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외전 6 소식
(89/92)
특별 외전 6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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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외전 6 소식
2023.02.06.
도하 오빠가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
현서는 자꾸만 흘러나오는 웃음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이내 그녀는 화장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서둘러 탄 뒤에는 도하의 사무실이 있는 층을 눌렀다.
“아가야. 아빠의 반응이 궁금하지?”
아직은 티도 나지 않는 배를 내려다보던 현서는 배 위에 손을 대고는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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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가 노크를 할 때에 도하는 한창 결재에 열중하고 있었다.
똑똑-.
“예.”
“이현서 대표님 오셨습니다.”
“바로 뵐게요.”
“네, 전무님.”
문이 열리자 현서의 얼굴이 보였다. 집에서 봐도 좋지만 바쁜 일터에서 보니 또 왠지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으로 더욱 반가워지는 얼굴이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현서의 모습은 너무도 예쁘고 또 은근히 섹시했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이현서 대표님. 오랜만이네요.”
“그러네요, 전무님. 6시간 만이네요.”
도하는 낮은 소리로 웃었다. 그는 다가오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문득 눈을 치떴다.
“뭐야, 울었어?”
갑자기 놀란 얼굴로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자 현서가 웃으며 딴청을 부렸다.
“어떻게 된 거야?”
눈이 젖어 있는데도 어느 때보다도 밝게 웃는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괴리를 느꼈던 도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빠.”
“응.”
도하는 오늘 하루 중 가장 긴장한 얼굴로 현서의 말을 기다렸다.
“말해봐.”
현서는 빙긋 웃더니 주머니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반사적으로 눈을 내린 도하는 그녀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았다.
꽤 진한 두 줄을 확인한 그는 멍한 얼굴을 들어 현서를 바라보았다. 현서는 좀 전보다도 더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그 눈에는 눈물이 또 서서히 맺히고 있었다.
“오빠. 우리한테 또 한 명의 복덩이가 찾아왔어.”
도하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현서를 와락 끌어안았다. 현서는 그의 품속에서 작게 웃었다.
고요한 사무실 한가운데에서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서로를 안고 서 있었다.
두 사람 같지만 실은 한 사람이 더 있는 훈훈한 광경이었다. 그 기쁜 기운에 젖은지 한참 만에 도하가 현서에게 속삭였다.
“사랑해, 현서야. 그리고 고마워.”
“도현이도 기뻐해 주겠죠?”
“엄청 좋아할 거야. 동생 있었으면 좋겠다고 종종 그랬잖아.”
“그랬죠. 도현이가 동생 예뻐해 줬으면 좋겠어요.”
“오늘 일찍 퇴근하자. 도현이에게도 좋은 소식 빨리 알려줘야지. 너 몸도 안 좋고.”
현서는 남편에게 안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은 먹었어?”
“거의 못 먹었어요.”
아까 중식당에서도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정말이야? 벌써 입덧인가 보네. 아침에도 그래서 그랬나 봐.”
“그랬나 봐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도하가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현서는 그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
“도현아, 엄마 아빠 왔다!”
“어? 엄마 아빠 오늘 같이 들어오네? 둘 다 일찍 오셨네?”
“응. 우리 도현이에게 중요한 할 말이 있어서.”
“음? 나한테 중요한 할 말? 뭐지?”
눈썹을 슥 올리는 도현을 보며 현서는 싱긋 미소지었다. 저 표정은 갈수록 더 아빠를 닮아가는 것 같았다.
현서는 웃으며 도현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도현아, 이리 와서 엄마 좀 안아줄래?”
도현은 해사한 얼굴로 쪼르르 달려와 엄마에게 풀썩 안겼다. 도하는 그 모습을 보고도 흠칫 놀라더니 도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타일렀다.
“도현아, 이제부터는 엄마를 조금만 살살 대해줘.”
“응? 왜요?”
그러자 도하와 현서는 서로 마주 보며 씩 웃었다. 도하가 몸을 굽혀 도현과 눈높이를 맞추며 설명해주었다.
“도현아, 실은……. 지금 엄마 뱃속에 도현이 동생이 생겼어.”
아이의 눈이 커다래지는 게 보였다. 밝아진 표정의 아이는 동그란 눈을 내려 엄마의 배를 보았다.
“정말? 여기에?”
“응. 도현아. 그러니까 이제 엄마는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야. 이제 엄마의 몸에는 두 개의 심장이 뛰는 거야.”
“우아, 신기하다! 언제 나와?”
“아직 콩알만 해서 밖으로 나오려면 멀었어. 이만큼 커져야 하거든.”
이번에는 현서가 손짓을 하며 설명해주었다.
“콩알만 해? 벌써 귀엽다.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 내 동생.”
“우리 도현이 얼마 전에 소원으로 동생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었지?”
“응! 내 소원 이루어지겠네.”
도현이 기뻐하는 모습이 한눈에 보이자 도하와 현서도 같은 표정이 되어 한껏 기뻐했다.
그때 도하가 문득 중얼거렸다.
“셋째는 딸이었으면 좋겠다.”
그러자 도현이 맞장구를 쳤다.
“어, 아빠! 나도 여동생이었으면 좋겠어!”
두 남자의 바람을 들으며 현서는 어떤 대꾸도 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
***
[현서야. 뭐 좀 먹었어?]
도하는 현서에게 사내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냥 집에서 싸 온 죽 조금 먹다 말았지, 뭐.]
[큰일이네. 저녁은 좀 더 잘 먹어야 할 텐데. 뭐 생각나는 거 없어? 먹어볼 수 있을 것 같은 거라던가.]
[음……. 실은…….]
[어어.]
