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2 / 0269 ----------------------------------------------
Ep 11 결전
그들이 여러 장해로 인해 발이 묶여 정체되어 있던 그 사이..
연구소에 남겨진 이들은 별다른 장해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싸우러 떠난 사이 놀고먹고 할 수도 없었기에.. 연구소에 남겨진 자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그들이 돌아오고 나서의 생활에 대비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한 것은 다름 아닌 농사였다.
농사라고는 해도 자라는데 오래 걸리는 작물을 심은 것은 아니었다.
최종적으로는 쌀이나 보리 밀 같은 물건들을 심을 생각이었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시
험 삼아 심는 부분이 사실상 컸기에 그들이 심은 것은 채소.. 그것도 빨리 수확할 수
있는 부류의 잎채소 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작물들을 심거나 관리하는 것은 파도 솔도 라도 시도의 4인조였다.
서바이벌 경험이 진한 한솔이었지만 당연 이런 농경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길티는
두말할 것도 없었으며 나라 역시 기본적인 지식은 있었지만 작물을 키우거나 심거나 할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은 데에 반해 그들에게는 그나 코세이와 같이 여러 가지
지식이 그 머릿속에 들어 있었고 그중에는 이런 농업 전반의 지식 역시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연구소에는 씨나 모종 등의 물건들도 존재하고 있었으며 부엽토 같은 흙 역시 존
재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었다.
그나마 가장 어려웠던 거라고 하면 잔디를 파헤쳐 그곳을 개간하는 정도일까? 하지만 그
것도 보통 인간보다 뛰어난 체력과 근력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도 그다지 어려
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들은 오늘도 새로운 경작지를 개간해 그곳에 여러 품종들을 심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 작업에는 한솔과 길티가 가세해 있었다.
작업을 하지 않은 것은 나라와 나라의 품에 안긴 채 흥미진진한 얼굴로 움직이는 그들
을 바라보고 있는 미레뿐이었다.
"저도 역시 도울까요?"
아직 4월의 후반이라고는 하지만 오후의 쨍쩅하게 내리쬐는 태양으로 인해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로 작업하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던 나라는.. 미레를 핑계로 자신만 편하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기에 조심스럽게 밭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물었다.
물론 보통은 아이 보는 것도 제법 중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미레의 경우 보통의 아이와는 다르게 큰 손은 가지 않았다.
힘도 강하고 체력도 보통 0세 유아보다 높은 데다가 호기심도 왕성해서 어디로 튈지 모
르는 고무공 같은 존재기는 했지만.. 다른 유아처럼 칭얼대는 일도 거의 없었고 소변이
나 대변을 누었을 때는 정확하게 소리를 내어 알려서 언제 갈아줘야 하는지도 단번에 파
악할 수 있었다.
호기심이 왕성해서 내버려 두면 어디론가 달려가 버리거나 하는 일은 조금 골치 아프기
는 했지만.. 적어도 어딘가에 뛰어내리거나 손에 든 걸 막무가내로 입에 넣는다거나 하
는 위험한 행동도 하지 않는.. 같은 나이의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있어서는 꿈의
아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라에게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고 있었다.
"언니는 미레 보고 있으니까 안 해도 돼!"
6명의 인간들 중 리더격.. 이라고 할 수 있는 한솔이 그들을 대변하듯 흐르는 땀을 닦
아내며 말했다.
"그래도.. 미레는 손이 많이 안가니까. 다른 사람이 봐도 괜찮아요?"
그 말대로 손이 많이 안 가는 것도 그랬지만 그다지 낯을 가리지도 않았다.
가장 잘 따르는 것이 나라와 한솔이기는 했지만.. 길티나 파도 솔도 라도 시도에게도
붙임성이 좋았다.
덕분에 감정이 그다지 풍부하지 않은 그들도 그럭저럭 미레를 귀여워하는 모습이었기에
누군가 한 명과 교체하여 미레를 대신 봐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래도 미레가 가장 좋아하는 건 언니니까! 히힛!"
