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얼론 (Zombie Alone)-189화 (189/269)

0189 / 0269 ----------------------------------------------

Ep 9 재회

어둡침침한 지하실의 안..

테이블 위에 머리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는 두 눈을 조용하게 감은 채..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만 이틀 만의 수면..

물론 그의 몸은 며칠 정도 수면을 취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최근 들

어 강도가 올라간 고문을 쉴 새 없이 당한 덕분인지.. 육체적 피로는 그렇다고 쳐도..

정신적인 피로가 제법 컸다.

그렇기에.. 그는 언젠가 올 반격의 때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몸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수면을 취하는 중이었다.

언제 여성이 돌아와 자신을 고문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1시간 이상은 수면

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긴장의 끈을 놓친 채로 잠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 시..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둔탁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 포착

됐고.. 그는 소리에 반응하듯 천천히 감긴 눈을 떠.. 문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마른 발소리가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며.. 서서히 그에게로 가까워져갔

고 이내 그의 두 눈에 하나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굿모닝~ 아니?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날이 밝은가?"

당연히 '여성' 이라고 생각한 그였지만.. 들려온 것 젊은 남자의 활기찬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어둠을 가로지른 채 서서히 그의 근처까지 다가왔고.. 그제야 어둠에

익숙해진 그의 눈은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젊은 목소리의 남자는 참으로 기묘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펄럭이는 넓은 소매와.. 원피스 형태의 펑퍼짐한 의복.. 흡사 종교의 예

복을 연상케하는 디자인의 새하얀 바탕에 붉은 선이 이곳저곳에 그려져 있는 의복을 입

고 있는 남자

하지만 더 기묘한 것은 그 얼굴에 있었다.

가면.. 새하얀 바탕에 질릴 정도로 봤던.. 이제는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지겹

도록 봤던 태양 교단의 문양이 중앙에 새겨진 가면을 쓰고 있었다.

예복은 그렇다 쳐도.. 그 가면만큼은 상당히 기묘했고.. 평범하지는 않아도 이상하다

고 말할 수 없는 예복이 그 기묘한 가면의 탓에 상당히 수상쩍은 느낌을 뿜어내고 있었

다.

"여기 너무 칙칙하지 않아? 조명 좀 밝힐까?"

가면을 쓴 남자는 지하실을 두리번두리번하며 그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조명 최대로!라고는 해도 주변을 밝히는 게 고작이지만!"

그러나 소리를 낼 수 없는 그의 입에서 답이 나올 리는 없었고.. 남자도 그의 의견은

상관없었던 것인지 시끄러운 소리를 흘리며 자기 멋대로 지하실을 밝혔다.

단지.. 남자가 지하실을 밝게 만드는데 사용한 것은 전기도 등불도 아닌.. '이질적인'

힘이었다.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손가락이 튕겨진 허공에는 주먹만 한 크기

의 일렁이는 불꽃이 공중에 고정된 채 지하실의 어둠을 밝혔다.

"다음은.. 의자인가? 에잉! 이놈의 집은 손님 대접할 줄도 모르나!"

가구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은 기껏해야 그의 머리가 올려져 있는 테이블뿐.. 그 이외에

는 흉흉하기 짝이 없는 날 붙이들이나 쇠꼬챙이 같은 그의 '고문' 에 사용되는 물건 정

도뿐이었다.

"사실은 이럴 줄 알고 준비해뒀지만! 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남자는 투박한 시멘트 바닥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밟았다.

그러자 남자가 밟은 지면의 주변이 작은 진동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굉음과 함께 바

닥에서 순식간에 무엇인가가 솟아 올라왔다.

그것은 석재로 만들어진 의자였다.

상당히 딱딱하고 단단해 보이기에 전혀 편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앉을 수 있

는 확실한 형태를 하고 있는 석재의 의자였다.

"착!석!"

남자는 이질적인 힘을 사용해 만든 석재의 의자에 옷자락을 펄럭이며 앉은 채 자신을 놀

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고 미소 지었다.

"뭘 놀라고 그래? 이 정도는 '너'도 할 수 있잖아?"

남자는 당연하다는듯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그에게 불꽃을 만드는 능력도 돌로 의자를

만드는 능력도.. 당연하게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는 그런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

을 리도 없었다.

