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그 사람이 슬프면 엄마도 슬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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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그 사람이 슬프면 엄마도 슬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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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그 사람이 슬프면 엄마도 슬픈 거야?
2022.11.14.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몇 년 가지 않아 영숙의 애인이었던 남자가 강남의 아파트를 날렸다고 했다.
양육비도 아들과 둘이서 호화롭게 살 만한 금액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사치를 부리고 여러 남자들과 연애를 하는 데 흥청망청 써 버린 탓에 아들을 돌보는 일에는 별로 투자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 공부에 능력을 보이는 아이의 학원비에조차 쓰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성인이 된 도하와 함께 이 집에 발을 들이게 했다.
평생 가져왔던 그간의 미안함 때문에라도 이렇게 채도하가 된 아들의 어미로 당당하게 얼굴을 내보이며 살게 하고 싶었다.
한영숙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진성의 이름에 먹칠만 하지 않는 것.
영숙을 들이기 전에 영숙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대강 알아보았기에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법적 부부도 아니었고 겉보기에만 부부인, 말 그대로 쇼윈도 부부였으니 영숙이 실제 누구랑 연애를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만큼 영숙에게 관심도 없었다. 책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관계였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니 다른 남자를 만나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 남들 눈에 들키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진성가의 사모님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만나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더구나 평소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 채 회장의 돈으로 과한 사치를 부리고 그 돈을 애인들에게 날리고 예전에 알던 질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며 노름판에서 잃고 도박성 투자에 날리고 사기를 당하고.
소문이 무서운 이 바닥에서 은연중에 채 회장과 아들 도하의 얼굴에 먹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거기까지였다면 차라리 양반이었던 것이다. 아들 부부의 사이를 파탄 낸 주범인 것도 모자라 하나뿐이었던 어여쁜 손녀 서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니.
그러고도 또 돈 이야기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 한결같은 여자였다.
“내일까지 20억 내줄 테니, 돈 받는 대로 나가.”
채 회장이 담박하게 제의했다.
“2, 20억이요? 그거밖에 안 돼요? 우리 재산 분할이?”
영숙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우는소리를 했다.
“재산 분할? 네가 한 게 뭐 있는데? 내 집에 들어와서 무슨 기여를 했는데?”
채 회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너한테는 20억도 후한 거 몰라? 자신 있으면 소송해보든지. 네가 법을 들이민다면 나 또한 법을 들이밀게 될 거야. 어리석은 투자와 도박으로 날린 돈들 낱낱이 따지면 과연 재산 증식에 기여가 더 클까, 손실에 기여가 더 클까?”
안 그래도 절절매던 영숙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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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손이 귀한 진성의 하나뿐이었던 손녀 학대해서 죽음에 이르게 만든 죄! 그리고 네가 그동안 수많은 남자들이랑 저지른 부정까지! 전부 세상에 드러내 보든지! 네 말대로 사실혼에도 유책 사유가 있어!”
생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져서는 영숙은 두 손으로 제 어깨를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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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당장 네 짐 싸서 방 비우지 않으면 너 아주 유명해질 줄 알아! 온갖 언론에서 떠들어댈 테니까, 네가 얼마나 미친 여자인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조용히 살고 싶으면 20억 받고 나가! 너한테는 차고 넘치는 액수니까.”
입이 있어도 더는 할 말이 없던 영숙은 그제야 바닥에 널브러져 울었다. 세상이 망한 듯이 소리 내어 우는 모습이 꼴사나워 채 회장은 눈을 부라리다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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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내가 일어났을 때는 안 보여야 할 거야, 그 면상. 이제 다시는 볼 일 없을 그 면상 최대한 빨리 치워!”
그 말을 끝으로 채 회장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엉망이 된 집 안에 혼자 남아 있던 현서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던 그곳에서 한참이나 혼자서 울었다.
서하가 떠난 날 이후로 이렇게 울었던 적이 있나 싶을 만큼 울었다. 그 눈물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거기에는 오랜 시간 동안 너무 억울해서 그토록 까발리고 싶었던 영숙과 주혁의 야비함을 드러냄으로써 얻게 된 후련함도 있었다.
그로써 쟁취하게 된 도현과의 평화에 안도하는 눈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엔 도하에게 남기게 된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슬퍼서 흘리게 되는 눈물이 가장 큰 의미를 차지했다.
그래서 현서는 아팠다. 도현에게 차마 보여줄 수가 없어, 엉망이 된 집을 주섬주섬 정리할 때도, 어느 정도 집이 치워진 뒤 도현을 데리러 가는 길에도 내내 아픈 마음을 어쩌질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서는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아픈지를 생각했다. 스스로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많이 아팠으므로.
시터 집에 도착한 현서는 차 안 거울을 보며 얼굴을 정돈했다.
눈물 자국에, 그새 부은 눈에. 얼굴도 마음도 모두 엉망이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다. 도현이 잠들었을지 몰라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시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내 현관문이 열렸고 시터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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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시터의 뒤로는 도현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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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아, 엄마가 너무 늦었지. 미안해.”
현서가 손을 뻗어 도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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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워 보려고 했는데 영 안 자네요. 집이 아니라 잠이 안 오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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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기 아니라고 잠도 잘 참아요. 늦은 시간까지 맡아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제가 오늘은 너무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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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일은 잘 마치셨어요?”
