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 / 0269 ----------------------------------------------
Ep 1 일상
다음날 아침
"이 미친 도라이.."
아침 준비..라고 해봤자 끓는 냄비에 봉지를 넣는 것뿐인 작업을 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배를 쓸어내리며 그를 한번 째려보며 말했다.
어젯밤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간 자신을 쫓아온 그는 자신이 당했던 깔끔한 보디블로를 그녀에게 아무런 망설임 없이 꽂아 넣었다.
그녀도 차라리 그게 화풀이에 의한 복수였다면 퉁치는 마음으로 쿨하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확연하게 그의 모습은 이것을 하나의 놀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되레 화가 난 그녀는 다시 한번 그에게 배빵을 선사해주고 그는 고통에 찬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다시 그녀에게 배빵을 되돌려준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배빵 교환을 했다.
결국 그러다 한계를 맞이한 두 사람은 마룻바닥에 기절해 오늘 새벽에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고 배빵교환떄 배에 힘을 꽉 주고 있던 탓인지 그 후유증으로 근육통을 앓으며 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히히히히.. 읏!? 히히히히!"
마찬가지로 그 역시 웃고는 있지만 가끔씩 웃다가 움찔 거리며 배를 쓰다듬는 행동을 보이는 것을 보면 마찬가지로 근육통에 고생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야 미친 도라이! 집 청소 좀 하자."
그녀는 며칠 동안 식사 준비의 탓에 익숙해진 움직임으로 테이블과 식판을 세팅하며 말했다.
어제부로 이곳에 살기로 마음먹은 것은 좋았기는 하지만 문제는 제대로 된 자신의 거주구역이 없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그의 아지트는 그가 잠을 자는 침실은 매우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반면에 그 외의 곳은 난장판이었다.
그가 어디서 주워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마루에서부터 다른 방에까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사실상 거의 정원에서 지내다 싶이 하는 그에게 있어 잠을 자는 방 외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됐기에 다른 곳에는 그대로 물건들을 쌓아두었던 상태였다.
"보니까 쓸 때 없는 물건만 잔뜩 있던데 그거 그냥 다 버려버리면 안돼?"
"안돼!"
그녀의 말에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자전거는 좀 버리자.. 도대체 자전거를 왜 집안에 들여놓은 거야? 그것도 5대씩이나.."
사실 그 외에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 있었지만 다른 것은 백보 천보 양보한다고 쳐 실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치지만 자전거만큼은 실내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었기에 그것을 콕 집어 말했다.
"으음.."
과연 너무나도 정론인 말에 그도 단호하게 대답할 수 없는지 작은 신음을 흘리며 데워진 비상식량 2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진짜 집 좀 치우자. 이제 너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그녀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뜨거운 비상식량 2개의 입구를 잽싸게 뜯어서 그의 식판과 자신의 그릇에 부으며 말했다.
"그래도 버리기는 싫은데.."
식판 위에 쏟아진 볶음밥을 입에 옮긴 뒤 저작하며 그는 말끝을 흐렸다.
"집안이 물건으로 꽉 찼는데 답답하지도 않니?"
자신의 그릇에 담긴 카레를 한 숟가락 입에 털어넣으며 그녀는 그를 타이르는 듯이 말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흡사 십수 년을 함께 산 모자 지간을 연상케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물론 두 사람의 겉모습으로는 동년배의 또래지만 지금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는 모습은
방 청소를 하기 싫어하는 아들에게 방 청소를 시키려는 어머니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은 계속 손과 입을 움직이며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집 정리에 대한 토론을 계속 펼쳤고 각각의 그릇에 있는 음식이 사라졌음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버리는 게 싫은 거면.. 다른 데다가 옮겨두던가!"
결국 그녀가 평행선으로 진행되는 이 질긴 공방전에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거! 그거야! 버리는 게 싫으면 옮기면 되는구나! 미미쨔응 천재야!"
"미미쨔응이라고 부르지 마! 패버린다!
그녀는 그의 멱살을 잡은 채 강하게 흔들며 소리쳤지만 그는 아니나 다를까 상쾌한 얼굴로 기묘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녀가 제시한 비책.. 실제로는 비책이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애매하지만 어찌 됐든 그에게 있어 물건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매우 천재적인 발상이었다.
"빨리 옮기자! 히히히!"
