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 가짜 (45/92)


#45. 가짜
2022.09.05.



 


“야! 너 이게 뭔 줄 알고 막 던져?”

“뭐긴요. 가방이잖아요.”

“너 이게 그냥 가방으로 보여? 에르메스야! 그것도 악어가죽이야!”

바락바락 고개를 쳐드는 영숙을 내려다보며 현서는 풋, 하고 웃고 말았다.


“그건 에르메스가 아니에요. 짝퉁이잖아요.”

영숙은 더욱 당황하여 얼굴이 새빨개졌다.


“뭐, 뭐라고? 짝퉁?”

“아시면서 뭘 모른 척하세요? 아니면 설마, 속아 사신 거예요? 그렇게 가방을 좋아하시더니 보는 눈은 없으셨던 거예요?”

“…….”

영숙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입을 오물거렸다. 현서는 피식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반응하시는 걸 보니 역시나 알고 계셨네요, 짝퉁이란 걸……. 에르메스까지 진짜로 선물하기에는 많이 아까우셨나 보죠? 요즘도 형편이 어려우신가 봐요? 아직도 채 회장님께서 카드 못 쓰게 하셔요?”

“네, 네가 이게 짝퉁인지 어떻게 알아?”

그 질문에 현서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더니 한쪽 벽에 있는 벽장을 열었다. 그녀는 거기서 무언가를 꺼내 영숙에게 들어 보였다.


“저한테 진짜가 있거든요.”

그걸 본 영숙은 벙해져선 입만 벌렸다.


‘젠장. 저게 뭐야! 하필 내가 사준 짝퉁이랑 같은 모델을 가지고 있을 게 뭐람?’

현서는 영숙의 표정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녀는 가방을 도로 장에 넣으며 영숙에게 쏘아붙였다.


“그러니까 전 그런 가품은 필요 없어요.”

이 캘리백은 그레이스 박 회장이 한국 송화궁 매출 보고 이후 수고했다며 현서에게 보내준 선물 중 하나였다.


“그런 짝퉁은 아줌마나 쓰세요. 본인에게 딱 어울리니까.”

현서는 말문이 막힌 채 주저앉아 있는 영숙을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고상하고 우아한 재벌 사모님이 되고 싶어서 늘 흉내를 내보지만 속에선 어쩔 수 없이 천박함이 줄줄 흐르는 게, 딱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랑 똑같잖아요.”

영숙은 입술을 파들파들 떨며 현서를 보았다.


“야! 너 말 다 했어?”

“아줌마. 매화 회원님들이 단순히 겉만 번지르르한 사모님들로 보이시나요? 돈 많은 분들은 란, 국, 죽 회원님들 중에도 차고 넘쳐요. 매화 회원분들은 하나같이 봉사나 기부에 관심이 아주 많으신 분들이에요. 적당히 그런 척이 아니라, 진심을 가지고 실천하시는 분들이고요. 단순히 돈뿐만이 아니라 황금 같은 시간과 몸도 직접 쓰시면서요.”

“…….”

영숙은 그 말에 얼이 빠져선 무슨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달리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저들끼리 추천을 해주고 그 무리에 끼워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줌마는 어차피 매화 센터에 들어가실 일이 없다는 거, 이제 스스로가 더 잘 아시겠죠?”

“야!”

영숙은 분통함을 이기지 못해 다시 몸부림을 쳤다.


“스스로 점잖게 걸어 나가실 수 있는 기회를 버리지 마세요.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경찰이 왔을 때 절도죄까지 실토할 수밖에 없어요, 아줌마.”

“…….”

영숙은 그 순간 표정을 움찔대며 머뭇거렸다.


“송화궁에서도 쫓겨나셨는데 집에서는 쫓겨나지 마셔야죠. 절도범으로 찍혀서 채 회장님께 쫓겨나고 싶으시면 계속 그러시던지요.”

“…….”

영숙은 거기에 대해선 반박할 수가 없었다. 채 회장은 알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때 현서가 던진 짝퉁 가방을 주워든 비서가 양팔이 모두 결박된 영숙에게 다가와 정중히 말을 건넸다.


