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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1 에필로그
냉기가 감도는 어두운 방안의 중앙에는 이 미친 세계의 원흉이자 수천 년간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한 존재인 '코세이'가 앉아 있었다.
그런 코세이가 몸을 맡기고 있는 물건은 평범한 의자라고 하기에는 사이즈가 몹시 컸다.
의자라기보다는.. 옥좌라고 하는 것이 걸맞은 느낌의 사이즈였다.
단지 그 옥좌는 목재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으며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건도 아니었다.
암막 사이로 들어온 빛으로 인해 드러난 옥좌의 모습은 지옥이라는 끔찍한 풍경을 그대
로 옮겨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끔찍한 모습이었다.
옥좌의 재료는 다름 아닌 '인간' 그 자체였다.
코세이가 앉아 있는 그 옥좌는 인간의 몸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피와 살.. 뼈와 내장 등을 압축하여 굳힌듯한 모양새..
물론 그 재료가 인간이 아닌 동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으나 군데군데 드
러나 있는 인간의 얼굴.. 그것도 공포와 고통으로 인해 추악하게 일그러져 있는 그 얼
굴이 박혀져 있었다.
어떻게 봐도 이 옥좌가 동물이 아닌 인간을 재료로 사용해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일목요
연하게 만드는 증거였다.
지옥의 한 장면을 연상케하는 인간의 옥좌에 앉은 코세이는 아무것도 없는.. 그저 어둡
기만 한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코세이의 두 눈에는 '따분함' 이란 감정이 명확하게 서려져 있었다.
"지루하네.."
코세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옥좌의 팔걸이를 집요하게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거랑 비슷한 거라도 하나 더 만들까?"
병적으로 팔걸이를 두드리던 그 움직임을 멈춘 코세이는 자신이 앉아있는 옥좌를 바라봤
다.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기에 약간의 시간과 재료만 있다면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
았다.
다만..
"아..! 그러고 보니 다 처리했었지."
인간을 압축시키고 굳혀서 만든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는 이 물건의 재료는 당연 '인
간' 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지트에 남아있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코세이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300명 정도의 인간이 남아 있었지만 코세이가 돌아온 이
후 대부분의 인간들은 어떠한 실험체로서 소모됐고 그나마 몇 명 남아있던 인간들도 코
세의 손에 의해 끔찍한 옥좌의 재료로서 사용됐다.
그렇기에 더 이상 이 아지트에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은 단 한 명도 없었으
며.. 제대로 된 지성을 가진 존재들도 코세이를 포함해 단 2명뿐이었다.
"지루하신가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코세이에게 단 2명뿐인 지성의 존재 중 한 명인
실메리아가 물었다.
"지루하냐고..? 할망구 지금 나한테 지루하냐고 물은 거냐? 지루해? 지루지루조루! 조
루하냐고!? 아니 지루? 조루? 아 몰라! 어쨌든 심심해! 존나 심심해! 미칠듯이 심심
해! 아니 이미 미쳐있으니까.. 이상한가? 그래! 미쳤지만 심심해! 미친놈이라도 심심하
다고! 아아아아아아! 그 녀석은 언제 오는거야! 망할! 망할! 빡치는데 그냥 쏴버릴까?
바이러스고 핵이고 다 쏴버릴까! 쏜다! 쏜다! 싼다아아아아!! 끼야호오오오오오!!"
실메리아의 말에 제정신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인 코세이는 옥좌의 위에 벌떡
일어나 성난 아이처럼 그 위를 쿵쿵 뛰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후우! 병신같이 날뛰었더니 살겠구먼! 끼히히히히!!!"
얼마 동안 옥좌 위를 방방 뛰던 코세이는 기분이 풀린 것이지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
며 그로테스크한 옥좌 위에 벌러덩 누웠다.
"할망구 할망구 2천 살 처먹은 할망구야.. 예고한 날짜까지는 얼마나 남았어?"
"3일이네요."
실메리아의 청량한 목소리가 5월 5일까지의 남은 시간을 알렸다.
"3일..3일..! 3이이이이이일저어어어얼! 대한민국만세에에에에에에는 개뿌우우울! 3일
이나 남았냐! 3일! 3일!? 72시간! 4320분! 259200초 나 남았냐! 남은 거냐! X 잡
고 864번이나 딸을 쳐야 오는 거냐! 단백질! 단백질 도둑이냐! 으아아아아아!"
