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얼론 (Zombie Alone)-214화 (214/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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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0 탄생

D-11

최후의 결전이라고 할 수 있는 코세이와의 싸움을 한참 준비 중인 오후

청결하고 깔끔한 진료실의 방안에.. 그와 나라가 책상을 사이에 둔 채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이런 바쁜 시기에 이런 감상을 품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립네요."

오랜만에 이렇게 둘이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예전의 일.. 불과 몇 달의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몇 년이나 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나라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네.."

그 역시도 그때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 병원에 있을 때.. 일이 없던 시기에는 이런 식으로 나라의 진료실에 마주 보고 앉

은 채 멍하니 있거나.. 잡담을 나누거나 하며 보내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그런 좋은 추억들..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는 몹시 슬픈 일들도 동시에 떠올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병원에 살고 있던 다른 사람들의 일이었다.

늑대인간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 것도 모자라.. 이질적인 것으로 변화해버린 병원 사람

들에 대한 일들도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그들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낀 것처럼 흐려져

있었다.

서로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는 몹시 기쁘고 좋은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그리고 그중에는 자신.. 비록 용기가 나지 않아 자신의 손이 아닌 좀비들의 손에 죽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이 늑대인간에게 감염되어 변질되어 있었다고는 해도..

"그런 얼굴 하지마요."

나라는 그의 떨리고 있는 손을 꽉 붙잡았다.

"구차하게 살아남은 제가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분들도 분명 당신에게 감사

하고 있을 거예요.

그가 병원에서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대략적으로 듣고 있었기에 알고

있었다.

아마 자신이 그런 이질적인 존재로 변화해.. 어제까지 웃고 떠들며 사이좋게 지냈던 존

재를 습격한다고 친다면.. 분명 자신을 막아주길 바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자신이 그들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확정 지어 대변할 수 있을 리는 없었

지만.. 적어도 그 병원의 사람들이라면.. 인간이 아니면서도 그를 믿고 의지하고 자상

하게 대해주었던 그 사람들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라는.. 자신에게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로서 그

런 말을 그에게 전했다.

"응.. 고마워"

아직까지 흐릿한 먹구름이 그 얼굴에는 남아있었지만.. 아까와 비교해 한층 마음 편해

진 미소를 그는 지어 보였고.. 그녀도 그 미소에 이끌리듯 입가를 누기로 트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은 하지 않고 그저.. 서로를 바라본 채 어색하지 않은 침

묵의 공간을 형성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두 사람의 손은 쭉 연결된 상태.. 였지만

"냄새가 난다! 도둑고양이의 도둑질 냄새가아아아!!"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분명 잠가뒀을 진료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고 그와 동시에 무거워

보이는 배를 감싸 안은 채로.. 그녀가 씩씩거리는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잡았다 요년!!"

그녀는 척! 하고 손가락으로 그와 나라를 가리켰다.

정확하게는.. 그와 나라의 연결된 손이었다.

"아,아니.. 아니거든요!?"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손과 그의 손이 연결된 것을 자각한 나라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난 채.. 붙잡고 있던 그의 손을 뿌리치며 허공을 향해 양손

을 들어 올려 만세의 자세를 취한 채 붉어진 얼굴로 부정의 말을 외쳤다.

"뭐가 아니라는거지?"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나라의 붉어진 얼굴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손을 끈적이

는 느낌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던(그녀의 시점으로는) 나라의 손을 지긋이 노려봤다.

"당신의 머릿속에 있는 사랑과 전쟁 같은 전개말이에요오오오!!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전개는 요만큼도 없었거든요!?"

"다들 그렇게 말하지..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들이 하면.. '불륜' 이라고!"

"당신 정말 제정신인 건가요..!? 얼마나 티비를 신봉하는 거예요!

그녀의 밑도 끝도 없는 발언에 나라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로 외쳤다.

그리고.. 이런 두 여자의 싸움을 중간에 낀 채로 있는 그의 경우..

"응?"

두 사람이 어째서 이런 상태가 됐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순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

리며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마,맞아! 미도..! 미도에게 물어보세요! 미도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당황하는 모습은 조금도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의아해하고 있는 중인 그를 척! 하고 가

리켰다.

"뭘?"

"미도! 제가 당신한테 이상한 짓을 하던가요? 당신을 유.. 유 유혹하거나 하는 그런 행

동을 제가 했나요!?"

"안했는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그는 솔직하게 답했다.

"거봐요! 미도도 아니라고 하잖아요!"

그의 대답에 나라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가슴을 편채 외쳤다.

"훗.."

하지만 그녀는 그런 그의 대답에도 코웃음을 친 채 무거운 몸으로 성큼성큼 그와 나라

가 있는 책상의 근처까지 이동했다.

"미도.. 이 녀석이 너한테 어떤 행동을 했지?"

"응..? 그러니까.."

그는 그녀의 질문에 있었던 일들을 그녀에게 전했다.

예전 병원에 있었을 때 이런 식으로 둘이 시간을 보냈다거나... 병원 사람들에 관한 것

으로 침울해진 자신을 나라가 위로해 줬다거나 하는 사실들을 전했다.

"역시나..!"

아무리 생각해도 찔리는 일 따위는 조금도 없는 그의 말에.. 그녀는 격분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린 채 나라를 노려봤다.

"뭐가 역시나에요..!? 아무리 봐도 그런 낌새 따위는 조금도 없잖아요!? 오히려 훈훈하

기만 한 그 장면에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거에요!?"

"네 속셈을 모를 줄 알아? 그런 식으로 약해진 미도 녀석의 마음을 파고들어서 마음으

로 위로하는척하면서... 몸으로 위로..."

