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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쌍둥이들의 마지막 (18/136)

18. 쌍둥이들의 마지막2021.12.31.

나는 오늘 오전에 리타에게 전달받은 쌍둥이들의 수업 일정표를 살폈다. 일정표대로라면 쌍둥이들은 이미 오전 역사 수업을 듣고 있었다.

16548698418948.png“곧 수업이 끝날 테니 한번 가봐야겠네요.”

16548698418954.png“네, 얼른 가보셔요. 아, 그리고 오늘 공작님께서 함께 식사를 하지 못 한다고도 전달해 주세요.”

어제 낮부터 잠을 잔 탓에 할 일이 많나 보네.

16548698418948.png“네, 알겠어요.”

그렇게 나는 역사 수업이 끝난 시간에 맞춰 쌍둥이들을 찾아갔다.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건 델카인이었다.

16548698418963.png"형수님, 보고 싶었어. 어제는 잘 쉬었어?"

16548698418948.png"응, 덕분에. 오늘 수업은 잘 들었고?"

16548698418963.png"듣긴 했는데, 재미없었어."

그래, 역사 수업이 재미없긴 하지. 하지만, 시터로서 저 말에 공감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16548698418948.png"그래도 나중에 도움이 많이 될 거야."

16548698418963.png"어차피 이미 다 아는 내용인걸. 이건 아이샤나 열심히 들어야 하는 건데."

16548698418948.png"아이샤가 수업 시간에 집중을 안 하니?"

16548698418963.png“응, 오늘은 수업도 안 들었어.”

뭐?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어디 갔는지 아이샤의 머리카락 한 올도 찾아볼 수 없었다.

16548698418948.png"오늘 델카인 혼자 수업을 들은 거야?"

16548698418963.png"응. 수업도 안 듣고, 어제 저녁도 안 먹던데."

울면서 뛰쳐나가더니, 아직 안 풀렸구나. 역시 흑막 쌍둥이들의 시터 업무가 순탄하게 풀릴 리가 없었다.

16548698418948.png"아이샤 방이 어디지?"

16548698418963.png"저기."

델카인이 바로 옆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쌍둥이들의 방은 문 하나를 두고 이어져 있었다. 나는 방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16548698418948.png"아이샤, 아이샤?"

내 부름에도 아이샤는 대답은커녕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16548698418963.png"형수님, 그냥 둬.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풀릴 거야."

16548698418948.png"나한테 화가 난 건 아니겠지?"

16548698418963.png"그냥 화풀이야. 화나면 나랑도 말 안 해."

델카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나는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방문을 바라보며 델카인에게 작게 물었다.

16548698418948.png"혹시 아이샤가 전에도 공작님이랑 싸운 적이 있니?"

16548698418963.png"그러고 보니…… 형수님이 오기 전까지는 싸운 일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러면, 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잖아. 혹시 나 때문인가 하는 죄책감이 어깨 위로 묵직하게 느껴졌다. 나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방문에 머리를 갖다 댔다.

16548698418948.png'달래줄 방법이 없으려나.'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그렇지. 이거다.

16548698418948.png"델카인, 이리 와볼래?"

16548698418963.png"응?"

나는 방문에서 조금 떨어져 델카인을 불렀다. 그런 다음 델카인과 시선을 맞춘 채 목소리를 낮췄다.

16548698418948.png"혹시 아이샤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16548698418963.png"고기."

16548698418948.png“고기 말고는?”

16548698418963.png"음……."

델카인이 데굴데굴 눈을 굴려가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델카인이 흘깃 나를 바라보며 해사하게 웃었다.

16548698418963.png“소원 하나만 들어주면 알려줄게!”

갑자기 소원이라고? 나한테 원하는 게 있는 건가?

16548698418948.png“델카인의 소원은 뭔데?”

16548698418963.png“나중에 말할래.”

델카인이 수줍은 듯 볼을 긁적였다. 그 순수한 얼굴을 보며 나는 내가 쓸데없는 의심을 했다는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이렇게나 순수한 아이인데.

16548698418948.png"좋아. 그럼 이제 알려줄래?"

16548698418963.png“응, 알려줄게.”

델카인은 내게 숙여보라는 듯 손짓했다. 몸을 아래로 숙이자, 델카인이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16548698418963.png"아이샤는 꽃을 좋아해."

16548698418948.png"무슨 꽃?"

16548698418963.png"그냥 꽃이라면 전부."

말괄량이에 악동 같은 아이샤가 꽃을 좋아한다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16548698418963.png"정말이야. 꽃 엄청 좋아해."

델카인이 내 표정을 한 번 살피더니 반복해서 다시 말했다.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정말이긴 한 것 같았다.

16548698418948.png'아이샤에 대해서는 델카인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

무엇보다 그 외엔 아이샤를 달랠 방법이 마땅히 없으니까.