남은 시간을 들은 코세이는 때 쓰는 아이 마냥 시끄럽게 울부짖으며 거대한 옥좌 위에
서 자신의 몸을 동그랗게 만 채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를 반복하며 또다시 발광하
기 시작했다.
"지금 쏠까요?"
재차 발광한 코세이의 모습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모습으로 실메리아가 말했고.. 그
순간 코세이의 발광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아니.아니 아니아니아니지이이이! 지금 쏘면 여태껏 기다린 게 물거품이잖아!? 대가리
에 똥 찼냐!? 그럴 거였으면 진작에 쐈지! 쐈어! 몇 주 전에 이미 쏴버렸지! 얼굴이
녹아내리면서 뇌까지 녹아내렸냐!? 앙?"
격하게 침이 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코세이는 소리치며 실메리아의 얼굴을.. 정확하
게는 아무런 무늬도 색도 없는 새하얀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실메리아의 얼굴을 가리
켰다.
"..........."
그런 코세이의 지적에 실메리아는 평소와 같은 교태 섞인 웃음조차 흘리지 않은 채 조용
히 입을 다 물었다.
하지만 그런 실메리아의 새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양쪽 손은 터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꽉 쥐어지고 있었다.
명백한 분노의 표출
그러나 딱히 그 분노는 자신에게 폭언을 토해낸 코세이에게로 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메리아의 분노는 다름 아닌 자신의 얼굴을 가면으로 가릴 수밖에 없게 만든..
치명적인 독으로 자신의 얼굴을 흉측하게 만들어버린 할배와 자드에게였다.
가면 안에 감춰진 실메리아의 얼굴은 예전과 같은 미모는 존재하지 않았다.
있는 것은 염산을 부은 것 마냥 추악한 상처로 일그러지게 된 얼굴뿐이었다.
"뭐야? 뭐어어어야아아아? 할망구 화났어? 화났냐? 화났네? 화났어! 그 악어대가리랑
늙은이한테 부카케 당해서 화났구만!! 끼히히히히히히히힛!!"
실메리아의 상처를 후벼파는 것도 모자라 갈기갈기 찢어 놓는 칼날 같은 말을 내뱉은 코
세이는 배를 잡고 미친 듯이 웃었다.
"끼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런 행동을 한 코세이에게 죄책
감 따위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야..! 할망구 덕분에 꽤 웃었네!"
"네.. 최상이네요."
코세이의 시원스러운 한마디에 실메리아는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무정한 목소리로 답했
다.
"삐지지 말라고! 그 부카케 악어 늙은이는 너한테 줄게."
"감사합니다."
코세이의 밝은 목소리와 다르게 실메리아의 목소리는 칙칙하고 어두운 감정이 물씬 풍겨
왔다.
하지만 가면 속에 감쳐진.. 그 얼굴은 그 어떤 때보다도 기쁘다는 듯 웃고 있었다.
"뭐 중간에 리타이어 하면 죽도 밥도 없지만... 으음! 난이도 설정을 너무 어렵게 했
나?"
코세이는 팔짱을 낀 채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지상 루트라면 몇십만 명이나 되는 불사병
공중 루트라면 수십 채가 넘는 대공병기..
하천 루트라면 감당하기 힘든 돌연변이 짐승
어떤 루트로 이곳을 향하든 목숨을 보장하기 어려운 관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관문들은 코세이가 깔아둔 것들이었다.
"아니.. 그 녀석이라면 오겠지."
"꽤나 신뢰하시네요?"
"신뢰? 아니.. 아니지 아니야! 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그래..! 이름 붙이자
면 '운명'! 나와 그 녀석은 운명의 붉은 실로 맺어져 있지! 뭐.. 그 붉은색은 피의 색
이지만 말이야! 끼히히히히히히히!!"
자신이 말하고도 제법 웃겼던 것인지 코세이는 몸이 휠 정도로 크게 젖힌 채 미칠 듯
이 웃었다.
하지만 실메리아는 그런 코세이의 표현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쉽게 말하자면 그 녀석은 백신이야! 백신! 그리고 나는 바이러스!"
"백신과 바이러스입니까..?"
"그래! 백신과 바이러스다! 세계라는 이름의 PC를 엉망진창으로 파괴하는 게 바이러스
인 나! 그리고 그걸 막고 바이러스를 죽이는 역할인 백신이 그 녀석! 이라는거지!
코세이가 그런 식으로 비유를 했음에도 실메리아는 잘 이해할 수 없다는듯한 목소리였기
에 코세이는 추가적인 설명을 말했다.
