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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 에필로그
그의 볼을 어루만지던 그녀의 손은 힘없이 그의 눈물과 함께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미미..? 미미쨔응..?"
그는 차갑게 식어버린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며 말을 걸었다.
그러나 이미.. 마지막 생명을 불태워 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그녀의 몸에는 아무런 생명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
"아..아.....아아아아..."
그는 깨달았다.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의 옆에 없다는 것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는 고개를 들어 올린 채 울부짖었다.
자신을 대신에 소중했던 그녀와 소중하게 대하려고 했던 아이가 죽어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
더 이상 그녀의 따뜻하고 기분 좋았던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차가운 외톨이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고독감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고 하는 무력감
그리고..
그녀를 죽인 괴물을.. 그런 괴물을 만들어버린 세계를.. 자신과 그녀 아이의 미래를 빼앗아가버린 운명을... 그리고 그녀와 아이를 구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분노했다.
그의 안에 몰아치는 수많은 감정의 폭풍이 몰아쳤고.. 그런 폭풍의 중앙에는 다른 어떤 감정보다 그의 마음을 후벼파는.. '슬픔' 이란 감정이었다.
슬픔이란 감정을 처음 자각한 그는 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토해내듯 그저 짐승처럼 하늘을 향해 울부 짖었고..아파트 단지에는 그의 슬픈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 시간 후..
목놓아 울며 울부짖던 그의 눈에는 수분을 다 써버린 듯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고..
목은 이미 작은 소리조차 새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쉬어 있었다.
그는 비통한 표정을 한채 차갑게 식어 얼어가는 그녀의 몸을 자신의 체온으로 녹이려는 듯 그녀의 사체를 겨우 움직이는 한 팔로 강하게 감쌌다.
부드럽고 따뜻한 온기로 자신을 감싸줬던 그녀의 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있는 것은 단단하고 차가운.. 칼날을 몸에 들이밀어진 것 같은 고통과 추위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의 온기를 찾아 헤매듯 그녀의 차가워진 몸을 계속해서 껴안았다.
하루가 지나고.. 또 시간이 지나 이틀이 지났을 때조차..
그는 그녀의 완벽하게 식어 버린 몸을 계속해서 자신의 품에 묻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났을 때..
이대로 그녀와 같이 차갑게 식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컨디션은 점점 나빠졌지만.. 그의 파손된 육체만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복구가 되고 있었다.
꿰뚫린 복부의 구멍은 이미 아물어 버린지 오래였고.. 내장기관도 완벽하게는 아니었지만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복구되고 있었다.
그것은 박살 난 어깨와 갈비뼈도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처임은 틀림없었지만.. 다 죽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에서 3일 만에 이 정도의 수준까지 회복한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대로 죽고 싶은 자신을 죽지 못하게 치유하는 이 능력을 원망하고 증오했다.
동시에 차라리 이 능력이 그녀에게 있었다면..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저 허망하고 허무한 기분만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껴안고 있던 그녀의 몸을 조금 때어내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피로 얼룩져 더러워졌음에도 그녀의 얼굴은 잠든 것처럼 몹시 평온해 보였다.
그는 3일 만에 몸을 일으켰다.
굳어진 몸에서 삐걱거리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그는 상관도 하지 않고 몸을 일으킨 뒤 그녀의 굳은 몸을 양손으로 들어 올린 뒤 비틀거리는 불안한 동작으로 차량에서 내려와 그녀를 안은 채 자신방으로 돌아왔다.
"미미쨔응 얼굴 더러우니까 세수하자 히히히"
평소와 같이 기묘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하는 그였지만.. 목소리는 물론이었고 그 얼굴에 조차 평소와 같은 즐거움이나 기쁨의 플러스적 감정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는 천과 소독용 에탄올을 가져와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를 정성스럽게 닦아 갔고.. 이내 그녀의 피투성이 얼굴은 깨끗하게 됐다.
하지만.. 그 탓에 창백해진 피부가 더욱더 창백하게 보여 새삼스럽게 그는.. 그녀의 죽음을 다시 체감할 수 있었다.
