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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이현서를 짝사랑하는 짓 (46/92)


#46. 이현서를 짝사랑하는 짓
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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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는 순간 현서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빛났다. 그녀의 눈가가 금세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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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는 동안 너랑 서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라도 하고 싶었어.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도하는 이제는 선물할 주인이 사라진 기업이 된 SH의 상호에 대해서 아직 현서에게 말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우연의 만남을 통해 서하의 기일인 오늘, 이 자리를 빌려 말해주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현서와 서하만을 생각하며 지내왔는지를. 비록 그녀와 앞으로도 상관없을 기업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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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려고 시작한 일이야. 너랑 서하를 그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그의 말이 너무 놀라워 멍해진 현서는 말없이 도하를 바라보았다.

서하 이름의 이니셜이었구나.

이제는 그가 왜 그 회사에 그토록 애정을 갖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었어도 그럴 수 있었을 것처럼 말이다.

서하의 이름을 떠올리며 사업에 공을 들였을 그의 마음이 상상되었다.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어쩔 수 없이 미어질 것 같았다.

오늘은 특히나 서하가 떠난 날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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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군요…….”

그러나 어찌해도 서하는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이미 세상을 떠나간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 그에게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의 때늦은 마음이 안타깝지만 그와 저는 이미 끝난 사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도현을 데리고 다시 영숙 앞에 나타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현서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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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할게요.”

그래서 현서는 할 수 있는 말이 달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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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의 이름이었다니……. 앞으로도 SH는 꼭 잘 되어야겠네요.”

도하는 현서의 슬픔을 머금은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서하라는 슬픔을 공유하는 사이여도 거리감은 여전했다.

응원한다고 했다. 그저 남 이야기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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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더 차가워지네, 이현서…….”

이름에 얽힌 사연을 알고 같은 감정으로 아파하고 그의 마음을 이해할지언정, 일 문제에는 선을 그었다. 그녀에게 이미 그의 일은 남의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게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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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아주 찬바람을 쌩쌩 풍기는데.”

현서는 그 말에 짐짓 차분해진 얼굴로 도하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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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죠.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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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그렇게나 많이 멀어졌다는 거지?”

아쉬워하며 묻는 도하에게 현서는 더 쌀쌀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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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졌다 뿐인가요? 그 정도 시간을 안 봤으면 남은 정도 다 떨어져 나간 거죠.”

일순 도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현서는 그의 눈빛에서 그가 상처받았단 걸 알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채도하 역시 저와 멀어졌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현서의 꿈을 위한 기업체를 만들고, 거기에 서하 이니셜을 따서 이름을 붙이고. 잊기는커녕 계속 저를 생각하면서 오히려 전보다 더 가까워지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니 그만큼 그에게서 더 필사적으로 달아나야 할 것 같았다.

둘째 아이가 생겨버렸고 아이를 위해 떠난 이상 그를 절대 받아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와 그가 어떤 가상한 노력을 보여주고, 그래서 거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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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네, 이현서.”

도하는 한숨처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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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렇게 독했던 거야, 내가 이렇게 만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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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더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만 좀 다가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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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그냥 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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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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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이 짓도 할 만한 것 같아.”

상처받은 얼굴로도 포기에 도달하지 않는 도하를 보며 곤란한 표정을 하던 현서가 조심스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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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짓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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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서를 짝사랑하는 짓.”

놀랍도록 생소한 기분에 현서의 입술이 벌어졌다.

짝사랑? 사랑이라고?

그의 입으로 직접 사랑이라는 말을 하는 건 처음 들었다. 그것도 짝사랑이라니.

짝사랑은 이현서 전문이었다. 워낙 죽고 못 살게 그를 좋아했으니.

그래서 솔직히 그가 지금도 거기에 기대어 이렇게 질척일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한때는 그를 좋아했던 쉬운 여자였으니까.

그런데 제가 그에게 마음이 더는 없다고 하는데도, 이제는 뭐라고?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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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이요? 오빠 같은 사람이요?”

기가 막혔다. 짝사랑이라는 것도 기가 막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남자였다는 것도 기가 막혔다.

이렇게 속마음을 많이 털어놓는 채도하라니.

무려 남편이었던 남자였는데도 현서는 그의 이런 모습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채도하란 남자가 한번 자기 감정에 충실하기 시작하니 정말 뻔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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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보고 놀라지나 마. 내가 얼마나 작정했는지.”

그는 쓸쓸한 얼굴에 옅은 미소를 걸고 그런 어울리지 않는 말을 했다. 현서는 그 말에 여러 가지 의미로 심장이 꿈틀거렸다.

작정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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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평생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평생 너를 짝사랑할 거니까.”

꿈틀대던 가슴은 이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채도하는 마음이 없으면 행동하지 않지만,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말을 내뱉은 채도하는 옅게 웃고 있음에도 슬퍼 보였다. 그러나 단지 서하의 기일이기 때문에 슬퍼 보이는 거라고만 믿고 싶었다.

이현서에 대한 짝사랑 때문에 저런 생소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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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가야겠어요.”

현서는 그녀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도하의 울적한 얼굴을 등지고 차에 올랐다.

***

7시.

원장실 벽면에 걸린 시계를 본 현서는 주변 정돈을 하며 일어났다.

언제 7시가 되었지.