상세한 사연은 모르는 시터의 물음에 현서는 씁쓸한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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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럭저럭요.”
시터와 도현이 인사를 하고 헤어진 뒤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였다. 밝은 불빛 아래 엄마의 얼굴을 본 도현이 조금 놀라며 묻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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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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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얼버무리는데 마침 1층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런데도 도현은 엄마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또 한 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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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운 얼굴 같아.”
어린 것이 보는 눈이 예리하기도 했다. 도현은 엄마가 울었던 걸 발견할 때마다 꼭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오늘만큼은 아닌 척하기도 글렀다.
순진하게 걱정하며 묻는 아이의 투명하고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니 현서는 더욱 눈물이 넘치게 고이고 말았다.
결국 현서는 도현을 와락 끌어안았다. 뜨거워진 눈가에 방울방울 눈물이 흩어졌다.
작게 흐느끼며 떨리는 엄마의 어깨에 아이의 작은 손이 닿았다.
토닥토닥.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무구한 손이 현서를 위로했다. 그 작은 손이 너무도 따뜻해서 더 슬픈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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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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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엄마는 지금 어떤 사람이 자꾸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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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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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무 너무 슬퍼하고 있을, 어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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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엄마도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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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엄마도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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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슬프면 엄마도 슬픈 거야?”
현서는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절실히 통감했다.
그렇구나. 그 사람이 슬프면 나도 슬프구나.
아직 내가 도하 오빠를 많이 사랑하는구나.
그 많은 풍파를 겪고도, 그렇게 아프고도.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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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런가 봐. 그 사람이 슬프면 엄마도 슬픈가 봐.”
꼭 끌어안아 얼굴에 닿는 아이의 뺨과 머리칼이 너무 보드라워서, 품에 닿는 아이의 몸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현서는 더 눈물이 났다.
이 어여쁜 아이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준, 이 아이의 핏줄에 절반을 물려준 그가 더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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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떡하면 좋을까, 도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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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즈막한 오후, 집으로 돌아온 동철은 거실에 가득한 짐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주방에 가보니 식탁에 영숙이 보였다.
영숙은 아직 해도 지지 않았는데 남의 집에서 소주병을 까고 있었다. 당황한 동철이 영숙을 향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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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이 짐들은 다 뭐고?”
다시 연애하게 되면서 집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알려주긴 했지만, 이런 모습을 연출하는 영숙의 모습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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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그 양반하고 결별했어.”
동철의 질문에 영숙은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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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어? 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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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찢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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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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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길어. 쪽팔리고. 내가 얼마나 난리를 겪었는지 모를 거야. 후…….”
영숙은 그 말 뒤에 소주를 또 한잔 들이켰다. 이미 거나하게 취해 발음이 꼬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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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양새를 보면 쫓, 쫓겨난 거 같은데?”
영숙은 그 말에 도끼눈을 하고는 동철을 쏘아보았다. 하긴, 그러나 그 반응을 이해는 했다.
한영숙이 뭐가 아쉬워서 진성가를 제 발로 뛰쳐나왔을까 싶었겠지. 누가 봐도 쫓겨나기 전까지는 나올 일이 없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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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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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럼 설마! 위자료도 못 받고 그냥 나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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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자료… 인지는 모르겠지만 받긴 받았지. 겨우 이십억, 이십억이 뭐야. 이걸 가지고 어떻게 살라고. 쪼잔한 양반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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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십……억은 받았구나? 그래도 배려가 있는 회장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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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어? 배려는 무슨 배려!”
영숙은 채 회장이 준 위자료가 그동안 자신의 생활에 비하면 평생 쓰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불만이 가득했다.
쫓겨 나오는 입장이라 이십억도 감지덕지 받고 나오기는 했지만, 앞으로 과거와 같이는 살 수 없고 평생 아껴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렇다고 도하 그 냉정한 놈이 제 새끼 잡아먹은 어미를 돌볼 리도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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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동철 씨. 내가 지난번에 투자할 만한 데 좀 알아봐 달라고 했잖아. 어떻게, 알아는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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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고 있어. 그런데 왜 짐을 여기로 가지고 왔어? 다른 집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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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가 집으로 들어갈 때 채 회장한테 받은 내 명의 집이 하나 있는데, 세 놨어. 다른 집 알아보기엔 당장 집세에 쓸 돈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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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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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20억은 그런 데 쓰기보단 빨리 뻥튀기할 데에다 넣어야겠지.”
그러나 가만히 듣고 있던 동철은 진지한 얼굴로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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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요즘 같은 때에 함부로 투자하면 안 돼. 천천히 잘 생각해 보자. 어디 안전한 데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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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요즘 투자하고 있는 거긴 어때?”
영숙은 동철이 조심해서 투자하자고 하니,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듯한 마음이 보여서 그가 왠지 더 믿음직스러웠다.
채 회장에게 가차 없이 쫓겨나고 나니 외로움에 더 다른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은 기분도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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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긴 잘 되고 있지. 당신 배당금 잘 나오고 있잖아. 투자처는 내가 꼼꼼하게 찾아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당신은 편히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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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진성가 사모님이라는 타이틀도 없어졌으니……. 또 수군거릴 여편네들을 생각하면 내가 돈이라도 많아야 덜 서러운데. 내 꼴이 말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