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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 일상
그와 그녀가 동거를 시작한 지 14일째의 아침
"흐아아아암~"
아지트의 거실 소파 위에서 하품을 씹어 삼킨 그녀는 테이블 위에 있는 커피가 든 머그잔을 들어 올려 조용히 입술을 적셨다.
커피 특유의 씁쓸한 맛이 미각을 자극한 탓에 밀려오던 수면의 욕구가 조금은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느긋하게 방안을 둘러본다.
1주일 전까지만 해도 휑했던 집안은 여러 가지 가구들이 배치되어 사람 사는 모습으로 탈바꿈화되어 있었다.
대부분이 상가 지하 2층의 가구점에서 좀비들의 무리를 뚫고 가져온 물건들이었다.
사실 뚫었다기보다는 그가 구석에 박아두고 그 사이에 둘이서 잽싸게 운반하는 작업의 반복이었지만 말이다.
"평화롭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몇 주 전까지 목숨을 걸어 식량을 구한다거나 좀비와 남자들을 피해 숨을 죽인 채 살아갔던 것이 거짓말이나 혹은 꿈속의 일이 아닐까 하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컵을 든 채 조용히 베란다로 향하며 아침햇살을 몸으로 느끼며 다시 한번 커피잔은 입가로 옮겼다.
"진짜 평화롭네.."
잔에서 입을 땐 그녀는 다시 한번 평화로움에 취한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때..
[그 어어어 어어 어어어!]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먼 소리가 아파트 단지 내에 울러퍼졌고 지면을 세차게 차는 분주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녀의 눈에 오른쪽 눈이 튀어나와 그것을 덜렁덜렁 흔들리며 아스팔트를 달리는 좀비를 볼 수 있었다.
그런 눈이 튀어나온 좀비의 등 뒤에는 그가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평소와는 다른 점을 꼽자면 지게를 연상케하는 모양의 도구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독서를 하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자세히 보면 좀비의 어깨에 끈처럼 보이는 물건과 등 뒤의 지게가 연결된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참고로 말해 저 지게는 그가 좀비에게 편하게 탑승하기 위해 직접 제작한 물건이었다.
어째서 그가 저런 물건을 떠올리고 제작했는가 하면.. 그 가 읽은 책의 내용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몸을 사용하는 활동적인 기행을 펼치는 일이 많아 모를 수도 있지만 해가 떨어진 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독서였다.
교과서에서부터 만화 소설 기술서 사전 잡지 등등 장르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읽어보지 않았던 것들은 닥치는 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읽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저 지게를 만들기 전에 그가 본 책은 고전 동화로.. 고려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늙은 부모를 지게에 태워 산속에 버리는 풍습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그 책을 읽은 그는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어디선가 재료들을 모아 오더니 따로 설계도를 그리거나 하는 일도 없이 톱과 망치 등을 이용해 제법 튼튼해 보이는 형태의 지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녀도 그 완성품을 뚝딱 만들어내는 그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단지 그 지게의 사용법이 참으로 기묘했다.
지게를 완성한 그는 지게를 가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더니 키 180에 덩치가 좀 있어 보이는 눈 하나가 덜렁거리는 좀비에게 그것을 장착시킨 뒤 그 뒤에 앉은 채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가 지게를 만든 이유는 좀비들을 자신의 탈것과 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가 그 좀비를 명명하길.. '자가용'
그 후 그는 간간이 자가용 좀비를 찾아 그것을 타고 아파트 단지 내를 드라이브(?) 하는 일상이 추가됐다.
처음에는 흔들린 탓에 그녀의 앞에서 내용물을 토해내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적응을 했는지 그 격한 흔들림 속에서도 안정된 자세로 앉아 독서를 즐길 정도의 좀비 자가용의 달인이 됐다.
좀비 자가용을 탄 채 집중하여 독서를 즐기는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뒤..
"평화롭네."
라고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이미 좀비를 자가용으로 사용한다는 기행은 그녀의 안에서는 일상이 된지 오래였다.
그녀는 자신들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아파트를 조용히 둘러보며 여유로운 동작으로 다시 커피를 마셨다.
그야말로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문구가 잘 어울리는 모습..
단지 그녀의 정면을 뛰어당기는 좀비 자가용과 그 뒤에 탄 채 독서를 하는 그의 모습을 뺀다면..이라는 전제가 들어가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던 그녀를 향해 자가용에서 내린 그가 쏜살같은 기세로 달려왔다.
