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 / 0269 ----------------------------------------------
Ep 1 일상
무덥고 타는듯한 더위가 지나..
쾌적한 온도로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가을이 찾아왔다.
9월 중순인지라 태양이 한창 하늘 한가운데서 내리쬐는 시간은 여름이 고개를 살짝 내민 듯 조금 더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쨍쨍하게 내리쬐며 그와 그녀를 괴롭히던 한여름의 날씨와 비교하면 쾌적하고 선선한 편이었다.
그런 쾌적한 날씨를 즐기며 그와 그녀는 야외정원에서 평소보다 조금 늦은 점심을 즐기는 한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벌써 먹고 쉬거나 시간을 때우거나 하는 시간일 테지만..
어제저녁차 안에서 본 영화의 탓에 아침이 돼서야 잠들 수 있었다.
"역시.. 반 X의 제왕 3부작 몰아보기는 무리수였던 것 같아."
그녀는 수면부족으로 인해 다크서클이 생긴 눈가를 비비며 중얼거렸다.
뭔가의 객기로 시리즈는 한 번에 몰아봐야지!라고 주장한 그녀에 의해 편당 3시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를 3편.. 총 9시간을 내리 감상하는 상태가 됐다
1부까지는 한번 봤음에도 오랜만에 본 탓에 신선한 재미를 느끼면서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2부의 중반까지도 나름 재밌게 본 그녀였지만.. 후반으로 넘어가면서부터 몰려오는 졸음 탓에 영화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자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그녀를 강렬하게 유혹 했지만.. 옆에 있는 그가 별달리 졸려 하지 않은 모습으로 초롱 초롱 눈을 빛내며 영화를 보고 있었기에.. 자신이 먼저 꺼낸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포기 선언을 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꼴사납다고 생각한 그녀는 영화가 끝나는 새벽 5시가 넘어서야 거의 반 본능적으로 자신의 방에 돌아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영화 재밌었어! 히히히!"
똑같이 9시간의 영화를 감상하고 같은 시간에 잤음에도 분명한 그는 그녀와는 다르게 평소보다는 조금 지쳐 보이는 기색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녀와 비교하면 정말 쌩쌩한 상태로 보였다.
"똑같이 보고 똑같이 자고 똑같이 일어났는데.. 왜 이리 차이가 많이 나는 거야..?
자신과 그의 상태를 비교하며 오늘 갓 수확한 경수채를 입에 넣으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맛있네~ 경수채~"
신선한 야채의 풍미에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접시 위의 경수채를 집어 입가에 넣고 음미하듯 씹었다.
"응! 맛있네! 히히히!"
그녀를 따라 그도 경수채를 입에 넣은 채 싱글벙글 웃었다.
대부분의 식사를 보존 식량으로 때우는 그와 그녀에게 있어 물로 한번 세척하기만 한 신선한 야채는 질려가는 미각에 새로운 활력소 일깨워 주는 존재였다.
"오늘따라 밥도 맛있고 야채도 맛있네! 식욕과 예술의 계절이라 그런가?"
경수채를 씹어 삼키며 그녀는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식욕과 예술의 계절?"
그는 생소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보통 이 계절이라면 야외 바비큐 파티라던가 사생대회라던가 먹거나 그리거나 하는 행사가 많거든."
그녀는 경수채를 마른오징어 씹듯이 질겅질겅 씹으며 이 계절의 주 이벤트 중 몇 개를 그에게 설명했다.
이벤트들의 개요를 차례차례 듣던 그의 표정이 점점 활기를 띠어가더니 이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코가 닿을 거리까지 자신의 얼굴을 들 이 됐고 그의 초롱초롱한 눈과 그녀의 동그랗게 떠진 눈이 마주쳤다.
"나도 할래! 바비큐랑 사생대회!"
"어..? 어... 응.."
그녀는 영혼 없는 대답과 함께 그의 시선을 피하듯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미미쨔응?"
그녀의 태도가 명백하게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그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바비큐랑 사생대회 말이지.."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저은 뒤 작은 헛기침과 함께 그에게서 멀어진 뒤 태연한 척 말을 이었다.
