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9 / 0269 ----------------------------------------------
Ep 2 여행
오랜만에 동심의 설렘을 느끼며 그녀는 그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물론 그 추위에 버티기 위해서 옷을 두껍게 껴입은데다가 그가 만들어준..
파는 것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털 장갑과 목도리까지 완벽하게 장착을 끝냈다.
그럼에도 살갗을 도려내는 추위를 완벽하게 피할 수가 없었기에 그녀는 몸을 최대한 움츠리며 발목까지 푹하고 들어가는 새하얀 눈을 유린하며 정원을 산책했다.
그에 반해 셔츠와 바지 그 위에 하프코트.. 그리고 그녀가 짜준 조잡한 털 장갑만을 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위를 전혀 느끼지 않는듯한 모습으로 새하얀 도화지 같은 눈밭
을 헤엄치기라도 하듯 휘젓고 다녔다.
"굉장히 많이 쌓였네."
하얀 입김들 토해내며 그녀는 발목까지 올 정도로 쌓인 눈을 바라봤다.
그녀로서도 이 정도로 많이 쌓인 눈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히히히히!"
그리고 눈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 그는.. 눈밭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자신의 흔적을 새하얀 도화지에 이리저리 남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정원에서 지켜보던 그녀는 그가 유명한 동영상 사이트에서 본 강아지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하염없이 눈밭을 어지럽히는 그를 잠시 동안 지켜본 뒤 자신도 오랜만에 눈놀이를 즐겨 보기로 마음먹었다.
발밑에 있는 눈을 양손으로 꽉꽉 눌러 압축하여 눈 뭉치를 만든 그녀는 그것을 바닥에 떨어트린 뒤 그대로 눈밭을 굴려 나갔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방금 전의 2~3배는 될 정도의 눈 뭉치가 완성됐다.
그녀는 그것을 일단 방치한 뒤 다른 눈 뭉치를 만들어 이번에는 방금 전의 것보다 조금 작게 만들었다.
그리고 방금 전 만들었던 눈 뭉치와 현재 가지고 있는 눈 뭉치를 겹치게 하여 8모양의 사람 얼굴만 한 크기 눈사람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럴싸한데?"
이곳에 단추로 눈을 박아 넣는다면 더 완벽하다고 생각한 그녀였지만 그 정도까지 열중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것을 베란다 밑에 눈이 별로 쌓이지 않은 공간에 세워뒀다.
"미미쨔응! 미미쨔응! 그거 뭐야? 눈사람? 그거 눈사람이야? 어떻게 만들어? 나도! 나
도!"
그녀가 완성시킨 눈 사람을 본 것인지 그는 눈 위를 미끄러지듯이 달려와 그녀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눈사람에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눈놀이의 프로인 내게 가르침을 받고 싶냐?"
그녀는 거만하게 팔짱을 낀 채 웃었다.
"응! 응! 히히히!"
그는 거만한 포즈의 그녀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의 발밑에서 눈덩이를 모아 그것을 꾹꾹 해서 아까와 같이 눈 뭉치 하나를 만든 뒤 그것을 그에게 건넸다.
"그걸 바닥에 살짝 놓고 그대로 굴려서 크게 만들면 돼!"
"오! 오오오! 히히히! 커진다! 미미쨔응 봐봐! 커지고 있어! 점점 커지고 있어!"
눈 뭉치라는 단어가 빠졌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어찌 보면 굉장히 이상한 말로 들렸다.
"앞에 주어를 붙여!"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힌 채 외쳤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신경 쓰는 모습 하나 없이 점점 커져가는 눈 뭉치를 거침없이 앞으로 낳아가며 굴리는 작업을 반복했다.
진심으로 열중해서 굴린 탓인지 그의 눈 뭉치는 그녀가 만든 눈사람의 몇 배는 될만한 크기로 부풀었다.
그러나 그는 탐욕스럽게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더 세차게 몹시 커진 눈 뭉치를 굴리려고 했기에 그녀는 스톱 사인을 날렸다.
"너무 크면 머리는 어떻게 올릴꺼야!? 거기까지 해!"
