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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 여행
그와 연결된 손을 끊고 도망간 그녀는 공포에 의해 떨리는 다리의 탓에 몇 번이나 넘어
질 뻔하면서도 속력을 죽이기는커녕 더욱더 속도를 높여가며 무인의 길을 달려 나갔다.
그러다가 결국 다리가 꼬여지면에 엎어지게 된 그녀는 갓 태어난 아기사슴처럼 후들거리
는 다리로 자리에서 일어나 눈앞에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벽면에 등을
맡긴뒤 쓰고 있던 헬멧을 벗었다.
"하아..! 하아! 하아...!"
불규칙한 거친 숨을 내뱉으며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얼굴을 장갑 낀 손으로 훑
은 그녀는 터질 것 같은 심장 위를 손으로 감쌌다.
심장이 급박하게 뛰는 이유는 달려온 탓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방금 전 본 괴물에 대한 공포..
압도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
초인의 영역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조차도 느낀 공포를 일반인인 그녀가 느끼
지 못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보통 인간이라면 그 자리에서 굳어져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 수밖
에 없었을 상황에서 그의 목소리에 반응해 도망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굉장한 일
이었다.
하지만 공포에서 멀어져 조금의 여유가 생긴 그녀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그를 버려두
고 도망간
자신의 나약함이었다.
그녀는 그 죽음이 지배하는 장소에서 자신에게 도망가라고 외친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급박한 목소리와.. 긴장으로 굳어진 얼굴..
언제나 밝게 웃으며 즐거운 목소리로 말하던 그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다른 그의 모습..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웃을 수 있었던 그가 여유를 잃고 긴장했다는
것 자체가 그 괴물의 무서움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그 무시무시한 괴물을 그에게 맡겨둔 채 도망 왔다는 사실에 무거운 죄책
감이 들었다.
물론.. 그녀는 그곳에 자신이 있어봤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자각하
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에 대한 걱정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그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도망갔다.
"......................."
그녀는 장갑을 끼고 있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와 굳게 연결됐던 손..
그의 믿음직한 손을 자신이 도망가기 위해 뿌리쳤다.
그런 생각이 들자 죄책감으로 인해 가슴이 욱신 거리고 아팠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에게 돌아가서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괴물을 얼핏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려 오는 것 같았다.
거기에... 자신의 뱃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가 걱정되기도 했다.
만약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이 역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에 대한 걱정도 점점 커져만 갔다.
무장한 집단을 상처 없이 도륙 낼 수 있는 강자에 위치한 그라고 해도.. 압도적인 강자
의 위치에 있는 괴물의 앞에서는 약자와 다를 바 없었다.
그라면 어떤 상대라고 해도 자신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방법으로 괴물을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지만 괴물을 생각하자마자 그 희망은 무참하
게 박살 나며 갈기갈기 찢겨버린 그의 모습만이 떠올랐다,
"우읍..!?"
그 모습이 떠오르자마자 그녀는 급속도로 올라오는 구토감에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역류하는 내용물을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한 채 결국.. 위안에 있는 내용물을 바닥에 토
해냈다.
그가 죽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정신적 충격과 상실의 공포를 받음과 동시에 내장
을 뒤틀어 버리는 것 같은 괴물에 대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위안의 물건들을 게워낸 그녀는 기침과 함께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며 불안한 움직임으
로 바닥에 둔 헬멧을 집어 밖으로 나왔다.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 속에 들어오자 불탈 것 같던 몸이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그
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헬멧을 꽉 껴안으며 그와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몸과 마음의
안정을 서서히 찾아갔다.
그녀는 헬멧을 껴안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전 자신이 공포에 질려 도망 왔던 길
을 바라봤다.
그 길을 보자 괴물에 대한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올 것 같았지만.. 괴물에 대한 공
포보다는 그가 살해당한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더욱더 큰 공포와 충격이었다.
"혹시나.. 있으면 미안해.."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배를 부드럽게 한번 쓰다듬고는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
도 모르는 존재에게 사과의 말을 건넨 뒤.. 들고 있던 헬멧을 착용한 뒤 어깨에 메고
있는 긴 통에서 그가 만들어준 쇠 파이프 창을 꺼내.. 갈팔질팡하고 있던 자신의 방향
성을 바로잡은 표시라도 되는 듯 그것을 양손으로 꽉 쥐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그녀의 양팔에 전달해져 왔다.
그것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무게감같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자신이 도망
왔던 길에 발을 디뎠다.
괴물의 공포에 질려 정신없이 도망 왔던 길을.. 괴물에 대한 분노로 물들인 채 거슬
러 올라간 그녀는 자신이 도망쳤던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발소리를 죽인 채 주위를 둘러봤지만 괴물도 그도 그 장소에는 보이
지 않았다.
그 대신 아파트 상가의 입구와 연결된 핏자국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설마..."
안 좋은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그것을 애써 부정하듯 머리를 세차게
저으며
혈흔을 따라 아파트 상가 입구로 향했다.
