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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5 동행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피하며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간 그들
은.. 역시나 떡하니 배회하고 있는 좀비들과 마주쳤다.
그러나 1층과 비교해 그 수는 턱없을 정도로 적었기에.. 눈에 보이는 범위 전부를 정리
하는데 있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고.. 1층과 비교해 바닥이나 상품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에 신경을 썼다.
이왕이면 아이가 시체들을 신경 쓰지 않고 옷을 고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었다.
이미 1층에서 대량의 시체를 아이가 목격했으니 뒤늦은 배려라고는 생각되는데다가.. 애
초에 이런 세계이다 보니 아이도 이런 시체 자체에는 익숙한지 딱히 두려워하거나 무서
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어찌 됐든 깔끔하게 좀비들을 정리한 뒤..
그는 좀비에게 명령해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게 만들었다.
"마음껏 골라봐!"
그는 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하나뿐 이어 어두운 실내를 플래시로 비추며 말했다.
예전의 깔끔하고 정갈한 백화점의 모습과는 다른.. 매우 난잡한 상태였지만.. 그럼에
도 아직 멀쩡하게 진열된 옷이나 마네킹들이 즐비해 있었다.
지면에 내려오게 된 아이는 자신의 두발로 선채 눈앞에 들어오는 대량의 옷을 껌뻑거리
며 바라봤다.
넝마와 다를 바 없는.. 그렇게 되기 전에도 몇 사이즈나 큰 성인의 옷을 꾸역꾸역 입
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선택에 자유 따위가 있을 리 없었던 아이에게 있어서는.. 딱
봐도 자신의 사이즈에 맞을 것 같은 작은 옷들이 눈앞에 펼쳐지며 수많은 선택의 자유
가 주여 졌다.
하지만 오히려 그 수많은 선택권이 아이에게 선택할 수 없는 계기가 되었는지.. 아이
는 멀리서 옷을 바라보며.. 도움을 청하듯 그와 할배 자드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
봤다.
[그냥 너 새끼들이 알아서 골라 입혀라.]
아이의 의도를 가장 먼저 파악한 자드가 귀찮다는 듯 두 사람에게 말했다.
"패션이라면 나의 특기자! 좋아! 꼬마 아가씨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이 아저씨가 골라
주마!"
"역시 옷은.. 기능성이 최고지! 히히히!"
자드의 말에 두 사람은 의욕에 불타는 모습을 보여주며 각자가.. 이미 봐두었던 옷들
이 있는 곳으로 후다닥 달려 나갔다.
그렇게.. 아이를 길티에게 맡겨둔 채 얼마 동안 각각의 매장을 들쑤시듯 옷을 고르던
할배와 그는 자신들이 고른 옷을 든 채 길티의 팔에 매달려 놀고 있는 아이에 가 달려
왔다.
"이 옷 어떠냐! 귀엽지!?
할배는 아이에게 어필하듯 손에 든 옷을 내밀며 말했다.
손에 든 옷은.. 딱 봐도 화려해 보이는 아동용의 레이스나 프릴이 달려있는 귀여운 느
낌의 분홍빛 드레스였다.
이 나이 때의 아이라면 공주님을 꿈꿀 만도 한 나이였기에.. 자신의 취향과 아이의 연
령대에 맞춰 선택한 물건.. 이었지만..
아이의 반응은 미묘했다.
대놓고 싫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표정 자체가 몹시 미묘한 느낌이었다.
[머리에 뭐가 들은 거냐.. 좀비 새끼들이 여기저기 나자빠져 있는데 이렇게 움직이기
힘든 옷을 입힌다는 건.. 애새끼를 죽일 작정인 거냐?]
두 사람이 옷을 고를 때까지 별반 관심이 없이 하품이나 하며 무관심을 표방한 자드였지만.. 할배가 고른 드레스가 터무니없었기에 제법 매서운 독설을 여실 없이 내뱉었다.
"네,네놈.. 독을.. 탔구나 아아아아! 크윽..! 지옥에서 네놈에게 복수할날을 기다리겠다! 크어어어억!"
