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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6 일행
단발의 총성과 함께 경철이 쏜 소총의 탄환은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그 탄환이 그녀를 꿰뚫는 일은 없었다.
딱히 그녀의 육체가 총알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경철이 쏜 소총의 탄환은 그녀가 아닌 남자..
그녀가 들어 올린 괴물(과고일)의 머리를 향해 발사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씨.....발..?"
이마 정중앙에 총알구멍이 뚫린 남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노려보며 욕을 내뱉었
고.. 그 직후 재차 연발의 총성이 울리는것과 함께 머리를 벌집으로 만들었고 남자는더 이상 소리를 흘릴 수가 없는 상태가 됐다.
남자를 완벽한 죽음을 확인한 경철은 소총의 총구를 지면에 내려놓은 뒤 그대로 지면에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경철은 무리한 움직임 탓에 벌어진 상처를 손으로 누른 채 어안이 벙벙한 채로 경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서로의 시선을 마주쳤다.
그제야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제정신을 차린 그녀는 이 상황의 설명을 원한다는 표시로
경철을 날카롭게 쏘아봤고.. 그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숙여지면을 바라보던 경철은 마음
을 다잡은 듯 조용히 고개를 들러 올리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하지만 경철은 그저 사과의 한마디만을 남긴 채 다시 입을 다문 채 면목없다는 듯 고개
를 숙였다.
"하아.. 도대체 뭐가 미안한 건데?
답답할 정도로 과묵한 경철의 태도가 짜증이 난 그녀는 자신의 얼룩덜룩한 흑백의 머리
카락을 난폭하게 매만지고는 이미 걸레가 돼버린 남자의 머리를 뒤로 내던지며 물었다.
"....미안하다. 사냥감을 빼앗아서.. 하지만.."
경철은 다물어지는 입을 억지로 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필요했다..! 힘이.. 무력한 자신에게서 벗어날 힘이..!"
그것은 그녀의 압도적인 무력을 본 그날부터 여태껏 계속 생각해왔던 일.. 경철이 요
근래 외부와 단절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은.. 오직 그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었
기 때문이었다.
모두를 지켜야 하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을 의지하던 그
와의 약속을 깨버리는 것도 모자라 이런 몸뚱어리인 채 살아남아 버린 자신의 무력함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던 경철이었지만.. 그럴 수만은 없었
다.
그에게는 이 목숨이 다하기 전해야 할 일이 아직 3가지가 남아 있었다.
첫 번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그에게 직접 사과하는 것..
괴물인 늑대인간에게서 인간 중 강하다고 해도 결국 인간인 경철이 당해낼 수 없는 것
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경철에게 있어서 그들을 지키지 못한 것
은 자신의 책임이었고 그로 인해 자신을 신뢰한 그와의 약속을 깨버리게 된 것도 자신
의 책임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어떻게 해서라도 죽기 직전 그를 만나 무릎을 꿇고서라도 사과하지 않
으면 안 됐다.
두 번째는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원흉인 태양 교단에게 복수하는 것
죽을 땐 죽더라도 이 원흉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태양 교단의 쓰레기들을 하나라도 더 지
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있는 다른 선량한 인간들을 위
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나라를 그에게 무사하게 내려가는 일이었다.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것과 다름없는 자신을 제외한다면.. 그 병원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인 나라를 그에게 꼭 데려다주지 않으면 안 됐다.
사실 경철은 나라가 이 여행에 나서는 것은 반대였지만.. 잘 생각해보고 나온 결론은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물론 고지식할 정도로 굳건한.. 두고 가도 뛰쳐 쫓아올 것 같은 나라의 태도 때문인 점
도 있었기는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혼자 남겨질 나라가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그를 만나서 많이 바뀌었지만.. 그전에 그녀는 그 외모에 걸맞게 몹시 약했
다.
육체적인 의미가 아닌 정신 전인 의미.. 즉 내면이 약했다.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부로 사람들을 대할 때 존댓말과 사무적인 태도로 감정
을 드러내지 않으며 어른스러운 모습을 연기하고 있었다.
물론.. 그 정도로 완벽한 연기가 가능하다면 내면이 그렇게 무르지도 않았을 것이었기
에 가면이 시도 때도 없이 벗겨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런 억지스러운 가면도 그를 만나고 벗어던진지 오래였다.
입에 정착해버린 존댓말만큼은 아직 버리지 못한 모양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
고 감정을 확실히 표현하는 그 모습은.. 예전의 억지스러운 그 모습에 비교해 훨씬 보
기 좋았고.. 나라가 인간으로서 성장한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 지옥에서 단지 혼자만이 살아남는데도 불구하고 나라는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았다.
만약 예전의 나라였다면 너무나 큰 충격에 정신이 나가거나 혹은..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상황이 와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현재의 나라는 많은 성장을 거쳤다.
단지.. 걱정되는 것은.. 만약 나라가 혼자 남게 됐을 때 제대로 된 정신으로 버틸 수
가 있는가였다.
지금이야 그녀도 있었고 자신도 있고 그를 찾는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다른 생각을 할 여
유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혼자가 되어버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도 만약 혼자만 살아남았다면 이미 다른 목적이고 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라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확신도 없었지만.. 경철에게 있어서
그 확실하지 않은 요소는 몹시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일이었기에.. 나라를 동반하는 것
에 대해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없어진다고 해도 그가 있다면 망가지지 않고 끝날 수 있을 거라는 확
신도 있었다.