16548698418948.png“혹시 꽃다발을 만들 수 있을 만한 곳이 있니?”

16548698418963.png“응, 물론이지. 나랑 같이 가자. 안내해 줄게.”

델카인이 기분 좋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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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48698418948.png"와, 이런 곳이 있어?"

나는 입을 쩍 벌린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식물원도 아니고, 저택에 이렇게 큰 온실 정원이 있을 줄이야. 갖가지 알록달록한 꽃들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16548698418963.png"응, 아이샤가 워낙 꽃을 좋아해서 형이 생일 선물로 만들어준 정원이야."

금수저는 생일 선물 스케일이 다르구나.

16548698418948.png"아이샤를 위한 정원인데 멋대로 들어와도 돼?"

16548698418963.png"아, 아이샤는 출입 금지거든."

생일 선물로 받은 정원인데, 출입 금지라고? 이건 뭐 줬다 뺏는 것도 아니고.

16548698418948.png"왜 출입 금지야?"

16548698418963.png"위험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마음대로 흑마법을 썼잖아."

그러고 보니, 공작가로 오기 전 라크하가 아이샤에게 벌하겠다고 얘기를 한 것 같기도 했다.

16548698418963.png"아마, 지금쯤 여기 오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할걸?"

16548698418948.png"그렇겠네. 여기서 제일 좋아하는 꽃이 있으려나?"

16548698418963.png"여기 있는 꽃은 다 좋아해."

그렇다면 어떤 꽃을 고를지 고민할 필요도 없겠네. 색깔별로 꽃을 모은 나는 오는 길에 구해 온 꽃 포장지에 꽃들을 쌌다. 리본까지 달아주니, 어디 내놔도 팔 수 있을 만큼 예쁜 꽃다발이 되었다.

16548698418948.png"됐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델카인을 향해 보여주었다.

16548698418948.png“어때? 이 정도면 아이샤가 좋아할…….”

나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16548698418948.png"델카인?"

나는 꽃다발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 분 전만 해도 함께 있던 델카인이 없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번뜩 들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른다는. 내가 알기론, 델카인은 말도 없이 멋대로 돌아다닐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16548698418948.png"델카인!"

불안한 마음에 나는 델카인을 부르며 정원을 뛰어다녔다. 없어! 없다고!

16548698418948.png‘어떡하지?’

내가 더 신경 쓰면서 데리고 다녔어야 하는 건데! 심장이 빠르게 뛰며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잠시 멍하니 멈춰 있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16548698418948.png‘정신 차려. 이럴 시간에 얼른,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야 해.’

정원 밖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누가 내 치맛자락을 잡았다.

16548698418963.png“형수님.”

내가 잘못 듣고, 잘못 느낀 게 아니길 빌며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16548698418948.png“델카인……?”

정말 델카인이었다.

16548698418963.png“응, 나 찾았……으아?”

나는 그대로 델카인을 끌어안았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었다. 불안하게 쿵쾅거리던 심장 소리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16548698418963.png“형수님…… 숨 막혀.”

16548698418948.png“아, 미안해.”

아차, 나도 모르게 너무 세게 안았구나.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델카인을 놓아주었다. 델카인은 숨을 가다듬더니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내 얼굴을 살폈다.

16548698418963.png“형수님? 왜 그래?”

16548698418948.png“갑자기 없어져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16548698418963.png“미안해. 그냥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델카인은 볼을 긁적이며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16548698418948.png“아무런 일도 없었으니까 괜찮아. 그나저나 뭐 하다가 온 거야?”

내 물음에 델카인은 작게 탄성을 터트리더니 내 눈앞에 무언가를 내밀었다.

16548698418963.png“이것 봐.”

16548698418948.png“화관……?”

16548698418963.png“응, 선물이야.”

델카인이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홍색과 보라색 꽃으로 엮은 화관이었다. 화관을 들고 있는 손에는 여기저기 흠집이 나 있었다.

16548698418963.png"숙여 봐. 씌워줄게."

16548698418948.png"……."

내가 얼음처럼 굳어 있자, 델카인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16548698418963.png"열심히 만들어 보려고 하긴 했는데 역시 이상한가……? 화관은 처음 만들어 봐서……."

16548698418948.png"아니, 예쁘다. 너무 예뻐. 마음에 쏙 들어."

화관도 예쁘지만 무엇보다도 델카인의 마음씨가 더 예뻤다. 내 칭찬에 델카인이 두 볼을 붉히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16548698418963.png"형수님이 좋아해서 다행이야."

16548698418948.png“이렇게나 예쁜데 싫어할 리가.”

16548698418963.png“정말? 그럼 숙여 봐!”

16548698418948.png“응.”

내가 몸을 숙이자, 델카인이 내 머리 위로 화관을 씌워주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화관은 컸다. 머리를 통과한 화관이 목에 걸렸다.