"과연.. 백신과 바이러스인가요... 그런데 코세이님 새삼스럽지만 한가지 질문을 드려
도 될까요?"
실메리아의 허락을 구하는 말에 코세 이는 대답 대신 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여 승낙의 뜻
을 보냈다.
"코세이님은 왜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하시는 건가요?"
"끼히히히히히! 이제 와서 그걸 묻는 거냐!? 정말로 새삼스럽네! 진짜 뜬금포 터지네!"
자신의 손발이 되어 몇백 년이나 움직였던 실메리아의 그 질문은 코세이의 웃음보를 터
트리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한 물음이었다.
자신이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도 여태껏 한 번도 그 질문을 하지 않
고 행동해온 실메리아가 이제 와서 그런 의문을 안는다는 것은 순서가 너무나도 뒤죽박
죽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아.. 할망구 덕분에 너무 웃어서 그런가.. 배가 아파.. 아 죽는다.. 죽어.."
너무 웃어서 경련이라도 일어난 것인지 코세이는 몸을 파르르 떤 채 두 눈에 맺힌 눈물
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흐트러진 자신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워 똑바른 자세로 옥좌
에 앉았다.
"후우.. 이제 살겠네! 그래..! 내가 왜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하느냐였지?"
겨우 몸을 추스른 코세이는 실메리아의 새하얀 가면을 바라본 채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띤 채 물었고.. 실메리아는 긍정으로 고개를 세로로 끄덕였다.
"그야 재밌을 것 같으니까! 라는 이유가 크기는 하지만.. 그게 내가 태어난 이유거든."
코세이는 자신의 두개골을 손가락으로 탁 탁하고 두드린 채로 웃었다.
"이유입니까..?"
"그래! 이유! 내가 태어난 이유! 유일무이한 존재인! 내가 태어난 이유! 태어나자마자
내 머릿속에 내려진 떠오른 게 뭐였는지 알아? '세계를 멸망시켜라!' 였다고! 뭐..
처음에는 귀찮아서 무시했지만 말이야! 결국 나한테 있어서 가장 재밌는 일은 그거더라
고? 그러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좋아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머릿속에서 맨날 씨불이
니까. 해볼까?' 라는 느낌이려나? 내가 말했기는 했지만 '바이러스' 라는 표현은 나한
테 딱이네!"
재밌다는 듯 코세이는 입가를 비틀었다.
"꺼림칙하지는 않으신가요?"
코세이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명령받거나 강제당하
는 걸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실메리아는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강제에에에에? 나한테 그런 게 통할 리가 없잖아? 애초에 처음에는 무시하고 있기도
했고 강제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고? 그저 머릿속에 소 세계 멸망! 세계 멸망! 노
래를 부르는 거 외에는 신경 쓸만한 것도 없으니까!"
물론.. 보통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서 그런 말이 들린다면 세뇌를 당하거나 하
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지만 보통이 아닌 코세이에게는 크게 신
경 쓸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 의지야.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한다! 재밌을 것 같으니까 한다! 즐
거울 것 같으니까 죽이고 파괴하고 멸망시킨다! 간단한 일이지!"
즐거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듯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인 채로 코세이는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아아아.. 빨리 왔으면 좋겠다! 빨리 왔으면 좋겠네! 빨리빨리 와라! 그래야..."
양손을 들어 올린 상태에서 코세이는 아무것도 없는.. 얼룩 하나 없는 깨끗한 천장을
올려다 본채로 섬뜩하기 짝이 없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야.. 즐겁게 멸망시킬 수 있을 테니까! 어서! 어서! 빨리! 빨리! 빨리 나를 죽이
러 와라! 미도오오오오오오! 끼히히히히히히히히히!!!!!"
그 말을 내뱉은 직후 코세이는 재차 미친 사람과 같이 웃자... 기괴하기 짝이 없는..
섬뜩하기 짝이 없는 웃음소리와 광기와 집착 어린 코세이의 목소리가 어두운 공간 안에 흩뿌려지며 울려 퍼졌다.
============================ 작품 후기 ============================
몇일동안 말도 없이 쉬어서 죄송합니다..
최근 유행하는 독감인지 뭔지에 걸려버려서 몇일동안 침대위에서 허덕이다가..
이제 좀 괜찮아져서 겨우 움직일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 독감은 상당히 독한거 같으니 여러분도 조심해주세요 ㅠㅠ
전 열은 내렸는데.. 아직도 몸 여기저기가 쑤셔서 죽을것 같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