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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얼론 (Zombie Alone)-63화 (63/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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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3 만남

"내가 졌어..?"

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신의 목에 들이밀어진 목재 나이프를 바라봤다.

분명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마음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그가 태어나고.. 싸움에서 패배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단지 그 패배는 몹시 치명적인 패배였다.

왜냐하면 패배의 대가로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던 존재..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미미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 싸움에서의 '패배' 란 소중한 것을 빼앗겨버리는.. 있어서는

안되고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비록 이것이 목숨을 건 사투도 아니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닌.. 단순한 내기 대련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지금 자신에게 닥친 이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어떤 존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뭐야? 분하냐?"

그의 목에서 나이프를 거두며 경철이 말했다.

"내가..?"

"그래.. 지금 딱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

경철은 코 웃음 치며 그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에 따라 그도 자신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져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냐?"

"응"

"누구한테도 지고 싶지 않냐?"

"응"

짧은 질답이 끝난 뒤..

경철은 얼굴을 찌푸린 채 주먹을 꽉 쥔 그를 바라봤다.

처음과 비교해 점점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고 있는 그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것이 비록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해도.. 슬픔 이외의 감정을 표출

하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하물며 분하다는 기분을 느낀다는 것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발판의 하나이기도 했기에 경

철은 몹시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아저씨! 알려줘! 내 공격을 어떻게 읽었는지!"

그는 경철의 가죽 재킷 끝자락을 붙잡으며 외쳤다.

"음.. 지금은 시간이 시간이니 나중에 알려주마!"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경철은 슬슬 조회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

했다.

"정말이지? 응? 정말이지?"

"새끼.. 손가락 걸고 약속이라도 해야 믿겠냐?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알려줄

테니까.. 일단 이거 놓고.. 선생 데리고 조회 준비나 해. 알았냐?"

경철은 옷자락을 잡고 있는 그의 손과 병원 건물 입구에 주저앉아 이쪽을 이상하게 바라

보는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응!"

그는 겨우 경철의 옷자락을 놓은 뒤 그대로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고 그녀에게

무엇인가를 말한 뒤 2명이 나란히 걸으며 병원의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애새끼들 돌보는 것도 일이군.."

주머니에서 꽁초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경철은 그와 그녀가 사라진 병원 입구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투덜거리며 말하는 것치고는 그의 상처투성이 얼굴은 웃고 있었다.

새벽의 단련이 끝나고 조금 시간이 지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조회가 시작됐고.. 인원 체크와 환자의 유무를 체크한 뒤 공

지사항을 알렸다.

"3일 뒤 탐색에 나갈 예정이니! 필요한 물품이 있는 사람은 보고서를 제출해서 올리도

록! 이상 이다!"

그렇게 아침조회는 끝이 났고 곧이어 식사의 배급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각자 친하거나 같은 그룹의 사람들끼리 웃고 떠들며 아침식사를 끝낸 뒤

각자가 맡은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그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맡은 역할은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조해주거나 도와주거나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

는.. 일종의 '도우미' 나 혹은 '고문' 같은 느낌의 역할이었다.

몸을 쓰는 일이든 기술이 필요한 일이든 머리를 쓰는 일이든 그 어떤 일이라도 평균 이

상으로 해내고 여러 가지 지식을 머릿속에 보관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서 여러 의미로

딱 맞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였다.

"약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싶으니 도와주세요."

그것이 그녀가 그에게 요청한 일이었다.

약의 종류가 제법 많아 그녀가 혼자서 하기에는 양이 많기도 하고.. 약에 대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 수가 없었기에 보통은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고 분류를 시킬 수

도 없는 일이었지만.. 의학 분야에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는 보통으로 약에 대

해 알고 있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두 명은 종류별의 약들을 박스에서 꺼내 확인하고 그것을 분류된 박스에 넣는다는 몹시

수수한 작업을 근 3시간 동안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계속했다.

그도 그녀도 정말 대단한 집중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대단한 인내심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그 둘 다라고 할지.. 어찌 됐든 보통 사람이라면 1시간 만에 질려서 작업 효

율이 대폭 떨어졌을 테지만.. 두 사람은 전혀 그런 일 없이 묵묵히 약의 분류를 계속해

나갔다.

그러던 중..

그들이 있는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고 그때가 돼서야 그들은 하던 작업을 멈춘 채 노크

가 된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들어오세요."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며 그가 바리케이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해주었던 남

자가 들어왔다.

"선생! 미도 녀석 좀 빌려 갈 수 있을까요?

"무슨일이라도 있나요?"

그녀는 손에든 약병을 상자 안에 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아니.. 이번에 새로운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는데.. 또 말썽이라서 말이야.."

남자는 면목 없다는 듯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 정도 손재주가 있어 그쪽 담당이 됐기는 하지만.. 전문적인 목수가 아니었던지라

이런 작업에는 언제나 실패가 따라다녔다.

단지 최근 들어 그의 등장으로 그런 실패를 수정할 수가 있었기에.. 도움 요청을 가장

많이 하고 있었다.

"아저씨! 급한 일인 거야?

정리한 상자를 선반 위에 올려 두며 그가 물었다.

"급한일이라면.. 급한 일이고 아니라고 한다면 아닌 일 이기는 한데..

"그럼! 이쪽을 정리하고 30분 뒤에 갈게!"

그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박스들을 가리켰다.

"나머지는 저 혼자서 해도 상관없어요?"

"한번 맡은 일은 끝까지 해야 돼! 그렇지 아저씨?"

"오? 어.. 어! 그렇지! 한번 맡은 일은 끝까지 해야지!"

남자의 오버스러운 반응에 웃으며 그는 아직 바닥에 있는 박스들을 열기 위해 쭈그리고

앉았다.

