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 / 0269 ----------------------------------------------
Ep 1 일상
아지트로 돌아온 그는 그녀의 모습을 찾았다.
거실에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방앞으로 다가가 작게 문을 두드렸다.
똑 똑 하고 목재를 두드리는 소리가 흘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안에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문을 열기 위해 문 손잡이에 손을 가져가려고 했지만 피투성이가 된 자신을 손을 보고 그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조용히 붉게 물든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눈앞에 가져갔다.
지금의 이 상태라면 그녀가 무서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아까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낌새를 보였던 것이 생각났다.
그 순간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놀란 그가 가슴에 손을 대려고 했지만 이미 그 고통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는 방금 전의 고통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지금의 상태로 그녀와 마주 보는 것은 안될 것 같다고 판단하였기에 욕실로 향했다.
욕조에 담긴 차가운 물로 몸에 뛴 피들을 모두 배수구로 흘려보낸 그는 마른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은 뒤 옷을 갈아입고 다시 그녀의 방문 앞에 섰다.
문을 그냥 열어 확인해 볼까도 생각해봤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는 다시 한번 문을 작게 두드렸다.
그러자 다행히 이번에는 방 안에서 그녀의 소리가 들려왔다.
[응......]
평소의 그녀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나약하고 패기 없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미미쨔응? 들어가도 돼?"
그는 문틈에 얼굴을 가져다 댄 채 방안의 그녀에게 물었다.
[미안.. 잠시만 혼자 있게 해줘..]
거절의 말에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방문의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석상처럼 서있던 거는 고개를 들어 올린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너무 늦게 와서 화났어?"
[아니야.. 나 아직 처녀니까.. 하하..]
그녀는 자조하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럼.. 내가 사람을 많이 죽여서.. 무서워?"
그는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지금은 길고 하얀 깨끗한 손이 보였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손에는 십수 명의 피
로 더럽혀져 있었다.
그에게 있어 적대자에 대한 살인은 아무런 감흥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정당방위
의 행동이었지만.. 살인이라고 하는 일은 여러 종교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일중 하나라
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는 혹시나 그녀가 자신을 거절하는 이유가 이것이 아닌가 추측했
다.
하지만..
[아니야 이런 세상인데 나쁜 놈들은 죽어도 싸. 나도 그런 인간들 몇을 죽인 적도 있고..]
자신을 노리는 무뢰한들에게 살아남기 위해 그녀도 몇 명을 죽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의 노리개가 되거나 그대로 목숨을 잃거나 하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였다.
첫 살인 후에는 위에 있는 걸 게워내고 악몽을 꾸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버티고 이겨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살인은 저항은 있었지만 첫 살인만큼이나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이런 미쳐버린 세상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이건 내 개인적 문제야. 너는 나쁜 거 하나도 없어.. 이런 일이 벌어질뻔한
것도 내가 멍청해서 그런 것뿐이고.. 너는 아무것도 나쁘지 않아..]
"그럼 어째서...."
어째서 나오지 않는 거야?라고 물으려던 그였지만 그 이후 들리는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 했다.
[흐윽.. 미안.. 정말 미안 며칠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줘.. 흐윽..! 이런 모
습..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부탁해.. 부탁할게]
그녀는 흐느끼며 울먹이는 소리가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 문을 부수고 안에 들어가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들어가서 어떤 위로를 해줘야 할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어째서 자신 혼자 슬퍼하며 괴로워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고..그녀의 심정이 어떤지 조차 감정이 결핍된.. 괴물인 자신에게 있어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
그
렇기에 그는 문을 비틀어 열려고 하던 충동적인 행동을 자제한 채 조용히 그녀의 방앞에서 등을 돌렸다.
"응.. 그럼 나는 내방에서 쉬고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불러야 돼? 히히히"
그는 마지막으로 평소와 같은.. 하지만 어딘가 힘없고 맥없어 보이는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방에 돌아가려고 했지만 못내 아쉬운 듯 한 발자국을 걸을 때마다 뒤를 돌아 목재문 한 장 사이에 있을 그녀를 바라보듯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는 행위를 반복하며 방에 도착할 때까지도 미동하지 않은 그녀의 방문을 바라보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다이빙했다.