"으...으으...아...으으으.."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눈물이 다시 그의 눈에서 흘렀고.. 그 눈물을 얼굴을 타고 흘러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떨어져 나갔다.
그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기 위해 한 손을 자신의 눈가에 가져가고 다른 한 손은 자신의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 낸 뒤 자신의 옷소매로 자신의 눈물이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괴로운 시간이 지나.. 겨우 그의 눈물샘이 말라 더 이상의 눈물은 나오지 않게 됐고.. 그는 다시 한번 확인하듯 자신의 눈가를 소매로 슥슥 문지른 뒤 다시 그녀를 깨끗하게 하기 위한 작업을 재개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슈트를 벗기기 위해 딱딱하게 굳은 그녀의 몸을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게 움직여 가며 그녀의 슈트를 벗긴 뒤 나머지 속옷도 전부 그녀의 몸에서 벗겨냈다.
침대 위에 그녀의 아름다운 알몸이 펼쳐졌다..
하지만 오른쪽 가슴에 난 그 상처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오점을 남겼고.. 그 상처를 보자 자신의 오른쪽 가슴도 패인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또다시 울컥하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는 이를 악물며 나오려는 눈물샘을 막아 버린 뒤 에탄올과 천을 이용해 그녀의 몸 곳곳을 깨끗하게 닦아 낸 뒤.. 붕대로 해집어진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조심스럽게 감싸 상처가 보이지 않게 가렸다.
그 후 그는 그녀의 방으로 향해 그녀가 평소 즐겨 입던 속옷과 의상들을 꺼내 다시 자신의 방안으로 돌아와 가지고 온 속옷과 의상들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착의 시켰다.
"미미쨔응.. 이쁘다.. 히히히..히히히히"
지금 당장이라도 얼굴을 붉히며 작은 목소리로 고마워..라고 말할 것 같은..
평소와 같은 그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그녀가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한번 마음을 난도질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히히..히히히히히.."
평소와는 다른.. 그저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그는 그녀의 깨끗해진 얼굴을.. 하지만 차갑게 식어버린 그 얼굴과..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존재인 아이가 있었을.. 혹은 없었을 그녀의 배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그는 그저 한없이 그녀의 얼굴과 배를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그녀를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을 얻어 움직였지만.. 그 짧은 목적을 달성한 그는 더 이상 자신이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뭘 해야 할까? 나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그녀의 몸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대답해줄리도.. 자신에게서 답이 나올 리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있잖아.. 미미쨔응? 나 같이 가도 되지? 응? 괴로우니까.. 고통스러우니까.. 그쪽으로 가도 되지?"
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히히히.히히히 대답이 없으면.. 나 그냥 그쪽으로 갈게.. 히히히"
그는 그녀의 몸에서 손을 땐 채 품에서 식칼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양손으로 움켜 진 뒤 자신의 목을 겨눴다.
단번에 이 칼날을 심장에 꽂는다면 아무리 재생능력이 뛰어난 자신이라도.. 죽을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 고통과 절망과 슬픔 그 외의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감정들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있다봐.. 미미... 히히히!"
그는 양손으로 움켜진 식칼을 자신의 심장을 향해 꽂아 넣었다.
칼날의 끝부분이 그의 살갗에 닿으려던 그 순간..
쩅그랑!
유리가 깨지는 격렬한 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고 그 소리 탓에 심장을 찌르려던 칼날이 바로 앞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양손으로 움켜쥔 식칼을 오른팔로 역수로 쥔 상태로 만들어 그대로 자신의 방문을 박차고 나가 거실로 향했다.
자신의 안식을 방해하려는 적이 있다면.. 그 적에게 울분을 토해내기 위해서..
그는 어깨에서 힘을 뺀 뒤 바닥에 떨어진 액자를 주워들었다
"아...."
그것은 한 장의 그림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잘 그린 한 장의 그림..
하지만 그에게 있어 그녀와 자신의 추억이 담긴.. 행복의 상징과도 같은 그림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그림 속의 그와 그녀는 몹시 즐거운 듯 평화로운 듯 웃고 있었다.
"아아아....."
