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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얼론 (Zombie Alone)-4화 (4/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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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 일상

이후 며칠간 그의 아지트에서 쉬며 지내던 그녀는..

이 아파트 단지의 유일한 주민인 그에 이어 새로운 주민이 되기로 했다.

그녀의 이름은 윤미미 라는 상당히 특이한 이름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밝힐 때 극도로 꺼리는듯한 태도로 어찌어찌 자신의 이름을 그에게 밝혔지만 그 이름을 들은 그는 가장 처음으로 머릿속에 하나의 대사를 떠올렸다.

'미미쨔응 내꺼라능?' 이라고 대사를 내뱉었고 그것을 들은 그녀.는 기억은 없는 주제에 왜 그딴 걸 알고 있는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낸 뒤 작은 목소리로 이래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싫었다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로는 이 이름 때문에 어릴 때에서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인 놀림을 당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녀의 나이는 21세로 직업은 대학생으로 방학 시즌이었기에 홍대의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 좀비 사태가 퍼져 그 지역에서 발이 묶여 버렸다.

워낙 사람이 많은 곳인지라 그만큼 좀비들의 수도 많고 생존자의 수가 많았던지라 좀비의 위협과 다른 생존자들의 서로 죽이고 죽고 빼앗고 빼앗기고 하는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는 곳이었다.

그런 지옥에서 겨우겨우 자신의 몸의 안전을 지키며 살던 그녀는 우연하게 강서구 쪽에 안전하고 통제가 잘 되는 생존 구역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지옥 같은 곳에서는 좀비에게 먹혀 죽거나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거나 아니면 남자들에게 강간 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다.

우연과 운이 겹쳐 옆 동네까지 어떻게든 올수 있었지만 강서구로 가기 위한 다리에는 좀비와 멈춰진 차들로 가득해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그녀는 강에 떠있는 오리보트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며칠에 걸쳐 이곳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원래 그녀의 계획이라면 여기서 식량을 구해 강서구 끝 쪽에 있는 생존자 구역으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그의 여러 가지 사정을 듣게 된 그녀는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이곳에 거주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거주하기로 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첫째로 식량의 걱정이 없다는 것 물론 유통기한을 생각하면 완전하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좀비들이 나타난 이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좀비를 피하거나 다른 생존자들과 혈투를 벌인다거나 하는 일을 생각하면 식량을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가 아닐 수 없었다.

둘째로 그의 체질로 인해 좀비가 도망 간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이 체질에 대해 들었을 때 그의 옆에 있으면 좀비에게서 안전하지 않냐고 물어봤지만..

확인된 사실로는 그를 절대 덮치지는 않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덮치기에 별로 안전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단지 그가 혼자 떨어져 있을 시 좀비들은 그를 피한다는 기피 행동을 하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하면 거주구역에서 좀비들을 멀리 떨어트리는 것도 가능한 지라 좀비에 대한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볼 수는 없지만 길바닥에 드글드글 기어 다니는 그 좀비들을 생각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셋째로 자신의 정조에 대한 안전성

그녀는 이 일이 터지고 자신이 여자라는 점을 너무나도 깊게 자각할 수 있었다.

법이라는 구속구가 풀려 자신의 욕망을 여실 없이 드러내는 존재들에게 있어 여자란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도 그 입장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고 고삐가 풀린 남자들은 그녀를 겁탈하려고 했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자신의 호신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당하지는 않았지만 방심하는 순간 당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 좀비 그리고 식량에 대한 문제까지 더해 그녀가 떠안은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물론 모든 남자들이 그러지는 않았지만.. 수십 번이나 습격을 당하면 혹시 뒤로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도 혹시 언제 돌변하여 자신을 덮치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어느 사건으로 인해 그 의심을 거의 사라졌다.

옷을 갈아입던 도중 그가 벌컥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이 있었다.

가장 처음에 든 생각은 '이 녀석도!?' 였던 그녀였지만..

그가 그녀의 가슴을 한번 보고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나도 가지고 싶다!' 라고 중얼거리며 방에서 나갔다.

그야말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반응에 그녀는 그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혹시나 그가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해 넌지시 그 건에 관해서 물어봤지만.. 그의 답은 '재미있을것 같으니까' 였다.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안심을 해야 할지 참으로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 이외에도 며칠 동안 지내면서 그가 자신을 성적인 시선으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여자라고 보기보다는 엄마나 누나 같은 가족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탓에 그녀는 그에  대한 의심을 거의 완벽하게 버리고 어깨의 짐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곳에 살기를 결심하게 된 마지막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핑크빛 감정에 의한 연애적인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첫 만남 자체가 핑크빛은커녕 선정적인 새빨간 느낌이었던 것도 있었지만.. 애초에 그의 기묘한 행동이나 언동들을 보면 그를 연애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아무리 좀비에게 안전한 체질을 가지고 있다지만 좀비의 등에 매달려 아파트 단지를 일주 한다거나.. 덥다고 갑자기 옷을 던져 알몸이 된 상태로 뛰어다닌다던가.. 잡지에서 황토찜질이 몸에 좋다는 것을 발견하고 직접 땅을 파서 그 안에 들어갔다가 자력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주제에 낄낄 되며 웃는다거나.. 그 외에도 여러 기행을 벌인 그를 보면 솔직하게 남자라고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느끼는 그는.. 정말로 손이 많이 가는 남동생이나 사고 치고 다니는 강아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 탓에 요 며칠간 그의 기행을 막기 위해 그녀는 몇십 번이나 소리를 지르거나 주의를 하거나 화를 내거나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때마다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인지 기묘한 웃음소리를 흘리고 활짝 웃으며 또 다른 기행을 펼치고는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기행에 다시 소리를 친다는 악순환의 반복이었지만..