"미미쨔응! 미미쨔응! 텃밭 키우자!"
달려온 그는 베란다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커피를 마시는 그녀에게 말했다.
"미미쨔응이라고 하지 마.. 그런데 텃밭이라고?"
"여기!"
베란다에서 대롱대롱 매달린 그는 곡예사처럼 단번에 베란다 위로 뛰어 올라간 뒤 그녀의 눈앞에 들고 있던 책을 활짝 펼쳤다.
"어디보자.. 도시인들의 작은 꿈 자신만의 텃밭 키우기.."
그 밑으로는 텃밭을 키우는 방법이나 경험담 등이 사진과 함께 써져 있었다.
"텃밭이라.. 괜찮지 않아?"
여태껏 그가 하려던 기행과 비교하면 굉장히 건전했고 지금이야 식량이 썩어날 만큼 있기에 걱정은 없지만 그것도 몇 년 후면 진짜로 썩어버리는 상황이 생기는 때가 올 것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식량은 자급자족으로 생상하는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 된다.
규모는 작지만 이 텃밭도 자급자족의 일환 중 하나로 생각하고 후일의 위한 경험도 될 테니 현재의 위치로도 미래의 위치적으로도 플러스 요인밖에는 없을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뭐 키울까? 상추? 고추? 뭐가 좋을까!?"
"그 이전에 씨앗은 어디서 구할 거야?
가장 중요한 씨앗이 없으면 키우고 싶어도 키울 수가 없기에 그녀는 물었다.
"상가에 꽃집 있어!
"이놈의 상가에는 없는 게 없네.. 혹시 미용실도 있어?"
"미용실도 있어!"
"진짜 없는 게 없네!"
그녀는 아파트 상가 만물설! 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감탄했다.
"같이 가자!"
"어디있는데?"
"지상 1층이니까 그 녀석들은 없어! 히히히!"
그의 말대로 상가에 있던 좀비들은 지하 2층에 전부 몰아넣었고 그 외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좀비들은 대부분 지하주차장에 밀어 넣은지라 지하로만 가지 않는다면 좀비라는 존재에게 안전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되는 편이었다.
"좋아 그럼 갈까!"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환호하며 베란다 위에서 뛰어내렸고 그녀는 아직 잔에 반쯤 남아있는 식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킨 뒤 빈 컵을 테이블 위에 적당하게 올려두고 그를 따라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한채 보도블록을 지나 상가의 건물 내로 들어갔다.
"미용실이 가까우니까 먼저 가자!"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잘 따라갈 테니까 그만 좀 잡아당겨라."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손을 잡은 채 이끄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용실 간판이라고 생각되는 알록달록한 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짜로 있네? 샴푸나 린스 있으려나.."
사용하던 여행용 샴푸와 린스가 아껴 썼음에도 양이 간당간당 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녀는 미용실의 투명 유리 부분에 얼굴을 가까이 댄 채 안을 살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행동이 무색하게도 그는 거리낌 없이 미용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무래도 자물쇠는 잠기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유리벽의 밀착한 얼굴을 조용히 때어 놓고는 어색한 헛기침을 흘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미용실은 그다지 크지 않은.. 기껏해야 4~5평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그녀가 다녔던 헤어숍과 비교하면 몹시 아담한 미용실이었다.
그럼에도 파마기나 세 발대 등 미용실에 필요한 기구들은 전부 존재하고 있었다.
미용실을 쭉 한번 둘러본 뒤 그녀는 자신의 목적인 샴푸와 린스를 찾기 위해 서랍장 등을 뒤지다 목적의 것은 아니지만 다른 물품을 찾을 수 있었다.
"탈색약이네?"
그녀는 모델이 샛노란 머리카락을 뽐내는 패키지 사진이 있는 상자를 확인하며 말했다.
"탈색약?"
그녀와 같이 샴푸와 린스를 찾던 그는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녀의 뒤에서 손에든 물건을 내려다봤다.
"이 누나가 그 칙칙한 머리카락을 환하게 바꿔 줄 테니까 잘 가지고 있어!"
그녀는 자신의 어깨너머로 내려다보나는 그에게 탈색 약음 내밀며 말했다.
얼떨결에 내밀어진 탈색 약음 받은 그는 그것을 이리저리 흟어 본 뒤 자신의 주머니에 쑤셔 넣은 뒤 원래의 목적인 샴푸와 린스를 찾기 위해 반대편의 서랍장을 뒤졌다.