태양만큼 눈부실 정도로 밝은 미소를 보인 한솔은 그렇게 말했다.
"으음..."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나라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자신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 자체는 나쁜 기분은 아니다.
우월감이나 그런 걸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중 자신을 가장 잘 따른다
는 것 자체는 기뻤다.
기뻤지만...
"엄마?"
끙끙 앓는듯한 소리가 나라에서 들려오자 미레는 안겨있는 상태에서 귀엽게 고개를 들
어 올린 채로 그렇게 말했다.
"미레야? 나는 그.. 엄마가 아니라.. 언니란다..?"
굳어진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만듯 나라는 귀엽게 갸웃거리는 미레에게 진지한 목소리
로 말했다.
하지만..
"엄마!"
명확하게 나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미레는 나라의 말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 전과는
다르게 확실한 발음으로 '엄마' 라는 말을 내뱉었다.
아무리 똑똑하다고는 해도 아직 아기인 미레가 그런 식으로 착각해서 부르는 일이 있을
수도 있기에 사실상 큰 문제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저 훈훈한 미소와 함께 넘길 수도 있는 작은 해프닝 정도로 끝날 문제였다.
그러나..
"그때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나라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아우? 아!"
고개를 숙인 덕분에 나라의 웨이브 진 머리카락이 미레의 얼굴에까지 내려왔고.. 그것
에 가볍게 손을 댄 미레는 찰랑찰랑거리는 그 감각이 마음에 든 것인지 손을 이리저리
휘둘러 나라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귀엽네요..."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미레를 보며 작게 미소를 지어 보인 나라였지만 이내
그 표정은 어두웠다.
어째서 나라가 미레에게 '엄마'라고 불린 것으로 이런 어두운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들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라가 미레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그와 그녀 모두가 헬기를 타고 떠난 직후.. 아빠와 엄마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없다
는 사실에 울음을 터트린 미레를 달래기 위해 나라는 여러 노력을 했다.
등을 토닥여 보기도 하고 등에 업고서 이리저리 달려보기도 하고 높게 들어 올려 보기
도 하는 등 나라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봤음에도 불구하고 미레가
울음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그다지 체력이 좋다고 볼 수 없는 나라는 여러 방법을 동원하고 실패한 덕분에 체력이
바닥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미레를 안은 채로 우는 그 얼굴에 말을 걸어볼 수밖
에 없었다.
"미레야.. 아빠랑 엄마는 조금 있으면 돌아오실 거니까. 조금만 참자?"
달래는듯한 말투로 부드럽게 미레에게 말해본 나라였지만 역시나.. 라고 할까 미레가 울
음을 그치는 일은 없었고 오히려 '암마' 라는 엄마를 부르는듯한 말을 섞어가며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미레가 우는 걸 멈추려나.."
벌써 1시간 가까이 이렇게 울고 있는 미레를 보며 안타까움 마음과 초조한 마음에 어
쩔 줄 몰라 하던 나라는 입을 다문 채로 울음바다가 된 미레의 눈을 가슴 아프게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으음..."
어떻게 하면 미레가 울음을 멈출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던 나라는 미간을 찌푸
린 채로 고민에 빠진 모습으로 작은 신음을 흘렸다.
"암마!"
"역시 엄마가 없어서 불안한 거려 나.."
엄마를 계속해서 찾는 그 모습에 나라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언니가 엄마가 돼줄 테니까. 그만 울념. 자 엄마야? 엄.마 지금
부터 내가 엄마가 돼줄 테니까. 자 엄.마"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나라는 미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채 말했다.
당연 이런 게 통할 리 없다는 것은 나라 본인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말했으면서도 어
이없음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암..엄마? 엄마?"
나라의 말을 들은 미레는 두 눈에서 흘리던 눈물을 멈춘 채 이번에는 정확하게 '엄
마'라는 말을 내뱉은 채로 나라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래! 그래! 엄마야! 엄.마!"
어째서 미레가 울음을 멈췄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라는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해 이것을
어떻게든 이끌고 가 미레의 울음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
"엄마란다! 엄마야! 미레 엄마야."