“지금은 팔이 없으시니 밖으로 나가시면 건네드리겠습니다.”

 

***



“어머, 저게 누구야?”

원장실에서 쫓겨나 제 물건을 가지러 보관함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던 영숙은 걸음을 우뚝 멈추고 고개를 휙 돌렸다.


“진성가 사모님이라는 분 아니야?”

지난번에 삼중 그룹 강옥희 여사가 매 센터로 불렀을 때 인사를 나눈 적 있던 여자들이었다.


“진성가 사모님인데 도둑X이라며?”

영숙은 덜컥 놀라 눈을 끔뻑였다.

뭐, 뭐야. 진짜 소문이 어느새 다 나 있는 거야?


“뻔뻔하기도 하지. 그런 주제에 여길 또 들어오네.”

그러나 이내 영숙은 참지 못하고 발끈 내질렀다.


“저기요! 거기 다 들리거든요?”

그러나 여자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고 도리어 미소를 지었다.


“어머, 그랬어요? 미안해요, 하하하.”

들으란 듯이 일부러 던진 말들이었던 것이다.


“나 같으면 쪽팔려서 다시는 발도 못 들여놓을 텐데.”

속삭이는 소리가 또 들렸다. 영숙도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굳이 대꾸했다.


“이 여편네들이 진짜! 구경났어? 엉?”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욱 그녀를 향해 조소를 지어 보이기만 했다.


“그 사달이 났는데도 발끈하네.”

“꼴에 기분은 나쁜가 봐.”

“망신당하고도 자존심 세우는 거 봐. 대단하다.”

영숙은 더는 상대할 말도 없어 부들부들 떨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돌아서는 동시에 눈가에 눈물이 한가득 고였다.

이렇게 지질해지고 싶지 않은데, 제 꼴이 너무 우스웠다.

***



“얘, 도하야!” 

송화궁에서 나온 영숙은 곧바로 도하의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현서 그것이 도하에게 아직 말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까 그 난동을 부리고 왔으니 앞으로도 함구해줄 건지는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가족들에게 말이 새어나가느니 먼저 선수를 쳐야 도하가 제게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를 먼저 듣게 될 터였다.


“현서 걔 한국에 있더라!”

박차고 들어오는 어머니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던 도하는 그녀가 하는 말에 놀라서 멈칫했다.

어머니가 현서를 본 것인가. 송화궁 서비스를 이용하시는 건가?


“…….”

도하가 말이 없자 영숙은 더 기함했다.


“뭐야! 너, 알고 있었어? 혹시 너 벌써 걔 만난 거니?”

“어머니는 어디서 아신 거예요?”

“하, 나 참. 내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걔가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아니?”

도하는 저 말까지만 들었어도 숨이 막혔다. 또 영숙이 현서에게 무슨 곤란한 일을 저지르고 온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덮쳐왔다.


“그동안 걔 인생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걔가 송화궁이라는 초호화 심신 관리 센터의 원장이 되어 있더라. 나도 걔가 원장인지는 오늘 알았는데, 걔가 나를 송화궁에 가입시켰다가 탈퇴시켰다!”

“하…….”

“그것이 나한테 억하심정이 그렇게 컸는지 나도 몰랐다!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가지고 놀아! 내가 걔 때문에 정말 거기 여편네들 사이에서 체면을 구기고 얼마나 쪽팔렸는지!”

도하는 골이 지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둘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다.

본가에 잘 가질 않으니 어머니가 송화궁 회원인 줄도 몰랐고, 현서와의 접점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또 이유를 제공하셨겠죠. 현서가 이유 없이, 단순히 감정만으로 그랬을 리가 없잖아요.”

“거기 화장품 좀 빌려 갔다고 사람을 도둑으로 몰아 쫓아내더라!”

도하는 참담한 얼굴로 제 어미의 씩씩대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기까지만 들어도 무슨 상황인지 알만했다.

어릴 적에도 그녀가 남의 물건에 손댔다가 동네 시끄럽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꼭 빌렸다고 표현했다. 도하는 체념하듯 내뱉었다.


“어머니……. 아직도 그러세요?”

“아, 아직도 그런다니, 내가 뭘?”