"둘다 하는 건 좋은데... 바비큐는 구워 먹을만한 게 없잖아?"
현재 그와 그녀들의 식량이라고 해봤자 텃밭에 키우는 경수채 와 다섯 가지 종류의 보존 식량 아주 가끔 먹는 라면 그리고 커피와 비타민 영양제 정도뿐이었다.
당연히 그중에 바비큐로 해 먹을 수 있는 물건은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상태에서 고기 구하는 건 힘들 것 같고.."
가공된 고기라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점에서 몇 개월이 지났기에 전부 전멸됐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직접 사냥해서 고기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이 콘크리트 정글에서 구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하면.. 쥐나 비둘기 혹은 개나 고양이 정도였다.
다만 예전의 굶주림에 죽을 것 같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거의 비슷한 메뉴라고는 하지만 삼시 세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굳이 그 고기들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고기 구할 수 있어!"
"쥐 비둘기 개 고양이가 그 고기에 포함되어 있는 건 아니지..?"
"아니야! 히히히!"
그녀의 생각으로 그 고기 이외의 고기는 상상이 안됐다.
안됐지만.. 그라면 뭔가 이상한 걸 잡아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무슨 고기야..?"
결국 대답을 찾지 못한 그녀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그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히히히! 비밀!"
굉장히 불안해지는 대답이었다.
그녀도 고기는 먹고 싶기는 하지만.. 도대체 이 기묘한 그가 가져올 고기의 정체를 모르니 불안감만이 앞섰다.
"히히히! 그럼 준비해올게!!"
그는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라 단숨에 베란다에 연결된 사다리를 타고 아지트 안으로 훌쩍 뛰어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백팩을 하나 맨 채 아지트 안에서 그대로 도약해 지면에 착지한 뒤..
"그럼 다녀올게! 미미쨔응은 집에 들어가 있어! 히히히히히!"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등에 맨 백팩을 덜렁거리며 달려 나갔다.
"야!? 잠깐만! 무슨 고기인지는 알려주고 가!?
순식간에 준비하여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히히히!라는 그의 웃음소리뿐이었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머릿속에 맴도는 고기의 정체를 추리하며 아지트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몸을 눕혔다.
"도대체 무슨 고기일까? 분명.. 저 녀석이니까. 상상도 못하는 걸 가져올 것 같은데.. 혹시! 악어 고기라던가는 아니겠지!?"
라고 입으로 내뱉은 그녀였지만..
이내.. 아무리 그 라도 그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설마.. 좀비 고기는 아니겠지.."
그가 평소에 좀비를 이용한 기행을 펼치는 것을 보면.. 왠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미 한번 먹어봤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자.. 그가 가져올 고기에 대패 공포심이 솟아올랐다.
그렇게 정체불명의 고기에 대한 상상에 공포를 안은 채 약 1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저 멀리에서 그의 요란스러운 웃음소리와 아스팔트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왔나!"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느낀 그녀는 조용히 소파에서 일어나 베란다 앞으로 다가갔다.
"미미쨔응~!"
그녀가 베란다에 나온 것을 발견했는지 그는 힘차게 한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그렇게 달렸음에도 규칙적인 숨을 내쉬던 그는 떠났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검은색 봉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고기 가져왔어! 히히히!"
그는 검은 봉지를 들어 올리며 씩 하고 웃었다.
아마 그 안에 든 것이 정체불명에 싸인 고기인 모양이었다.
봉지에 시선을 주며 그녀는 꿀꺽하고 바싹 마른 목구멍으로 침을 삼켰다.
"일단 물어보는데.. 그거 좀비.. 고기는 아니지?"
"좀비고기는 썩은 거니까 먹으면 배탈 나! 썩지 않은 거라면 모를까!"
"하아... 좀비 고기는 아니구나."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다가 문뜩 그의 뒷말이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생각됐다.
썩은 거는 먹으면 배탈 나지만.. 안 썩은 거면 괜찮다는 그의 말에 대해서였다.
