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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한 방에 나락으로 (31/136)

31. 한 방에 나락으로!202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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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솜사탕. 아이샤는 먹지 않아도 이미 행복하다는 듯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분수대에 앉았다.

16548703148733.png“뭐야, 가까이서 보니까 괜찮게 생겼네. 이름이랑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기뻐하는 아이샤를 보니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16548703148737.png“마음에 들어?”

16548703148733.png“안 들진 않아.”

그저 그렇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말투와 달리 아이샤의 발이 공중에서 붕붕 움직였다. 엄청 마음에 드는 게 분명했다. 이게 바로 솜사탕의 위엄이다. 무려 아이샤를 신나게 만드는 솜사탕의 위엄!

16548703148733.png“으음, 그냥 들고 가서 방에 전시해둘까.”

16548703148758.png“아이샤, 그건 관상용이 아니라 먹는 거야.”

델카인의 충고에 아이샤가 눈살을 구겼다.

16548703148733.png“누가 모른대? 그리고 너나 먹고 말하지?”

16548703148758.png“난 형수님 먼저 먹여준 다음에 먹을 참이라서.”

델카인이 분수대에서 내려오더니 생긋 웃으며 내게 솜사탕을 내밀었다.

16548703148758.png“자, 형수님 먼저 한 입 먹어.”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몽글몽글한 델카인의 솜사탕에 마음까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델카인을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겨우 가라앉혔다.

16548703148737.png“고마워, 잘 먹을게.“

델카인의 솜사탕을 받으려던 그때, 다른 솜사탕이 불쑥 밀어졌다.

16548703148733.png“언니, 내 거 먼저 먹어.”

아이샤의 솜사탕이었다. 유순하던 델카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16548703148758.png“내가 먼저야.”

16548703148733.png“언니! 내 거 먼저 먹을 거지? 응? 응?”

델카인의 경고에도 아이샤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눈웃음을 치며 알랑거렸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쌍둥이들이 싸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했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양손으로 각각의 솜사탕을 조금씩 떼어냈다.

16548703148737.png“아이샤랑 델카인 걸 동시에 먹으면 되지.”

이른바, <두 마리 토끼 잡기!> 방법만큼 좋은 건 없었다. 쌍둥이들은 내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듯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든 말든 나는 두 개의 솜사탕을 입에 넣었다.

16548703148737.png“으음, 맛있네. 아이샤랑 델카인도 얼른 먹어 봐.”

당황한 아이들을 두고 나는 속으로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16548703148737.png‘이제 나름 자연스럽게 대처 가능하다고.’

그렇게 시터의 경험치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 라크하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 메이아와 쌍둥이들을 몰래 호위하던 파트라슈가 라크하에게 다가왔다.

16548703182053.jpg“공작님께서도 따라 나오셨군요.”

16548703182059.png“어쩌다 보니.”

파트라슈가 알기론, 라크하는 아무 이유 없이 외부로 나올 사람이 아니었다. 쌍둥이들이 외출하더라도 호위에게 맡기는 편이었고. 파트라슈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16548703182053.jpg‘어쩌면 공작가에 떠도는 은밀한 소문이 헛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구먼.’

라크하와 메이아 사이가 범상치 않다는 소문에 대한 확신이 커지는 순간이었다.

16548703182059.png“그 기분 나쁜 미소는 뭐지?”

16548703182053.jpg“네? 제가 언제 웃고 있었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파트라슈는 순식간에 미소를 지우고 시치미를 뚝 뗐다. 미심쩍은 라크하의 눈빛이 쏟아졌으나, 파트라슈는 수년간 쌓아온 능청스러움을 발휘했다.

16548703182053.jpg“그나저나 공작님께서 나오실 거였다면, 저는 저택에 있었어도 됐겠습니다. 뭐 간만의 외출도 좋긴 하지만요.”

16548703182059.png“몸이 아니라 혓바닥이 외출을 나온 거였나? 혓바닥이 아주 자유분방하군.”

파트라슈는 괜히 혓바닥을 말아 넣으며 눈을 아래로 깔았다. 원래 오랜 시간 곁에서 지낸 사이이기에 종종 라크하와 편안하게 시시콜콜한 농담도 주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나올 땐, 딱 두 가지의 경우였다.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하셨거나, 심기가 불편한 일이 있거나. 파트라슈는 빠르게 태도를 바꾸었다.