16548698418963.png“아.”

16548698418948.png“…….”

당황한 듯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는 델카인을 보며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16548698418948.png“꽃 목걸이었네. 이래도 예쁘다. 그치?”

나를 빤히 바라보던 델카인이 눈꼬리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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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8698418963.png“응, 예쁘네.”

화관이 아닌 나를 바라보며 말을 해서 그런 걸까.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어 나는 헛기침을 했다.

16548698418948.png“델카인이 너무 잘 만들어서 그런가 봐.”

16548698418963.png“정말?”

16548698418948.png“그럼, 정말이지.”

내 대답에 델카인이 활짝 웃으며 내게 안겼다. 이런 아이가 악동이라고 불리며, 후에는 여주인공인 레이나까지 괴롭힌다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끝은 어떻게 됐더라? 라크하 외에도 아인티아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대충 넘겼던 터라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16548698418963.png"형수님?"

어느새 내 품에서 떨어진 델카인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나를 불렀다. 아차, 나도 모르게……. 나는 얼른 딴생각을 떨쳐냈다.

16548698418948.png"고마워, 델카인. 내가 델카인 것도 만들어줄까?"

16548698418963.png“내 것도?”

16548698418948.png"응. 이참에 아이샤 것도 같이 만들어서 가자!"

16548698418963.png"좋아!"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쌍둥이들의 미래는 나중에 꼭 떠올리리라 다짐하며 델카인의 손을 잡았다. *** 꽃다발과 화관을 만들어서 돌아온 나는 다시 아이샤의 방문을 두드렸다.

16548698418948.png"아이샤, 내가 아이샤를 위해서 선물을 가져왔는데 안 받을 거야?"

이번에는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기대하며 문 앞에서 아이샤의 대답을 기다렸다.

16548698663686.png"……선물?"

선물이라는 말만 들어도 솔깃한 건지,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48698418948.png"아이샤 기분을 풀어주려고 꽃다발을 만들어왔는데도 안 받으려나?"

16548698663686.png"……."

16548698418948.png"안 받으면 어쩔 수 없네. 그냥 가야겠다."

말과 달리 나는 문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 1초, 2초, 3초. 짧은 시간 침묵이 흐르더니. 끼이익. 마침내 문이 살짝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아이샤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활짝 웃으며 아이샤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16548698418948.png"아이샤, 이거 봐. 예쁘지?"

제발 화가 풀리길. 속으로 기도하며 아이샤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16548698418948.png'어, 어라?'

아이샤의 눈에 점차 눈물이 차오르더니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16548698663686.png"언니이이……."

16548698418948.png"아, 아이샤?"

16548698663686.png"이게 뭐야아아……."

아이샤가 꽃다발을 제 품에 안더니 더욱 퐁퐁퐁 눈물을 흘려댔다.

16548698663686.png"내가…… 히끅. 꽃…… 좋아하는 건, 흑. 또 어떻게 알고……."

이,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는데. 내가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하자, 델카인이 내 옷자락을 잡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의미였다.

16548698663686.png"언니…… 내가 너무 미안해. 내가 언니를 무시했는데도 이렇게 흑, 언니는 날 위해서 이렇게까지……."

울먹거리면서도 아이샤는 열심히 말을 늘어놓았다.

16548698418948.png'여기서 화관까지 주면 더 난리 나겠는데.'

그래도 기껏 준비한 걸 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16548698418948.png"사실 나랑 델카인이 같이 화관도 만들어왔어."

16548698663686.png"화, 화관?"

16548698418948.png"응, 아이샤랑 어울리는 엄청 예쁜 화관."

나는 델카인이 건네주는 화관을 받아 아이샤의 머리 위로 올려주었다.

16548698663686.png"……."

아이샤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제 머리 위의 화관을 만지작거렸다.

16548698663686.png"흐어엉!"

그러곤 이젠 아예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안아서 달래주고 싶지만, 내 능력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울었을까. 아이샤가 히끅거리며, 내게 다가와 내 손가락을 잡았다.

16548698663686.png"……고마워, 언니."

16548698418948.png"고마워할 필요까지야. 방에만 있기 답답했지?"

많이 답답했던 건지 아이샤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16548698663686.png"응, 사실 누가 달래줬으면 했는데 아무도 신경을 안 써서, 오히려 방에 갇혀 있는 것 같았어."

16548698418948.png"응, 그랬겠……."

나는 대답을 하다 말고 말을 멈췄다.

16548698418948.png'갇혀 있는 것 같았다고?'

불현듯, 소설 속 한 구절이 떠올랐다. [레이나를 괴롭힌 벌로, 아인티아의 쌍둥이 남매는 영원히 탑에 갇혔다.] 쌍둥이들의 마지막을 알리는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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