"어랍쇼? 못해? 진짜로? 이런 간단한 것도 못해?  진짜로오오오오!?"

남자는 일부로라는듯 자신의 가면에 양손을 올린 채.. 뭉크의 절규를 연상케하는 모습으

로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를 흘리며 몸을 들썩 거렸다.

한동안 그렇게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듯 호들갑을 떤 남자는 이내 뚝! 하고 실이 끊어

진 인형처럼 그 움직임을 멈춘 채 힘없이 의자에 털푸덕하고 몸을 맡겼다.

"아~ 진짜냐.. 어쩐지 그 개족밥 실메리아한테 잡혀온 게 이상하더라니..."

남자는 의자의 팔받이를 시시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터무니없는 소리를 내뱉었

다.

실메리아라는 것은 흡혈귀 여성의 이름이었다.

최상위 포식자라고 할 수 있는 진짜배기 괴물..

그런 괴물을 별거 아니라는 듯한 취급을 하는 남자의 말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허언

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자의 분위기도 말투도 허세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별거 아닌 '사실' 을 말하

는 것 마냥 무미건조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찌끄래기는 한방감이었을텐데.. 불쌍하네..."

가면에 가려져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의 목소리에는 그에 대한 동정심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뭐라는거야..?)"

그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도 모자라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해가는 남자의 행동에.. 자신

도 모르게 입을 움직인 채 소리가 나지 않는 말을 중얼거렸다.

"뭐라고 하는 거긴.. 평생을 걸쳐 싸워온 강적의 몰락을 슬퍼하는거지."

들릴 일이 없는 그의 말은 확실하게 남자에게 전달된 듯 정확하게 그의 중얼거림에 대

한 답변을 토해냈다.

자신처럼 입술을 보고 말을 읽은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별달리 놀라지 않고..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해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넌 누구야?)"

"으어어엉! 어뗗게 날 잊을 수가 있어!! 몇천 년 동안 모습을 바꾸고 숨고 지랄발광을

떨어도 쫓아온 네가 어떻게 나를 잊을 수 있어! 그 몇천 년 동안의 스토킹은 불장난이

었을 뿐인 거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어어어어어!"

그의 직설적인 질문에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은 채 들

어 올리고는.. 자신의 새하얀 가면의 앞에 가져간 채 열기를 담은 목소리로 외쳤다.

"(몰라 너같은 가면남자 따위는!)"

그러나 그의 기억에 이런 수상한 남자.. 사이비교주같은 꼴을 한 남자 따위는 그의 기

억에 없었다.

물론 기억 속에 다수의 수상한 남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현재로서는 전원 사망한 상태

였기에 적어도 이런 꼴을 한 남자의 기억은 없었다.

"노오오오오오오오오!! 내가 밥 먹을 때도! 똥 쌀 때도! 딸 칠 때도! 쫓아와서 날 죽

이려던 네가 어떻게 날 몰라보는 거야! 어!? 말해봐! 자 어서 말해봐! 소원을 말해

봐! 아니.. 오히려 내 소원 좀 들어줘봐! 지니! 지니! 비비면 소원 3가지를 들어줘어

어어어!"

남자는 제정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텐션을 유지한 채로 계속 나 불되며 그 와중에

그의 머리를 진짜 램프라도 되는 것처럼 거칠게 비비며 발광했다.

여성의 고문에 비하면.. 그야말로 장난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행위였지만.. 남자의

높은 텐션이 섞인 태도와 그로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는 남자의 뜬금없는 말들에 의

해 상당한 짜증이 동반됐다.

"(넌 날 알고있는거야?)"

그의 예상으로 남자가 '자신' 을 알고 있다는 것은 얼핏 알 수 있었기에.. 짜증이 솟구

치는 것을 꾹 눌러 담은 채 남자에게 물었다.

"뭐어어어어? 알고 있고 자시고... 아니? 기다려봐.. 그러고 보니 그때.. 대가리가 작

살났었지..?"

남자는 그의 말에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린 채 그의 얼굴을 자신의 가면에 닿

을 정도로 가까이 가져갔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뇌가 흔들리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현기증에 닮은 감각을 동반한 두통이 그의 뇌리를 흔들었고 동시에.. 자신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남자가 가면에서 머리를 때어 냈을 때 물로 씻어내린 듯

완전하게 사라져 있었다.

