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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3 만남
순식간에 서로의 목에 칼을 들이밀어진 상황이 되자
그 장본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태로 그들을 바라봤다.
조금이라도 칼날이 들어가는 순간 서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이
었음에도.. 장본인들은 미소를 만들어 웃고 있었다.
온몸을 칼날로 찌르는듯한 긴장감과 묵직한 침묵이 방안을 감싸며 누구 하나 움직이지
도 누구 하나 소리를 내지 않은 채 그 둘을 지켜보는... 듯했으나
"두 사람 다 그만하세요."
무거운 침묵을 깨는 사무적인 소리로 소녀는 말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묵묵부답으로 서로의 목을 노리고 있는 칼날을 치울 생각이 없어 보
였지만..
결국 먼저 칼을 치운 것은 거구의 남자였다,
"흥이 식었군.."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토해내듯 말한 거구의 남자는 나이프를 허리의 칼집에 넣고는 방
금 전 자신이 걸어왔던 곳으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히히히!"
그도 마찬가지로 과도를 옷소매에 숨긴 채 누가 앉으란 말도 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남
은 의자에 방정맞게 뛰어들어 앉은 뒤 이 상황을 정리한 소녀에게 시선을 보냈다.
소녀는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인형과 같은 큰 눈으로 그를 바라본 뒤 그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방금전은 대장이 실례했습니다. 저는 ....나라 라고 합니다."
그녀는 일부로 얼버무리듯 성 부분을 스킵 시키며 자신의 이름만을 제대로 발음하여 말
했다.
"응?응? "
그는 권 해진 그녀의 손을 잡아 악수를 나누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미도야! 근데 성이 뭐라고 했어?"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그가 물었고.. 그 순간 그녀의 움직이 아주 잠시 멈췄다.
그러나 이내 별일 없었다는 듯 별다른 감정을 내보이지 않은 채 그의 손을 풀었다.
"그리고.. 저 사람이 저희 생존자 무리의 리더..."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명백하게 그의 질문을 회피하듯 그녀는 주제를 전환시키듯 거구의
남자를 가리켰다.
"오경철이다."
남자는 통나무 같은 팔로 팔짱을 낀 채 퉁명스럽게 대답한 그와 정면으로 마주 보는
위치로 의자를 돌려 그를 노려봤다.
"그래서.. 너 같은 들짐승 새끼가 여기에 온 목적이 뭐지?"
경철은 이를 드러낸 채 호전적인 웃음을 띠며 그를 도발하는듯한 말을 내뱉었다.
"대장님 손님에게 그런 무례한 말은 삼가주세요.
"피냄새를 풀풀 풍기는 들짐승 새끼가 손님이라고? 하!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군."
경철의 말에 그녀는 그를 바라봤다.
화려한 금발을 뺀다면 별다른 특색 없는 얼굴과 평균 신장
방금 전 경철과 대립한 것을 보아서는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았지만..
언동과 행동이 조금 특이한 것을 빼면.. 경철이 말하는 피비린내 나는 들짐승 같아 보
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눈에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처 입은 나약한 동물처럼 보였다.
"이 자가 태양 교단을 들쑤시고 다닌 '요리사' 라는 모양입니다."
그의 뒤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몇 시간 전 확인한 사항을 경철과 그
녀에게 전달했다.
남자의 말을 들은 경철과 그녀가 그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호오? 그 구더기 새끼들을? 그 정도의 공훈이면 협상 테이블에 앉아줘도 좋겠지."
현재 그들 생존자 집단에게 가장 큰 문제는 좀비는 아니었다.
오히려 같은 인간인 태양 교단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물론 좀비도 위협적인 존재기는 했지만.. 좀비들의 패턴은 단순하다.
기습적인 공격만 아니라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는 있었다.
하지만 같은 인간인 태양 교단은 달랐다.
정면 승부라고 한다면 자신들이 높은 확률로 이길수 있겠지만.. 그들은 교활하고 집요하
고 음습하다.
그렇기에 상대하기 까다롭고 골치가 아팠다.
그런데 그가 그 귀찮은 날파리 같은 존재들의 둥지를 3개나 박살냈다는 것은 경철에게
있어 환호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좋아! 교섭이다 들짐승! 가지고 있는 식량의 양을 말해라!"