그는 그 액자를 가슴에 품었고 그와 동시에 그의 죽음을 상징하는 식칼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림을 보고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와의 약속을... 그녀의 죽음이 너무 괴로워서 눈을 돌리고 있었던 그녀의 마지막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가 자신에게 건넨 축복 이자 저주와도 같은 삶의 목표를..
"히..히히히히..!"
그는 웃었다.
슬픈 듯이 기쁜 듯이 괴로운 듯이 즐거운 듯이 화난 듯이 웃었다.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그는 액자를 껴안은 채 미칠 듯이 웃었다.
자신의 안을 휩싸는 여러 감정을 토해내듯이 웃었다.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입에서는 침이 흘러도 그는 웃었다.
그야말로 그 모습은 광인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는 미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봉인하기 위한 그 나름의 행위였다.
그렇게 한참을 웃은 그는 실이 끊긴 인형처럼 뚝 하고 웃음을 멈춘 뒤.. 액자를 껴안은 채로 방안에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 살아볼게. "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목적을 고한 뒤 그녀의 얼굴로 다가가 차갑게 식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머릿속에는 아직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수없이 맴돌았지만.. 그는 그것을 억지로 차단 시켰다.
머릿속에 이 말을 다 하게 된다면.. 분명 자신은 그녀의 마지막 말을 실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히히히!"
그는 애써 자신의 마이너스 감정을 눌러 담은채 평소와 같이 웃었다..
그 후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던 그와는 다른.. 몹시 바쁜 시간이었다.
그녀의 관 그녀의 무덤 그녀의 묘비 등의 장례 준비부터 여행을 떠나기 위한 물품과 식량 목적지 등을 정하는 여행의 준비까지.. 그야말로 수면도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의 몹시 분주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가 삶의 목적을 얻고 1주일이 훌쩍 흘러.. 드디어 여행을 떠나는 출발의 날이 다가왔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큰 배낭을 짊어진 그는 그녀의 묘비 앞에 섰다.
묘비..라고 말하기에는 몹시 큰... 23층 아파트의 벽면 전체를 사용한 묘비였다.
그리고 그런 묘비(아파트의 벽) 아래에는 그녀의 무덤이 존재하고 있었다.
"미미쨔응.. 이거 먹고 싶어 했지?"
그는 그녀가 먹지 못해 아쉬워 했던 스팸을 그녀의 무덤 앞에 올려 놓았다.
"알파벳 초콜릿은 내가 먹을게! 히히히!"
알파벳 초콜릿이 들어가 있는 귀여운 모양의 플라스틱 병을 그녀의 무덤 앞에 흔들며 말했다.
그녀가 먹기 아깝다며 병에 장식해둔..
그가 그녀를 위해 힘들게 구해왔던 그 초콜릿이었다.
"그래도 혼자 먹는 건 나쁘려나? 그럼 반 줄게!"
그렇게 말한 그는 통에서 초콜릿 반응 큼을 꺼내 자신의 코트 주머니 안에 쑤셔 넣고 나머지 반이 들어있는 귀여운 플라스틱 통을 그녀의 무덤 앞에 놔뒀다.
"........................."
그 후 그는 아무 말 없이 웃고 있는 얼굴로 그녀의 무덤을 조용히 바라봤다.
이제.. 남은 것은 작별 인사뿐이었지만 차마 입에서 그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곳을 떠난다면 자신이 이곳에 돌아오는 것은 언제가 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몹시 망설여졌다.
계속 이곳에서.. 그녀의 무덤이 있는 이곳에서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와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었기에.. 그는 약해져가는 마음을 다시 바로잡으며 작게 심호흡을 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미.. 미레 다녀올게."
둘의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는 이를 꽉 다물어 눈물이 나오는 것을 꾹 참은 뒤 자신이 쓴 아파트의 벽면.. 그녀의 비석을 조용히 바라본 뒤.. 그대로 등을 돌려 그녀의 무덤에서 멀어져 갔고.. 이내 그는 아파트의 단지에서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참고로 비석에 써진 문구는 이러했다.
[나의 사랑하는 미미 그리고 미레 여기에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