실질적인 시간은 그야말로 10초도 안됐을 터인데.. 자신이 기억을 잃은 채 눈을 떴던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체험한 것은 감각을 느낀 그는 놀란 두 눈으로 가면의 남자

를 바라봤다.

"진짜냐아아아아... 기억이 날아간 거냐... 거기에 유유자적하게 살림까지 차린 거냐

아아아.. 그것도 가슴 빵빵하고 몸매 좋은 영계랑... 로리콘이냐아아아!  나이를 생각

해야지!! 몇 살 차이야! 4자릿수 차이잖아! 부럽다! 부러워! 빌어먹을! 내 옆에는 이천살 넘게 먹은 흡혈귀 할망구가 붙어있는데.. 21살 쭉쭉 빵빵 영계라니... 부럽다아아아아아아!"

남자는 진심으로 부럽다는 듯.. 가면의 사이로 눈물이라고 생각되는 액체가 뚝뚝 흘러나온채로 절규한 뒤 양손으로 쥔 그의 머리를 위아래로 거칠게 흔들며 또다시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 탓에 심한 멀미를 체험하게 된 그였지만.. 그런 고통보다 더 놀라운 일.. 자신의 과

거를 알리가 없는 남자가 자신의 과거.. '그녀' 에 대한 것이 그 입에서 튀어나온 놀라

운 사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남자가 어째서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지.. 자신이 기억을 잃은 것을 어째서

알고 있는지에 대해 추측했다.

방금 전.. 자신의 기억이 영상처럼 떠오른 일을 생각함으로써..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기억을 읽혔다.'

방금 전의 감각과 남자가 자신의 일을 입 밖으로 꺼낸 것으로 보아 이 추측이 가장 맞

아떨어졌다.

"젠자아앙.. 부럽다.. 부러워... 나도 2천 살 할망구 말고.. 2천살 연하랑 살림 차리고 싶다.. 풋풋하게 사랑을 속삭이면서 하하호호 하면서 나잡아봐라 같은것도 하고 그렇고 그래서 이렇고 저렇고 아잉한 일 하고싶다."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말과 모습에는 왠지 모를 애수와 그에 대한 동경에 가까운 부러움이 보이고 있었다.

남자는 시공이 완료되지 않은것인지 투박한 철골이 노출된 지하실의 천장을 한동안 애수에 넘치는 모습으로 올려다보며 부럽다 부러워를 중얼거리고는 어느새 제정신이 돌아온 것인지 그의 머리를 조용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자신이 만든 석재의 의자에 몸을 눕히다시피 앉았다.

"아아.. 허무하다. 평소 같으면 뭘 하기도 전에 튀어나와서 죽이려고 했던 놈이.. 왜

안 오나 했더니.. 기억을 잃은 것도 모자라 젊은 영계랑 희희낙락 으쌰으쌰 이꾸에꾸

같은 일이나 하고 있었다니.. 부럽.. 아니 참으로 통탄스럽네.."

남자는 녹초가 된 샐러리맨 마냥 피곤하다는듯한 목소리를 흘리며.. 그대로 의자에서 미

끄러 내려오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축 늘어진 미역과 같은 모습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것도.. 하필 나를 '모방' 한 상태로... 라니 부럽.. 아니 한심스럽다.. 한심스러

워."

의미심장한 남자의 말..

그런 남자의 말에 충격에서 벗어난 그는 눈을 날카롭게 만든 채 남자를 노려봤다.

"(넌..누구야..?)"

그리고는.. 직설적으로 그의 정체에 대해 물었다.

"나..? 나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축 늘어졌던 팔을 들어 올려 자신의 가면에 가져간 뒤.. 그 가면

을 얼굴에서 천천히 때어 냈다.

"나는 코세이.. 너랑 몇천 년 가까이 피 터지게 싸운 사이지."

그와 같은 얼굴로...

다른 클론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풍부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미소와 함께 자신의 소개를 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보스 등장이라고 쓰고 모솔맨 등장

필살기는 죽ㅊ..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