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 사랑둥이 (18/92)


#18. 사랑둥이
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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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이 아닌 지배인을 맡고 있는 김 실장이 어째서인지 그녀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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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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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김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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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을 뵙고 싶다고 하셨는데, 실례지만 무슨 이유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지배인이 묻자 지화자는 원장 대신 그녀가 온 줄을 깨닫고는 김 샌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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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인에게 할 말은 아니고. 이 원장한테 직접 이야기하고 싶은데.”

지배인을 낮잡아 말하는 듯한 투에 김 실장은 미소를 감추고 차분하게 대꾸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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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사유를 모르는 채로는 이 원장님과 미팅을 잡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김 실장은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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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드릴 부분이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시지요.”

이유는 모르지만 이런 손님은 원장을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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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이랑 안면도 텄는데 이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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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1기 회원분들께서는 원장님과 안면은 트셨죠.”

오픈 초기였던 1기 때는 송화궁에 가입한 모든 회원의 등급에 상관없이 원장이 손수 찾아와 연못 앞 연리정이라는 팔각정에서 직접 축하 인사를 전하며 다도를 베풀었다.

그걸 가지고 안면을 텄다며 의기양양해하는 회원에게 김 실장은 단호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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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참. 어렵네, 어려워.”

지화자는 구시렁대면서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매우 친절한 곳이었지만, 까다로운 회원 하나에 연연할 이유도 없는 고고한 곳이 이 송화궁이었다.

***

담장 안마당에서는 아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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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이쪽!”

도현의 활기찬 목소리가 담 밖을 넘어왔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도 잇따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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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우리 도현이 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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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

현서는 아이의 청아한 목소리만 들어도 사랑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드러난 두 사람의 모습에 더욱 훈훈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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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랑둥이!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 왔다.”

현서는 마당에서 공놀이하고 있던 아들을 불렀다. 도현은 루카스에게 던지려던 공을 내팽개치고 엄마에게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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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두 팔을 양옆으로 활짝 벌리면서 뛰어오는 아들을 보며 현서는 아이스크림 봉투를 내려놓고 허리를 숙였다.

그녀는 쪼르르 달려와 덥석 안겨 오는 도현을 번쩍 들어 올려 회전 그네처럼 빙빙 돌렸다.

까르륵까르륵 도현의 웃음소리가 현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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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또! 또!”

아이는 너무나 즐거운 표정으로 두 팔을 벌려 더 해달라고 졸랐다.

다시 한번 아들을 안아 빙글빙글 한참을 돌았다. 현서는 머리가 어질어질한데 아이는 좋은지 깔깔거리며 웃는다.

한 번 더 빙글 돌아준 그녀는 멈추어 서서는 아이를 품에 안아 꾹 한 번 지그시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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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도현이, 루카스 삼촌 말 잘 듣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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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응.”

정장 차림을 하고도 아이와 몸으로 놀아주던 루카스는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모자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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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아 참, 이제 한국에서는 현서라고 불러주기로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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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루나라는 이름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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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곳에선 모두 루나를 현서라고 부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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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할 대로 불러.”

현서는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준 루나라는 이름에도 애정이 가는 건 사실이었다.

격 없이 지내고 있는 루카스 유는 사실 지난 몇 년간 그녀의 상사이자 동료였다. 그의 어머니 그레이스 박은 현서와 서로를 구제한 은인과도 같은 사이였다.

그렇게 딸처럼 막역하게 여겨준 그레이스가 지어준 이름이 바로 루나였다.

여러 나라 사람들을 상대하는 사업을 하는 그들 가족의 이름처럼 현서에게도 외국인들 누구나 부르기 쉬운 영어식 이름을 하나 지어준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현서와 그만큼 많은 일을 함께하겠다는 그레이스의 의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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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서. 나도 이 근처에 집 얻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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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리둥절한 얼굴의 현서가 묻자 눈앞의 훤칠한 남자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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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도현이도 자주 보고 싶고…….”