16548703182053.jpg“죄송합니다.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니 저도 모르게 신이 났지 뭡니까. 저와 친분이 있는 동료들도 몇 년간 북쪽 숲으로 파견을 나가 있고…… 요새 마음이 적적하던 참이었습니다.”

16548703182059.png“적적하다니 큰일이군. 조만간 인력을 그쪽으로 더 보낼 생각이라서.”

16548703182053.jpg“그럼 이번엔 저를 보내시는 게 어떻습니까?”

16548703182059.png“생각은 해 보지.”

라크하는 무성의하게 답하며 눈으로는 계속해서 괴한의 꽁무니를 쫓았다. 파트라슈 역시 괴한을 흘겨보았다가 라크하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16548703182053.jpg“소매치기범 같습니다만…… 거슬리시다면 제가 몰래 처리하고 올까요?”

16548703182059.png“아니, 기다려.”

섣불리 움직이기엔 걸리는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16548703182059.png‘저 여자는 뭐지?’

메이아를 노리는 건지 괴한을 노리는 건지 모를 붉은 머리 여인이 눈에 밟혔다. 라크하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16548703182059.png“내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지.”

16548703182053.jpg“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16548703182059.png“잠깐.”

16548703182053.jpg“왜 그러십니까?”

파트라슈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멈춰 섰다.

16548703182059.png“저 여자에 대해서 알고 있나?”

16548703182053.jpg“여자요?”

16548703182059.png“저기, 붉은 머리 여자 말이다.”

이상하게도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파트라슈는 라크하가 가리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워낙 가냘프게 생긴 여자이기에 위험 요소가 없다고 생각하며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그시 여자의 얼굴을 살핀 순간, 파트라슈는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16548703182053.jpg“저 여인은 아드리엔 남작가의 영애가 아닙니까?”

16548703182059.png“아드리엔 남작가라면, 레이나 아드리엔 말인가?”

16548703182053.jpg“예, 공작님께서 몇 달 전에 조사하라 했던 ‘잠을 재울 수 있는 여인’이군요.”

레이나 아드리엔이 왜 기척을 숨기고 미행을 하고 있는 거지? 라크하는 문득 어제 낮, 시롬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16548703266797.png-최근에 황실에서 ‘잠을 재울 수 있는 여인’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땐, 황제가 메이아를 대신해서 다른 대체 방안을 찾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6548703182059.png‘만약 저 여인을 이용해서 메이아를 데리고 가려고 하는 거라면?’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지만, 라크하는 메이아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다. 괜한 불안감에 라크하는 주먹을 꽉 쥐었다. ***

16548703148733.png“맛도 좋네!”

솜사탕을 순식간에 해치운 아이샤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델카인도 꽤 입맛에 맞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16548703148758.png“맞아, 식감도 마음에 들어.”

16548703148733.png“그치! 주방장한테 종종 디저트로 만들어달라고 해야겠다!”

16548703148758.png“그런데 솜사탕이라고 하면 알아들으려나?”

16548703148733.png“하긴 우리도 모르는데 주방장이 알 리가 없네.”

쌍둥이들은 솜사탕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정신이 팔려 엄마 미소를 짓고 있던 나를 누군가가 툭, 치고 지나갔다.

16548703148737.png'뭔데 가만히 있는 사람을 치고 가는 거야.'

나는 미간을 팍 찌푸리며 뒤를 돌았다. 나를 치고 간 장본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고 있었다.

16548703148737.png‘에휴, 돌부리에나 걸려서 넘어졌으면 좋겠네.’

괘씸한 마음에 남자를 향해 속으로 저주를 하던 때였다.

16548703182053.jpg“으억!”

오싹한 느낌과 함께 잘 걸어가던 남자가 갑자기 철퍼덕 넘어졌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샤를 살짝 쳐다보았다.

16548703148758.png“여러 가지 모양도 만들어달라는 건 어때?”

16548703148733.png“델카인, 너…… 좀 똑똑한데?”

하지만 아이샤는 여전히 분수대에 앉아 델카인과 대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혹시, 나에게 저주를 하는 능력이 있는 건가? 하지만 그 생각도 빠르게 접어치웠다. 다시 생각해 보니 터무니없다 못해 우스운 생각이었다.

16548703148737.png‘그냥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나 보지.’

