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9 / 0269 ----------------------------------------------
Ep 5 동행
오랜만에 신뢰할 수 있던 어른을 만난 것인지.. 아니면 따뜻한 온기를 뜨여서 인지..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것이 기분이 좋았던 것인지.. 한솔은 고개를 꾸벅꾸벅 흔들더니..
이내 두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잠들었다.
조용한 숨소리를 내며 잠든 한솔을 조용히 바닥에 눕힌 채 모포를 덮어준 할배는 조심스
럽게 아이에게서 떨어진 뒤 손짓만으로 그를 방의 구석으로 불렀다.
"저 아이가 이용당하는 게 아닌 것은 알았지만.. 너희들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거라
고 생각하냐?"
할배는 자신의 짧은 수염을 어루만지면 자드와 그에게 한솔의 처우에 대한 의견을 물었
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잖아? 이 애새끼 지금까지 버틴 건 대단하지만.. 한계인 거
같은데.]
2개월을 넘게 혼자 생존한 것은 굉장했지만.. 현재 한솔의 수척해진.. 뼈 밖에 남지 않
은 앙상한 몸을 본다면.. 한계에 가까운 것이 느껴졌다.
점점 식량은 줄어들고 있고 콘크리트 정글에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진작에 굶어 죽
은 동물의 사체는 부패가 진행돼 먹을 수 있을 리도 없었다.
하루 이틀 안에 죽지는 않겠지만.. 이대로 혼자 남겨진다면 몇 주 만에 식량을 구하지
못해 죽거나.. 공복에 참지 못하고 위험한 것을 먹어 죽거나.. 위협을 무릅쓰고 좀비들
이 들끓는 곳에 가 물려 죽거나..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일 것이었다.
그냥 모르고 지나쳤다면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이런 식으로 관련되어 버린
이상 이대로 버려두고 간다는 선택지는 자드에게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이 아이에게 오히려 더 좋지 않아. 나는.. 반대
다."
그들은 태양 교단을 멸망시키기 위해 떠돌아다니고 있는 '복수귀' 들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태양 교단 전원을 죽여버리는 것.. 당연히 그 복수극에는 위협이 존재하
고 있었다.
인간이 아닌.. 괴물인 그들에게 있어서도 방심은 곧 죽음과 연관될 수도 있는 위험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서바이벌 지식이 있고 또래보다 똑똑하다고는 해도 한솔은 그것뿐만
인.. 평범한 사람의 아이였다.
이 위험한 여행에 동참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의 능력이라면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며 싸우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었
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안전이 완전하게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고.. 태양 교단
도 그들의 공격에 맞추어 장비도 능력도 점점 강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이번에 싸움 지훈들 과의 싸움으로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바였다.
좀비들을 무장시켜 자신들은 별다른 피해도 입지 않은 채 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을 상대
로 대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것은 미리 정보를 알고 있었고.. 사전 준비를 단단하
게 해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즉발적인 전투가 일어난다면 사용할 수 없는 방법.. 그렇다면 그들은 물론이고 아
이에게도 위협이 닥칠 수밖에 없었다.
화기로 무장한 인간이라면 그나마 난 편이었다.
만약.. 자신들보다 더욱 강한 '괴물' 이라면 한솔을 어떻게 지킬 방도가 없었다.
어찌 보면 혼자서 생활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여행이 더 위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할배는 귀찮다거나 번거롭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한솔에게 동정심을 품었기에 냉
정하게 생각하자면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뭔 개소리야! 혼자 내버려 두면 얼마 안가 이 애새끼 뒤질게 뻔하다고!]
"우리랑 같이 가면 더 빠른 시일 내에 죽을 수도 있다만..? 거기에 만약 그 쓰레기들한
테 잡힌다고 생각해봐라.."
인간이면서도 인간 같지 않은.. 도덕성 따위는 이미 갈아 마셔버린 듯한 짐승과 다를
바 없는 태양 교단에게 잡힐 시.. 성적으로 희롱당하다 죽던가 잔혹하게 고문당하다가
죽던가.. 그 어떤 결과라고 해도 희망 따위 없는 미래뿐이었다.
차라리 혼자 살아가다가 죽는 것이 더 행복할 정도 일 것이었다.
[그,그건...]
자드는 태양 교단의 인간들이 어떠한 민간인들인지 지겹도록 봤고.. 화가 날 정도로 겪
어 봤기에
조금 상상하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날것 같은 일들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녀석들의 모습
이 눈에 선할 지경이었기에.. 차마 할배의 그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오줌싸개 애새끼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있겠냐!?
이성적으로 납득은 했지만.. 감정적으로 역시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데려가서 개죽음 당하게 할 수도 없잖냐?]
할배는 평온한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자고 있는 한솔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적인 자드와 이성적인 할배..
어찌 보면 평소와는 반대되는 입장의 두 사람은 서로의 의견을 내세워 서로를 설득시키
기 위해 많은 말들을 토해냈지만.. 결국 두 사람의 의견은 계속하여 평행선을 이루었
고.. 이대로 가다가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자신들
의 대립에 한 발자국 벗어난 채 있던 그를 바라봤다.
[야! 미도!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미도! 너는 어떤 방법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냐?"
그리고 동시에 미도에게 의견을 물었다.
즉.. 둘 중 하나의 의견을 그에게 선택시켜 다수결로 결판을 지을 생각.. 이었던 모양
이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할배와 자드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생각한 건 방법은 3가지 정도가 있는데.. 들어볼래?"
