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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보고 싶었어요 (68/136)


68. 보고 싶었어요
202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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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부터 쉴 틈 없이 돌아다닌 탓일까. 얼마 달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금세 숨이 가빠왔다.

나는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이끌며 기사의 뒤를 밟았다. 하지만 결국 한계는 있었다.

내가 갈수록 점점 더 뒤처지자 앞서 달리던 기사가 뒤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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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었다가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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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괘, 괜찮아요.”

델카인의 목숨이 위험하다는데 내가 어떻게 쉴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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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열 번만 숨을 고르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거야.’

한 번, 두 번…… 딱 세 번째 숨을 몰아쉬던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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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 님.”

누군가가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누구지? 이런 곳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없을 텐데?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자 나를 보며 상냥하게 웃고 있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기사가 여인을 흘긋대며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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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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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낯익은 얼굴이긴 한데…….”

나는 허리를 펴고 여인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깊게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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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착각인 것 같아요. 얼른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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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 님, 저 기억 안 나세요? 저번에 펠리르 님 가게에서 도와주셨잖아요.”

……이게 무슨 소리지? 기사와 함께 막 걸음을 떼려던 순간 들려온 말에 나는 멈춰 섰다.

펠리르의 가게에서 내가 도와준 사람이라면……. 펠리르의 조수였다. 안경을 벗고 있어서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누군지 알아차린 것도 잠시였다. 일순간 오싹, 소름이 돋으며 펠리르가 했던 얘기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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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르 씨의 조수는 녹스한테 당했다고 했잖아.’

그럼 내 눈앞에 있는 조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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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 님?”

굳어 있는 나를 기사가 의아하게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가까스로 입가에 미소를 자아냈다. 티를 내선 안 된다. 어차피 저 여자는 내가 자기 정체를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할 테니까.

그런데 녹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델카인을 데려간 사람과 상관이 있는 건가? 긴장으로 몸이 굳어졌다.

하지만 나는 애써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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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수님이셨군요. 안경을 벗으셔서 못 알아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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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저를 기억하고 계실 줄 알았어요.”

조수가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저 몸에 녹스가 들어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수해 보이는 미소였다.

이대로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는 거야. 그리고 일단 라크하를 만나자. 나는 떨리는 손을 말아쥐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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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조만간 얘기를 또 나눠요. 지금은 정말로 급한 일이 있어서요. 기사님, 얼른 안내해주세요.”

고갯짓으로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뜨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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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 님.”

하지만 조수가 다시 내 이름을 부르며 내 손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흠칫 물러나며 조수의 손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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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노골적으로 피했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당황하던 찰나, 상냥함을 꾸며내던 조수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나는 서둘러 말을 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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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한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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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 말을 끊은 조수가 고개를 번뜩 들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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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했잖아.”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살벌하고 섬뜩했다.

기사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한 듯 내 앞을 막아섰다.

저벅, 저벅. 조수가 한 걸음씩 다가왔다. 풍기는 기세만으로도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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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두려워하고 있고.”

조수는 기사와 고작 두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기사가 내 앞을 막고 있었으나 그녀의 시선은 정확하게 나에게 꽂혀 있었다.

이윽고 조수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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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놈에게 들었구나?”

손끝이 저릿하다고 느낀 그 순간,

촤악!

곧바로 그녀의 발밑에서 솟아오른 진득한 검은 덩어리가 쩌억 입을 벌렸다.

그리고 내 앞에 있던 순식간에 기사가 검은 덩어리에게 삼켜졌다.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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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썩,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뒤로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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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무슨…….”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내 앞에 있던 기사는 어디로 간 거고? 두 눈으로 직접 봤는데도 믿기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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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저 괴물에게 먹힌 거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숨이 가빠지며 삐- 하는 이명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두려움에 질린 나를 보며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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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누군지도 알겠네?”

그녀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리며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나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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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일어나서 도망쳐야 해.’

이대로 있다간 나도 똑같이 될 거야. 머리는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몸은 거대한 중력이 누르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쭈그려 앉아 나와 시선을 맞춘 조수가 턱을 괸 채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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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이상하다고 했어. 네가 나를 두려워하는 것 같더라고, 사람 감정은 내가 잘 읽거든. 참 보기 좋잖아? 두려워하는 얼굴은.”

죽기 싫으면 움직여. 움직여야 해! 나는 어떻게든 손가락이라도 움직여 보고자 잔뜩 힘을 주었다.

노력한 보람이 있었던 걸까. 까딱, 마침내 손가락 끝이 움직였다.

다행히 조수는 내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내가 꼼짝 못한다고 생각하는지 여유롭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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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네게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시간을 더 지체할 순 없었다. 나는 발로 조수의 몸을 확 걷어차 버렸다.

방심을 하고 있었던 건지 내 발길질에 조수의 몸이 휘청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돌려 달렸다.

털썩.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그게 무슨 소리인지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죽기 살기로 달려도 도망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으니까.

나는 이를 악물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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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데! 아직 못 해본 것도 많고! 델카인이 무사한지도 못 봤고! 그리고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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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하를 봐야만 해.’

