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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7 잠입
잔혹한 제안을 받은 실험체들은 아직 그의 말뜻을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어리둥절해하
는 모습을 보였다.
갑자기 나타나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그런 제안을 받은 상태에..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이 답답해 보이는 것부터 풀어줄게."
그는 자신의 옆에 있는 소년에게 눈짓했고 그것을 이해한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은 실험체 3명의 구속 구를 단숨에 제거해 속박에서 자유롭게 만들었다.
구속구에서 자유로워진 실험체들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에 신기하다는 듯 자신의
몸.. 소년과 같이 삐쩍 말라버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가는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
였다.
"제법 심하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삐쩍 마른 몸과.. 그 몸에 새겨진 수십 개의 흉터를 바라보
며 중얼거렸다.
소년 때와 마찬가지로 실험체들의 대우가 어땠는지를 여실 없이 보여주는 증거였다.
딱히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소년 때도 그랬지만 잘 알
지 못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런데.. 설마 XX 개체도 있을 줄은 몰랐네."
그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실험 체중 한 명을 유심히 관찰했다.
소년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상태였고 그중에는 작
지만 확실하게 튀어나온 유방과 XY 개체에게만 있는 물건이 없는.. 즉 여성의 몸체를
하고 있었다.
"자신을 똑닮은 여자를 보니 기분이 묘하네! 히히히!"
특출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우락부락한 외모는 아닌.. 어찌 보면 중성적인 느낌을 주
는 외모의 그였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자
신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외모의 여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그는 여성 개체에게서 눈을 뗀 뒤 양옆에 있는 다른 실험체들도 살펴봤다.
분명 얼굴은 똑 닮아있지만 소년은 물론이고 두 명다 나이대가 달라 보였다.
가장 첫 번째 있는 실험체가 13~14살 정도로 보이는 외모였고 다른 실험체는 15~16살
정도의 외모였다.
거기에 외모뿐만이 아니라 신장의 차도 있었기에 확실히 연령별로 나눌 수 있는 기준이
됐다.
여성 개체의 경우는 그 두 사람의 사이 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 수준.. 그나마 자신과
가장 나이가 가까운 것은 가장 처음 합류했던 소년이 그나마 가까워 보였다.
그는 연령대별.. 거기에 성별조차 다른.. 자신과 똑 닮은 존재들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연령의 차이는 있지만.. 그야말로 형제나 자매.. 가족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닮은
모습의 존재들.. 그러나 묘하게도 그다지 불쾌감이 들지는 않았다.
분명 가장 처음 자신과 똑닮은 소년.. Z-016을 만났을 당시에는 굉장히 짜증 나고 불
쾌한 기분이 들었는데에 비해 이 4명의 소년소녀들에게서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는
없었다.
오히려 계속 보다 보니 알 수 없는 친밀감조차 느낄 정도였다.
"너희들 말은 할 수 있어?
계속 기다리며 바라보고만 있을 수도 없기에 자유를 만끽하는 실험체들을 향해 그가 물
었고 그의 질문에 세 사람 다 고개를 흔들어 부정했다.
아무래도 세 사람 다 소년과 같이 혀를 뽑힌 상태로 제대로 된 의사전달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단지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조금 귀찮기는 해도 입술을 읽으면 어느 정도 해결되는 일이
었기에 그는 자신이 독심술이 가능한 것을 밝힌 뒤 자신의 제안에 대한 부가 설명을 짤
막하게 전달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해 들은 세명은..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천진함도 순박함도 쾌활함도 존재하지 않았다.
있는 것은 그저 복수에 젖은 '광기' 뿐..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는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실험체들에게
자신이 보유한 무기들.. 회칼과 식칼 미트 해머 등을 각각 건네줬다.
"쓰는데 지장없지?"
그의 물음에 실험체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기술과 지식을 탑재한 상태였기에 실전 경험 외에 필요한
것들은 대략적으로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확인 작업에 만족한 듯 그는 품속에서 칼로리바 3개를 꺼내 각각 그들에게 건넸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던 그들도 그것이 음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눈을 빛내며 먹어
치웠다.
단지 소년만큼 괴팍스럽게 가 아닌.. 조급 게걸스럽기는 했지만 평범하게 쌓여진 포장지
를 벗겨 안에 있는 내용물을 입안에 털어 넣어 먹어치웠다.
만족스럽게 먹는 모습에 더 건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그였지만 예비용으로 가져온
식량들은 이미 전부 먹어치운 상태였기에 더 이상 줄만한 것이 없었기에 나중을 기약하
기로 했다.
"일단 옷인가.."
아무리 둘러봐도 이곳에 걸칠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 상태로도 연구시설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그
렇다고 이대로 방치하는 것도 이상했기에 그는 일단.. 적당하게 만나는 인간들의 옷을
빼앗자는 생각으로 유일하게 존재하는 방의 문으로 향해 패널을 조작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뜩 무엇인가 생각났는지 자신의 행동을 멈추고 오리 새끼처럼 줄 서서 뒤를
따라오는 실험체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음.. 옷 이전에 이름이 우선인가."
사실상 현재로서 굳이 이름을 부를 필요는 없었지만 혹시나 있을 난전에서 개체명을 불
러야 할 시기가 왔을 때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름을 지어줄 필요가 있다고 그는 판
단했다.
그는 의아해하는 실험체들을 바라본 채 고민에 빠졌다.
