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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 일상
약 한 시간 뒤..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휑한 마루의 벽에 기댄 채 그가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면서 어느 정도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있는 그녀는 그가 또 무엇인가를 떠올리고 말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나간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그가 기묘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지면을 강하게 차는 발소리와 함께 베란다에서 그가 튀어 올라왔다.
"히히히히! 빨리 가자!"
역시나..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딜가자는거야?"
"상가 지하 2층에 가구 매장이 있어!"
"좀비들은? 안전한 거 맞아?"
그와는 다르게 그녀는 좀비에게 취약한 존재였다.
잘못해서 물리기라도 하면 그대로 끝..
좀비가 기피하는 그와는 달리 그녀는 좀비에게서 안전하지 않았기에 가구점이 있다는 확인보다도 안전에 대해 물었다.
"그녀석들이라면 내가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놨으니까! 그쪽으로 오기 전에 도망가면 돼!
"그것떄문에 한 시간이나 걸린 거였어?
어쩐지 너무 오래 걸린다 했네라고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빨리 가서 가구 고르자!"
그는 그녀가 대답할 새도 없이 그녀를 재촉하며 그녀의 손을 거침없이 잡고 끌어당겼다.
"자,잠깐! 알았어! 알았으니까 손 놔!"
그녀의 말에 그제야 손을 놓은 그는 웃으며 정글의 야생아를 방불케하는 요란한 움직임으로 베란다를 뛰어내려
간 뒤 그녀를 재촉하듯 격하게 손을 흔들었다.
"알았으니까! 그만 좀 보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극되는 모험심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그와 그녀는 아파트 상가 지하 2층에 존재하는 가구점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딛을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이곳까지 오면서 단 한 마리의 좀비와도 마주치지 않을 수가 있었다.
"진짜로 가구점이 있었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깔끔하게 문 유리가 없어져 더 이상 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가구점의 문이었던 곳을 바라봤다.
바닥에 셔터를 내릴 때 쓰는 쇠막대기가 널브러져 있는 것으로 봐서 문이 없어진 것이 그의 소행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빨리 골라서 가자!"
그는 가구점 안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말대로 언제 좀비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그녀도 서둘러 그의 뒤를 쫓았다.
가구점은 그녀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컸고 물품의 종류도 많았다.
평수로는 대략 4~50평이라고 추측되는 공간에 화장대나 책상 의자 같은 작은 것을 비롯해 옷장 책꽂이 장식장 같은 거대한 물건들이 열을 맞춰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간절히도 원하던 침대.. 그것도 여러 사이즈와 디자인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종류가 많네."
그녀는 여러 종류의 침대들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이거 어때? 크고 뛰어놀기에도 좋을 것 같아."
"침대는 방방이 아니거든? 애초에 그 큰 걸 어떻게 들고 가라는 거야.
그가 가리킨 것은 그의 방에 있는 침대보다 한 사이즈 더 큰 킹사이즈의 침대였다.
"이거 조립식 침대니까 매트리스만 어떻게든 옮기면 어렵지 않아!"
"진짜..?"
기억상실증인데 잘도 알고 있네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그녀는 고민했다.
그의 말대로 매트리스 정도라면 둘이서 어떻게든 옮기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고 이렇게 큰 침대에서 자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잘 생각해보니 비어있는 방 사이즈를 생각하면 이 침대 하나만으로 반 이상이 찰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좀 더 작은 걸로 하자."
방의 사이즈를 생각한 그녀는 가장 구석에 있는 싱글 사이즈의 침대를 가리켰다.
디자인도 무난하고 그녀 혼자 자기에는 딱 좋은 사이즈였다.
"이 사이즈 면 둘이서 못 자는데?
"너랑 침대에서 같이 안 자려고 이러고 있는 거잖아! 이거! 이거로 해."
"난 저게 좋은데.."
그는 킹사이즈에 시선을 주며 아쉬운 듯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이 몹시 단호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녀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다.
"근데 이거 어떻게 옮겨야 돼? 이것도 조립식이야?"
작은 장식장이나 화장대는 사본적이 있지만 이런 침대류는 자기가 직접 사본적이 없던 그녀이기에 그에게 물었다.