"대용량으로 2개나 있잖아!"
목적의 물건을 발견한 그녀가 2개의 큰 통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여기에다 넣어가자! 히히히!"
그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구겨진 쇼핑백의 입구를 넓히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그녀는 대용량 샴푸와 린스 각각 2개 총 4개의 통을 쇼핑백에 담았다.
그 탓에 쇼핑백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이 빵빵해졌다.
"그럼 꽃집으로 가자!"
샴푸와 린스를 챙긴 뒤 다음 목적지인 꽃집으로 향했다.
꽃집은 상가의 끝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미용실에 도착했을 때 보다 좀 더 걸어 도착할 수 있었다.
"음산하네.."
꽃집에 도착하자마자 안을 본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원래대로라면 활짝 피어 아름답게 자신의 자태를 뽐냈어야 할 꽃들은 전부 시들고 말라비틀어져 그녀의 말대로 유독 음산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 죽음이 완만하게 퍼진 공간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앗! 씨앗! 씨앗!"
그러나 그는 그런 감성적인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거침없이 꽃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있다! 씨앗!"
그는 50x50x50 정도 되는 정사각형의 박스를 들고 나왔다.
안에든 패키지의 그림과 써져있는 문구로 봐서는 그가 원하던 씨앗인 모양이었다.
"씨앗말고도 필요한 건 없어?"
그녀는 얼핏 기억에 있는 지식들을 생각해내며 그에게 물었다.
"비료!"
힘차게 소리치며 그는 박스를 그녀의 앞에 내려두고는 다시 꽃집에 들어가 여기저기 들쑤시며 비료를 찾아 헤맸
다.
남겨진 그녀는 할 일도 없었기에 박스를 열어 안의 내용물들을 살폈다.
상자 안에 든 씨앗들의 종류는 가지 각각이었다.
먹을 수 있는 채소류는 물론이고 야생화 종류에서부터 허브의 종류까지 그야말로 여러 종류가 있었다.
"나팔꽃이네? 초등학교 때 키웠었는데.."
나팔꽃의 씨앗을 발견한 그녀는 어렸을 적 자신이 키웠던 나팔꽃을 생각해냈다.
꽃은 피었지만 결국 그녀가 개학 후 학교를 다니느라 까먹고 계속 물을 주지 않는 바람에 눈치챘을 때는 이미 말라죽어 있었다.
그녀는 나팔꽃의 씨앗을 들어 올려 뒤에 적힌 문구들을 꼼꼼히 읽어봤다.
"오랜만에 키워볼까.."
그녀는 씨앗이 든 봉지를 팔랑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포대 하나를 들고 쿵쾅거리며 그가 가게에서 뛰쳐나왔다.
"발견!"
목적의 비료를 발견한 것인지 무거워 보이는 비료포대를 높게 들어 올리며 외쳤다.
"혹시 안에 작은 화분 없어?"
"있어!"
그녀가 화분을 어째서 필요로 하는지 단 한마디도 묻지 않고 그는 포대를 내려두자마자 안으로 들어가 또다시 쿵쾅쿵쾅 시끄러운 소리를 낸 뒤 가게 밖으로 튀어나왔고 그의 손에는 겹쳐진 작은 화분 몇 개가 들려져 있었다.
"떙큐! 그럼 이제 집에 가자!"
그녀는 씨앗이 든 박스와 샴푸와 린스 가든 쇼핑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히히히! 뭘 키울까~ 뭘 키울까~"
무거워 보이는 비료 포대를 거뜬하게 들어 올리며 그는 콧노래를 흘리며 상가 밖으로 걸어나갔고 그 뒤에 바로 상자를 든 그녀가 뒤따라 나갔다.
"김치먹고싶으니까 배추는 어때?"
"김치볶음밥 있잖아?"
지하실에 쌓인 비상식량을 떠올리며 그가 말했다.
"그런 말라비틀어진 거 말고.. 좀 더 싱싱하고 아삭하게 잘 익은 김치.. 못해도 겉절이 정도는 먹고 싶어.
"히히히! 김치녀! 김치녀!"
"무슨 의도로 말했는지는 알지만 그거 욕이니까 한 번만 더하면 패버린다!
두 사람은 무거운 짐을 안은 채 투닥투닥 거리며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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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니까 연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