"무슨 개소리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도대체 무슨 시나리오를 쓸 생각인 거예

요!? 당신 진짜 심리검사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본인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는데

도대체 어떻기 하면 그런 식으로 왜곡 하는거에요!"

그녀가 말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파악한 나라는 그것을 말하지 못하게 큰소리로 외치며

그녀의 말을 막았고.. 그 직후 그녀에 대한 비판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똑똑하긴 하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어리둥절해 있는 그의 화려한 금발 머리 위에 자신을 손을 올려놓고는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직 애야! 뭐든 잘하고 뭐든 할 수 있고 눈치도 빠르고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 녀석

은 초등학생이랑 다를 바 없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기억에는 없지만.. 적어도 2천 살 이상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초등학생.. 즉 한

솔과 동급으로 보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아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는 부정했다.

"화,확실히..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장소에 그것을 부정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듯.. 나라 역시 그것에 대

해 긍정하며 말끝을 흐렸다.

"어라..?"

나라 역시 긍정한 그 사실에 그는 어안이 벙벙해진 듯한 모습으로 눈을 껌뻑거린 채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고..

"즉.. 너는 그쪽 면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아이를 어떻게 해보련 파렴치한 인

간이라는...."

"당신은 도대체 저를 어떤 인간으로 만들고 싶은 거예요!? 제가 무슨 호색한 도.. 아니

고..!

"제비가 아니라 '꽃뱀' 이겠지."

"오히려 더 심하잖아요!? 제가 미도에게 뭘 뜯어내려고 한다는 거예요!?"

금전이나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뜯어내기 위해 남자에게 접근하는 범죄자들을 일컫

는 꽃뱀을 자신에게 대응한 그녀를 향해 나라는 거칠게 반박했다.

"그거야......."

그렇게 말한 그녀는 눈만 껌뻑인 채 굳어져 있는 그의 얼굴을 타며.. 천천히 그 아래

로 내려갔고.. 그런 그녀의 시선이 못 박힌 것은 다름 아닌 그의 하반신이었다.

"씨..?"

그녀 자신도 애매하다는듯한 느낌으로 의문문으로 답했다.

"뭐,뭐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 의문문인 거면 당신도 그냥 되는대로 내뱉는 거잖아

요!?"

"아니다! 이 씨 도둑년아!"

"누가 씨도둑년이에요오오오오!!"

"너다 이년아아아아!!"

두 사람은 머리털을 곤두세운 채로 고양이처럼 캭캭 거리며 상대방을 비판하고 매도하

는 진흙탕 싸움을 시작했다.

".............."

그리고.. 그런 진흙탕 싸움의 한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그는.. 초등학생이라는 불명예

의 충격에서 벗어난 채의 냉정한 상태에서 두 여자의 싸움을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제삼

자의 입장으로 바라봤고..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사이가 좋네!"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안달이 난 상태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

만.. 그의 냉정한.. 아니 개인적인 분석으로서는 그런 결론이 나왔고.. 그것은 그에게

있어 매우 좋은 일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소리 높여 말했다.

"어디가요!?"

"어디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참 싸우던 두 사람은  동시에 부정의 대답을 토해냈다.

흡사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 같은.. 0.1초 정도의 차이밖에 없을 정도의 딱 들어맞는

타이밍이었다.

"좋은거 맞네."

동시에 말한 것이 그 증거라고 하는 듯 그는 재차 웃으며 말했다.

"아니거든요!"

"아니거든!"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거의 동시에 부정의 말을 토해내는 두 사람..

"기분나쁘니까 따라하지마!"

"당신이야말로 따라하지마세요!"

거의 같은 타이밍에 부정의 말을 토해낸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은 두 사람은.. 다시

이를 드러낸 채로 으르렁거리며 그것에 관한 싸움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끄럽게 서로를 헐뜯는 싸움이 재개됐고..

그런 두 사람을 그는 훈훈한 미소와 함께 바라봤다.

그러던 중..

"아! 미도오빠!"

때 마침 길티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던 한솔이.. 열려진 진료실의 문 사이로 그

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활기찬 목소리를 띄운 채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큰언니랑 작은언니는 또 싸우는거야?"

그녀(큰언니)와 나라(작은언니)가 자신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말싸움

을 하는 모습을 목격한 한솔은 요 근래 들어 자주 봤던 두 사람의 싸움에 별로 놀랍지

도 않다는듯한 태도로 그에게 물었다.

"사이가 좋아서 그런거야!"

"으음..? 그렇구나"

그의 말에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 한솔이었지만. .그가 그렇게 말하니 그런가 보다라

는 마음으로 적당하게 수긍하는듯한 태도를 보였다.

"아..맞아!"

그러던 한솔은 무엇인가 생각났는지 탁! 하고 손뼉을 치고는.. 길티의 몸을 타고 지면

에 내려와 그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오빠! 나도 아이 가지고 싶으니까. 씨 줘! 할아버지가 알려줬어! 아기를 가지려면 남

자의 씨가 있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오빠의 씨 줘!"

라고.. 터무니없는.. 그야말로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폭탄 발언을 활기찬 목소리로 내

뱉었다.

물론.. 할배에게 들은 이야기 였지만.. 당연히 그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말해주지 않은.. 아니 말해줄수 없었던 할배가 생략하고 이야기를 가르쳐줬기에.. 그 중간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로 발언한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씨 도둑이다!?"

"씨 도둑인가요!?"

한참 집중해 싸우던 그녀와 나라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서운 속도로 고개를 돌린

채 동시에 외쳤다.

"응! 사이 좋네."

이런 난장판인 상황 속에서도.. 그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그렇게 말했다.

============================ 작품 후기 ============================

역시 미미랑 나라가 둘이 뭉쳐 있을때가 제일 쓰는 맛이 있는거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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