일에 치여 정신없이 시간이 가는 듯하면서도 유독 길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채도하와 다시 얽힌 뒤부터 혼돈의 나날을 지내고 있는 탓에 현서는 더욱 일에만 매진했다. 어떻게든 그와의 일을 떠올리지 않도록 말이다.

하필 마지막에 본 게 그 울적하고 슬픈 얼굴이라서 더 그랬다.

게다가 오늘은 특히나 괜히 신경이 쓰이는 날이었다. 한때는 무엇보다 중요한 날이었더랬다. 만사를 제쳐두고 최우선으로 둘만큼 중요한 날.

서하의 기일로부터 몇 주가 지났다. 그 사이 그에게서 몇 번 연락이 왔었지만 문자에는 업무 관련된 일에만 가끔 답을 했고 전화는 받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보니 어둑해져 있었다. 초겨울의 문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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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도 제법 짧아졌네…….”

차에 올라 시동을 켜기 전 현서는 깜깜한 하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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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신경을 쓰든 말든 하루가 다 갔어.”

쓸쓸해 보이는 하늘에서 시선을 거두고 시동을 막 걸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전화기가 울렸다.

액정을 보는 현서의 눈동자가 짙어졌다.

[채도하 전무님.]

업무적인 이유로 다시 얽히기 시작한 이후 어쩔 수 없이 저장해야 했던 그의 번호. 사무적이기 짝이 없는 명칭으로 그를 저장해 두었었다.

왠지 보채듯이 울리는 전화기를 오늘만큼은 모른 척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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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현서는 어쩔 수 없이 통화 패드를 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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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잠깐의 공백 후에 도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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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서야…….

평소보다 느릿하게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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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그가 두 번째 말을 뗐을 때 현서는 그가 술을 마신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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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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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그는 필요한 자리 외엔 어지간하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서하를 떠나보낸 직후 얼마 동안 집에서 자주 술잔을 기울이긴 했어도 그 시기가 지난 후엔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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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 아닌 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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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이 정도는…….

술 마신 사람치고 자기 안 괜찮다는 사람은 못 봤다.

그리 늦은 밤도 아닌데 벌써 저런 목소리가 나올 정도면 몇 시부터 마셔댄 거야,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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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어, 현서야……. 와서 같이 한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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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집으로 가야 해요.”

현서는 난감해하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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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데…….

아이처럼 아쉬워하는 도하의 목소리에 현서는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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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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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혼자지. 이현서가 떠난 뒤로 난 늘 혼자야.

그의 말끝에 나직한 웃음소리가 자잘하게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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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오늘 같은 날 왜 그러고 있어요.”

현서는 조금 화가 나기도 해서 그를 타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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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라도 불러서 같이 마시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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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필요 없어…….

허탈하기 그지없는 어투로 그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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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필요한 건 너밖에 없어, 현서야.

그 말을 뱉는 목소리에 탄식이 가득 차 있어서 더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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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이 굴지 좀 말아요.”

마음이 울렁일수록 현서는 똑 부러지는 어조로 그를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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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다고 내가 장단 맞춰줄 거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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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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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불러서 집에나 가요.”

그는 얌전히 혼나는 아이처럼 조용히 있었다. 그런 반응에 현서는 더 답답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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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서방…… 동생 불러줘요?”

이런 귀찮은 일로 주혁이 올지는 모르겠다만.

도하에게 의지가 없어 보이자 아무래도 현서는 자신이 대리 기사에 연락해서 그쪽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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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가 어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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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 전에 왔었던 데 기억나? 인사동에 있는…….

순간 현서의 눈이 동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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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그 와중에 또 추억놀이까지. 이 남자, 왜 이렇게 점점 곤란하게 구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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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죠. 난 오히려 거기를 오빠가 기억하고 있는 줄도 몰랐네요. 이제 와서 자꾸 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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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러게.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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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요. 사과 듣고 싶어서 한 말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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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아니까 네가 와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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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불러줄 테니까 집에 들어가요,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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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부르지 마. 난 괜찮아.

자꾸 본인은 괜찮다는 도하의 말은 더 이상 듣지 않고 현서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대리 기사를 부르기 위해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

한잔 두잔 마시다 보니 몸이 무거워졌다. 현서를 잃고 한창 자주 찾았다가 현서와 재회한 뒤로는 발길을 끊었던 바에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현서와 왔던 술집.

이렇게 올 때마다 그때를 그렸다. 바 위에 턱을 괴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날 현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그녀가 하고 있던 헤어 스타일과 입었던 옷까지 기억난다. 술이 오르면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웃던 그 모습까지.

생각해보면 그때의 넌 참 사랑스러웠는데. 그때도 네가 참 소중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너랑 결혼하고 싶어 했을 리가 없잖아.

가장 바보는 저였다. 사실은 그녀를 그때도 사랑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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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서야……. 어쩌지. 네 말대로 이제 와 청승이나 떨고 있어서…….”

눈을 감고 중얼거리고 있자니 정말 스스로가 더 한심했다. 그런데도 취해서 그런지 그마저 웃음이 나왔다.

너무 외로워서 미쳐가는 건가.

그때였다. 가까이서 기척이 느껴졌다. 좀 전에 현서가 불러준 대리를 한번 물렀는데 다른 사람이 또 온 건가.

부르지 말라니까 기어이 또 부른 거야, 이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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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일어나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현서 목소리가 들리네.

꿈인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눈을 번쩍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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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현서네…….”

그리워하던 여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록 추억 속 여자처럼 웃고 있지는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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