그러나 이 여행은 험난하고 위험한 여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밖에 들끓는 좀비와 무법자(태양 교단)들은 물론 반쯤 파괴된 도시에는 어떤 위험이 도
사리고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의 능력이라면 웬만한 위협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었지만.. 미쳐버린 이
세계에는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이상한 일들이 언제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숨
겨져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 이변을 타파할 수 있는 힘을 원했다.
팔도 하나 없고 부상으로 넝마가 되어버린 약해빠진 자신으로서 그 3가지를 이루는 것
은 무리였다.
그러니까 목적을 위한 힘을 원했다.
그녀와 같은 절대적인 무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자신보다 좀 더 강한 힘을 원했
다.
그리고.. 경철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가장 빠른 길은 '괴물'을 죽여 '영웅' 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거의 혐오하다 싶이 했던 그 존재들의 힘을 얻는 것..
당연하게도 거부감은 들었고.. 고민도 했지만.. 경철은 어차피 자신의 목숨은 죽은 목
숨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신념이나 의사 따위는 개에게 줘버리자고 생각한 채
괴물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마음먹었다고 해서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처음의 문제는 '괴물' 의 존재였다.
좀비들처럼 괴물들이 길거리에 나돌아다닐 리는 없었고.. 당연하게도 어디에 있는지조
차 알 수 없었다.
거기에 알았다고 쳐도.. 이런 만신창이의 몸으로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를 죽일 수 있
을 리도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가 거의 다 잡은 괴물의 마무리를 넘겨받는 일..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점이 있었다.
영웅인 그녀에게도 괴물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힘을 높일 수 있는 존재였다.
거기서 더 강해질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지만.. 세상이 미쳐 돌아가
기 전 영웅의 서포트 임무를 맡았던 그는 그런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가 봐온.. 영웅이라는 존재들은 괴물들을 사냥하는 존재들이었다.
본의 아니게 영웅이 됐다고 해도.. 영웅이 되는 순간 기본적으로 괴물을 보면 죽여야
하는 습성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싫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힘을 높이기 위해서인지까지는.. 영웅이 아닌 경철
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영웅이 괴물에 집착하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그 괴물을 양보해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성격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인상이나 말투 행동 태도 등으로 보면 거만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독선적
이고 정이라고 없는 차가운 여자라고 보였지만.. 툴툴 되거나 독설을 내뱉으면서도 티
나지 않게 자신과 나라를 서포트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가 외형 그대로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그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런 그녀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까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물론 한번 물어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만약 그녀가 '거절' 한다면.. 지금의 몰려있
는 자신은 분명 그녀에게 '악' 감정을 품어버릴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경철은 그것이 싫었다.
그녀가 그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은 그의 이야기 속에 여러 번 등장하는 것으로 알 수
가 있었기에..
경철은 그의 소중한 인간.. 그에게 있어서 신과도 같은 존재에게 악감정을 품고 싶지
는 않았다.
어찌 보면 어설프기 짝이 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유일 수도 있었지만.. 경철에게
있어서는 진지한 이유였다.
그렇기에 경철은 차라리 반대의 입장이 되어 버리자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을 미워하게끔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언제 끝이 올지 모르는 여행을 지속해 나가야 하는 자신들에게 있어서 그다지 바람직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이 봐온 그녀라면.. 자신을 미워한다고 해도 그를 위
해 절대로 버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치사하고 비겁한 일이었기에 망설임은 있었지만.. 그것은 목적을 위해 접어 둔 채.. 그
는 머릿속으로 괴물이 나왔을 때를 대비한 계획을 짰다.
그리고 오늘.. 태양 교단의 아지트에 도착해 그녀가 청소를 위해 나가자 경철은.. 나라
에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자신의 무장을 몰래 든 채 그녀의 뒤를 밟았다.
괴물이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었기에 일단은 멀리서 확인만 해볼 심상이었다.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그녀를 뒤쫓은 탓인가.. 상처 사이로 피가 베어져 나오며 고통
을 호소했지만.. 경철은 이를 악물고 참은 채 그녀의 뒤를 밟았고.. 곧이어 그녀의 살
육이 시작되는 것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몰래 지켜봤다.
벌어진 상처를 억누르며 경철은 그녀가 정리한 건물의 안까지 들어가 몸을 숨긴 채 그녀
를 따라갔고.. 곧이어 커다란 굉음과 함께 석상의 남자가 튀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
었다.
움직이는 석상.. 누가 봐도 '괴물' 이라는것을 알 수 있는 요소가 눈에 들어오자.. 경
철은 일찍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쾌재를 부르거나 기뻐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할 일은 비겁하고 더러운 일이라는 자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경철은 기회가 오기를.. 괴물의 마무리를 뺏을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렸고.. 대
략 1시간이 넘어... 경철의 붕대가 빨갛게 물들을 때쯤에야 기회가 왔다.
사실 그녀가 남자를 산산조각 냈을 때는.. 실패라고 생각했었지만.. 목만 남은 남자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경철은 서둘러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건물의 그늘에서 튀어
나간 뒤..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의아하다는 얼굴을 한 그녀 쪽은 향해 소총을
조준했다.
솔직히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일말의 망설임이 남아있지만.. 경철은 이를 꽉 깨문 채
방아쇠를 당겨.. 괴물의 머리에 구멍을 냈고.. 그것으로 모자라고 판단해 여러 발의 총
알을.. 그녀에게 닿게 하지 않게 하며 전탄을 남자의 머리에 퍼부어.. 괴물의 마무리를 했다.
============================ 작품 후기 ============================
다들 예상하고 계셨군요 ㅠㅠ
으음 재미가 떨어지실듯 합니다만.. 그래도 재밌게 봐주세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