매서운 독설에 충격을 받은 할배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목을 죄는듯한 행위를 하며 진짜
로 독을 먹은 것 마냥 얼굴을 새파랗게 만든 채 몸을 진동시키더니.. 이내 눈을 하얗
게 까뒤집고 그대로 바닥에 거품을 문채 쓰러졌다.
[쓸 때 없이 연기가 리얼해서 기분나빠아아아아아! 그런데 마지막말은 조금 멋지긴 하네!]
정말로 독을 먹고 죽은 사람 같은 할배를.. 자드는 바라보며 경악에 찬 말을 내뱉었지
만 그 표정은 조금 즐거워 보였다.
독(?)으로 할배를 제압(?) 한 뒤 곧이어.. 그가 자신이 가져온 옷을 내밀었다.
그가 가지고 온 것은 할배와는 다르게 면 재킷과 면바지였다.
단지.. 재킷도 그렇고 바지도 그렇고.. 유독 주머니의 수가 많았다.
재킷의 경우 가슴의 주머니 2개 옷 안쪽의 주머니 2개 옆의 주머니 4개.. 거기에 목
깃 쪽 후드를 넣어놓을 수 있는 주 머니까 포함하면 총 9개였고.. 바지 같은 경우는 카
고 바지 같은 느낌으로 허벅지 쪽에 각각 2개씩 총 4개 골반 쪽에 위치한 주머니 2개
엉덩이 쪽 주머니 4개 총 12개로 상의 하의가 합쳐지면 주머니의 수만 총 21개가 되
는 세트였다.
"옷은 역시 기능성이 최고야! 주머니가 많으면 무기나 도구들을 잔뜩 넣을 수 있으니
까 좋아!"
그는 자신이 가져온 옷들의 유용성을 어필하며 아이에게 옷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당연하다고 하다면 당연하다고 할까.. 아이의 반응은 미묘했다.
애초에 주머니가 너무 달린 탓에.. 차라리 상의나 하의 하나만 채용했다면 아이도 마음
에 들어 했을지 몰랐지만.. 2개가 한꺼번에 내밀어진 탓에.. 복잡해 보이는 것을 그다
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의 취향과는 매우 떨어진 옷이었다.
[븅신아! 어느 주머니에 뭘 넣었는지 기억도 못하겠다!]
이번에도 역시나.. 너무 과한 옷에 대해 자드의 강렬한 독설이 작렬했다.
"보통 다 기억하잖아?"
하지만 단번에 침몰됐던 할배와 다르게 그는 별반 충격을 받지 않은 듯 당연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 한 말을 내뱉었다.
[하겠냐 븅신아 저기 나뒹굴고 있는 할배는 어제 먹은 저녁밥이 뭐였는지조차 제대로 기
억 못하는 판국에!]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딨어!"
그의 말을 부정함과 동시에 할배의 기억력에 대한 예시를 들어 말한 자드였지만.. 그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야! 할배! 어제저녁에 뭐 먹었는지 기억하냐?]
아직까지 바닥에서 독살당한 시체를 연기하고 있는 할배에게 자드가 묻자..
"옥수수통조림?"
희번덕 하던 눈을 평범하게 되돌리며 답했다.
"어..? 진짜로 있어..!?"
그는 컬처 쇼크를 받은 외국인과 같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한채 힘없이 지면에 무릎
을 꿇었다.
참고로.. 어제의 저녁 메뉴는 옥수수는커녕 비슷한 음식조차 아닌데다 곡식류조차 아닌.. 꽁치 통조림이었다.
[쓸모없는 새끼들!]
좌절한 상태의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자드는 두 사람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거친 욕설
을 내뱉고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그저 모포를 뒤집어쓴 채 눈을 껌뻑
이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어쩔 수 없구먼! 어이 할배! 미도! 바닥에서 그만 뒹굴고 쳐 일어나!]
자드는 먼지 구덩이인데도 불구하고 바닥을 데굴데굴 뒹구는 한심한 모습의 두 사람을
일으켜 세운 뒤 자신 혼자서 움직이기는커녕 팔 조차 존재하지 않는 자드였기에 그 이후
의 행동은 모두 할배와 그를 자신의 수족 부리듯 지시해 움직이게 했다.