이런 미쳐버린 세상에서 기억을 잃었으면서도 저렇게 자유롭고 밝게 살아갈 수 있는 그의 모습은 질척한 진흙과도 같은 끈적한 욕망의 지옥에 있었던 그녀에게 있어 몹시 눈부신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 모습을 언제가 찾아올 멸망의 날 전까지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를 종합하여 결국 그녀는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그와 같이 사는 것을 택했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그는 환호를 지르며 이런 날에는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고는 왜인지 정원의 나무 밑을 삽으로 힘차게 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도대체 뭘 먹으려는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기대 반 불안 반의 감정을 품으며 그가 무엇을 파낼지 기다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약 1미터 정도의 땅을 파낸 그는 목적의 물건을 발견했는지 기묘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것을 들어 올렸다.

그 물건은 원형의 양철 통이었다.

겉에 써진 쿠키라는 영어와 그 제품의 사진인 듯 보이는 모습이 프린트된 통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그 통안에는 겉에 있는 제품이 안에 들어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온 것은.. 쿠키가 아니라 봉지 라면 그것도 딱 한 개뿐이었다.

"어째서 라면이야..?"

당연한 의문을 그에게 묻자 그는 땀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맛있으니까!" 라고 회답했다.

"그야 맛있기는 한데.."

그녀가 물은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지만..

마지막으로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라면을 먹을 수 있다고 하는 기대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날의 간식은 라면으로 정해졌다.

그와 그녀 두 사람은 정원의 한편에서 휴대용 버너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이 끓는 것을 쳐다봤다.

그러나 어서 라면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오른 두 사람을 배반이라도 하듯 냄비의 물은 끓을 생각을 보이지 않았다.

10초가 10분이 아닐까 하는 착각의 기다림 속에 지친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라면을 왜 그리 꼭꼭 묻어둔 거야?

옆에서 냄비와 눈씨름을 하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물론 라면 같은 식량이 귀중하다는 것은 자신이 몇 개월 동안 코빼기도 보지 못한 것으로 인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쳐도 너무 과하게 숨겨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칫하면 중독될 수도 있으니까.. 꼭꼭 숨겨뒀어."

"무슨 마약도 아니고.."

그의 말에 그녀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코웃음 쳤다.

하지만 국물과 면을 거진 정확하게 반등 분 한 완성된 라면의 국물을 맛본 그녀는 순식간에 국물과 면을 동시에 흡입하며 단번에 그릇을 비었다.

오랜만에 먹는..

미각을 화끈하게 자극하는 msg국물의 깊은 맛에 빠져버린 그녀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비어있는 그릇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에 천천히 후후 불어 라면을 식히는 그의 모습.. 정확히는 아직까지 많이 남아있는 라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순간적으로 저 라면을 빼앗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지만 이내 제정신을 차린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붕붕 저어 그 생각을 날려버렸다.

그녀는 그가 어째서 이 라면을 이리도 정중하게 숨겨두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시에 조금 더 먹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그녀는 조심스럽게 해맑은 얼굴로 후후 라면을 불고 있는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나..한젓가락만 주면 안 돼?

그녀의 말에 잘 식힌 라면을 입가에 넣으려던 그는 움직임을 멈추고 조용히 그녀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와 당신의 배분은 균등하게 끝났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배분된 분량이니 당신은 이것을 넘볼 자격은 없습니다."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면서 그의 태도와 말 중 가장 진지하고 엄격하며 바른 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태도에 발끈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라면이 매너를 만든다냐!? 닥치고 라면을 내놔!"

결국 그녀는 그의 라면을 뻇기 위해 움직였고 그는 그녀에게 라면을 뻇기지 않기 위한 공방전을 펼치다 결국 그가 라면을 단번에 입안에 털어 넣음으로써 그의 승리로 종료될뻔했지만..

"흐읍!"

그의 동채에 깨끗하고 강력한 보디블로를 그녀가 꽂아 넣는 바람에 입안에 있던 라면과 국물들이 전부 그릇에 되돌려졌고 그녀는 그것을 강탈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들어 올린 것 까지는 좋았지만 잘 생각해보니 입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을 먹는 것은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가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라면과 쿨럭쿨럭 기침을 하는 그를 번갈아보던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릇을 그에게 넘겼다.

기침을 하는 와중에 그는 내밀어진 그릇을 받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역시 입에 들어갔다 나온 건 좀.."

그녀는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난 왜 맞은 거야?

자신이 뱉어낸 라면을 바라보며 당연한 의문을 그녀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리고는..

"나쁜건 내가 아니야. 그 라면이 나쁜 거야!

라고 외치며 사다리를 타고 1층의 아지트로 허겁지겁 뛰어올라갔다.

남겨진 그는 자신이 내뱉어낸 식은 라면을 후루룩 하고 단번에 먹어 치운 후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그녀가 들어간 아지트를 바라보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히히히히!"

그는 특유의 기묘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녀가 올라간 사다리를 타고 아지트로 들어갔다.

그 후 안에서는 깨지는 소리 나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미친놈아!?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배빵을 계승 중이야! 히히히히!"

그녀가 욕설과 그의 기묘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동안 집안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작품 후기 ============================

라면 먹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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