그는 식사의 뒷정리도 잊은 채 허겁지겁 사다리를 타고 집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야! 이건 치우고 가야지!?"
뒤늦게 외쳐봤지만 이미 그는 우당탕거리며 날뛰는 중인지 듣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아.."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의 식판과 자신의 그릇을 정리한 뒤 그의 뒤를 따라가듯 사다리를 타고 거실로 올라가자 그녀와 엇갈리듯 그가 베란다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이히히히!"
바닥에 사뿐히 착지한 그는 사다리를 들고 후다닥 옆집의 베란다 쪽으로 이동하더니 사다리를 그 앞쪽에 두고 자신의 아지트에 올라가는 것처럼 잽싸게 베란다로 올라가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어어어어어어!]
베란다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그녀는 좀비 그 특유의 발성에 깜짝 놀라 몸이 굳어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집안의 구속에 세워뒀던 자신이 사용했던 쇠 파이프를 찾아 손에 들고 그를 구하기 위해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어어어어어!"
"이히히히히히히힛!"
베란다에서 얼굴이 반쯤 썩은 남자 좀비와 그런 좀비의 등 뒤를 떠미는 그의 모습이 포착됐고 등을 떠밀린 좀비는 비명과도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베란다에서 추락했다.
썩어 빠진 부위에부터 추락한 탓에 추적 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좀비의 살점이 바닥에 흩어졌지만 좀비는 그런 것을 상관도 하지 않은 채 기묘한 자세로 몸을 일으킨 뒤 오로지 정면만을 향해 나아갔다.
"달려라! 달려!"
뒤이어 그가 베란다에서 뛰어내렸고 소리를 내지르며 도망 가려는 좀비의 등을 찰싹찰싹하고 두드렸다.
"그어어어어어어어!"
등 뒤를 그에게 얻어맞은 좀비는 더욱더 거센소리를 내지르며 질주했고 그 뒤를 그는 집요하게 쫓아갔다.
그렇게 그와 좀비는 지하주차장의 쪽으로 사라져 그녀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시끄러운 웃음소리를 흘리며 지하주차장에서 그가 뛰쳐나와 그녀가 있는 베란다 쪽으로 전력질주했다.
"뭐해!?"
전속력으로 달렸음에도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그가 쇠 파이프를 양손에 든 채 굳어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제야 얼빠진 얼굴로 좀비와 그의 술래잡기를 지켜보고 있던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전했다.
"현관문 열어줘!"
그녀에게 그것을 전한 그는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옆집의 베란다로 들어갔다.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에서도 그녀는 그가 시키는 대로 체인이 걸린 현관문의 락들을 전부 해제한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반대쪽 집의 현관문을 활짝 연채 대기하고 있는 그가 그녀를 반겼다.
"우리집에있는 물건들을 여기로 옮기면 돼!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가 있는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겨 쭈뼛쭈뼛 거리며 안을 살폈다.
"좀비는 더 없는 거야?"
"없어! 아.. 근데 저 방에는 들어가지 마! 냄새나니까!"
그는 구석에 있는 방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세로로 끄덕이며 절대로 그 방 근처에는 가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깊게 다짐했다.
그 이후에는 단순 막노동 작업의 연속이었다.
원래의 집에 있던 짐들을 옆집에다가 옮기기만 하면 되는 단순 운반 작업이었다.
짐의 양이 이삿짐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양이기는 했지만 거리도 가깝고 무엇보다 그와 그녀 두 사람 다 체력이나 근력은 평균 이상을 웃돌았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단지.. 단순 작업에 흔히 따라오는 지루함이 남아있었기는 하지만..
짐을 옮기는 단순 작업 중에도 기묘한 행동을 하는 그의 행동에 웃거나 화내거나 하는 탓에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작업은 생각 이상으로 금방 끝날 수 있었다.
"원래 있던 가구들은 그냥 뒀어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작업이 끝난 것은 좋았지만 끝난 뒤의 집은 정말로 휑했다.
가전제품은 물론이거니와 가구라고 부를만한 물건들은 붙박이 가구 외에는 단 한 개도 남지 않아 있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먼지 정도뿐이었다.
그녀는 난잡했던 그 공간과 비교하자면 이쪽이 더 낫다고는 생각했지만 적어도 침대나 소파같이 누워 잘 수 있는 물건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옆집에 침대 있으려나.."