"그럼 있다가봐. 아저씨!"

"그래! 선생을 확실히 도우고 와라!"

남자는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내뱉고는 방에서 나갔다.

"저는 정말 혼자서 해도 괜찮은데.."

"안돼! 부탁받은 일은 급한 게 아니면 끝까지 할 거야! 히히히!"

예전의 그였더라면 그 말대로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둔 채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갔을

것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그런 행동은 좋지 않다는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이 있었다.

남들의 말에 별다른 생각도 없이 움직이던 그때와 비교하면 그는 확실히 성장하고 말해

도 좋을 것이었다.

"그럼 어서 빨리 정리하고 가봐야겠네요."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고는 자신의 앞에 있는 약병을 분류하는 작업을 재개했다.

그렇게 그와 그녀는 남아있던 약들의 정리를 끝낼 수가 있었다.

"나머지는 어차피 혼자 차트를 정리해야 하는 거니까. 미도는 그쪽으로 가주세요."

"응! 있다 봐!

그는 활짝 웃으며 크게 손을 한번 흔든 뒤 다음 목적지인 병원의 부지 내로 나와 작업

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 미도잖아? 또 반장님이 불러서 온 거냐?

나무판자에 못질을 하던 한 명의 남자가 그의 존재를 눈치채고 물었다.

그 소리에 작업하던 다른 남자들도 작업을 멈춘 채 그에게 몰려들었다.

"미도! 오늘 저녁에 바둑 한 판 어떠냐?"

"아니! 오늘은 나랑 포커로 승부다!"

"진짜 하루에 한 번은 불려오는 거 아니냐?"

남자들이 그를 둘러싼 채 각자의 이야기를 내뱉으며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병원 내에 존재하는 여러 개의 조 중에서 유독 그들 작업조는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복막염으로 죽을뻔했던 그 환자가 이 작업조의 소속이었던 것이 제법 큰 이유기는 하지

만.. 대체적으로 그의 밝은 성격과 여가의 놀이 상대로서 손색이 없다는 이유로 자주

얽힌 탓이기도 했다.

"야 이놈들아! 놀지 말고 가서 일해라!!"

저 멀리서 남자.. 반장이 쿵쾅 쿵쾅 소리를 내며 달려왔고 그에게 몰려있던 남자들이

몸을 움찔하고 반응하고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작업하던 장소로 돌아갔

다.

달려온 반장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남자들을 도끼눈을 뜬 채 한 번씩 바라본 뒤 작

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미도! 이쪽 놈들은 진짜.. 나잇값도 못하고.. 자기들이 무슨 20대인 줄 아

는 거냐! 너희들도 이제 곧 40줄에 들어가니까. 좀 어른스럽게 굴어!"

"반장! 저는 아직 서른다섯이니까 아직 많이 남았는데요!"

반장의 말에 한 명의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미도보다 나이 많은 놈은  나가있어!"

반장은 손을 들어 올린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윽박질렀다.

"와아.. 이길수가 없네!"

두 사람의 교환에 그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낄낄 되며 웃었다.

"시끄럽고 빨리 일해 자식들아!"

웃는 남자들을 향해 반장은 일갈 한 뒤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의 등을 살짝 눌

렀다.

"저 귀찮은 날파리 놈들은 신경 쓰지 말고 가자!"

반장의 재촉에 그는 크게 웃으며 그가 이끄는 곳으로 향했다.

반장과 함께 도착한 곳은 전에 만들었던 바리케이드보다 2배 정도 크고 말뚝도 더 많

이 달린 커다란 바리케이드였다.

단지 이것도 예전에 만들었던 것처럼 문제가 있는 것인지 수평을 유지하지 못한 채 삐뚤

어져 있었다.

그는 종종걸음으로 바리케이드를 돌며 구조적 문제가 없는지를 꼼꼼히 살펴가며 바리케

이드의 이곳저곳을 돌아봤고.. 이내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기둥부분의 길이가 달라! 그래서 중심 부분이 삐뚤어진 거야!

"지,진짜로..? 아아.. 젠장 다시 다 분해해서 새로 만들어야 하는 거냐... 3일이나 걸

려서 만든 거였는데..

그의 말에 반장은 충격을 받은 듯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얼굴을 구겼다.

만드는데 며칠이 걸린 시간을 허무하게 날려버린 것이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그 모습에.. '내가 할까?' 라고 말을 내뱉으려고 했지만 이내 그 말

을 목구멍 너머로 삼켜버렸다.

자신이 한다면 분명 반장이 했던 시간보다 더 빠르고 더 완성도 높은 물건을 내놓을

수 있었겠지만... 그것은 눈앞에 있는 반장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리는 일

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굳이 자신이 직접 돕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이번 실패를 기회 삼아 다음번에는 더 완벽하게 만들어주

마..!"

머리를 쥐어뜯던 반장은 이내 마음의 정리를 한 것인지 굳건한 얼굴로 자신의 실패작을

바라보며 외치고는 바닥에 둔 연장을 집어 들었다.

"고맙다! 미도! 혹시 또 부르게 될지도 모르니까. 잘 부탁해!

"응! 힘내! "

반장의 그 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이 반장의 성장을 뺴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반

장의 성장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응원의 말을 건넸다.

"그래!"

그 말에 힘을 얻은 것처럼 반장은 자신의 연장을 든 채 실패작을 위에서부터 하나씩 분

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나중에봐!"

그는 반장에게 작별의 인사를 남긴 뒤 등을 돌려 반장의 방해를 하지 않기 위해 그 자

리에서 벗어났다.

============================ 작품 후기 ============================

얼마동안은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니.. 진짜로 훈훈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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