그냥 실험체명으로 불러야 되나도 싶었지만.. 솔직히 너무 길기도 했고 태양 교단의 인
간들과 관련된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왠지 모르게 불쾌했기에 그는 자신이 직접 이름
을 지어주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단지 작명이라는 것이 휙휙 하고 나오는 것은 아니었고.. 심지어 나와야 할 이름이 4개
나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유심히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좋아! 그럼 순서대로 파도! 솔도! 라도! 시도!"
그는 손가락으로 각각 가리키며 자신이 생각해낸 이름을 실험체들에게 지정했다.
여성 개체에게 지정한 이름이 파도
가장 어린 개체에게 지정한 이름은 솔도
그 다음 연령대의 개체에게 지정한 이름은 라도
그리고 연구소에서 가장 처음 만났던 개체에게는 시도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모티브는 말할 것도 없이 계이름이었다.
그가 짧은 인생사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작명을 했던 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자신과 그녀의 아이에게 이름을 붙였을 때를 떠올리며 지어준 것
이었다.
자신들에게 숫자와 알파벳 조합이 아닌 개체명이 지정된 그들은 별다른 반응 없이 그를 바라봤다.
마음에 들지 않다..라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든다는 반응도 아닌 상당
히 미묘한 반응.. 아니 오히려 이해를 못한 표정이었다.
"너희들의 이름이야! 알파벳이랑 숫자는 너무 길고.. 너희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 아니야?"
이해를 돋기 위해 그는 자신의 의사를 말로서 그들에게 전달했다.
그제야 실험체들은 그가 말해준 것이 자신들에게 준 새로운 이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
고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제대로 나오지 않는 소리로 자신들의 이름을 중얼
거렸다.
미묘했던 반응에서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자 그도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었다.
"좋아! 가자! 가서 다 때려 부수자! 따라와 파도! 솔도! 라도! 시도!"
그는 문에 달린 패널들을 조작한 뒤 문을 활짝 열어 둔 채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씩 부르며 복도로 달려나갔고 이름이 생긴 그들은 대답 대신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 나갔
다.
완벽한 열을 맞춘 채 복도를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잘 훈련된 소대를 연상케하는 모습
이었다.
뛰는 속도는 물론 내미는 발의 순서와 타이밍조차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분신이나 잔상이라는 말을 꺼내도 이상하지 않은 한 명이 움직이는 것 같
은 모습으로 달려갔다.
"여기다! 침입자다!!"
그리고 이내 그들을 발견한 병사들이 다른 병사들에게 위치를 알리기 위해 소리쳤고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존재들이 우르르 그들이 달리는 복도로 몰려들었다.
"파도! 솔도는 왼쪽! 라도! 시도!는 오른쪽! 죽여도 상관없으니까 마음껏 해버려!"
그는 품에서 중 식칼을 꺼냄과 동시에 각 각의 이름을 불러 명령을 전달했다.
그의 명령에 일렬로 줄 서있던 그들이 산개하며 명령받은 대로 그에게 받은 무기를 든
채 각각의 위치를 향해 내 달렸다.
"그럼 나는..."
산개한 그들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얼굴을 반수형의 얼굴로 변화시킨 채
흉측한 입을 열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가장 선두에 있는 남자가 사격한 총알을
몸으로 받아내며 접근하여 그대로 목을 물어뜯은 뒤 근처에 있는 남자들을 향해 망나니
처럼 마구잡이의 기세로 육중한 무기를 휘둘러 살육을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여유가 흘러넘친 그는 곁눈질로 다른 실험체들.. 왼쪽으로 간 파도 솔도
와 오른쪽으로 간 라도 시도를 관찰했다.
그들 역시 그에 못지않게 각각이 생동감 넘치는 얼굴로 살육을 하고 있었다.
힘이나 속도는 그에 비교해 모자라기는 했지만 확실하게 상대방의 급소에 자신들의 무기
를 꽂아 넣거나 목을 베거나 머리를 박살내거나 하는 등 속도는 그보다 느리다고 할
수 있었지만 확실하게 차근차근 적의 숫자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그가 가장 우려하고 있던 부분 역시.. 그들은 숙지하고 있는 것인지 최대한 총
구의 각도에서 안전한 쪽으로 이동하며 자신들의 안전도 최소한이었지만 지키고 있는 모
습을 보였다.
"정말로 편하네."
근처에 있는 남자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버리며 중얼거렸다.
단 한번.. 그것도 구체적인 명령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
한 활용하여 효율적이게 적을 구축해 나갔다.
그야말로 자신의 손과 발이 연장됐다고 느낄 정도로 편안함을 느끼며 그는 가장 처음에
물었던 남자가 좀비가 되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며 어깨채로 팔이 잘려 울부짖는 남자
를 그쪽으로 차 버렸다.
눈앞에 먹이가 굴러들어오자 좀비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것을 게걸스럽게 물어뜯으며 식
사를 시작했다.
그는 조용히 좀비에게서 눈을 뗀 채 다시 주변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총성과 비명들이 난무하던 복도에는 더 이상 비명도 총성도 들려오
지 않았다.
"음..? 너무 쉬운 거 아닌가? 히히히!"
그는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로 바뀐.. 태양 교단의 널브러진 시체들을 바라보며 웃을 수밖
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하하! 이거 완전 미도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