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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얼론 (Zombie Alone)-48화 (48/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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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 여행

죽기 직전.. 괴물은 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꿰뚫은 직후.. 발 끝부분 에서부터 서서히 재가 되더니.. 이내 전신이 재로 뒤덮이고는 바람에 휘날려 사라졌다

남은 것은 그녀에 의해 심장에 꽂혀 있던. 현재는 바닥을 힘없이 굴러 다니는 쇠 파이

프뿐이었다..

괴물의 그 최후는.. 가슴에 말뚝을 박혀 죽어버린 흡혈귀를 연상케하는 최후였다.

몸을 지탱하던 괴물이 사라진 탓에 그녀는 상처에서 허공을 향해 피를 흩뿌리며 천천히

지면을 향해 쓰러졌다.

"미미..! 미미!"

그는 급박한 얼굴로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어 차의 범퍼 위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어깨와

갈비뼈가 박살 나고 다른 부위들도 전부 망가진 상태였기에 쉽게 올라갈 수가 없었다.

겨우 움직이는 오른팔만을 이용해 보닛 위까지 올라간 그는 차 위를 기어 겨우 쓰러진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가장 먼저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심장을 꿰뚫린 것이 아니기에 즉사는 피했지만.. 오른쪽 가슴에 위치한 장기들 대부분

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해집어져 있었다.

즉사를 피했다고는 해도.. 그 생명의 시간이 조금 연장 됐을 정도의.. 치료가 불가능

한 무거운 상처였다.

"미미..! 미미..!"

그는 겨우 움직일 수 있는 한쪽 팔로 그녀의 헬멧을 던져내듯 벗겨내 그녀의 얼굴을 바

라봤다.

내장을 다친 탓에 피를 토해낸 것인지 그녀의 얼굴 반쪽이 피로 물들어있었다.

"마무리....어..설펐....네.. 쿨럭..!"

그녀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중얼거리고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어린아이와 같은 슬픈 표정

을 짓고 있는 그녀는 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어 피투성이가 된 그의 볼을 어루만졌

다.

"...부탁이.. 있어..

그녀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 것을..

자신의 몸에서 생명이 흘러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몇 분 뒤일지 몇 초 뒤일지 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의식이 사라지

고.. 빈 껍데기만이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죽기 직전 그에게 꼭 전해야 할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안돼.. 안돼! 제발.. 죽지마..! 죽지 마! 안돼...!"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지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자신의 볼을

어루만질는 그녀의 손을 꽈악하고 잡았다.

그도 그녀가 곧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납득했다 쳐도 감정으로서는 전혀 납득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죽는다는 것.. 그녀가 자신의 옆에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현실이자 있어서

는 안되는 일이었다.

"있잖아.. 내가 죽으면..."

"아니야! 미미쨔응은 안 죽어! 안 죽는다고!'

그는 계속해서 눈앞에서 들이 닥친 현실을 부정하며 절규했다.

"이미..알고있지.? 그러니까.. 내 마지막.. 이야기들을.. 들어줘.."

그녀는 힘없는 미소를 만들며 현실을 부정하는 그를 달래 듯 혹은 어루만지 듯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그 무거운 의미를 담은 말은..

애써 부정하고 있던 그녀의 죽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너무나도 무거운 말이었다.

"아....아...! 아아아아아아아..!"

현실을 인정하는 순간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뺨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을 적셔

갔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삼켜진 그는 아이와 같이 울며 그저 그녀를 떠

나보내지 않고 싶다는 일념을 담아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그 손과 자신의 손을 눈물로

적셔갔다.

그것이 슬픔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그는 죽어 버리고 싶은 충동 감광 가슴의 고

통을 느끼며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씹으며 그녀의 마지막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죽으면..."

그녀는 자신이 만약 죽게 됐을 때를 대비해 생각하고 있던 유언들을 떠올렸다.

원래 대로라면 글로 써놓고 자신의 방에 놔두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죽음이 예상보

다 빨리 찾아왔기에 그녀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이용해 그가 계

속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 즉 자신의 부탁을 통해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일시적으로나마 부여하기로 했다.

그것이 자신이 그에게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여기를 떠나..."

그가 이곳에서 계속 머무른다면..