그는 뒷말을 흐리며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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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있어도 도현이 볼 수 있는데 무슨 핑계를 대고 있어. 뉴욕에 나가 있는 시간도 많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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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생활도 지겹고 한국에도 자주 들어오게 되니까 아예 집을 하나 얻어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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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회사 근처로 얻으시죠, 유 대표님. 왜 굳이 이 근처에?”

루카스는 도현을 핑계로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싶은데 현서가 영 비협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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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현서 집에 방 남으니까 하나 내주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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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깨세요. 무슨 오해를 받으려고.”

현서가 방어하자 루카스는 픽 웃더니 도현을 들어 한 팔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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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런 오해, 원하는 바인데.”

한술 더 떠 그는 팔에 안고 있는 도현을 향해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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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아. 아빠가 여기 있으면 도현이도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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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좋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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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아! 아빠 아니야!”

아빠라는 소리에 현서가 기겁을 해서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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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그러지 말라고 했지? 도현이는 어려서 착각할 수 있단 말이야!”

도현이 말을 제법 잘하기 시작하자 루카스는 도현에게 자신을 지칭할 때 꼭 아빠라고 말했다.

미국, 대만 등 해외 생활을 많이 했다곤 하지만 한국계인 그는 한국인들도 많이 상대해왔고 한국어에도 능통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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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서 그래. 대부도 아빠야. 내가 도현이 대부잖아.”

천연덕스럽게 웃는 루카스를 향해 현서가 눈을 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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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 루카스를 도현이 대부로 삼았어, 루카스가 일방적으로 한 거지. 자꾸 그러면 도현이 못 볼 줄 아세요, 유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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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제일 무서운 협박이네. 도망가자, 도현아!”

저만큼 떨어진 루카스는 안고 있던 도현을 번쩍 들어 공중으로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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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하하!”

아이가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현서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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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현서의 말을 듣고 한 팔로 도현을 고쳐 안은 루카스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현서도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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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한 걸음으로 걷던 현서는 루카스와 도현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그녀의 얼굴 위에 떠 있던 미소가 이내 서서히 지워져 갔다.

아직은 아빠의 개념이 정확히 없는 도현이 자연스레 루카스를 아빠처럼 의지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루카스가 도현에게 어떠한 사랑을 표현해주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루카스는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었다. 이젠 그와 그의 어머니만이 자신의 진짜 가족이었다.

루카스에게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끼고는 있지만, 현서에게 그는 거기까지의 마음이었다.

***

주혁이네가 집에 오는 날은 대문에서부터 요란 벅적하다.

손에 눈깔사탕 하나 들고 오는 법이 없는 종자들인데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머리가 지근지근하다.

그나마 절간 같은 집에 주혁이네라도 드나들어야 사람 사는 것 같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지만, 어떨 때는 쫓아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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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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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엄마 안 죽었다. 왜 이렇게 시끄럽게 난리야.”

영숙은 투덜대며 현관으로 나와 주혁이네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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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아. 할머니 안녕하세요, 인사해야지.”

싱글벙글 웃으며 안으로 들어온 주혁이 품에 안은 딸에게 인사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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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져, 하머니 시져.”

그러나 아린은 영숙을 보더니 고개를 싹 돌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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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애 끌어안고 할머니 싫다고 교육시켰나 보네. 인사 안 받아도 돼.”

실망한 영숙이 씁쓸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민망해진 혜미가 얼른 나서서 아린이를 영숙의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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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니에요. 아린아! 할머니 사랑해요, 해야지.”