미레는 계속해서 자신이 엄마라는 것을 강조하듯 미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엄마... 엄마!"
그리고 드디어 나라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듯 미레의 얼굴에 해바라기 같은 활짝 핀 미
소가 되돌아왔다.
"엄마!"
"그래! 착하다 우리 미레!"
미레의 얼굴에서 눈물이 완벽하게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나라는 미레의 몸을 힘
차게 들어 올리며 겨우 웃을 수 있었다.
이후에 미레가 우는 일은 없었다.
그나 그녀가 있을 때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신나게 잔디밭을 뛰어다니거나 다른 이들의
품에 안긴 채 애교나 장난을 부린다거나 하는 등 그다지 문제가 있어 보이는 행동은 일
절 얼없다.
덕분에 나라도 미레를 보는데 있어서 큰 문제도 불편함도 없이 편했다.
다만 며칠 정도가 지났을 때쯤..
"엄마!"
자신을 가리키며 해맑은 미소와 함께 '엄마'라고 부르는 미레를 훈훈한 미소로 반응하
던 나라에..
"근데 큰언니가 돌아오면 뭐라고 하지 않을까?"
깊은 생각은 일절 없는 '사실'이 한솔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
그제야 나라는 후에 닥칠 폭풍.. 그것도 먼지 한 톨 남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 못
해 흉악한 폭풍이 자신을 덮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연 그 흉악한 폭풍은..
그야말로 질투의 마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죽을지도!?"
나라는 비명과도 같이 외쳤다.
물론 아무리 질투의 마왕인 그녀라도 그런 이유로 나라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로 막 나가
지는 않을..터였다. 아마도..
어찌 됐든 물리적으로 죽을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이것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
었다.
분명 미친개 마냥 이 건에 관해 물어뜯기 위해 발광할 것은 안 봐도 뻔했고.. 이미 여
러 번 그런 경험을 겪은 나라에 있어서는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나라는 그녀가 돌아오기 전까지 한시라도 빨리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미레에
게 정정 시키려고 했지만 이미 한번 입에 붙은 것인지.. 아니면 각인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미레에게 있어 나라=엄마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는 모양인지 도통 바뀔 생
각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도 여실 없이 미레는 나라에 천사 같은 미소를 보인 채 '엄마' 라고 부르
고 있었다.
"하아.. 진짜 그 사람이 돌아오면 한바탕 난리가 날 텐데. 어쩌면 좋죠.."
적어도 한 달 안에는 돌아올 거라고 생각되는 그녀를 생각하니 나라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다고 그 사이 미레가 자신을 엄마가 아닌 다른 말로 불러줄 것 같지도 않았고.. 아
마도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때쯤까지는 아마 이 호칭이 자신에게 고정될 확률이 높았
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자,잠깐만요..? 제 호칭이 고정된 거라면.."
나라는 허겁지겁 고개를 들어 올려 열심히 작업 중인 인물들을 바라봤다.
한솔 길티 파도 솔도 라도 시도 총 6명의 인물들..
"..................."
나라는 땀 흘려 일하는 그들을 바라본 채 어떠한 계략(?)을 떠올렸고 그것을 바로 실행
에 옮기기로 했다.
"미레야"
"아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미레는 커다란 눈동자를 깜빡인 채 반응했고..
나라는 그런 미레를 고쳐 안아 작업 중인 그들이 잘 보이는 위치로 미레를 이동시켰다.
그리고는..
"엄마'들'이야"
라고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었다.
"엄마?"
미레는 나라를 가리켰다.
"그래 엄마.. 그리고 저기도 '엄마' "
그렇게 말한 나라는 구슬땀을 흘리며 노동에 힘쓰는 이들을 가리켰다.
그런 나라의 머릿속에는..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라는 말이 떠올라 있었다.
============================ 작품 후기 ============================
미레와 7인의 엄마!?
이것으로 에피소드11 본편은 종료! 이제 에필로그 하나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