[속은 계속 느끼한데도 생뚱맞게 왜 그게 생각나는지 모르겠는데……. 전에 오빠가 마카오에서 사 온 에그타르트가 생각나요.]
[그래?]
도하는 문득 눈을 반짝였다.
[아무튼 나 곧 미팅이라. 이따 집에서 봐요.]
[그래, 수고해.]
“후…….”
도하는 마치 자신이 입덧이라도 하는 것처럼 심란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했다.
그는 사무실을 나서며 비서에게 내뱉었다.
“당분간 이른 퇴근 합니다.”
“예, 전무님!”
지금도 칼퇴근하시는데 더 일찍이요? 하고 묻는 건지 혼잣말인지 모를 말이 작게 들렸다.
***
갑자기 잡힌 지방 미팅 때문에 도하는 1박 2일로 출장을 간다고 했다.
미안해하는 그에게 걱정하지 말고 조심히 다녀오라고 한 현서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도현이 여섯 살이 되고 부쩍 의젓해진 덕에 혼자서 제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고 평온히 잠들어 있었다.
현서는 임신 초기라 종종 잠이 쏟아지곤 했는데 회사 일을 아무리 줄여도 출근해서 그녀가 직접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낮에는 쉬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집에 오면 일찍 잠이 들곤 했다. 도하와 조금 전에 통화도 마쳤으니 그녀는 오늘도 일찍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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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 오빠? 일찍 왔네요?”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남편이 와 있었다.
“현서야. 에그타르트 먹어 봐.”
“네?”
현서는 해맑게 웃는 도하의 얼굴 너머 거실 테이블 위에 쌓여 있는 노란 상자를 보았다. 족히 열 상자는 되는 것 같았다.
“저게 다 에그타르트예요?”
“응. 너 원 없이 먹으라고.”
“짧은 출장이라 바빴을 텐데 언제 이런 거까지 사 왔어요.”
현서는 소파에 앉아 상자 하나를 열며 말했다. 그녀는 곧 하나를 집어서 한 입 깨물었다.
다행히 맛있다고 느껴졌다. 입덧을 유발하는 맛이 아니라 먹고 싶다고 생각할 때 상상하던 그 맛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거…….
“신기하게 오빠가 전에 사 왔던 그 마카오 에그타르트 맛이랑 똑같네요?”
“실은 그 에그타르트 맞아, 현서야.”
“응? 한국에도 그 가게가 생겼어요? 포장도 비슷한 거 같네, 그러고 보니.”
“한국에 그 가게가 생긴 건 아니고 마카오에 있는 거기서 사 온 거야.”
현서는 그의 말이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정말이에요? 누가요?”
마침 마카오 다녀오는 지인이라도 있어 부탁을 한 걸까?
“내가.”
“네?”
그러나 도하가 내놓은 대답에 현서는 순간 정지화면처럼 멈추었다.
“아니, 뭐라고요? 그러니까 지금, 오빠가 마카오를 다녀왔다는 말이에요?”
현서는 잠시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짜예요? 농담이죠?”
도하는 대답 대신 씩 웃어 보였다.
“그럼 지방 출장이 아니라…….”
“마카오 간다고 하면 네가 말릴 거 같아서.”
현서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어제저녁 비행기 타고 가서 새벽 비행기 타고 돌아왔어.”
“못 살아…….”
도하는 능청스레 웃기만 했다.
“뭘 그렇게까지 했어요. 미안하게…….”
“그래도 드디어 네가 먹고 싶다고 말한 게 그거였으니까. 몇 주 만에 처음이었잖아.”
“하……. 감동적이네. 내 남편 사랑이 이렇게까지 큰 줄은 미처 몰랐어요.”
“아직도 몰랐어?”
현서는 바람이 빠지는 듯 웃어넘겼지만 정말로 놀라고 있었다. 놀란 만큼 감동도 크게 느꼈다.
“나 말조심 해야겠어요. 말 한마디에 비행기까지 타다니.”
“급작스러운 티켓팅이었는데 성공해서 다행이었지, 뭐.”
“오빠 가뜩이나 바쁜데. 이렇게까지는 안 해도 돼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줄 테니까. 서하랑 도현이 임신했을 때는 옆에서 잘 챙기지도 못해서 너무 미안했는데……. 이번에는 후회 없이 다 해줄 거야.”
현서는 그 말에 더는 그를 말리지 못하고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
그리고 약 2주 뒤였다.
“안녕하세요, 이 대표님.”
“네, 안녕하세요. 안 비서님.”
안 비서는 채 회장님을 밀착하여 보좌하는 비서였다. 오늘 어쩐 일인지 현서의 사무실을 방문하겠다며 전화를 걸더니 이렇게 올라왔다.
그런데 안 비서의 손에는 얼마 전 도하가 마카오에서 사 왔던 그 에그타르트 상자가 여러 개 들려 있었다.
“이 대표님, 채 회장님께서 전달해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이건 또 어떻게…….”
“실은 채 회장님 덕분에 제가 마카오 여행을 다녀왔거든요. 여행 경비까지 챙겨주신 덕분에 즐겁게 놀다 왔어요. 이 대표님께서 여기 에그타르트 좋아하신다고 해서 이것만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하셨었네요.”
얼마 전 도하에게 현서는 어떻냐고 안부를 물으시더니 에그타르트는 잘 먹는다고 전해 들으신 모양이었다.
못 말리는 남편에 이어 못 말리는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에 현서는 또 한 번 웃고 말았다.
***
부부는 입체 초음파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의사는 흐뭇하게 화면을 바라보며 아기의 몸 이곳저곳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이윽고 부부가 궁금해하던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
“음……. 역시 딸이 맞는 것 같네요. 담당 선생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제가 봐도 그렇네요.”
순간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