"170인분! 히히히"
"원하는건 뭐지?"
"일단.. 이곳에서 1주일간의 체류! 50인분 정도로 어때?
"그렇다면 100인분이다."
그가 제시한 값의 2배나 되는 양을 요구했다.
애초에 자급자족이 힘든 지금의 세계에서는.. 100인분이라고는 말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2~3배의 인수가 굶주림을 채울 수 있는 양.. 이 구역에 있는 사람들 전원이 끼니를 때우고도 남는 양이라는 것이었다.
"그럼 75인분으로 하면 되겠네! 히히히!"
그가 웃으며 말하자 경철의 눈썹이 아주 잠깐이지만 꿈틀하고 움직였다.
"나는 100인분이라고 말했다."
경철은 탁! 하고 자신의 두꺼운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교섭해서 75인분으로 맞출 생각이었잖아?"
"기본적인 머리는 돌아가는 짐승새끼였군."
경철은 자신의 생각을 읽혔음에도 불구하고 재밌다는 듯 웃고는 의자에서 묵직한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가 솥 뚜껑 같은 큰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경철의 큰 손과 얼굴을 바라본 뒤 씩 하고 웃으며 그 손을 잡아 짧은 악수를 나누
고 경철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1주일의 체류는 허락한다고는 했지만.. 너 새끼가 이상한 짓을 못하게 감시를 붙일 텐
데. 상관없겠지?"
"상관없어! 히히히!"
어차피 그는 그들이 자신을 적대하지 않는 이상 눈을 피해 행동할만한.. 꺼림칙한 일
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좋아! 선생! 당신이 이 짐승의 목줄을 맡아라."
경철은 반대편에 앉아있는 그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지목을 받은 그녀는 무표정하
게 만든 얼굴을 당혹감으로 물들인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아... 흠..!
자신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자각한 그녀는 헛기침을 한 뒤 다시 아까와 같은 무
표정을 만들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어째서 저죠?"
"당신이 제일 한가하잖아?"
경철의 말에 그녀의 뺨이 씰룩 거리며 작은 손이 작게 떨렸다.
얼굴에는 표정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명백하게 욱했다는 것이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저도 그다지 한가한 입장은 아닙니다만..?"
"환자가 없으면 의사가 한가한 건 당연하잖아."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경철의 말은 너무나도 정론이었기 때문이었다.
10대 중반의 아이돌 같은 외모를 하고 있지만 그녀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의사 자격증
을 가지고 있는 엄연한 의사였다.
멸망해가는 이 세계에서는 그야말로 황금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존재지만..
단지.. 의사라는 직업은 아픈 사람이나 다친 사람.. 즉 환자가 있어야 그 가치가 인정
되는 아이러니한 직업이었다.
그리고 현재 이 병원의 구역에 있는 사람 중 치료나 진료를 필요한 사람은 현재로서는
없었다.
경철이 말한 대로 현재까지는.. 자신이 할 일은 그다지 없었다.
"그럼 저 짐승은 당신이 맡는 걸로! 이상!"
그 말과 함께 경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방문 앞까지 걸어간 뒤 문을 열기 직전
고개만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짐승새끼!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쉬어라!"
경철은 호전적인 미소를 그에게 보내고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방에서 나갔다.
뒤늦게 다른 남자들도 허겁지겁 방문 앞으로 모여 나가기 직전 그녀에게 꾸벅하고 작게
인사를 한 뒤 병원 복도를 성큼성큼 걷는 경철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진료실에 남게 된 것은 그와 그녀 단둘뿐이었다.
"저 사람은 정말이지.."
경철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그녀는 이마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은 채 중얼거리며 작은 한
숨을 내신 뒤 반대편에 앉아있는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해가 질것 같기는 하지만..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나요?"
"병원 구경! 히히히!"
그는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아이처럼 외쳤다.
"구경할만한 거리는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정 구경하고 싶다면 내일 날이 밝을 때는
어떤가요? 전기가 들어온다고는 해도 불을 켤 수 있는 건 복도 정도밖에 없으니까. 구
경하기에는 불편할 거라고 생각되네요"
"전기 들어와?"
"자체 발전기가 있으니까요."
