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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얼론 (Zombie Alone)-23화 (23/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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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 일상

비슷한 시각 그녀의 방안

그녀는 침대에 무릎을 감싸 안은 채 앉아 있었다.

화장실에 한번 갔을 때 이외에는 계속해서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3일째.. 남자들에게 범해 지기 직전까지 간지 3일째..

첫날과 비교해 그때의 공포는 현재 많이 잠식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완전히 빠져나간 것은 아니었다.

뺨을 얻어맞을 때의 고통 그 통통하고 두꺼운 손가락이 자신의 몸을 만질 때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 코를 찌르는 남자의 땀 냄새와 비릿한 숨결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감 몸을 태울 것 같이 뜨거운 체온

그 모든 기억들과 감각들이 간간이 그녀를 덮쳤다.

그때마다 그녀는 숨이 막히는 가슴을 부여잡고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자신이 이렇게도 약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하지만 제일 화가 나는 것은.. 자신이 '그' 에게 한 행동이었다.

구해진 직후 그가 자신에게 손을 뻗은 그때.. 그녀는 남자가 자신에게 한 행동을 떠올렸고 반사적으로 그를 피하는 듯 한  모습을 보여 버렸다.

그 남자와 그는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그런 반응을 보였다.

그때 그는 분명 평소와 같이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 그 모습이 상처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방안에 틀어박힌 이유는.. 강간당할뻔했던 때의 감각이 아직도 몸을 떠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시 그를 상처 줄지도 모르

는 게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바로 전에 그런 일을 당한 탓도 있었고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냉정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그에게 그런 반응을 보여버렸다.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때보다 많이 안정된 지금이라면 분명 그를 두려워하거나 하는 반응을 보일 리는 없다.

하지만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그때처럼 그를 거절하는 듯한 행동을 해 또다시 그에게 상처를 입힐까 두려웠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꾹 참고 있던 눈물이 자신의 뺨을 적셨다.

그의 웃음소리가 듣고 싶었다.

요 몇 개월간 자장가 대신 들으며 잠들던 그 웃음소리가 너무나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는 며칠간 들리지 않았다.

그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또다시 눈물이 나왔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태연하게 그에게 말을 걸고 그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가 아스팔트 위를 뛰어다니며 웃는 그 소리가 듣고 싶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웃는 그 소리를 원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다시 상처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런 행동을 해버린 자신이 상처받을까 두려워

선뜻 그 한 발을 내디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 망설임이.. 겁쟁이인 자신이 그를 상처 입히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기를 내려 하지 않는 자신은 최악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무릎 위에 얼굴을 묻으며 조용히 흐느꼈다.

바로 그때..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절규를 닮은 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그녀의 귀에 들어왔다.

그녀는 소리가 새어들어온 문쪽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처음 듣는 몹시 처절한 소리였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몇 개월간같이 살아온 '그'의 목소리를 틀릴 리가 없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그가 저렇게 큰 소리를 치는 것으로 봐서 무엇인가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했지만..

선뜻 이 방문을 열고 나가 그를 만나러 가기가 무서웠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목재의 문이 두려운 듯 뒷걸음치며 떨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아아아아아아아!!]

고통에 찬 그의 소리가 다시 문틈 사이로 흘러 들어와 그녀의 귀에 닿았다.

그녀는 그 소리에 눈앞이 새빨갛게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방안 구석에 세워진 쇠 파이프 다발 중 하나를 뽑아 세차게 문을 열고

달려 나가 베란다의 문을 연 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거침없이 고개와 몸을 돌려 탐색했다.

어서 빨리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몹시 촉박해 보였다.

그녀는 다시 소리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귀를 기울여 그의 소리가 귀에 닿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그의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귀에 명백하게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 무엇인가를 질질 끄는듯한 소리였다.

그녀는 그 소리에 집중해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고 그쪽에 눈을 부릅뜬 채 쇠 파이프를 강하게 잡은 채 겨눴다.

시야에 포착된 땅을 기는듯한 사람의 인영..

그녀는 처음에 그것이 좀비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점차 그것이 가까워짐에 따라 그것이 좀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존재는 그녀를 발견한 것인지 아까보다 더욱더 거세게 상체를 움직이며 그녀를 향해 빠르게 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는 거북이의 걸음만큼이나 몹시 느렸다.

"아....!"

그녀는 쇠 파이프를 바닥에 떨어트리고는 천천히 그 존재에게 걸어나갔고 이내 달리다시피 그쪽으로 다가갔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 짐에 따라 그 존재의 얼굴이 확실하게 보였다.

그 존재는 다름 아닌 '그'였다.

"무슨일.. 무슨 일인 거야!?

그녀는 무릎을 꿇은 뒤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몰골을 보며 외쳤다.

