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9 / 0269 ----------------------------------------------
Ep 8 합류
실험체 4인방 파도 솔도 라도 시도와 한솔 길티가 합류한 뒤..
6명이라는 인수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시설은 턱없이 넓고 복잡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세면과 식사를 끝내자마자 건물과 부지 내를.. 한솔의 지휘에 따라 바
쁘게 돌아다녀야 했다.
이 6명 중 가장 리더에 적합할 것 같지 않은 한솔이 지휘를 하는 것이 이상할지도 몰랐
지만 계이름 4인조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딱히 지능이나 능력 면에서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지능이나 기술 육체적 능력 면에서 똘똘한 편에 속하지만 평범한 아이의 분류에
들어가는 한솔이보다 그들이 월등하게 뛰어나고 높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자율성' 이었다.
그들의 경우 분명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엄청나게 서툴렀다.
애초에 그들의 경우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 정도로 속박
되고 고문에 가까운 실험에 머릿속에는 온통 분노와 복수로 가득 차 있었기에.. 자신
의 의지로 생각해서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몹시 낯설어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거 자체가 서툰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일을 정해주면 어떻게 해야지 빠르고 효율 좋게 일을 끝낼 수 있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실행하여 결과를 내놓았다.
쉽게 말하면 대학생활의 리포트.. 자유주제로 리포트를 써오라고 그들에게 시킨다면 그
들은 미제출을 할 수밖에 없지만.. 어떠한 주제로 리포트를 써오라고 한다면 그들은 교
수에게 a 학점을 받을 수 있는 리포트를 제출할 수 있을 것이었다.
즉 그들은 누군가 주어진 일을 정해줘야만 효과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한다는 것..
그렇기에 이 6명의 인원 중.. 아이에 다른 이들보다 떨어지는 스펙을 가지고 있는 한솔
이었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며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은 한솔이 이
여섯 명 중 가장 자율성이 높았기에 지휘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휘라고는 해도 일정 범위 내에서 어떠한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커다란 주
제 하나를 정해준 것에 불과했다.
파도와 시도에게는 시설의 보수를 맡겼다.
특히나 전기계통과.. 의료에 필요한 시설을 중점적으로 부탁했다.
여섯 명 중 그 시설을 쓸만한 존재는 오직 평범한 인간인 한솔이뿐이었지만.. 딱히 한
솔은 자신이 쓰려고 그것을 부탁한 것은 아니었다.
보수를 부탁한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그의 몸 때문이었다.
상처투성이의 만신창이였던 그의 몸은 그때와 다르게 많이 회복된 모습이었다.
구멍을 통해 흘러나오던 내장기관들도 가지런히 안쪽에 들어가 있었고 팔이나 다리의 뼈
들도 점차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한솔이 처음 봤을 때 잃어버리고 있던 오른
쪽 팔과.. 여성이 가지고 가버린 목만큼은 휑하니 비어있는 상태였다.
그가 목이 잘려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혹시 무
엇인가 일이 잘못돼서 그의 몸에 어떠한 이상이 닥칠지도 모르는 경우를 생각했기에..
의료기술과 지식을 가진 4인조에게 혹시나 모르는 일이 일어났을 때 그를 고치기 위한
장소였다.
물론.. 목이 잘려서 죽어있는 시체를 살리는 것은 의술의 영역은 아니었지만.. 한솔의
기준으로 안 좋은 것을 고치는 것은 병원과 의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할배의 '병' 때문이었다.
병마를 가지고 있는 할배는 한번 피를 토하며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런 할배를 보고 울며불며 놀랐던 한솔을.. 속이기 위해 연기인 척 위장한 할배는..
한솔을 잘 속여 넘겼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솔은 아이이면서도 생각 이상으로
눈치가 빨랐다.
안 그랬다면 아이에게 있어 무섭고 거칠기 짝이 없는 이 세상을 살아남을 수는 없었기
에 한솔은 할배의 병명까지 알 수 없었지만.. 어딘가 진짜로 아프다는 것은 알고 있었
다.
사실상 의료시설을 보수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할배의 병을 고치기 위함이라고 봐도 무방
했다.
할배를 고칠 수 있는 수술시설과 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있다면 할배의 병도 고칠 수 있
다고 진지하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할배의 암세포는 수술로 절제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한 장기에까지 퍼져 있는
상태였기에 한솔의 마음은 참으로 기특했지만..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말
이다..
어찌 됐든 파도와 시도에게는 그쪽에 관련된 지시를 내렸고..