병원같이 1초의 정전이 수술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에 자체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발전기가 필수로 설치되어야 했고 이 병원 역시 자체 발전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저기 선생님!"
"선생님이라고는 부르지 말아주세요.. 님 소리 들을 정도로 훌륭한 인간은 아니니까
요."
"그럼.. 나라!?"
"...생긴건 이렇게 생겨먹었어도.. 아마 당신보다 연상일 겁니다.
"아는데? 히히히!"
그녀의 외견이 비록 10대 중반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의사가 되기까지의 걸
리는 시간을 계산한다면 그녀가 성인이라는 것과. 외견 이상으로 나이를 먹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알고도 그렇게 부르는 겁니까...
그녀는 기가 찬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혹시 그가 자신의 외견을 보고 자신을 무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
만.. 경철이나 다른 남자들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들을 생각하면.. 그런 것은 아닐 거라
고 생각했다.
그냥 단순하게.. 좋은 말로 하면 차별이 없고.. 나쁜 말로 하면 예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으로 부를 거라면 뒤에 뭐라도 붙여주세요."
연하에게 경칭 생략으로 불리는 것은 왠지 등골이 간지러운 느낌이었기에 그녀는 부탁했
다.
"그럼 나라님!"
"엄청 훌륭한 사람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감정을 담지 않고 사무적인 어조로 말하던 그녀는 작은 손으로 테이블 위를 탕! 하고
내리치며 외쳤다.
"아... 흠..! 님 말고.. 적어도 씨 정도로 해주세요."
자신이 흥분해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을 자각한 그녀는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한 뒤 아무
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히히히! 성이 뭔지 알려주면 생각해볼게!"
그의 조건에 차분하게 말하던 그녀의 얼굴이 뚝 하고 굳어지고는 스리슬쩍 그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러나 그는 집요하게 그녀의 성을 알아내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뒤 그녀의 시야에 들
어가 씩 하고 웃었다.
한동안 고개를 움직이며 그를 시야에 넣지 않으려는 그녀와 그녀의 시야에 계속해서 들
어가려는 그와의 이상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그리고.. 이 이상한 공방전을 더 이상 이끌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양손을 들어
올렸다.
"제가 졌습니다.."
패배 선언을 한 그녀는 그다지 탐탁지 못하다는 표정을 한채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에
게 시선을 보냈다.
"제 성은.. 신 입니다.."
그다지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의 기묘한 언동과 행동으로 보건대.. 알려줄 때까지
자신을 귀찮게 몰아세울 것 같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그에게
자신의 성을 전달했다.
"신? 신나라? 신나! 아이! 신나라! 신나라! 신나라! 히히히히히!"
그녀의 성이 더해짐으로써 신난다는 의미의 말이 되자 그녀의 풀네임을 연호하며 그는
쾌활하게 웃었다.
"어째서! 하나같이 그런 반응인 겁니까! 도대체 이런 1차원 개그가 뭐가 재밌다고..!"
쾌활하게 웃는 그와는 반대로 그녀는 귀여운 얼굴의 미간을 어울리지 않게 찌푸리며 격
한 감정을 담아 외쳤다.
"이래서 성을 밝히는 게 싫었던 겁니다.."
그녀는 쾌활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노는 그를 자신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고개를 돌린 뒤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쾌활하게 웃으며 그녀의 이름을 연호하던 그의 목소리가 전원 버튼
을 끈 tv 마냥 그 소리와 움직임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로 인해 시끄러웠던 진료실의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지자 그녀
는 의아해하며 이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
거기에는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그가 아니라 무엇인가 놀라운 것을 본 것 마냥 눈
을 동그랗게 뜨고 반쯤 입을 벌린 채 이쪽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보였
다.
"뭐,뭔가요..?"
급작스러운 태도에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그녀였지만 애써 태연한 척 연기하며 말을 꺼냈
고.. 그 소리에 반응한 듯 그는 천천히 자신의 표정을 바꾸어 나가며 작은 미소를 하
나 만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히히히"
아까 기세의 반도 안되는 텐션으로 그는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그의 미소는 왠지.. 기쁘게도 보였지만.. 어찌 보면 굉장히 슬퍼 보이기도 하는..
그의 기묘한 웃음소리와는 다른 기묘함을 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너무 피곤해서 회사에서 자다가 지금 들어왔네요..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