"있어! 근데 그 냄새나는 방에 있는데. 필요해?."
그의 말에 그녀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침대는 필요했지만 그 체취가 배긴 침대를 사용할 만큼 담력도 비위도 강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거절했다.
"적어도 매트리스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는데."
현재 그녀의 잠자리는 그의 방.. 정확히는 그의 방에 있는 침대 옆의 바닥이었다.
거기서 모포를 깔고 자고 있는 실정이지만 모포 한 장만으로는 잠지라가 몹시 불편했다.
물론 긴장과 공포에 떨며 잠들던 시절과 비교하면 천국이나 다름없기는 했지만..
인간이란 좀 더 좋은 편하고 살기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는 동물이었기에 그녀도 지금의 잠자리가 사치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좀 더 편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나랑 침대에서 같이 자면 안 돼?
그가 현재 애용하고 있는 침대는 퀸 사이즈로 슬림한 체형인 그와 그녀가 넉넉하게 누울 수 있는 크기였기에 그는 제안했다.
"당연히 안되지.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녀는 그것을 단칼에 거부했다.
그가 아무리 자신을 이성이나 성적인 눈으로 보지 않는다고는 해도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나는 같이 자도 괜찮은데! 히히히!"
"내가 안 괜찮거든!
그녀는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솔직히 같이 자도 상관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재빨리 부정했다.
결국 그녀의 잠자리에 대한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오게 됐다.
"일단 이 먼지 구덩이들을 청소하고 생각해보자."
그녀는 휑한 집에 굴러다니는 먼지와 묵은 때들을 가리킨 뒤 화장실에 미리 빼두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지
고와 그것을 그에게 내밀었다.
"너는 쓸어! 나는 걸래질을 할 테니까!
그녀는 바닥을 가리키며 그에게 명령했다.
그는 군말 없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받아들고는 난리 법석을 피우며 바닥을 쓸었다,
그 탓에 새하얗게 쌓인 먼지들일 허공에서 춤췄다.
"콜록! 콜록! 뭐 하는 거야!?
먼지를 뒤집어쓴 그녀는 세차게 기침을 하며 이 먼지 폭풍을 만든 장본인에게 외쳤다.
"닌자! 연막술!"
하지만 그는 웬일인지 그녀의 등 뒤에서 나타나 이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넌 초등학생이냐!?"
초등학교 때의 청소시간에 똑같은 짓을 했던 자신의 동창을 생각하며 외쳤다.
그는 결국 먼지 폭풍을 일으킨 벌로 무릎을 꿇은 채 설교를 받아야 했다.
물론 그래 봤자 그가 반성하는 기미는 1g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어찌 됐든 그 이후 청소는 별 탈 없이 진행될 수 있었고 집중하여 청소를 한 탓에 단시간 안에 집안은 말끔하게 변했다.
깨끗해진 자신들의 결과물을 보며 그와 그녀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진짜 이제 가구만 있으면 완벽할 텐데.
깨끗해진 휑한 공간을 보자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남자 같은 털털한 그녀지만 다른 여자들처럼 가구를 배치하거나 집을 꾸미는 것은 싫어하지 않았기에 이렇게 집 전체를 자기 취향대로 꾸밀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도 꾸밀 수가 없다는 점이 너무나 아쉬운 그녀였다.
"가구.."
그녀의 아쉬워하는 표정을 뒤에서 지켜보던 그는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생각에 잠겼다가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그녀의 어깨를 쿡쿡하고 찔렀다.
"왜그래?"
그녀가 고개만을 뒤로 돌린 채 물었다.
"가구점은 가구를 파는 곳이지?"
"가구점이니까.. 당연하게 가구를 파는 곳이겠지?
무슨 당연한 것을 묻는 거냐라는 얼굴로 그녀는 그를 바라봤다.
"응! 그럼 다녀올게! 히히히히!"
그는 들고 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허공에 던져버리고는 쏜살같이 베란다의 창문을 향해 달려 그대로 뛰어내려 사라졌다.
"야!? 어디 가는 거.."
그녀는 급하게 그가 나간 베란다로 얼굴을 내민 채 그를 부르려 했지만 이미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어찌보면 이 소설에서 가장 불쌍한건 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