"이엔트.. 베이지 싱글 침대 상품번호 BGA34141238742 히히히 외웠다."
그는 명찰에 적힌 것을 조용히 읽어 내리고는 웃음을 흘리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가 향한 곳은 카운터라고 생각되는 곳의 옆에 달려있는 커다란 문이었다.
거침없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방금 전 말한 상품명과 번호를 중얼중얼 거리다가 '찾았다!' 라고 외치며 무엇인가를 질질 끄는 소리를 흘려냈다.
얼마 후 그는 싱글 매트리스와 커다란 박스 하나를 낑낑대며 끌고 밖으로 나왔다.
"이게 침대 틀 이게 매트리스!"
가지고 나온 각각의 물건을 두드리며 말했다.
"너 여기 직원이었어? 아니 그것보다 잘도 그 긴 암호를 외웠네.."
그녀는 그가 물건을 찾아온 것에도 놀라웠지만 10자리가 넘어가는 알파벳과 숫자의 배열을 한번 보고 바로 외웠다는 사실에 놀람과 동시에 감탄했다.
"히히히!"
칭찬을 받은 사실에 그는 기쁜 듯 웃고는 매트리스와 침대 틀이 든 골판지상자를 각각 들어 올렸다.
"미미쨔응은 매트리스를 들어! 내가 침대 틀을 들게."
"미미쨔응이라고 부르지 마
그의 이마를 찰싹하고 내리치며 그녀는 그가 말한 대로 매트리스를 들어 올렸다.
생각 외로 무겁지는 않았지만 부피가 부피인지라 안정적으로 들기가 조금 버거웠다.
매트리스와 씨름을 하며 어떻게든 가구점의 밖에까지 옮기는 것에 성공한 그녀는 곤두세웠던 귓가에 짐승의 울음소리를 닮은 그것들의 소리를 포착할 수 있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그 소리에 매트리스를 내려놓을 생각도 못하고 소리의 근원지에서 시선을 줬다.
비상등 외에의 불빛이 없어 어두운 지하 2층의 복도에 이쪽으로 향해 걸어오는 흉측한 시체들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서둘러야겠네! 히히히!"
"웃을떄가 아니라고!"
" 괜찮으니까 미미쨔응은 매트리스 들고 빨리 계단 올라가!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히히히!"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매트리스를 들고 있는 그녀의 등을 천천히 밀어 가구점 바로 앞에 있는 계단 쪽으로 유도했다.
"진짜로 괜찮은 거야..?
"응! 괜찮으니까 빨리 올라가! 조금 있으면 좀비들이 미미쨔응한테 반응할 거야.
그는 침대 틀이 든 상자를 가구점 안으로 밀어 넣은 뒤 가구점의 문을 깨버린 쇠막대기를 들어 올렸다.
"물려죽으면 시체가 돼서도 원망할 거니까! 그리고 미미쨔응이라고 하지 마!
그녀는 부피가 큰 매트리스를 든 채 아슬아슬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하나씩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가 반쯤 계단을 올랐을 때..
[그어어어어어어!]
먹이를 발견한 짐승들의.. 좀비들의 포효가 지하 2층에 울려 퍼졌다.
먹이에 굶주린 시체들은 신선한 먹이를 포착하고 계단을 오르는 그녀를 탐하기 위해 계단의 근처로 몰려왔고 가장 선두에 선 좀비가 계단을 기어오르려고 했다.
"이히히히히히!"
하지만 그가 쇠막대기로 머리를 내리친 탓에 움직이는 시체는 움직이지 않는 시체로 변모했다.
"진짜 괜찮은 거지!?
뒤에서 머리가 박살 나는 소리를 들은 그녀는 매트리스 탓에 뒤를 돌아보지 못하는 불안감에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응! 응! 이 녀석들 이런 높은 계단은 잘 못 올라가니까. 문제없어~ 아 한 마리 놓쳤다."
"이 미친 도라이새끼야!!"
한 마리를 놓쳤다는 소리에 그녀는 매트리스를 들고 있어 불안한 상태에서 온 힘을 다해 계단을 뛰듯이 올라갔다.
"이히히히히! 거짓말이야!!"
콰직!
뼈와 고기를 부수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한 마리를 시체로 만들며 그가 외쳤다.
"너! 두고 보자!!
