 황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먼저 찾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게는 선택지는 없었다. 황제를 살리라는 제안을 거부한다면 황실과 척지게 될 테니까.

그리고 나는 이젠 라크하의 곁에도 있을 수 없는 도망자 신세가 되겠지.

거기까지 생각하자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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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방법이 있는데 굳이 고생해서 더 알아볼 필요가 있어? 이미 요 며칠간 서적을 뒤져가면서 조사해봤는데, 테리투스의 힘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어. 그리고…….”

펠리르는 라크하를 힐끗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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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루에 한두 명씩 계속해서 실종자가 나오는 상황이니 어차피 황제가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야. 한시라도 그 원인을 빨리 알려서 해결하는 게 낫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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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신력이 이미 불안정한 상태라면?”

자신의 미간을 꾹 짚은 라크하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생각지 못한 라크하의 말에 멈칫한 나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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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지, 잠시만. 신의 딸이 황제에게 축복을 내려주러 왔다는 소문을 듣긴 했었는데 그게 황제의 신력이 불안정한 탓이었다면…….”

펠리르 역시 당황스러운 듯 말을 더듬거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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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가씨가 축복을 내려주면 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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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크하는 이번에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펠리르의 말대로 내가 축복을 내리면 해결될 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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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하는 내가 그냥 축복을 내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으니까.’

키네스에게는 내 사정에 대해 전부 말하긴 했다. 하지만 아직 라크하에게는 말해주지 않았지.

내가 왜 축복을 내리지 않고 신전에서 도망쳤는지, 그리고…… 어째서 공작가의 시터 자리를 수락한 건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어쩌면 지금이 모든 걸 알릴 적절한 시기일지도 몰랐다. 이미 생각을 굳힌 것 같은 펠리르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그래, 말하자.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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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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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얘기를 들은 펠리르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휙 라크하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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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하, 너는 알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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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를 무섭게 쳐다보는 라크하의 시선에 얼굴이 따끔거렸다. 하필 어제 내가 키네스를 만나고 온 일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이겠지.

나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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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말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고.

원작에서도 후반부에 밝혀지는 내용을 미리 말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기도 했고, 그땐 라크하랑 긴밀한 관계도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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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황제가 녹스를 없애는 방법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네. 아가씨가 희생할 수는 없으니…….”

펠리르가 끙, 소리를 내며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내가 희생하는 일에 대해서는 펠리르도 반대를 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이제 어쩌면 좋담.

그날 이후로 꾸준히 실종자가 생기고 있다고 하니, 한시라도 빨리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건 틀림없었다.

다른 방법을 얼른 찾아야 할 텐데…….

나 역시 고민에 빠져 있는데, 문득 머릿속에 섬광이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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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투스라면 알고 있을지도 몰라.’

녹스를 봉인했던 것도 테리투스의 힘이고, 테리투스는 이 세계의 신이니까.

때마침 펠리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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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결국 더 조사를 해봐야 한다는 거니까 나는 먼저 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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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만 가볼게요.”

어쩌면 테리투스라면 다른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해결책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니 더 마음이 급해졌다. 테리투스와 만날 방법을 찾기 위해 펠리르와 함께 일어나서 나가보려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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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 그대는 나랑 따로 얘기 좀 해.”

고저 없는 라크하의 목소리가 집무실을 고요하게 울렸다. 누가 봐도 저기압인 듯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듣자니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크게 상처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이유를 숨기고 있었으니, 내게 실망했을지도 몰랐다.

차마 그의 얼굴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라크하와 대화를 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긴 했으니까.

나는 천천히 라크하를 향해 뒤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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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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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지금 당장. 바쁜 일이라도 있어?”

분명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말투도 평소와 다름없었으나 심장이 불안하게 콩닥거렸다. 지금까지 왜 숨겼냐고 화를 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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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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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붙잡진 않을 테니 앉아.”

어물쩍거리던 나는 결국 자리에 앉았다. 달칵. 펠리르가 나가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라크하의 한숨 소리와 함께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괜히 초조해진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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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그래도 지금까지 숨겼던 이유는 다 사정이 있어서 그랬던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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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랬겠지. 그대의 입장에서는 내가 못 미더웠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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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실망했겠지. 하지만 틀린 이유는 아니었기에 나는 차마 부정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술을 뗐다 붙였다 했다.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라크하가 검지로 가볍게 테이블을 톡톡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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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걸 탓하려고 그대를 붙잡은 게 아니니 고개를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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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쩌면 나를 다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공손히 손을 모으고 있던 나는 놀란 나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 나를 보며 라크하가 한숨처럼 픽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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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내가 그대를 너무 몰아붙이긴 했으니까.”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나는 말문이 막혀 눈을 깜빡이며 라크하를 바라보았다.

화낼 줄 알았는데…… 얼마나 자신이 못 미더웠으면 그런 것까지 숨겼던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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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내가 그대를 붙잡은 이유는 황제, 그놈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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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라크하가 험악하게 인상을 굳히며 눈썹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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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대가 어제 그놈과 만났잖아. 그놈이 축복을 내려달라고 협박을 했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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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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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군.”

그제야 라크하의 표정이 한결 풀렸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는데도 도리어 나를 걱정할 줄이야. 그런 라크하의 모습에 심장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옷자락을 말아쥐며 시선을 발끝으로 내리자 라크하가 조심스레 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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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

섬세하게 나를 살피는 시선에 더욱 마음이 동요했다.

진실을 숨긴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크하는 이제 내 입장을 먼저 생각해주고 있었다. 정말 제게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을 대하듯이, 그렇게 나를 자신이 지켜야 하는 범주 안에 넣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내게 큰 감동과 설렘을 안겨주었다. 동시에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걸 깨달으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멋대로 날뛰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나는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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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럼 저는 가볼게요!”

그러고는 라크하가 잡을세라 거의 뛰다시피 집무실을 뛰쳐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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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미친 게 틀림없어.”

라크하가 이름을 한 번 불렀을 뿐인데 심장이 이렇게 요동칠 일이냐고!

뒤숭숭한 감정도, 열이 오른 얼굴도 전부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결국 방으로 돌아가려던 나는 바람이라도 쐴 생각으로 발걸음을 정원으로 돌렸다.

바람을 쐬며 심호흡을 여러 번 하니 한결 진정되는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머릿속에서 라크하를 떨쳐내기 위해 짝짝 소리 나게 내 두 볼을 때렸다.

지금은 이런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에겐 할 일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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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자.”

혼잣말하며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리고 나니 생각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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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테리투스를 만나야겠어.”

그런데…… 어떻게 만나지?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내가 따로 테리투스를 불러본 적은 없었다.

늘 내가 찾기도 전에 테리투스가 나를 찾아왔었으니까.

게다가 테리투스는 현신이 풀릴 것 같다고 하면서 사라진 이후로 감감무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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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나타나질 않는다니까.’

얄미운 신. 속으로 투덜거리며 걷던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멈춰 섰다.

내가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나름 명색이 신의 딸인데. 고민하던 나는 작은 목소리로 테리투스를 불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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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투스으……?”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게 아닌가……?

아니면 조금 더 간절한 마음으로 불러야 하는 걸지도. 헛기침한 뒤 다시 테리투스를 불러보려고 했다.

저 멀리 따스한 햇볕 아래 거대한 식빵 같은 고양이의 엉덩이가 보이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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