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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8 합류
길티의 조금 역겨운.. 아니 조금 그렇고 그런 행동에 눈이 점이 된 채 보고 있던 한솔이는.. 쑥스러워하는 소녀 같은 길티의 자태에 그런 의문을 잊어버렸고.. 그 사이 뒤
늦게 달려온 파도 솔도 라도 시도가 거의 대역죄인 같은 모습으로 무릎을 꿇은 채 머리
를 조아리는 상황에 처해.. 그런 네 사람의 뒷수습(?)을 위해 진땀을 빼내어야 했다.
어찌 됐든 적도 전멸시켰고 사죄의 마음 가득한 4인조의 마음도 가볍게 만든 상태로 모
든 일이 완벽하게 마리.. 되나 싶었지만 아직 그들에게 남은 일이 남아 있었다.
"또 해야겠네."
그것은 바로 정문을 시멘트로 막아놓는 일이었다.
불 사병들로 인해 거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무너져내린 휑해진 공간에 한솔은 작은 한숨
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벽으로 인해 시간을 벌어 완벽하게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것을 다시 복구할 생각을 하면 너무나도 귀찮았지만.. 그렇다고 이번처럼 언제 습격당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복구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들은 밥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를 정문의 복구에 투자했다.
그 탓에 예전과 거의 흡사한 강도와 높이의 높은 벽을 만들 수 있었고 그제야 다음날부
터 평소와 같은 자신들의 일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파수를 맡은 한솔과 길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좀 틀린 것이라고 한다면.. 전의 파수대는 상자를 쌓아 고정시킨 것뿐만이 물건이
었는데.. 이번에는 4인조가 위협에 노출시킨 사죄의 뜻으로 만들어준.. 그야말로 '왕
좌' 라고 말할 수 있는 화려한 문양과 무늬가 박혀져 있는 금박을 입힌 의자가 가장 꼭
대기에 우뚝 서있는 파수대(?) 였다.
솔직히 한솔에게 있어서는 의미를 알 수가 없었지만.. 굳이 만들어진 것을 거절했다가
는 더 알 수 없는 물건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에 감사의 인사와 함께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화려한 왕좌(?)에 앉아 정문의 도로를 지켜보고 있던 한솔은.. 문뜩 그 앞에 엉
덩이를 깔고 앉은 길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탓에 상당히 낡아 보이는 인형 탈.. 이었건만 그런 것치고 상당
히 깨끗했다.
피는 물론이고 때탄 부분조차 없을 정도로.. 낡은 것을 제외한다면 상당히 깔끔한 모습
이었다.
"길티.. 그 머리 세탁했어?"
한솔은 당연히 떠오른 의문을 길티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길티는 고개만을 살짝 돌린 뒤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솔은 길티의 그 대답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단 한 번도 길티가 저 인형탈을 벗은 걸 본적도 없었고.. 세탁하는
모습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한솔은 한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길티가 입고 있는 군복 역시 피 얼룩이 이곳저곳 남아있기는 했지만 더럽다고 볼 수 없
었고.. 애초에 그 정도로 한가지 옷을 입으면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길티
에게 그런 좋지 않은 냄새를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즉.. 길티는 인형 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옷도 꾸준히 세탁을 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길티! 그 옷도 빨아 입는 거야?
재차 질문한 한솔에게 길티는 별다른 말없이 고개만을 끄덕여 수긍했다.
"언제? 나는 한 번도 못봤는데?"
길티가 자신을 씻겨준 적은 몇 번인가 있었지만.. 적어도 한솔 자신은 길티가 씻는 모
습은커녕 옷을 세탁하거나 벗는 것조차 본 적이 없었다.
"그..그으으..시...시시간..있있...으을떄..."
길티는 더듬거리는 소리로 답한 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혹은 더 이상
알려지고 싶지 않은 듯 적당하게 얼버무려 대답한 뒤 입을 굳게 닫았다.
"그렇구나."
한솔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어차피 추궁해도 길티가 제대로 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포기할 생각은 없던 한솔은 머릿속으로 길티 몰래 어떠한
계획을 기획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가 끝난 뒤 저녁을 먹고 취침시간까지 대략 2시간 정도가 남은 타이
밍에.. 한솔은 길티가 카메라의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사이 길티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 4인조와 접촉한 뒤 길티에 대한 것을 캐물었다.
아무래도 며칠에 한 번씩 길티가 다들 자고 있는 시간에 몰래 밖으로 나가는 것을 목격
하거나 기척을 느끼거나 한 모양이었다.
다만 굳이 미행하거나 감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지라 그대로 내버려 뒀기에 길티
가 무엇을 하는지까지는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한솔은 길티가 나가는 이유가 세탁을 위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
다.
단지 왜 굳이 몰래 나가야 하는가..?
물론 원인은 알고 있었다.
아마 '맨살' 정확하게는 피부를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서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단지.. 왜 그게 부끄러운지.. 사춘기 소녀처럼 그런 태도(?)를 취하는지 까지는 한솔
의 입장에서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길티가 왜 피부를 보이는 것에 부끄러워하는 것은 둘째치고.. 한솔은 그것보
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길티의 '맨 얼굴' 이었다.
예전에 봤을 당시에 길티의 얼굴은 피부가 벗겨진.. 인체 표본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피부가 재생되어 있는 상태.. 그렇다는 것은 즉 길티의 얼굴 역시 피부
가 회복되어 그 원래의 얼굴로 돌아가 있다는 것..!