평소라면 기분 좋을 침대의 쿠션이 오늘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 귀를 기울이며 그녀가 언제 문 밖으로 나올지 한참 동안 귀를 기울였지만.. 일자가 넘어가는 시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도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그의 식사 권유도 거절한 채 그저 방에 틀어박혀 숨소리와 가끔씩 흐느끼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식사 문제는 그렇다 쳐도 다른 생리현상도 있기에.. 그는 아예 자신이 집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정원에 나가 있기로 한 것.. 그리고 그것을 그녀에게 전 한 뒤 창고에서 2인용 텐트를 꺼내 정원에 설치한 뒤 그 안에 들어가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평소라면 좀비들을 타고 놀거나 술래잡기를 하거나 아니면 웃음소리를 흘리며 단지 내를 뛰어다니거나 하는 기행을 펼칠 그였지만 그녀가 없는 상태에서 그 행동들을 해봤자 아무런 감흥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귀를 기울여 그녀가 언제 와 같이 '미친 도라이' 혹은 '미도' 그것도 아니
면 '야' 라고 불러주기를 기다리며 초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그는 기다렸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다지 두껍지 않은 모포 한 장으로 텐트 안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무리 건강하고 튼튼한 그래도 이런 날씨에 텐트.. 그것도 모포 한 장으로 자는 것은 컨디션을 망가트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가 아니었다면 자칫해서 동사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해가 떨어진 11월의 날씨는 매우 매서웠다.
평소와 다르게 몸이 무거움을 느끼며 그는 몸을 일으켜 식사를 하기 위해 비상식량에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그녀가 먹지 않는데 자신이 먹어봤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그렇기에 그는 그것을 그만두고 조용히 텐트의 중앙에 앉아 귀를 기울이며 그녀가 말을 걸어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잠깐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와 화들짝하고 놀란 그였지만 화장실에 가기 위해 나왔던 것인지 그 이상의 행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3일째의 날..
두꺼운 모포를 덥고 잔 탓에 정상 컨디션은 아니지만 어제와 비교해 매우 몸이 좋아졌다.
컨디션이 나빴던 탓에 계속 조느라 귀를 기울이는 작업을 지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컨디션을 되돌리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날 역시 그는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둥글게 만 채 그저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
그러면서 문뜩 지금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원래대로라면 그녀의 옆에서 웃고 떠들었어야 할 자신..
괴물이면서도 감정을 표출해내는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동시에 과거의 감정이 없던 괴물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비교했다.
당연하게도 그는 과거보다 그녀를 만난 뒤의 자신이 더 좋다고 생각됐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이대로 방에서 나오지 않은 채 영원히 그녀를 볼 수 없게 된다면..
자신은 다시 그때 그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으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 순간 그의 가슴속에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이 소용돌이쳤다.
심장을 쥐어짜는듯한 감각..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키보다 낮은 텐트의 높이 탓에 그는 텐트의 천장과 부딪쳤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것에 신경 쓸 새도 없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심장은 미칠 듯이 박동수를 올리며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그는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이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심장이 있는 가슴을 움켜잡은 채 텐트 밖으로 나와 어두운 아지트의 안.. 정확하게는 그녀의 방문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본 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기운을 차리고 다시 한번 웃으며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기운을 차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당연히 그녀의 기운을 차리게 할 수 있는 말도 그녀의 감정과 공감해줄 수 있는 감정도 가지지 않은 그가 할 수 없는 일들은 바로 배제 시켜버렸다.
그렇기에 그녀를 기운차리 게 할 수 있는 감정적 방법을 배제한다면 물질적 방법 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그녀에게 건네주면 그녀는 기운을 차리고 좋아할 것인가?
그녀와의 추억을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보존하고 있는 그는 과거의 기억들을 찾았다.
그가 만들어줬던 수제 물건들에 시작해서 그녀의 사이즈에 거진 딱 맞는 옷들 다른 집에서 찾은 그녀 취향의 가구나 소도구들 그녀가 좋아했던 영화나 노래.. 그리고 그녀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
"음식... 케이크.. 초콜릿..
그는 하나의 기억에 초점을 맞췄다.
그가 베란다를 올라 3층까지의 집안들을 뒤지던 때에.. 반쯤 녹은 초콜릿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녹기는 했지만 유통기한 상 아직 기한이 남아있었기에 그는 그것을 그녀에게 건넸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고 펄쩍 뛰며 기뻐했고 그것을 먹은 뒤에는 더욱더 기분이 좋은 듯 입가를 반달 모양으로 만들 정도였다.
그도 조금 받아서 먹어봤다.
맛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녀가 환하게 미소를 지을 만큼 맛있다고 생각됐지는 않기에 그것에 대해 그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여자는 대체적으로 케이크나 초콜릿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거야!
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녀도 사실 반 농담으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아무것
도 없는 지금 상황에서 그는 그 반농담이었던 그녀의 그 한마디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참고로 말하자면 최초로 짰던 플룻에서는.. 지금거랑 비슷한데..
미도가 늦어서 이미 엉망진창 당한 상태고 그거에 못견뎌서 미미가 미도 보는앞에서 자살하고 그것때문에 마음이 박살난 미도가 태양교 애들 전부 잔인하게 죽이기 위해 떠나는 미친 복수귀의 이야기를 예정하고 있었는데 계속 수정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여러분 멘탈이 터지는걸 볼수도 있었을텐데.. 히히히히히히!
p.s
쿠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