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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8 합류
연구시설에서 그들과 지낸지 벌써 1주일이 훌쩍 지나 버린 어느 오후..
평소와 마찬가지로 파수대의 꼭대기 상자 위에 한솔과 길티는 자신들의 역할인 파수를 보고 있었다.
며칠이나 반복해온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
그 탓인지 괜스레 생각이 더 많아진 한솔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지 않는 정문을 멍
한 눈으로 바라보며 할배와 자드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벌써 1주일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소식하나 없는 그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은 그다지 좋지 않은 방향 쪽으로 자연스럽게 유도됐
다.
"으..!?"
꿈에서 본 할배와 자드의 끔찍한 모습이 떠오른 한솔은 움찔하고 몸을 가늘게 떨며..
그 부정적인 생각을 날려버리듯 자신의 양 뺨을 거칠게 짝! 하고 때렸다.
"하..하한소소솔..!?"
한솔의 이상행동에 당황한 길티가 서둘러 한솔의 양팔을 속박한 채 걱정에 찬 소리를 흘
렸다.
"아,아니야..! 잠 깨려고 그런거야!"
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던 한솔은 애매한 미소를 지은 채 변명을 흘리며 조용히 느슨해지
는 길티의 속박에서 벗어난 양손으로 얼얼한 고통이 느껴지는 자신의 뺨을 부드럽게 쓰
다듬었다.
아프기는 했지만 뺨에 느껴지는 고통의 탓에 쓸 때 없는 생각을 막을 수 있었기에 무의
미한 행동은 아니었다.
단지.. 생각 이상으로 양 볼이 얼얼했던 한솔은 조금 가감을 할걸 그랬나라는 생각을
하며 걱정스러운 듯 자신을 내려다보는 길티에게 안심하라는 뜻으로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이고는 재차 정문의 도로를 주시했다.
개미 새끼 지나 다지 않아 고요하기 짝이 없는 정문을 집중해서 바라본 한솔이었지
만.. 10분 정도 지나자 다시 한번 지루함과 따분함이 몰려왔다.
"길티 우리 끝일 잇기 할래?"
이 지루함이 계속 유지되다가는 또다시 좋지 않은 상상을 할 것 같은 한솔은 길티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그어어!?"
이미 한번 사기에 가까운 단어들을 첫방부터 선보여 길티의 튼튼한 손목을 너덜너덜하
게 만든 전적이 있었기에.. 길티는 쓰고 있는 인형 탈이 뒤로 돌아갈 정도로 거칠고 세
차게 고개를 흔들어 부정했다.
"이번에는 오빠가 가려쳐준 필살기술은 안쓸게!"
"지지진..진짜..?"
"응! 그 대신 할아버지가 알려준 사투리..."
"그어어어어어!!"
할배가 알려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가르쳐준 원소기호급의 치사
함이 숨어있다는 것을 본능과 경험으로 알아차린 길티는 원래대로 돌려놨던 탈이 다시
삐뚤어질 정도로 거세게 고개를 저어 거부했다.
"그럼.. 딴 거! 할아버지가 알려준 놀이가 뭐가 있었더..."
정면을 바라본 채 다리를 굴리며 고민하던 한솔은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동작을 멈
춘 채 눈을 찌푸리며 정면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그와 함께 갑자기 정면을 주시하는 한솔에 따라 길티 역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려 그쪽
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누군가 오고 있어.."
한솔은 정면을 주시한 채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고.. 그 말에 동의하듯 길티는 커다
란 인형탈을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 직후 한솔의 행동은 빨랐다.
"누가 이쪽으로 오고있어."
한솔은 길티의 코트 주머니에서 꺼낸 무전기를 켜고 또렷한 발음으로 상황을 알린
뒤..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인영을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 목에 걸고 있던 망원
경을 양 눈가로 가져갔다.
"7..8....9..10....11...12...13..14..15..16"
명백하게 정문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남자들의 인원수를 입으로 일일이 세어 나간 한
솔은 재차 이쪽을 다가오고 있는 남자들을 더욱 자세하게 살폈다.