그는 자신의 손가락 3개를 들어 올린 채 이쪽을 무서울 기세로 노려보고 있는 자드와
할배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해봐!]
"말해봐."
그들의 수락이 떨어지자 그는 손가락을 하나 접으면 '첫번째' 라는 말로 운을 떼며 자
신의 의견을 말했다.
첫 번째 방법은..
이것은 할배가 내세웠던 아이를 두고 가야 한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완한 방법이
었다.
아이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 뒤 떠나면 되는 것..
식량과 식수는 물론이고 외적에서부터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세이프 하우스를
만들어 준다면 웬만한 일이 아니라면 죽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단지.. 세이프 하우스를 제작할 자재는 물론 식량이나 식수도 구하지 않으면 안 되기
에.. 시간이 제법 걸릴 수밖에 없었지만.. 몸의 안정면에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두 번째 방법은..
자드가 말한 대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일이었다..
단지 그냥 데리고 다니는 것 아니라.. 믿을만한 생존자 집단을 발견하면 그곳에 아이
를 맡긴다는 방법이었다.
아이가 가장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본다면 더 생존율이 높을 수도 있지만.. 고독만큼은 어떻
게 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한솔의 경우 아직 아이다..
자신의 마음을 어찌어찌 속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갈지는 알 수 없었
고.. 자신들을 만난 뒤 아이의 반응을 보면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어
렵지 않게 알 수가 있었다.
생존 면은 둘째치고.. 아이가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옆에 있는 것
이 한솔에게 있어서 좋을 것이지만.. 문제는 태양 교단의 횡포로 인해 제대로 된 생존
자 집단이 있을지가 문제였다.
있다고 쳐도..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존재들인지 아닌지는 구별할 수가 없었다.
아니.. 구별한다고 쳐도.. 어떤 식으로 돌변해 아이에게 해코지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
었기에.. 가장 좋은 방법임과 동시에 도박성이 짙은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두 번째와 비슷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른 방법이었다.
굶고 있는 아이에게 물고기를 낚아 주면 지금 당장은 배가 부르겠지만 그 후에는 똑같
이 배를 굶주릴 수밖에 없지만 먹이를 잡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그 이후 스스로가 낚
시를 하여 물고기를 얻을 수 있기에 아이는 굶주리지 않아도 된다..라는 이야기가 있듯
이
한솔에게 식량이나 안전한 곳.. 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기술
과 몸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기술들을 '학습' 시켜 '성장' 시키는 방법이었다.
물론 단기적으로 보면 그다지 효율도 없고.. 할배가 말한 대로 언제 아이에게 위협이
닥칠지도 알 수가 없었기에..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안전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단지.. 장기적으로.. 미래를 생각하고 본다면 한솔에게 절대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무턱대고 보호하며 끌고 다니는 것보다 생존에 필요한 기술과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방
법을 가르치며 기술적으로 심적으로 아이를 성장시킨다면.. 그나 할배 자드는 물론이고 다른 어른의 도움 없다고 해도 이 미친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뭘 선택하든 리스크가 있는 거냐.]
첫 번째 드 두 번째든 세 번째든.. 결국 완벽한 방법은 아니었다.
무엇인가를 희생하거나 무엇인가를 포기하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방법들..
애초에 그가 제시한 방법은 자드나 할배가 제시한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완한 것
에 지나지 않기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리스크는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즉.. 구체적인 안은 나쁘지 않지만.. 자드와 할배의 대립된 의견을 정리할 수 있는 완
벽한 물건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너는 어느 쪽이 낫다고 생각하냐?"
참지 못한 할배가 자신의 얼굴을 그의 코앞까지.. 그야말로 입술을 조금만 내민다면 입
술이 완벽하게 닿을 정도의 지근거리로.. 보통 사람이라면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쳐
도 이상하지 않고.. 옆에서 보는 사람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식겁할 정도의 거리였다.
물론.. 특정한 계층이라면 환호할지도 몰랐지만.. 일반적으로 그다지 기분이 좋을만한 투 샷은 아니었다.
"나는 뭐든 상관없지만.."
할배의 얼굴이 기분 나쁠 정도로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별다른 반응 없이 태연
한 얼굴을 한채 고개를 갸웃거린 뒤..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뒤에 자고 있는 한솔을
가리켰다.
"결국 선택하는 건 저 아이니까. 우리가 거기까지 상관할 필요는 없지 않아?"
자신들이 뭐라 하든.. 곤히 잠들어 있는 한솔이 사실상 자신들을 따를 이유도 없었
고.. 자신들 역시 사실상 강요할 권리 따위는 없었다.
"그것도 그렇군.. 우리가 왈가불가 말해도.. 정하는 건 저 아이겠지."
그의 말에 할배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두 눈을 지긋이 감은 채 고개를 살짝 들어 올
렸다.
할배를 똑바로 바라보는 그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린 할배
그런 두 사람의 거리는 거의 제로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리..
그야말로 두 사람이 키스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광경..
[씨바아아아아! 내누우우우우운!!]
그리고.. 그런 모습에 자드는 피눈물을 흘릴것 같은 기세로 자신의 양쪽 눈을 질끈 감
으채 울부짖으며 진지한 분위기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 작품 후기 ============================
연참입니다!
오늘의 소설 요약..
미도공 할배수..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