남은 라도와 솔도에게는 연구시설 내를 탐색해 쓸만한 물건들.. 전투든 생활이든 의료
든 도움이 되는 물건이 있다면 모아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를 구하러 가는데 도움이 되는 물건을 원한 것도 있었지만..
혹시 '적'이 재차 이 연구시설을 빼앗기 위해 왔을 때를 대비한 준비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시를 내린 한솔과 길티가 하는 일은 정문의 '파수' 였다.
전문적인 지식도 기술도 없고 체력이나 근력도 다른 이들과 비교해 모자라다는 것을 자
각하고 있는 한솔은 자처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기는 하지만.. 별다른 기술이나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파수를 자처했다.
파수를 하는 이유는 역시나.. 혹시 올지 모르는 적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정문은 벽돌과 시멘트로 막아 놓은 상태였다.
당연히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한솔이 길티와 같이 만든 작업물이었다.
거기에 억지로 부수고 들어와도 시간을 끌 수 있게 함정까지 설치해둔 상태로.. 이 모
든 게 그에게서 배운 것들을 활용한 것이었다.
그렇게 적의 칩입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한 한솔과 길티의 경우.. 튼튼한 목제 박스를
쌓아 묶어 고정시켜 높게 올린.. 일종의 파수대 였다.
길티와 한솔은 그 높은 곳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정문의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
다.
현재 그들은 파수꾼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심심하다. 그치?"
파수의 역할은 분명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역할이었지만.. 역시나 지루하기 짝이 없었
다.
거기에 한참 활발하게 뛰고 구르고 움직이 여야 할 한솔 같은 아이에게 있어서는 그 고
층이 더욱 심했기에.. 한솔은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지루함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게
하기 위해 굳이 자신의 상태를 입 밖으로 꺼내 말했다.
"그어?"
그와 반대로.. 한솔의 옆에 가만히 있는 것이 일상이자 길티에게 있어 당연한 일이었
고 딱히 지루하다고 느낀 적이 없는 길티는 의아하다는 듯 커다란 인형탈을 옆으로 움직
였다.
"하..한소솔..자..자라...나.나나..지켜지켜보본다다."
길티는 고장 난 라디오를 연상케하는 반복적인 말을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까지 제대로 말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어색하고 반복적이었지만 며칠 전과 비교하면
반복적인 말이 상당히 줄어들어 예전만큼 대화를 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 상태
였다.
"낮잠..?"
"자자..자라.. 한솔."
길티의 말에 한솔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고민했다.
피곤하다..라고 말할 정도로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던 탓인지 졸음이 몰려오고 있는 상태였기에 길티의 그 제안은 몹시나 달콤하
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아니야! 다들 열심히 하니까.. 대장인 나도 열심히 해야지!"
한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채 의욕을 상징하는 주먹 진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위,위위험"
그런 격렬한 움직임 탓에 한솔이 박스의 위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질뻔했지만 그 전에 길
티가 한솔의 몸을 감싸 안아 추락의 위협을 단숨에 없애버렸다.
"위험위험하다. 한솔"
한솔의 작은 몸을 감싸 안은 길티는 그대로 한솔을 들어 올린 뒤 자신의 무릎 위에 앉
힌 채 붕대 투성이의 손으로 그 배를 감싸 자신을 좌석 겸 안전벨트로서의 용도로 언
제 난 미칠지 모르는 한솔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미안! 히히!"
그다지 반성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솔직하게 사과의 말을 내뱉은 한솔은 그대로 길티
의 배와 가슴에 등을 기댄 채 밖으로 나와있는 양 다리를 개구쟁이처럼 상하로 흔들었
다.
그때마다 나무 상자에 부딪쳐 텅 텅 거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냈지만.. 길티는 별다른
불만이나 주의도 없이 한솔의 배를 확실하게 한 손으로 감싸 안은 채 정면을 주시했다.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 없이 파수의 일을 성실하게 진행한 두 사람.. 이었지만 결국 얼
마 지나지 않아.. 몸이 근질거렸는지 한솔이 몸을 비틀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한솔
을 막기 위해 양손으로 움직여려 하는 그 몸을 막았다.
"차가워! 길티! 히히!"
그 탓에 한솔의 등과 길티의 몸이 밀착됐고.. 그 탓에 군복 너머로.. 사람과는 다른 길
티의 차가운 체온이 한솔에게 느껴졌다.
"미..미미안?"