상가의 입구 쪽은.. 엉망진창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벽, 바닥, 천장들이 파괴되
어 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바닥에는 칼날처럼 보이는 금속의 조각들이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었다.
그것이 트랩이 발동된 것이라고 깨달은 그녀는 상가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가의 복도를 걸으며 그녀는 그의 흔적이라고 생각되는 핏자
국을 다시 발견했고 그것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혹시 이 끝에 그의 시체가 있을지도 모르는다는 불길한 마음을 품은 채 그녀는 이를
꽉 물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내 상가의 출구에 도달한 그녀는 그 자리에서 핏자국이 끊긴 것을 확인하고 주위를 둘
러 그의 모습을 찾으며 앞으로 나아가던 중 결국 자신들의 보금자리 앞까지 도착하게 됐
다,
거기서 아지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베란다의 문이 열린 것을 확인하
고 그녀는 급하게 베란다 안으로 들어갔다.
"미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베란다 안으로 헐레벌떡 들어간 그녀는 그의 모습을 찾았지만.. 그
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그가 상처를 치료한 흔적처럼 보이는.. 바닥에 널브러진 의약품들과 피 묻은
셔츠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다른 방을 전부 뒤져 찾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점점 그녀의 마음에 불안감과 공포가 찾아왔고.. 그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그녀는 자신
의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어깨를 파고드는 고통에.. 겨우 냉정함을 찾은 그녀는 작은 심호흡과 함께 베란다 밖으
로 나가 다시 한번 그의 모습을 찾았다.
그리고.. 그를 찾아 헤매던 그때 그녀의 귀에 무엇인가의 소리가 포착됐다.
그것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아무런 망
설임도 없이 지하주차장 쪽으로 달려갔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 그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 충동을 씹어 삼키며 주차장 정면 쪽 보도블록 옆에 주차된 차의 뒤에 숨어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자신으로서는 그 괴물을 정면에서 상대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을 그 공포심으로
인해 자각하고 있는 그녀는 만약 그 괴물에게 유요한 공격을 하려고 한다면 기습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기습조차 통하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정면에서의 공격보다는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귀를 기울이며 상황을 살피던 그 순간..
주차장 입구에서 그가 내동댕이 쳐지듯 튀어나왔고.. 그의 상태는 누가 봐도 만신창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아스팔트를 기어 자신이 숨어있는 차량 쪽을 향했고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놀란 심장을 진정시킬새도 없이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주차장의 입구에서 왼
쪽 눈과 가슴 중앙에서 피를 흘리는 괴물이 나타나자.. 그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삼키
며 차량의 뒤 범퍼에 몸을 바짝 붙인 채 괴물의 움직임을 조심스럽게 주시했다.
이내 차량의 앞까지 다가온 그를 쫓아온 괴물이 그의 머리를 붙잡았고 그 직후 그의 고
통에 찬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칠뻔했지만.. 급하게 입을 틀어막은 덕분에 소리가 세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갈 곳 없는 분노가 그녀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쳤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괴물을 살폈다.
한번,. 단 한 번의 기습으로 괴물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찾았고. 그 부분
은 금방 발견될 수 있었다.
칼에 찔린 듯 벌어진 가슴의 중앙..
단 한 번의 기습으로 녀석을 죽일 수 있는 곳은 저곳밖에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쇠 파
이프 창을 단단히 잡은 뒤 차량의 위로 튀어 올라갈 준비를 끝냈다.
"죽.어!"
그 순간 괴물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와 함께 괴물이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안 그
녀는 참고 있던 분노를 입 밖으로 토해냈다.
"너나 죽어 병신아!"
차량 위로 올라간 그녀는 괴물의 쪽으로 크게 도약해 손에 쥔 쇠 파이프 창의 날카로
운 끝부분을 정확하게 괴물의 가슴 중앙에 꽂았다.
고기와 내장을 꿰뚫는 기분 나쁜 감촉을 느끼면서도 그녀는 거침없이 쇠 파이프를 양손
으로 잡은 채 가슴 중앙에 깊게 쑤셔 박았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악!!!"
자신의 심장에 쇠 파이프가 박히자 괴물은 비명을 내지르며 그의 머리를 잡고 있던 손
을 때어냈다.
그 탓에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그는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고.. 만
신창이가 된 몸과 두개골이 삐걱거리는 고통에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몸에 힘을 주어 겨우 고개만을 들어 올린 채 상황이 어떻
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손에 들린 쇠 파이프의 창이 괴물의 심장에 박힌 것을 보고.. 그녀가
자신을 구하러 와줬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긴장됐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미미..."
그는 작은 숨을 내쉬며 반쯤 쉬어버린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그 순간 심장을 꿰뚫린 괴물의 왼쪽 팔이 그녀를 향해 뻗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에게 있어 그 장면은.. 흡사 배속을 낮춘 영상과 같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
듯 보였다.
"아,안돼.. 안돼에에에에에에에!!"
그는 피를 토하는 절규를 내 지르며 그녀를 구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이 그녀에게 닿을 리는 없었고..
너무나 허망하게.. 괴물의 손은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꿰뚫었다.
============================ 작품 후기 ============================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