목숨이 위급한 순간에 왜 라크하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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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그때, 바닥에서 진득한 검은 덩어리가 솟아올라 나는 황급히 멈춰 섰다.

형체가 없던 검은 덩어리는 순식간에 사람의 형체를 갖춰갔다. 기사를 삼켰을 때 봤던 것과 달랐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게 녹스의 본모습이라는 걸.

코끝을 찌르는 고약한 악취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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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재밌는 능력을 지녔구나. 더 탐이 나게.]

쇠로 긁는 듯한 음성이 귀에 웅웅,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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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 꺼져……!”

간신히 목소리를 내어 용감하게 외쳤으나 몸은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다시 도망쳐야 해! 주춤주춤 뒷걸음질치던 나는 휙 돌아 달렸다. 하지만 얼마 달리지도 않아 녹스가 순식간에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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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려고?]

녹스가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다. 마치 두려워하는 내 모습을 즐기는 것처럼. 사냥감을 앞에 두고 갖고 노는 포식자 같았다.

아,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구나. 정말 이대로 죽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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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하.”

그 순간, 라크하의 얼굴이 눈앞에 맴돌았다.

라크하라면 나를 구해줄 수 있을 텐데. 아니, 사실 라크하가 나를 구해주지 않아도 좋았다.

그냥……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고 싶어. 라크하 아인티아, 그 남자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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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간만에 즐거웠어.]

녹스가 나를 덮칠 듯 몸집을 키우던 그때였다.

피유우웅-! 펑!

등 뒤로 커다란 폭죽 소리가 울려 퍼지며 녹스의 몸 위로 형형색색의 빛 조각들이 번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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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크아악!]

뭐, 뭐지? 갑자기 녹스가 홀로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눈을 깜박였다.

자세히 보니 녹스의 몸에서 폭죽의 빛이 넘실거렸던 곳이 녹아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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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빛이 약점인가?’

만약 그런 거라면……! 폭죽이 더 잘 보이는 곳으로 달려야 했다. 한 줄기의 희망을 발견한 나는 다시 뒤돌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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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몸을 줘……!]

하지만 귀를 할퀴는 끔찍한 음성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쫓아온 녹스가 내게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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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그때 또다시 큰 굉음과 함께 폭죽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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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그와 동시에 녹스가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숨어들었다.

또 나타나기 전에 달려야 해! 나는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였다.

폭죽만을 바라보며 얼마나 달렸을까. 더 이상 귀를 긁어대던 녹스의 비명이 들려오지 않았다.

힐끗, 뒤를 돌아보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야, 그래도 아직 안심해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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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그리고 다시 앞을 바라본 순간 나는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온 인영과 몸이 부딪혔다.

크고 단단한 몸에 튕겨 나가 휘청거리자, 커다란 손이 내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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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놔! 놓으……!”

퍼엉-! 펑!

하늘 위로 화려한 불꽃들이 수놓아지고 내 시야에 담긴 사람은 라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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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아?”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는 내 이름을 듣는 순간 왈칵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후두둑.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고 놀란 듯 보라색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두 눈으로 직접 라크하를 보고 있는데도, 정말 그가 맞는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나는 곧장 팔을 뻗어 그를 와락 감싸 안았다.

양팔에 그가 가득 채워졌다. 환각도, 환청도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라크하 아인티아. 그 남자였다.

나는 라크하가 내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게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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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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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 이젠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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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죽는 줄 알았어요.”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는 라크하의 손길이 멈추었다.

그러더니 라크하가 조심스레 나를 떼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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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쫓아오기라도 했어? 기사는 어디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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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녹스가…….”

짧게 욕을 읊조린 라크하가 다시 나를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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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그대를 두고 가선 안 됐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다정해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바로 그 순간, 그가 얼마나 그리웠던가.

나는 그의 옷깃을 잡고 얼굴을 파묻었다. 지독하리만큼 따뜻하고 안정적인 품이다.

처음에 이 남자가 무섭고 두렵게 느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제는 이 남자와 함께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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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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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안해.”

라크하가 굳세고 단단한 팔로 더 강하게 나를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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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대를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마. 그러니 메이아, 그만 울어.”

커다란 손이 천천히 내 머리를 쓸어내리더니 이내 눈물로 젖은 내 뺨을 문질렀다.

부드러운 손길에 눈물이 그치기는커녕 더 흘러내렸다. 눈물샘이 고장 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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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주책맞게……!”

라크하의 뜨거운 입술이 내 뺨 위로 닿았다가 떨어졌다. 짧게 스치듯 지나간 입맞춤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피유우웅-! 펑!

그와 동시에 요란한 폭죽 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주변이 환해지며 수려한 그의 얼굴 위로 형형색색의 빛 그림자가 일렁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폭죽이 터지는 그 순간이었다.

고개를 숙여 몸을 낮춘 그가 입술을 겹쳤다. 입술을 채 벌리기도 전에 부드럽고 달콤한 숨결이 나를 휘감았다.

그가 휘젓고 간 곳마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 메워졌다. 검은 하늘을 물들이는 불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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