지금도 저 몸둥아리로 사용될 눈 뭉치에 맞는 사이즈를 올릴 수 있는 것조차 불안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몸통 다음으로 만든 머리용 눈은 둘이 힘을 합해 어떻게든 머리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 덕택에 정원 앞의 보도블록에는 수호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커다란 눈사람 하나가 떡 하나 자리 잡았다.
"미미쨔응! 미미쨔응! 또 없어? 눈 놀이?"
그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눈놀이의 달인 이란 우스갯소리를 진지하게 믿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프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아는 선에서 말해주려고 생각한 그녀는 겨울
에 자신이 했던 일들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떠올렸다.
"어디 보자.. 눈싸움.. 은 그만두자."
그 못지않게 그녀도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의 신체능력.. 특히 동체시력 같은 부분은 그녀와 비교해 월등하게 높기에 자신의 공격을 쉽게 회피하고 그 엄청난 제구력으로 자신만이 공격당하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패스하기로 했다.
"그 외에는.. 스케이트라던가 스키..라던가.. 썰매..인데"
그녀는 주변을 돌아봤다.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새하얀 도화지 같았던 설원은 그가 이리저리 햬집고 다닌 탓에
그 순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스케이트랑 스키는 무리고.. 썰매 정도라면 어떻게든 될 거 같은데.
어렸을 적 골판지 박스를 타고 빙판길을 미끄러져 가며 즐겼던 것이 생각났다.
진짜 썰매 같은 속도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힘이 아닌 타인의 힘으로 끌려 간다는 것은 의외로 신나는 법이었다.
"썰매! 썰매! 히히히히!"
그 단어에 무엇인가 떠오른 것이 그는 팔짝팔짝 눈밭을 뒹굴며 웃고는 아지트의 옆 창고의 베란다로 훌쩍 뛰어가 안으로 사라졌다.
약 5분간 망치로 무엇인가를 두드리는 뚝딱 거리는 소리가 이어졌고 그것이 끝남과 동시에 창고의 베란다에서 그가 자신의 몸을 가릴 정도의 큰 합판 하나를 든 채 튀어나왔다.
"썰매!"
큰 합판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그는 외쳤다.
자세히 보니 합판의 바닥에는 받침대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2줄 달려 있었고 손잡이로
생각되는 부분과 그 앞부분이 튼튼한 밧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간이 썰매 정도라고 하면 인정해도 괜찮은 느낌의 조금 조잡한 썰매였다.
물론 5분 정도에 나온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혹시 내가 끌어야 하는 거야?
합판 썰매를 가지고 나온 그에게 그녀는 물었다.
일단 현재 이곳에 있는 것은 그와 그녀 들 뿐이었기에 한 명은 이것을 끌어야 썰매로서 기능을 하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아니! 자가용이 끌 거야!
"그러고보니.. 그랬지."
최근 들어 날이 추워서인지 아니면 다른 일에 몰두한 것인지 최근에 자가용을 타고 단지를 드라이브하는 일이 없었던 지라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던 눈알이 하나 덜렁거리는 좀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녀올게! 히히히!"
그는 썰매를 끈 채 아파트 좀비의 지분을 상당수 차지하는 구역인 지하주차장으로 눈보라를 휘날리며 달려나갔다.
[그거거거거거거거거!]
성대가 얼어 평소와 같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인지 까끌까끌한 소리를 내지르며 지하주차장에서 눈알이 덜렁거리는 자가용과 그 등의 지게와 연결된 밧줄의 합판 위에 타고 있는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말대로 추위의 탓에 몸이 얼어붙은 건지 평소보다 속도가 그다지 빨라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사람이 뛰는 정도의 속도나 그것보다 조금 안되는 정도였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좀비의 속도는 그와 합판을 끌고 있다고 쳐도 조금 빨리 걷는 정도의 속도밖에는 되어 보이지 않았다.
"미미쨔응~"
그는 썰매 위에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도 그에 맞춰 거대한 눈사람에 등을 기댄 채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다지 빨라 보이는 속도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눈보라를 일으키며 끌려가는 것이 즐거운 것인지 웃으며 썰매를 탄 채 오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미미쨔응도 썰매 탈래!?