한솔의 그 반응에 길티는 당황한 듯 한솔을 막고 있던 양손에 힘을 푼 채 허겁지겁 자
신의 몸을 한솔에게서 때어 놓았다.
"길티?"
갑자기 길티가 뜬금없이 사과를 하며 이상한 반응을 보이자 한솔은 이것 저곳이 해진 고
양이 마스코트의 얼굴을 올려다보기 위해 목을 뒤로 젖힌 채 표정이 있을 리 없지만..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든듯한 인형 탈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나..차차갑..갑다...한솔..추춥다."
길티는 자신의 몸이 한솔에게 최대한 닿지 않게 하기 위해 몸을 뒤로 젖히며 자신의 행
동에 대해 토해냈다.
인간의 체온보다 월등하게 낮은 길티의 몸은 살아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차가울 수밖에
없어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나 안 추운데? 오히려..."
그렇게 말하며 한솔은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길티의 몸에 양손을 뻗은 채 힘을 주어 길
티의 몸을 꽉 껴안았다.
"차가워서 기분 좋아! 히히히!"
"저,저정마말?"
확인하듯 되묻는 길티에게 한솔은 환한 미소와 함께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한 뒤 재
차 길티의 품에 뺨을 비비며 그 차가운 감촉을 즐겼다.
그런 한솔의 가식 없는 모습에 안심한 듯.. 길티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까와 마찬가지로 한솔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양손으로 그 작은 몸을 감싸 안았다.
고통과 더불어 감각이 무딘 길티는 한솔의 따뜻한 체온을 제대로 느낄 리 없으면서
도.. 왠지 모르게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동시에.. 길티는 이 따뜻함을 무슨 일이든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욕이 샘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주인인 그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서 이 따뜻함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다.
"길티! 심심하니까 끝말잇기 할래?"
길티가 말없이 마음속으로 그런 다짐을 하고 있을 때.. 길티의 차가움을 만끽한 한솔
이 길티에게 재촉하듯 말했고.. 말하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길티였지만 그것을 흔
쾌히 수락했다.
"히히! 그럼! 그럼! 나부터 할게!"
양발을 가만히 내두지 않은 채 허공을 차며 한솔은 신나는 목소리로 외치며 시작을 알렸
고 품 안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길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나트'륨'!"
"류..류류류류류류류류류..류륨..?"
시작부터 터무니없는 단어가 나온 탓인지 길티는 평소 이상으로 더듬으며 당혹스러운 모
습을 보였고.. 당황하는 길티를 웃으며 바라보던 한솔은 숫자를 셈과 동시에 들어 올
린 3개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갔다.
"끝! 내가 이겼어! 손목대!"
끝말잇기가 성립될리 없는 한방단어를 내뱉고 승리를 선언한 한솔은 자신의 배를 감싸
안은 길티의 손목을 억지로 뒤집은 채.. 길티가 무엇인가 말하기도 전에 들어 올린 2개
의 손가락으로 힘껏 내리쳤고 길티의 손목에서 찰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길티는 조용히 자신의 손목을 쓰다듬으며 웃고 있는 한솔의 얼굴을 바라보며.. '륨'을
금지시켰다.
길티도 예전 비슷한 것을 당했었던 경험이 있었고.. 지금은 더듬거리기는 하지만 확실하
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었기에.. 확실하게 '륨' 으로 오는 단어를 금지시킬 수 있었고
한솔도 동의했다.
"그럼 나부터 다시 시작한다!"
의욕 넘치는 모습으로 재차 시작을 알린 한 손을 씩 하고 웃으며 작은 입을 천천히 열
었다.
"류머티즘!"
다시 한 번 끝일 잇기에서 터부가 되는 한방단어가 튀어나왔고.. 길티는 재차 당황한
듯 아까보다 더욱더 즘을 반복하며 단어를 머릿속에서 찾았지만 나올 리가 없었고.. 결
국 차진 소리와 함께 손목을 얻어맞았다.
자신의 손목을 쓰다듬으며 길티는 이번에도 즘을 금지시키며.. 이번이야말로 이어 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갗"
또다시 한방 단어가 튀어나왔고.. 길티는 지겹게도 손목을 재차 얻어맞아야 했다.
붕대가 풀릴 정도로 강하게 얻어맞은 길티는 자신의 손목에 붕대를 재차 감으며.. 방금 전까지 따뜻한 한솔이의 몸이 지금은 왠지 모르게 싸늘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미낳괴(미도가 낳은 괴물) 한솔!
한솔 8세 장래희망은 악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