“이제 남부럽지 않게 살고 계시잖아요. 왜 남의 물건에 또 손을 대세요.”

“그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랬지.”

도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 아니, 얘! 빌린 거라니까!”

억울한 듯 빽 소리치는 영숙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하는 눈을 꾹 감았다.


“어머니…….”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현서와 영숙, 둘의 사이는 더 겉잡을 수없이 악화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자꾸 이러시면…….”

제가 어머니를 버리고 싶어지잖아요.

그는 차마 뱉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켰다.

***



“아가야. 왜 하필 이렇게 쌀쌀할 때 떠났니.”

노랗고 붉게 단풍이 물들어가는 계절.

서늘해진 공기가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서하가 떠난 계절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가, 지금 추운 건 아니지?”

그냥도 쓸쓸한 감성을 부르는 가을은 서하로 인해 그 쓸쓸함이 배가 되고, 그래서 너무 슬펐다.

오늘은 서하의 기일이었다. 현서는 추모공원 안에 안치된 서하의 유골 앞에서 절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는데 우리 서하는 그대로네.”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첫아기의 모습은 여전했다. 그리고 현서의 슬픔도 여전했다.


“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서하가 여전히 너무 보고 싶어.”

어떤 슬픔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수 있다고 누가 그랬던가. 안타깝게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은 늘 오늘 일처럼 생생한 것이었다.

현서는 눈물을 닦고 하얀 꽃 리스를 엄마 혜수를 위해 벽에 걸었다. 그리고 이어서 알록달록 서하처럼 어여쁜 미니 꽃다발을 서하의 유골 앞 벽면에 붙여놓았다.

천천히 물러서는데 지척에서 차분한 구두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레 고개를 돌린 현서의 눈동자가 사람을 발견하곤 반짝 빛났다.

채도하가 꽃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 역시 그녀를 발견하고는 표정이 변하는 게 보였다.

이제는 과거형이 된 부부였지만, 같은 아이를 잃은 부모임은 여전했다. 똑같은 종류의 슬픔을 공유하는 유일한 상대라는 건 서로에게 영원히 변치 않을 사실이었다.


“일찍 왔네. 내가 제일 먼저 온 줄 알았는데.”

“좀 전에 왔어요.”

도하는 현서의 붉어진 눈가를 보며 왈칵 감정이 북받쳐 오를 것 같았다.

그는 말없이 그가 가져온 연보라색 장미 리스를 서하의 앞에 걸어 두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서는 결국 고이는 눈물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연보라색은 서하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색이었다. 그런데 아이 아빠가 아직 그걸 생각해내곤 연보라색 장미를 가져왔을 줄이야.

한결같이 연보라색 물건들을 고르고 좋아하던 서하의 모습이 새삼 눈에 선했다.

전 부부는 한참이나 말없이 서하를 향해 서 있었다.

서로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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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를 마친 뒤 두 사람은 주차장으로 느린 걸음으로 걸어왔다.

현서의 차 앞에 다다랐을 때 도하가 아쉬운 듯이 물었다.


“차 한 잔 함께할까?”

몇 년 만에 재회한 이후론 볼수록 점점 더 멀어져가기만 하는 옛 아내와 이렇게 조우한 것도 기회인데, 조금 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연락해도 잘 받지 않고 찾아가도 박대하는 그녀와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 일이 많아요. 가봐야 해요.”

현서는 조용히 거절했다.

바쁘지 않았다 한들 이제는 마주 앉아 서하를 기리기에도 적절한 사이가 아니었다. 서하의 동생인 도현을 숨기고 있는 현서의 입장에서는 더욱이 그러했다.


“그래.”

엄마 아빠는 이제 헤어진 사이인데 이 모습을 아이라고 기뻐할까.

서하에게도 더욱 미안할 따름이었다.

현서가 고개를 까딱 숙이며 돌아서려는데 도하의 목소리가 그녀를 잡았다.


“SH……. 그 브랜드만큼은 네가 애정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어.”

갑자기 그 이야기를 왜 하는지 몰라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자 무슨 연유인지 도하가 한없이 깊게 잠긴 눈길로 그녀를 보다가 말을 이었다.


“SH는 서하 이름 이니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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