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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그에게는 이름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게 기억은 없다.
[기억상실]
그의 현상을 가장 쉽고 편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 말대로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것을 무엇 하나 알지 못한다.
이름 나이 직업 인간관계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무엇 하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과거(기억)에 집착하지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지]
기억이 없다는 불안한 현실에 대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너무나도 낙천적인 결론이었지만..
그는 그 이후 자신의 기억을 찾으려는 행동은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멸망의 종점을 향해 달려가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필품을 찾거나 지루한 여가시간을 혼자서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일과와 같이 그것만을 혼자서 반복해 왔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어김없이 그 일과의 하나를 수행 중이었다.
[술래잡기]
그것이 그가 자신의 일과 중 하나에 부여한 이름이었다.
도망가는 사람을 술래가 붙잡는다는 매우 심플한 룰의 놀이에서 따온 그의 일과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지 그의 상대가 인간이 아닌‘좀비’ 라는 존재라는 것을 빼면 말이다.
사람을 먹고 물리면 좀비가 되는 창작세계의 유명한 괴물인 좀비..
하지만 이 멸망해가는 세계의 원흉은 현실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위험한 좀비와의 술래잡기를 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 중 하나였다.
그의 기행을 보통의 감성을 가진 사람이 본다면 [그런 위험한 짓을 왜?] 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보통의 감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그에게 있어 좀비는 위험의 요소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술래잡기라는 그의 일과에서 술래는 언제나 ‘그’ 였고 도망가는 것은 언제나‘좀비’였기 때문이었다.
“히히히히!”
여기저기가 깨진 아파트 단지 내의 아스팔트 위를 세차게 밟으며 그는 기묘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달렸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자신에게서 도망가는 좀비를 잡는 것이었다.
사람을 습격해야 할 좀비가 어째서 그를 습격하지 않고 오히려 도망을 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이지만 이 현상은 기억을 잃은 후 계속 이어져온 그의 일상이었다.
사람을 보면 문답 무용으로 습격하는 좀비들이지만 그것들은 절대 ‘그’를 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접근하려고 자석의 n극과 n극 처럼 절대로 붙지 않으려는 행동을 했다.
어째서 그를 좀비들이 피하는지는 모른다.
기억을 잃기 전이라면 이유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기억을 잃은 그는 알지 못했고 깊게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편리한 체질이다 라고 가볍게 생각할 뿐이었다.
“잡았다. 잡았어. 히히히히!!”
술래잡기라는 이름의 추격전을 장장 20분 걸쳐 행한 그는 양쪽 팔이 없는 좀비의 등 뒤에 매달리며 기쁨에 찬 기묘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기쁨에 찬 그와는 반대로 그를 등에 매단 좀비는 자신의 몸뚱이를 격하게 움직이며 등 뒤에 매달린 그를 떨어트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히히히힛!!”
하지만 양팔이 없는 좀비의 목을 강하게 잡은 채 매달린 그는 격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기묘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즐거워할 뿐이었다.
좀비와 그의 로데오는 한참 동안을 반복하다가 결국 지친 그가 좀비의 목에 감고 있던 팔을 풀고 뛰어내리면서 종료됐다.
좀비는 그가 자신의 등 뒤에서 떨어지자마자 뒤를 돌아보는 일도 없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잘가 내일 또 놀자 히히히힛!!”
그는 멀어져 가는 좀비의 등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 작품 후기 ============================
일반적인 좀비물과는 조금 다른장르의 좀비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