행군하고 있는 남자 전원의 등에 소총을 들쳐 매고 있는 것을 확인한 한솔은 미간을 찌
푸리며 망원경에서 눈을 땠다.
"길티 적이야."
한솔은 단번에 남자들을 적으로 간주했다.
총기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무조건적으로 적..이라고까지 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입
고 있는 옷.. 정확하게는 그 옷에 박혀 있는 태양 교단 특유의 엠블럼은 빼도 박도 못
하는 '적'의 증거였다.
한솔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파수대에서 지면을 향해 뛰어내리듯 내려온 뒤 상자 안에
넣어둔 자신의 짐을 잽싸게 꺼냈다.
꺼낸 것은 그에게서 받은 여분의 나이프와 권총 한 자루와 그것을 넣을 수 있는 가죽
홀더.. 그리고 탄환이 차있는 여아용의 캐릭터 배낭이었다.
나이프는 그렇다 쳐도 권총도.. 탄환이 가득 찬 배낭도 아이인 한솔에게는 한없이 무거
울 것 같았지만 한솔은 그 묵직한 무게의 물건들을 장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무거
워 보이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한솔이가 무장을 완료함과 동시에 뒤늦게 파수대에서 내려온 길티는 준비 완료된 한솔
의 몸을 단숨에 들어 올려 어깨에 태운 뒤 그 상태 그대로 몸을 움직여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얼마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그들의 숙소였다.
길티의 어깨에서 뛰어내린 한솔은 미끄러지듯 숙소 안으로 들어 간 뒤 구석진 한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액정 모니터의 스위치를 킨 뒤 쭈그리고 앉아 그 화면을 뚫어지게
주시했고.. 곧이어 액정 모니터가 밝게 빛나며 영상이 나왔다.
화면에 비추어진 영상은 별다른 특징 없는 콘크리트 도로가 비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그 특별할 것 없는 풍경에 총기로 무장한 태양 교단의 인간들 몇 명
이 비추어졌다.
영상은 다름 아닌 정문에 위치한 카메라에 찍히고 있는 영상이었다.
남자들은 콘크리트로 완전하게 막혀있는 문을 본 뒤 당황한 듯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걸
리거나 안에 있는 누군가를 부르는듯한 행동을 하며 문 앞에서 우왕좌왕 어쩔 줄 모르
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조금 뒤 남자들 전원이 유일한 출입구인 정문이 막아져 있다는 것을 확인 한
뒤 화가 난듯한 모습으로 벽을 차거나 두드리거나 둔기 같은 물건으로 내리치거나 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단지 그 정도로 부서질 정도의 강도는 아니었기에 콘크리트의 벽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당당히 남자들의 앞길을 가로막은 채로 건재했다.
남자들이 가진 장비로는 두껍고 높은 콘크리트 벽을 뚫을 방도가 없었는지 분한 듯 이
를 가는 모습이었다.
화면을 지긋이 바라본 한솔은.. 이대로라면 남자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
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 분해하는 남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웃었다.
하지만.. 이내 그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솔이 육안으로 확인했을 때만 해도 없어 전 트럭 한 대가 어느샌가 콘크리트의 정문
앞에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트럭의 조수석 쪽에서 한 명의 소년이 내린 채 두꺼운 벽 앞으로 다가와
그것의 강도를 확인하듯 왼쪽 주먹으로 툭툭하고 몇 번씩 두드렸다.
그런 뒤 주변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남자들을 향해 소년이 무엇인가를 말하자.. 남
자들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채 우르르 트럭의 뒤로 몰려갔다.
잠시 후..
짐칸의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새로운 6명의 남자들이 나왔다.
하지만 그 남자들의 모습은 다른 남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다른 말끔한 남자들과 다르게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해져 있었으
며.. 그 옷처럼 그들의 몸도 이곳저곳이 심각할 정도의 부상이 보였다.