어쨌든, 내가 바라던 대로 남자가 넘어진 탓에 통쾌했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시선을 거두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48703182059.png“네놈이 정녕 죽고 싶었나 보지?”

낮은 저음의 협박조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나오는 ‘죽고 싶냐’는 습관적인 말투.

16548703148737.png“……공작님?”

나는 무심코 그를 부르며 다시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자리엔 넘어진 남자가 홀로 끙끙대고 있을 뿐이었다.

16548703148737.png‘이젠 라크하의 협박이 환청으로 들린다고?’

하지만 환청이라기엔 들려온 라크하의 목소리가 너무 선명했다.

16548703148737.png“이상하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라크하의 머리털은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넘어진 남자는 계속해서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6548703182053.jpg“아, 으으윽.”

다리라도 부러진 걸까.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16548703148737.png‘쯧, 아주 제대로 넘어졌나 보네.’

이제 보니 불쌍한 것 같기도 하고. 안쓰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자니 남자의 곁으로 붉은 머리의 여자가 뛰어왔다.

16548703297202.png“너 이 자식! 딱 걸렸어!”

그녀는 곧장 남자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겼다. 남자는 머리채를 붙잡힌 채 고함을 질렀다.

16548703182053.jpg“아악! 놔! 놔라!”

16548703297202.png“내가 네놈을 잡으려고 비스퇴르가에서 며칠째 벼르고 있었는지 알아?! 달린 게 손이라고 어딜 남의 주머니를 후벼 파?!”

16548703182053.jpg“한눈팔고 있던 사람들이 멍청한 거지! 내가 뭔 잘못이 있냔…… 아악!”

계속해서 토를 달자, 그녀는 남자의 머리를 더 위로 잡아당겼다.

16548703148737.png‘……이게 뭔 일이람.’

난장판이 된 광장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16548703297202.png“말하는 꼬락서니하고는! 내가 허락할 때까진 다물어!”

붉은 머리 여인의 금색 눈동자가 매섭게 번뜩였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한 줌의 자존심인 걸까, 남자의 말대꾸는 이어졌다.

16548703182053.jpg“그, 그쪽이 할 말은 아니…….”

16548703297202.png“이게 상황 파악을 못 하네.”

얼음장같이 서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녀는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남자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16548703297202.png“한 방에 나락으로!”

……왜, 익숙한 대사처럼 들릴까. 그다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지도 않은데, 남자의 눈이 뒤집히더니 풀썩 쓰러졌다. 이윽고 용감히 소매치기범을 무찌른 그녀를 향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16548703182053.jpg“아가씨! 멋있는데!”

16548703182053.jpg“아가씨가 저 커다란 덩치를 넘어뜨린겨?”

붉은 머리의 여인에게 비스퇴르가에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그녀는 새하얀 두 뺨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16548703297202.png“아, 넘어뜨린 건 제가 아닌데…….”

박수를 치던 상인 중 한 명이 그녀의 앞에 다가가 덥석 손을 잡았다.

16548703182053.jpg“비스퇴르가에서 소매치기범으로 유명한 놈인데, 너무 고맙구나.”

16548703297202.png“아니에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걸요.”

붉은 머리의 여인이 햇살같이 수줍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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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린 채 그녀를 지켜보았다.

16548703148737.png‘……예쁘다.’

장미꽃처럼 우아한 붉은 머리와 태양을 연상시키는 금빛 눈동자. 아름다운 외모로 살포시 웃으니 주변에 꽃이 흩날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옷차림이 화려하지 않아도 그녀는 단연코 눈에 띄었다.

16548703148733.png“뭐야, 저 여자가 사람을 기절시킨 거야? 근데 왜 칭찬해 줘?”

16548703148758.png“내가 볼 땐, 저 남자가 소매치기범 같은데.”

델카인과 아이샤가 소란스러운 현장을 바라보며 한 마디씩 뱉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델카인의 말에 동의하던 나는 움찔했다.

16548703148737.png‘잠깐, 저 남자가 나를 치고 갔었지?’

나는 황급히 돈주머니를 넣어놨던 가방을 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이어 들려오는 대화에 나는 하던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16548703182053.jpg“그나저나 아가씨는 이름이 뭐신겨?”

16548703297202.png“레이나예요.”

레이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시 붉은 머리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이 스르륵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16548703148737.png‘여주인공 레이나랑 똑같이 생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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