자신과 자신과 있었던 즐거웠던 추억이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행복했던 과거와 차갑고 냉혹한 현실의 슬픔에 집어삼켜져 언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일은 절대로 원치 않았기에  그녀는 가장 먼저 그

를 이곳에서 멀리 떨어트리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 적이면.. 죽이고... 친절하게.. 대해주면.. 의심하고 속

을.. 떠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분명.. 나처럼.. 너를.. 이해하고.. 좋아해 주

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사람을.. 찾아..떠나.."

아파트 단지 밖의 세상은 지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분명 그는 밖의 세계를 떠돌며 수많은 미치광이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태양 교단이나 여행 때 만난 남자와 같은 타인을 깔아 뭉개며 살아가는 인간들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친절함과 상냥함 속에 독과 칼날을 품고 있는 인간들

하지만 그런 미치광이들 중에서도 자신과 같이 그의 매력을 알고.. 그를 이해하고 그

를 좋아 해 줄 수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과 만난다고 해서.. 자신을 잃은 상처를 완전하게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런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게 된다면.. 점점 삶에 대한 의

욕이 생겨날 것이었다.

"쿨럭..! 쿨럭..!"

그녀는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내며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었다.

슬슬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유언.. 자신에게도 그에게도 너무나 잔혹하고 잔인한 말

을 내뱉기로 했다.

"나..말고.. 다른 여자..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어..

말을 내뱉는 순간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은 싫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가 그의 옆에 있는 것은 싫었다.

하지만..

이제 곧 죽는 자신이 그런 질 나쁜 어리광을 부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곧 죽는 자신과는 다르게 그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가정을 만들며 살아주길 바랐다.

그의 옆에 있는 것이 비록 자신이 아니라 다른 여자와 그 여자의 아이라고 해도 말이

다.

"그리고..."

그녀는 흐트러지는 숨을 한번 정리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줘..."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행복한 가정의 편린을 봤었기에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몹시 슬프고 괴로워 보이는.. 일그러진 미소였다.

"내 몫까지.. 살아줘.. 혹시 있었을지 모르는.. 아기의 몫까지도.. 제발... 살아

줘.. 우리를 위해 언제나 웃으며 살아줘.."

평소와 같이 그가 아이와 같이 활짝 웃는 얼굴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것은 억지 부탁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가 조금이라도 눈물

을 멈출 수 있게 그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냈다.

"난 행복했으니까.. 후회는 없으니까.. "

거짓말이었다.

행복했지만 더 오래 행복해지고 싶었다.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운동하고 여행을 가고 손을 잡고 포옹하고 키

스 하고 몸을 섞고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좀 더 살아서 그의 아이를 낳고.. 미레라는 의미 있는 이름을 붙여 세명이서 언제까지

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속에 만 꾹 담

아 둔 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 탓인지.. 아니면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탓인지..

그의 얼굴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고.. 이내 그녀의 시야에 비추어지던 그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오직 어두운 장막만이 비추어졌다.

그녀는 그것이 너무 무서웠다.

"미도.. 거기 있지?"

분명 그를 만지고 있었음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손에는 아무런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

다.

"이...있...으...으으...어.. 나...여기있...어."

불행 중 다행히도 그의 울먹이는 소리만큼은 잘 들렸기에.. 그녀는 겨우 안심 할 수 있

었다.

"그러고보니..스펨...못먹었네...억울하니까.. 나도..귀신이 되려나...

아껴 먹기 위해 남겨뒀던 스팸이 생각난 그녀는 힘없이 웃었다.

동시에.. 차라리 귀신이라도 되어 그의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나...."

점차 흐릿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녀는 그에게 1초라도 더 많은 말을 해주고 싶었

다.

하지만... 죽음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 그녀의 생명을 급속도로 빼앗아갔고.. 동시

에 미친 세계가 되기 전의 평온하던 나날에서부터.. 그와 행복했던 현재의 기억들까지

빠짐없이 그녀의 머릿속을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마지막이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마지막 남은 보잘것없는 몹시 작은 생명의 불꽃을 불태워 겨우 입

술을 열수가 있었다..

"사랑했어.. 미도... 안녕.."

그녀는 마지막 힘을 짜내 사랑의 말과 작별의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의식은 깊은 어둠 속에 빨려 가듯이 사라져갔다.

그녀는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

신을 향해.. '귀신이라도.. 좀비라도 좋으니 제발.. 다시 한번 그와 만나게 해주세

요' .라고 마음속으로부터 간절히 빌었다.

============================ 작품 후기 ============================

긴 말 하지않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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