딱히 길티의 얼굴이 어떻든 간에 별 상관은 없었지만.. 아이 특유의 어쩔 수 없는 호기
심이 한솔의 마음에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상태였기에 한솔은 어떻게든 탈속에 숨겨
진 길티의 얼굴을 보고 싶어 좀이 쑤셨다.
이유는 없다.
그저.. 보고 싶다!라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뿐..
하지만 길티에게 보여달라고 한다고 보여줄리 없을 것이었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그때도.. 자신이 탈을 벗어도 된다고 말했음에도 길티는 극구 부정
했고 음식을 먹을 때도 불편할 텐데 굳이 억지로 인형 탈의 틈에 음식을 쑤셔 넣는 모
습으로는 절대로 맨얼굴을 보여줄리 없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한솔은 몰래 '훔쳐' 보기로 마음 먹었다.
분명 세탁을 하기 위해서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벗어야 되는 법..
즉 세탁을 하기 위해 나가는 길티의 뒤를 몰래 밟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다면.. 분
명 그 위에 쓴 인형탈을 벗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할 수 있었고.. 한솔은 그것
을 몰래 훔쳐보기로 했다.
4인조의 증언에 따르면 대략 적으로 길티가 세탁을 하러 가는 시기는 3일에 한 번이었
고 딱 그 시기가 다음날의 저녁때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한솔은. 4인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한번 잠들면 누군가 깨우기 전까지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자신을 알고 있는 한솔은 길
티가 나가는 것을 눈치챈 4인조에게 깨워주기로 하고.. 길티에게 들키지 않게 훔쳐볼
수 있도록 미행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다.
물론.. 이런 이상한 일을 하려는 한솔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 보통
인 반응이었지만.. 그들은 애초에 보통도 아니었고.. 한솔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있
어서는 보통의 존재가 아니었기에.. 군말 없이 한솔의 말에 따라 그 부탁을 수락했다.
그렇게 당사자인 길티를 제외한 5인은 다음날 저녁에 계획을 실행하기로 한 채.. 마지
막으로 목표물(?)인 길티의 등을 뚫어지게 바라본 뒤 흩어졌다.
".....?"
무엇인가 뒤통수가 따끔한 기분이 든 길티가 뒤늦게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거기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듯 커다란 인형탈을 갸웃거린 길티는 자신을 목적으로 한 어떠한 계획이 실
행되는지도 모른 채.. 재차 고개를 돌려 정문을 비추고 있는 액정의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음날이 왔고.. 평소와 다름없는 일과와 식사.. 그리고 취침의 단
계를 거쳐 모두가 잠든 늦은 시각.. 아니나 다를까 벽에 기댄 채 앉아 있던 길티가 소
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길티는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고 있는 한솔을 빤히 들여다본 뒤.. 시체와
같이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잠들어있는 4인조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본 뒤 소리가 나
지 않게 조심스러운 움직 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4인조가 번쩍! 하고 동시에 눈을 뜬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불에서 튀어나와 진짜
로 곤히 자고 있는 한솔의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하지만 흔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솔이 눈을 뜰 기색은 보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조금 더 거칠게 한솔의 몸을 흔들었다.
그제야 작은 신음을 흘리며 부스스한 얼굴로 떴는지 감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을
연 한솔은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4인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고..
"갔..! 읍..?"
정신이 번쩍 들며 자기 전까지 머릿속에 떠올렸던 계획이 시작된 것을 알아차린 한솔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려 했지만.. 이내 파도가 그 입을 틀어막은 채 입가에 손
가락을 대는 시늉을 하며 소리를 새지 않게 하라는 주의를 주었다.
한솔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고 그제야 파도는 한솔의 입에서 손을 대어냈다.
한솔은 길티의 전용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구석의 벽에 길티가 없는 것을 확인 한 뒤 이
불 속에서 나왔고.. 그것이 계획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고 받아들인 그들은 소리 없
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명은 발소리를 죽인 채 밖으로 튀어나갔고 나머지 두 사람은 한솔을 앞과 뒤에 선채
한솔을 밖으로 호위하듯 이끌어 나갔다.
그렇게 그들은 발소리를 죽인 채 달빛 하나만을 의지한 채로 걸어나갔고.. 이내 앞서
나간 2명과 합류할 수 있었다.
"(목표는?)"
"(샤워실쪽으로 향하고 있어)"
입모양으로 의사소통을 한 솔도와 파도의 말을 시도가 글자로 적어 보여준 뒤.. 4인방
과 한솔은 조용히.. 밖에서 샤워실 내부를 잘 확인할 수 있는 위치로 이동했다.
왜 세탁을 하기 위해 샤워실로 향한 것인가..라고 한다면 유일하게 물이 나오는 곳이
취사 실과 샤워실 이 두 곳뿐이었어 취사실보다는 세탁을 하기 위해 좀 더 타당한 곳
이 샤워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됐든.. 길티가 샤워실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샤워실을 잘 훔쳐볼 수 있는 위치에
몸을 숨긴 채 활짝 열려진 샤워실의 창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얼마 후 예상대로 어두웠던 샤워실의 불이 활짝 켜지며.. 인형탈을 쓴 길티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확실하게 들어왔고.. 길티는 주변을 확인하듯 두리번 두리번 거린 뒤..
자신의 군복 맨 위 단추에 손을 뻗었다.
"꿀꺽.."
그리고.. 한솔은 긴장(?) 되어 바싹 말라진 목에 마른침을 꿀꺽하고 삼키며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길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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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이런 이벤트는.. 남자가 여자들을 훔쳐보는 이벤트였던같은데..
뭔가 잘못된듯한 기분이 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