얼굴 반쪽은 상처와 흙투성이에 오른쪽 팔은 힘을 잃은 듯 제멋대로 덜렁이고 있었고 곳곳에 상처와 피가 묻어 있었다.

다리 쪽도 상태를 보니 제대로 된 상태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걱정되는 그의 상태를 살피면서도 주위를 경계했다.

그가 터무니없이 강하다는 사실을 그녀는 직접 목격했기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이 정도 만신 상태가 될 정도의 적이라면 당연히 경계를 안 할 수가 없었었다.

하지만..

"이거 먹어!"

그는 불안한 동작으로 등에 맨 가방에서 멀쩡한 한 손을 이용해 힘들게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고 내밀어진 그것에 그녀는 시선을 보냈다.

알파벳이 그려진 싸구려 초콜릿이 든 봉지였다.

갑작스럽게 그것을 내민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그녀는 다음에 오는 그의 말에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는 단 거 먹으면 기운 나는 거지? 이거 먹고.. 기운 내! 히히!"

만신창이 상태임에도 그는 웃으며 싸구려 초콜릿을 다시 한번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이렇게 된 원인을..

그녀는 아파트를 둘러봤다.

활짝 열려있는 베란다의 창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연 것이 그라는 것은 너무나도 쉽게 추측할 수 있었고 그가 내밀고 있는 싸구려 초콜릿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닫자 그녀의 눈에서 왈칵하고 눈물이 쏟아졌다.

"병신..."

그녀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병신같은년병신같은년병신같은년병신같은년.. 윤미미 이 병신같은년아아아아!!"

그녀는 절규하듯 자신의 욕을 거침없이 하늘을 향해 내뱉었다.

그와 함께 흐르는 눈물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속으로 자신을 저주하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어째서 그를 두려워할 일이 없다고 장담을 할 수가 없었을까?

왜 그를 두려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그 남자와 그는 이렇게 다른데..

자신이 농담으로 던진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천진난만한 그를

싸구려 초콜릿 한 봉지를 자신에게 건네주기 위해   노력한 그를

처절한 몰골을 하면서도 웃고 있는 불쌍하고 바보 같은 그를

그리고..

이렇게도 사랑스럽다고 생각되는 그를..

그녀는 웃으며 초콜릿을 내밀고 있는 그의 등에 손을 두른 채 꽈악 하고 껴안았다.

땀을 잔뜩 흘린 탓에 그녀의 가슴에 축축한 느낌과 함께 땀 냄새가 났다.

하지만.. 남자의 역한 땀내와는 달랐다.

그에게서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바다 냄새가 났다.

추운 날씨에 노출되어 차가워진 몸도 몹시 따뜻하고 안정감을 가지게 해줬다.

"미안..미안해..미안해...흐윽.. 미안..미안.. 믿지 않아서 미안해.."

그녀는 울먹이며 사과했다.

그를 믿지 않은 자신을.. 그를 믿는 자신을 믿지 않은 자신을 떠올리며 사과했다.

"미안해..겁쟁이라서 미안해.."

한 발.. 딱 한 발만 내디뎠으면 됐는데도 내딛지 못한 겁쟁이인 자신을 떠올리며 사과

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이렇게 다쳐서 미안해..."

자신을 위해 노력한 끝에 이런 처참한 꼴이 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그녀의 사과를 조용히 들었다.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님처럼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그녀의 사과를 끝까지 한마디도 놓

치지 않고 들었다.

"괜찮아. 웃어 준다면 팔다리쯤은 줄게. 원한다면 눈도 코도 입도 이도 머리카락도 피부도 근육도 뼈도 피도.. 내가 줄 수 있는 건 다 줄게. 그러니까 웃어줘"

그녀의 고해성사가 끝나자 그는 조용히.. 평소와는 다른 아주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 말은 흡사 프로포즈의 대사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그의 몸을 살짝 때어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평소와 다름없이 밝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울었다.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 기세로 펑펑 울었다.

때를 쓰는 아이와 같이 엉엉 울었다.

자신 안의 수분을 다 내뱉어내려는 듯 세차게 울었다.

"흐아앙! 나..쁜..놈 흐윽.! 이런 상황에.. 그런 식으로... 흑! 그런 말을.. 흐극!

반칙이..잖아! 나쁜 놈..! 흑! 나쁜 놈..!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이마로 그의 가슴을 약하게 몇 번씩 부딪치며 그

를 매도했다.

그리고 이마를 부딪치는 것을 멈추고는 그대로 그의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꽉 하고

강하게 얼굴을 묻었다.

"이러면..반할수밖에 없잖아.."

그녀는 그의 심장과 자신만이 들릴 정도의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에는.. 방긋!

다들 뭐할지 아시겠죠?

끼히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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