썩지 않은 좀비 고기.. 그러니까 즉 그것은
"너 설마 그거 인육은 아니지!?"
"히히히히!"
그녀의 말에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봉지의 입구를 열어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주섬주섬 꺼내려고 했다.
"야!? 웃지 말고 대답해봐! 그거 인육 아니지? 진짜로 인육 아니지!?"
"히히히히히히!"
라고 그는 미친 듯이 웃으며 봉지에서 정체불명의 고기를 휙 하고 꺼내 그녀가 잘 보이는 각도로 올렸다.
".....토끼?"
설마 인육인가!?라고 경악한 그녀였지만 막상 나온 것의 정체를 알자 바람 빠진 풍선 마냥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응! 토끼!"
"그런가.. 토끼인가."
인육이나 좀비육이 아닌 것은 다행이었지만 뭐라고 말할까..
분명 그이기에 좀 더 요란한 고기나 상식을 뛰어넘는 무엇인가를 가져올 줄 알았지만..
그가 가져온 것은 토끼.. 그녀도 뒤늦게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같은 데서 자주 키우는 동물 중 하나이기도 했으
니 도시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동물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너무 평범한 것을 가져와서 맥이 빠졌다고 할 수 있었다.
"평범하네."
그녀는 마음속에 느낀 그대로를 입에 담았다.
"히!?"
평범하다는 그녀의 한마디에 어딘가 충격을 받은 듯 굳어진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이내 토끼고기를 봉지
에 다시 넣어 바닥에 두고는 잽싸게 아이템 박스로 달려갔다.
꺼낸 것은 그가 애용하는 무기.. 고기를 두드리는 쇠망치와 회칼이었다.
"히히히히히!"
"잠깐!? 그거 들고 어디 가는 거야!?
그녀는 허겁지겁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달려가려는 그를 등 뒤에서부터 껴안듯이 포박하여 움직임을 멈췄다.
"고기! 평범하지 않은 고기 잡아올게!"
"무슨고기? 무슨 고기인데! 설마 인육이냐!?"
"Human Meat!"
"영어로 말하면 내가 모를 줄 아냐!? 그 정도 영어는 나도 알아들어먹거든!? 내가 잘못했어! 넌 절대로 평범하지 않아!랄까.. 이런 걸로 이상하게 반응하는 거 자체가 평범하지 않으니까! 잡아온 토끼고기 맛있게 구워 먹자!"
내버려 뒀다가는 정말로 어딘가에서 인육을 썰어 올 것 같은 그를 겨우 설득하고 만류할 수 있었던 그녀는.. 두 번 다시 그에게 평범하다는 말은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그는 잡아온 토끼 4마리의 목을 따 피를 빼거나 고기에 악취를 풍기게 하는 원인인 취선을 제거 하는 등의 손질을 깔끔하게 마무리 한 뒤 그것을 후추와 소금 등의 향신료를 뿌린 뒤 서늘한 그늘에 재워뒀다.
"고기는 준비됐고.. 야채는 경수체를 사용하면 되겠고.. 남은 건..
그녀는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긴 뒤 얼마 후 탁! 하고 손바닥을 쳤다.
"술! 역시 바비큐 파티에는 술이 빠질 수가 없지."
"미미쨔응은 술 좋아해?"
"좋아한다기보다는 잘 마시지! 우리 과 애들한테 술 마시자고 하면 도망가기 바쁠 정도였어. 후후후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말했다.
"보드카 있는데 마실 거야?
"마실래!"
그녀는 힘차게 손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그럼 찾아둘게! 히히히!"
그는 창고 집(옆집) 어딘가에 있는 보드카를 찾기 위해 아지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때의 그는 알 수 없었다.
설마 그녀의 주사가 그렇게나 민폐스러운 것일줄을 그는 꿈에도 몰랐다.
============================ 작품 후기 ============================
소설 후유증인지.. 최근들어 아무생각어 있다가 웃을떄 히히히 하고 웃고있는걸 보고 소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