그렇게 자드가 지시한 옷을 가져온 뒤 그 옷을 아이에게까지 입힐 수 있었고 자드의 명
령에 따라 산발이 된 아이의 머리도 가지런히 모아 뒤로 묶게 했다.
[이게 바로 기능과 멋을 살린 스타일링이라고 하는 거다 촌놈들아!]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며 자드는 말했다.
"평범하게 귀엽군."
"평범하게 괜찮네."
할배와 그는 각각의 감상을 짤막하게 말했다.
그들이 가져온 의상과 비교해서 개성 자체는 조금 떨어졌지만..
면 티셔츠와 그 위에 걸친 야상 그리고 레깅스에 운동화
기능성과 멋도 같이 챙기는 나름 실속적인 세트였고..
산발이던 아이의 머리를 가지런하게 묶은 것까지 포함해 그 나이대의 아이 다운 활발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확실히! 괜찮기는 하지만.. 아이가 마음에 들 때까지 승부는 끝난 게 아니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할배는 옹졸한 태도를 보이며 매장에 설치된 전신거
울을 아이의 앞까지 옮겨왔다.
그리고.. 전신거울로 인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아이는..
"귀여워!"
자리에서 깡충깡충 뛰며 자신의 모습에 환호하여 거울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활짝
핀 미소를 띤 채 자신의 신체 부위 이곳저곳을 관찰했다.
[애새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만?]
자드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히죽히죽 웃으며 전신거울을 가져온 할배를 업신여기
는 태도로 바라봤다.
"젠자아아앙! 파충류에게 지다니이이이이!"
할배는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의 왼손으로 지면을 내리치며 분하다는 태도를 드러냈다.
"근데..의외로 패션 쪽에 대해 자세하네? 옷 같은 건 대충 입고 다닐 거 같은데."
할배와는 다르게 별로 분한듯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그는 자드의 의외의 면에 주목했다.
애초에 악어 머리..라고 할까 이렇게 되기 전에 인간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인간형이라고는 해도 저 머리를 달고 있는 존재가 패션에 대해 자
세하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관심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 우리 종족(리자드맨)이 어디 오지에서 천 쪼가리 하나 걸치고 사냥이나 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씹어 죽인다!]
"아닌데..?"
사실 자드가 말한 그대로의 상상을 했던 그였지만 은근슬쩍 얼버부려렸다.
[지금이야 이런 꼴을 하고 있지만.. 변신하기 전까지는 인간 모습이니까 평범하게 옷 입고 다닌다고! ]
"늑대인간이랑 같은 거야?
자드의 말에 자신이 죽인 늑대인간이 죽었을 당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던 것이 떠올
랐다.
[거의 비슷해.. 뭐 천박한 똥개 새끼들보다 우리 쪽이 훨씬 쌔지만! 카카카카!]
자신의 종족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것인지 자드는 머리를 들어 올린 채 거창하게 웃었
다.
그러던 중..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보다가 신발 끈이 풀린 것
인지 아이는 거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신발 끈을 꽉 맨 뒤 종종걸음으로 자드에게 다가
왔다.
"악어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설프지만.. 아이치고는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여 자드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따, 딱히.. 너 새끼를 위해 골라준 거 아니거든! 거기에 난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도
아니야!]
자드는 그 직설적인 감사의 인사가 부끄러웠던 것인지 아이의 시선을 피한 채 목소리를
높여 투덜거렸다.
"그러고보니 자드는 몇 살이야?
할배는 외관상으로 보면 대충 나이를 짐작할 수가 있었지만.. 파충류의 형태를 한 자드
의 얼굴로는 나이를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나? 15살]
자드는 툭 하고 내던지듯 자신의 나이를 밝혔다.
자드의 밝혀진 나이에.. 그는 물론이고 할배는 여러 가지 의미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할배의 뭔가있어보이는 말이나 중2병스러운 말에 자드가 반응하는 이유는.. 중2니까..!
중2니까 병은 아니고 그냥 중2!!
평범하게.. 츤데레 중2 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