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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2 종막
흡혈귀의 붉게 빛나는 두 눈이 역방향으로 꺾인 그녀의 팔과 다리를 쓱 하고 흟듯이 바라봤다.
그 직후..
흡혈귀는 그녀의 가슴을 향해 거침없는 킥을 날렸다.
"커헉!"
그 충격으로 인해 상처 입은 폐가 더욱더 자극된 것인지.. 그녀는 여태껏 중 토해낸 혈
액 중 가장 많은 양을 흩뿌리며 뒤편으로 날아가 차가운 돌바닥에 거칠게 추락했다.
"큭..."
그녀는 또다시 토해낼 것 같은 피를 강제로 목구멍에 집어삼키며 고개를 들어 자신을 향
해 흉측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는 흡혈귀를 노려봤다.
"날...쿨럭... 가지고 놀 생각이냐...!"
방금 전 자신의 가슴을 걷어찬 흡혈귀의 공격은 그다지 힘을 들이고 있지 않았다.
흡혈귀는 힘의 가감을 해 자신을 차 날린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 흡혈귀가 진심으로 자신을 찼다면 지금쯤 더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조롱하는듯한 그 미소와 여유롭기까지 한 그 태도로 흡혈귀가 자신을 괴
롭히다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사냥한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마냥 한계까지 가지고
놀다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흡혈귀를 찢어 발길듯한 살의에 찬 눈으로 노려보며 몸을 일으켜 세
우려고 했다.
하지만 엉망진창인 오른쪽 다리와 왼쪽 팔은 물론이고 그나마 멀쩡한 다리와 팔 부분도
생각한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움직일 때마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압박해 머리가 새하얗게 될 정도의 고통과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비릿한 피맛만 이 느껴질 뿐이었다.
"크크!"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꼴사납게 꿈틀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재밌던 것인지 흡혈귀는 낮은
웃음소리를 흘린 채 느긋한 발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흡혈귀의 투박한 발소리에.. 초조함을 느낀 그녀는 좀 더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해 흡
혈귀에게서 떨어져 나가려고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그전에 이미 흡혈귀가 바로 앞에까
지 도달해 있었다.
흡혈귀는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그녀를 내려다 본 뒤 그대로 반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
는 그녀의 목을 단단하게 붙잡고는 높이 들어 올렸다.
안 그래도 숨을 쉬기 어려웠던 그녀는 흡혈귀로 인해 기도가 막혀버리자 괴로운 듯 얼굴
을 일그러트린 채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왼손으로 짓눌러오는 손의 압박을 풀려고 노력했
다.
그러나 움직이는 것이 겨우인 그녀의 현재 상태로는 압박해오는 흡혈귀의 손을 풀어낼
수 없었고.. 오히려 몸을 비틀 때마다 몸과 내장이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괴롭혔다.
흡혈귀는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을 지긋이 바라본 뒤 재차 입가를 일그러 트리며 웃고는
그녀를 휙! 하고 가볍게 내던졌다.
그에 따라 그녀의 몸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올랐고.. 이내 중력에 이끌려지면에 추락했
다.
"하..!"
제대로 나오지 않는 숨을 토해낸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또다시 피를 토해냈다.
죽는다..
피를 토해내며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죽음이었다.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살해당한다고 생각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흡혈귀에게 당했던 것처럼..
이번에야말로 그 어떤 기적도 우연도 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내면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새하얗게 만들었
던 그때의 공포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죽음의 고통과 공포보다 무서운 것은..
더 이상 그를 만날 수도 없다는 것.. 더 이상 미레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껏 괴로움에 발버둥 치며 겨우 죽음에서 벗어나 차갑게 식어가는 마음에 어떻게든 불
씨를 살려내며 겨우 재회했던 그와 더 이상 만날 수가 없다.
그와 자신의 소중한.. 힘들게 태어난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와.. 미레와 더 이상 만
날 수가 없다.
자신에게 닥쳐오고 있는 이 두 가지의 미래가 그녀를 압박했다.
살려줘! 누가 도와줘!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가오는 최악의 미래를 누군가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할배와 자드는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데려가졌고.. 경철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조차
불명이고.. 자신이 가장 믿고 사랑하는 그는 이런 난리 통에도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그 처참한 미래를 회피할 수 있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었
다.
심각한 부상을 몇 군데나 입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라고 자문했다.
도와줄 인간은 없고 마지막 혈액 팩도 방금 전 마셔버려 더 이상 자신의 이 만신창이
몸을 회복할 수단은 없었다.
그녀는 절망적인 이 상황에 재차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
그녀의 입에서 절망에 젖은 음색이 흘러져 나왔다.
희망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돌파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좌절한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날려보낸 그 자리에서 흡혈귀의 조롱 섞인 비웃음이 그녀의 귀를 자극했지만 지
금의 이 처절하기 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활을 낼 기운조차 없었다.
그저 이대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그녀가 자포자기한 심정이 된 그 순간..
그녀의 다리에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닿았다.
그 감각에 놀란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려 눈동자를 굴려 자신의 다리를 확인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의 손이었다.
고통과 절망적인 상황에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던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내던지면서 그
의 옆까지 날아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지금에 와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다 죽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얄밉게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그의 모습에 화
가 날 법도 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의 술렁이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이 차분해짐과 동시에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진 그녀의 머릿속을 한줄기의 광명과
도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곤히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고 웃음이 나올 것 같은 이유는 한 가지였다.
이 절망적인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엉망진창인 몸으로 어떻게?