피부가 벗겨지거나 살점이 뭉텅이로 나가거나 하는 등의.. 보기 해도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심각한 상처들이었건만.. 그들은 별다른 고통도 느끼지 않는지 태연하게 트럭에
서 나와 조금 느릿한 걸음으로 소년이 서있는 벽 근처로 이동했다.
그와 함께 남자들의 상태를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한솔의 눈은 찢어질 정도
로 커졌다.
"저거..!"
한솔이 몸을 부들부들 떤 채 화면에 비추어진 남자들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그어어!"
그리고 트럭에서 나온 상처투성이의 남자들을 한솔과 같이 확인한 길티는 동의하듯 소리
를 흘리며 적의에 찬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남자들을 본 한솔과 길티 두 명 다 적의와 살의를 가득 품은 채로 화면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남자들은.. 불과 몇 주 전에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 괴력의 좀비.. 목을 졸려 죽을뻔하고.. 머리를 맞아 죽을뻔했던 순간을 선사해준 그 좀비
남자와 똑같은 분위기와 외모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질이 그렇게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들을 죽
음으로 몰고 간 남자들과 동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모습은 한솔과 길티의 분노와 그
때의 무력하고 굴욕적이었던 기억을 되살렸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언제나 밝게 웃고 있던 한솔이 험악한 얼굴로 이를 뿌득 갈며
적의와 살의를 흩뿌릴 정도로 감정을 자극했고.. 그것은 길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마 동안 화면을 노려보던 중.. 무엇인가 소년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들이 고
개를 끄덕인 뒤.. 소년이 트럭 쪽으로 이동을 함과 동시에 두꺼운 벽을 향해 가차 없
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맨주먹으로 두껍게 발라진 콘크리트의 벽을 후려친다는.. 그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을 시작한 남자들의 양 주먹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강도 높은 콘크리트와 비교해 무르
기 짝이 없는 남자들의 양손은 부서졌고.. 그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은 멈춰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뼈가 박살 나 겨우 손에 연결된.. 데롱데롱 매달려져 있던 남자들의
양손은 재차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이내 아까 전과 같은 작업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정도 작업 후 다시 양손이 박살 나는.. 알 수 없는 행동의 반복..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있는 힘껏 콘크리트 벽을 후려치고 주먹이 박살 나고 회복된 주먹을 다시 벽에 부딪치
는 이 행동으로 인해 두꺼웠던 콘크리트 벽은 확실하게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 증거로 처음에 온 남자들이 무슨 짓을 해도 겉면이 약간 떨어져 나가는 정도였던 벽
의 표면에 명백하게 남자들의 주먹 자국들이 음푹 패여진 부분과 함께 금이 가고 있었
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0분가량을 맨주먹으로 무식하게 벽을 후려친 결과가 명백하게 드러났
다.
중심 부분을 중점적으로 후려친 덕분에.. 결국 앞으로 가로막고 있던 벽에 커다란 구멍
이 뚫려버린 것이었다.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의 구멍은 아니었지만.. 뚫린 구멍을 중심으로 아까의 작업을 반
복 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벽을 무너트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한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숙소의 밖으로 뛰쳐나갔다.
더 이상 보고 있을 시간이나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한솔이 밖으로 뛰쳐나온 가장 큰 이유는 귀에 들려오는 기계음 때문이었다.
밖으로 뛰쳐나온 한솔은 우뚝 커니 선 채 이쪽으로 향해 다가오는 소리의 중심지를 바라
봤다.
흙빛의 둔탁한 금속의 육중한 덩어리..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던.. 상당히 사치스러운 이동 수단이었
던 '전차' 였다.
그러나.. 그 사치스러운 이동 수단은 지금부터 본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었다.
"그때랑은 다르니까."
한솔은 그때의 설욕전을 생각하며 호전적인 미소를 띠며 무시무시한 육전 병기의 모습
을 바라봤다.
============================ 작품 후기 ============================
전차맛을 쬐끔만 맛보거라아아아!
p.s
미도와 미미의 만남은 시즌3의 마지막인 에피9에서 나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