얼떨결에 아린을 받아든 영숙은 주혁을 향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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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 일이냐? 갑자기 놀러 온다고 하니까 수상하네.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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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우리가 무슨 일이 있어야 오나? 그냥 엄마 보고 싶어서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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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혁 씨가 주말이라고 어머니 보고 싶다고 해서 왔어요. 아린이도 할머니 보고 싶다고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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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밥은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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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직 한 끼도 못 먹었어,”

그 대답에 영숙은 주혁과 혜미를 차례로 째려보고는 하는 수없이 서산댁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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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댁, 얘들 밥 좀 차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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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사모님.”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네 사람은 기다리기 위해 소파로 가서 앉았다. 혜미가 눈짓을 하자 주혁이 빙글빙글 웃더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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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밥 먹고 백화점 쇼핑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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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너 같이 쇼핑하는 거 싫어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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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우리 아린이 옷 사는 건 또 좋아하지."

그 말에 영숙은 이마를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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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너 이눔 자식, 또 엄마한테 계산하라고 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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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심심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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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이러려고 왔구나? 내가 아린이 옷 사준지 얼마나 됐다고 또 옷을 사. 툭 하면 와서 뜯어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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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건 어린이날 선물이고 지금은 그냥 여름맞이 옷 장만인데, 할머니가 귀여운 손녀딸을 위해 몇 벌 사줄 수 있는 거잖아.”

주혁은 웃는 얼굴로 살살 애교를 부리며 달려들어 영숙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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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여자아이 옷을 사주는 영광을 드리는 거야. 아들만 키워서 딸 키우는 재미를 모르니까. 히히.”

그러나 영숙은 입을 삐죽였다. 아들도 못 낳고 딸만 낳은 주제에 무슨 옷은 계속 사재끼는지, 라며 옆에 있는 혜미만 들으라는 듯 작은 소리로 구시렁거렸다.

도란도란 떠드는 사이 서산댁이 식사 준비가 다 됐다고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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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모님, 식사 준비 다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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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일단 밥 먹으면서 생각해보자.”

주혁네 부부와 함께 영숙이 식당으로 향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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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역시 엄마네를 와야 먹을 게 많다니까.”

주혁은 식탁 위에 차려진 반찬을 둘러보며 앉더니 곧장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니 흐뭇해진 영숙은 아린이를 혜미 옆으로 앉히며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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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혜미야, 아린이는 네가 먹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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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러자 주혁이 음식을 한가득 입에 문 채 우물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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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앉혀, 주말엔 아린이 내가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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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혁이 너는 계속 먹기나 해.”

영숙이 눈치를 주자 혜미가 씁쓸한 얼굴로 아린이를 챙겼다.

식사시간이 중반쯤 왔을 때였다. 이것저것 음식을 맛보던 혜미가 고개를 갸웃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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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댁은 솜씨가 안 늘어요.”

혜미가 반찬이 입에 안 차는지 트집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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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예전에 형님이 계실 때보다 반찬이 맛이 없어요.”

영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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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뭐해…….’

그건 영숙이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사실이었다. 누구보다도 현서의 음식이 아쉬운 사람이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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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먹어. 아님, 네가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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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는 어머니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맞장구를 쳐주지 않는 시모에게 무안해진 혜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 사이 밥을 잔뜩 흡입한 주혁이 이제는 먹는 속도를 조금 늦춘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영숙을 물끄러미 쳐다보게 된 그는 무엇 때문인지 문득 입가를 씩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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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엄마. 우리 엄마 얼굴에 주름이 늘었네?”

주혁의 말이 충격인 듯 영숙은 대번에 얼굴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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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도 늙었네. 할머니 맞네.”

눈치 없이 빙그레 웃는 아들을 향해 영숙은 눈을 부라리며 숟가락을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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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어미가 늙어서 좋겠다.”

안 그래도 요즘 그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는데 눈썰미 없는 아들놈이 보기에도 티가 날 정도라니, 더욱 울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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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그 송화궁인지 뭔지에 들어가지 못해서 속상해 죽겠는데 저놈이 신경을 긁어요, 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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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머니도 송화궁을 아세요?”

그런데 영숙의 말에 혜미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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