그나마 몸을 회복시킬 수 있는 혈액 팩조차 없는데 어떻게?
그런 당연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지금의 상황은 그녀에게 있어 최악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이라고는 해도 그녀의 앞에는 희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물론 잠들어있는 그가 벌떡 일어나 그녀를 구해준다는 형편 좋은 일에 대해서는 아니었
다.
그녀가 그에게서 본 희망은 그의 몸..
정확하게는 그의 '피'였다.
혈액 팩은 아니지만 몸에 직접적으로 흐르는 피가 그의 몸에는 존재하고 있었다.
혈액 팩으로 상처 나 부상을 어느 정도까지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피를
마셔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은 흡혈귀도 아니고 피를 빨만한 송곳니도 없었기에 그런 상상을 해본 적도 없고 시
험해본 적도 없었지만.. 혈액 팩을 마시면 힘을 회복하는 자신의 몸을 생각하면 직접적
으로 피를 마셔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단지..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인 피가 있다고는 하지만 혈액의 섭취로 회복할 수 있
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의 피를 전부 마신다고 해도 이 상처가 완벽하게 회복하는 것은 아마 무리라고 생각했
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을 만들 수는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을 비웃는 흡혈귀의 눈치를 살핀 뒤.. 마지막 힘을 짜내 그의 얼
굴이 있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덕분에 날카로운 갈비뼈가 또다시 그녀의 폐를 사정없이 압박했지만.. 이 고통에 굴복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미안.. 좀 빌릴게..."
그녀는 잠들어있는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사죄의 말을 남긴 뒤 그대로 그의 새하얀 목
에 자신의 이를 박아 넣었다.
그에 따라 그의 새하얀 목을 타고 새빨간 혈액이 주륵 하고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런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박아 그 피를 혀로 핥았다.
그의 피가 입안에 들어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 그녀는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의
감각을 느꼈다.
혈액 팩에 들어있던 피를 마셨던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감각이었다.
혈액 팩에 든 피는 진흙같이 걸쭉한 식감과 코를 찌르는 비릿한 냄새와 맛에 얼굴을 찌
푸릴 수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물어뜯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피는 신선한 과일
을 갓짜 만든 주스와 같이 상큼하고 달콤한 맛과.. 목구멍을 청량하게 해주는 시원함까
지 겸비하고 있었다.
물론 맛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혈액이 자신의 목 안쪽을 타고 들어갈 때마다 다 죽어가던 자신의 몸에 활력이 돋
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나 마실 때마다 자신의 복부 부분이 따뜻하게 덮혀져 가며 그것이 온몸에 퍼져 나
가 혈액이 빠져나가 차가워진 자신의 몸에 열기를 부여해 갔다.
그 맛과 자신의 몸을 채우는 기묘한 감각에.. 마약에 중독된 중독자 마냥 그녀는 오직
그의 혈액을 탐하듯 빨아들였다.
그의 피를 빨 때마다 뒤틀린 팔과 다리는 물론이고 압박하던 폐의 고통도 점차 사라져
갔다.
그렇기에 그녀는 거침없이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그 피를 탐욕스럽게 마셨다.
이대로 간다면 조만간 그의 혈액을 다 마셔버릴 정도로 격하게 그의 피를 입안에 목구
멍 안에 넘겼다.
"크아아아아아아아!"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의 흡혈 행위를 탐탁지 못하게 생각한 흡혈귀는 뼈가
박살 난 한쪽 팔을 덜렁거린 채 멀쩡한 오른손을 들어 올려 흡혈 중인 그녀에게로 뛰쳐
왔다.
그제야 그녀는 정신없이 그의 목덜미를 탐하던 것을 멈출 수 있었다.
"읏..!?"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그녀는 잘 익은 사과를 연상케 할 정도로 얼굴을 새빨
갛게 물들었다.
부끄러움과 까딱하면 그의 피를 전부 빨아들일뻔했던 미안함이 원인이었다.
"크아아아아!"
"시끄러 망할 년아 아아아!!"
여러 가지 감정으로 머리가 부글부글 끌어 오르던 그녀는 시끄러운 소리를 흘리며 자신
의 앞까지 달려와 주먹을 휘두르려는 흡혈귀의 안면에 묵직한 일격을 꽂아 넣었다.
흡혈귀는 찌부러진 개구리 같은 소리를 흘리며 그녀의 일격을 제대로 흘리지도 받아내지
도 못한 채로 공중을 빙글빙글 돌며 꼴사나운 모습으로 추락했다.
"어..? 상처가 회복됐어?"
욱한 마음에 무작정 휘두르고 본 주먹은..
알고 보니 뒤틀려 버린 자신의 오른팔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
게 중얼거렸다.
자세히 보니 망가졌던 다리도 확실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폐를 찌르던 그 고통도 거의 느
껴지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째서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회복됐는지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의 피가 특수한 것인지?
아니면.. 신선한 피에는 그만큼의 효과가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랑의 힘인 것인지?
어떠한 이유에서 그의 피를 마시고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었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번엔 네 차례다! 빌어먹을 흡혈귀 년!!"
그녀는 온몸에 넘쳐나는 자신의 힘을 눈앞의 적을 향해
자신을 조롱하고 괴롭히던 철천지 원수 같은 그 존재를 향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향해
눈앞에 있는 흡혈귀에게 쏟아붓기 위해.. 그녀는 주먹을 쥔 채 달려나갔다.
============================ 작품 후기 ============================
저것보세요!
잠들어있는 미도에요!
잠들어있는 미도는 좋은 혈액셔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