얼마 동안 썰매를 즐기던 그는 눈사람에 등을 기댄 채 휴식을 취하고 있던 그녀를 부르며 말했다.
타고 싶든 아니든 좀비가 자신의 근처에 오는 순간 돌변하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거절의 의사를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움직이는 썰매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좀비의 머리를 툭 하고 손을 건드렸다.
그러자 좀비는 껄끄럽게 내지르던 소리를 멈추고 움직임도 멈춘 채 고개만을 숙인 채 석상과 같이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미미쨔응한테 가자! 히히히!"
그가 그렇게 외치자
좀비는 그 명령에 복종하듯 방향을 틀더니 그녀를 향해 달렸다.
방금 전의 속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좀비는 질주하며 그녀를 향해왔다.
방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속도로 좀비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놀란 그녀는 자세
를 잡고 그대로 아지트 안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괜찮아! 안 물어! 히히히히!"
그가 썰매 위에서 그렇게 외쳤다.
그렇기에 그녀는 도망가는 것을 멈추고 경계하는 자세 그대로 다가오는 좀비와 그를 주시했다.
이내 그녀의 근처까지 좀비와 그가 도착했다.
그녀는 긴장한 채 좀비가 이상한 짓을 하지 않을까 경계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좀비는 굉장히 얌전해 보였고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상태였다.
"미미쨔응! 타!"
좀비와 연결된 썰매에 앉은 그가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그녀는 이 좀비의 상태가 더욱 궁금했기에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좀비를 가리켰다.
"이녀석은 왜 이리 얌전해?"
"전에 말했었던 조종 능력!
"아..그러고보니 그런 것도 가능하다고 했었지."
그제야 그녀는 납득할 수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여러 가지를 고백했던 날에 별거 아닌 능력이라는 듯 내뱉었던 그 능력이었다.
그 당시에는 능력을 안 써도 조종하는 거랑(특히 자가용) 다를 바 없었던지라 그다지 놀라지도 신경도 쓰지 않았던 능력이었다.
단지 이렇게 실제로 보니 놀라웠다.
그가 좀비를 조종한다는 것보다는 좀비가 자신을 덮치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몇마리까지 조종할 수 있어."
"응? 한 마리밖에 못해! 히히히!"
"능력 자체는 굉장히 놀랍기는 한데.. 뭔가 수수하네."
"응! '여기' 서는 별로 쓸모없는 능력이야!"
그와 그녀가 사는 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쓸모없는 능력이었다.
기껏해야 썰매를 끄는 정도였다.
물론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면 잔혹하고 악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했지만 그는 그것을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쓸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얼마동안 조종할 수 있는 거야?
그녀는 얌전한 좀비와 거리를 둔 채로 이곳저곳을 살피며 물었다.
"최대 1시간! 그 이상은 머리 아파서 못해! 히히히!"
"그럼 1시간은 안전한 거야?
"30분 넘어가면 머리가 지끈거리니까 30분!"
그가 말한 시간에 납득한 그녀는 두말없이 그의 앞에 앉아 자신의 등을 그의 가슴에
꽉 하고 밀착시켰고 그는 그녀의 가슴 채록 감싸 안아 그녀를 단단하게 자신의 팔로 고정시켰다.
"출발!"
그녀는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외쳤다.
"히히히히!"
그의 웃음소리와 함께 자가용 좀비는 그 이름답게 그와 그녀를 태운 썰매를 끈 채 아파트 단지 내를 질주했다.
자신이 달리는 것과 별반 차이 없는 속도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힘이 아니라 다른 힘으로 작용되는 속도로 움직이는 썰매는 굉장히 즐겁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오늘은 자신이 동심의 세계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그녀는 탄탄한 그의 가슴에 등을 맡긴 채 지금의 이 놀이를 아이와 같이 신나게 즐겼다.
============================ 작품 후기 ============================
오전까지 일하다가 잠들고 일어나보니..
이쪽 업계에서 여기 저기 난리가 났네요.
그중에서 같은 계열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괜히 불똥튈까봐 무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