지하 1층의 계단 위에서 그녀는 분노를 담아 외치며 계단을 올랐다.
"히히히히!"
그리고 또다시 계단을 오르려는 좀비의 머리를 정확하게 박살낸 그는 그녀가 1층에 올라간 것을 확인하고 쇠막대기를 계단의 난간에 걸쳤다.
"5.4.3.2.1!! "
그가 계단을 오르려는 좀비들을 향해 손가락을 하나씩 내리며 카운터를 샜다.
그리고 마지막 손가락이 접히는 순간.. 계단을 악착같이 오르려던 좀비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그어어어어어어어!]
좀비들은 울부짖으며 방금 전과는 반대로 계단에서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여러 마리의 좀비가 모여있던 탓에 그들은 팔이나 다리가 여기저기에 얽혀 하나의 덩어리 같은 모습이 됐다.
그 얽힌 상태에서도 계단에서 멀어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 모습이 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히히히히!"
그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배를 잡고 얼마 동안 웃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뛰어내려 가구점 안으로 들
어가 방금 전 자신이 밀어 넣은 상자를 들고 나왔다.
"여기서 자면 감기 걸린다? 히히히히!"
아직까지도 얽힌 채 꿈틀꿈틀 되는 좀비들을 향해 그런 농담을 건넨 그는 그대로 단숨에 계단을 올라가 지상으로 향했다.
박스를 든 채 상가를 벗어나 아지트의 입구까지 온 그였지만..
베란다 위에서 무표정을 한 그녀가 팔짱을 낀 채 자신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한테 할 말 없어?"
그녀는 차가운 눈과 마찬가지로 이른 여름의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은 몹시 차가운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들고 온 상자를 바닥에 내려두고 다시 한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 뒤 활짝 미소를 지었다.
"침대도 생겼으니까 같이 잘까?
"오케이 거기에 가만히 있어! 어제의 배빵에 이어 오늘은 죽방 날리는 법을 가르쳐주지! 자! 아가리 꽉 다물어라!"
거친 말을 내뱉으며 그녀는 그에 못지않게 대담한 움직임으로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 대로 죽방에 대해 몸으로 배울 수가 있었다.
이후에는 그녀에게 엄청나게 긴 설교와 잔소리를 듣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 사과의 한마디라는 것을 겨우 깨달은 그는 '죄송합니다; 라는 사과의 말을 그녀에게 건넴으로써..
"다시는 그런 거짓말은 하지 마!
라는 신신당부의 말과 함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화가 덜 풀린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였지만..
그가 잽싸게 침대를 조립하여 매트리스를 올려두고 거기에 추가로 모포와 베개까지 풀 세팅을 한 침대의 모습을 보여준 뒤에야 그녀의 화를 완전하게 풀 수 있었다.
"침대!"
그녀는 완성된 침대 위에 뛰어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매트리스의 푹신함을 즐겼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그는 조용히 그녀가 누운 자리의 작은 빈 공간에 억지로 몸을 눕혔다.
"넌 왜 올라와!?"
그녀가 침대 사이드에 누운 그를 발로 밀어내며 외쳤다.
하지만 그는 침대의 모서리를 붙잡은 채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버텨냈다.
"틀은 내가 가져왔으니까! 나한테도 누울 권리가 있잖아? 히히히!"
"뭔 말도 안 되는 논리야! 내려가! 미친 도라이야!
그와 그녀는 2명이 눕기에는 매우 좁은 싱글 침대 위에서 떨어트리기 위해 혹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수학의 공방전을 펼쳤고.. 결국 두 사람은 낮부터 저녁까지 노동 삼매경에 빠졌던 그 반동인 탓인지 누가 할 것도 없이 기절하듯 꿈나라로 실려갔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방금 전까지 격한 공방전을 펼쳤다고 생각되지 않는 매우 평온한 표정으로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여담..
그는 그녀의 잠버릇에 의해 발로 차이고 주먹으로 맞거나 팔꿈치로 명치를 가격 당하는 등의 강력한 공격들을 강제로 체험 당한 뒤 두 번 다시 그녀에게 같이 자자고 하는 소리는 때려죽어도 하지 않게 됐다.
============================ 작품 후기 ============================
끼요오오오오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