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로 뒤덮인 세상-30화 (30/36)

17화 - 성배의 두 번째 위기

수 초의 시간이 흘렀다.

“좋아, 내려…. 아무리 그래도 지금 당장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저들을 죽이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우리가 도망가자는 사람 손 들어줘.”

또다시 수 초의 시간이 흘렀다.

“좋아, 내려줘.”

모두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수결의 결과에 따라야겠지.”

진모의 말에 뒤를 돌아보고 있던 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운전석에 똑바로 앉았다.

“그럼 일단 출발합니다. 목적지는 가면서 정해요.”

“그래, 오랜만에 소희가 시켜주는 드라이브나 좀 해보자.”

성배의 말을 끝으로 밴은 천천히 출발해 그곳을 떠났다.

나라는 아주 잠깐 학교 쪽을 쳐다봤고, 성배는 그런 나라를 흘끔거리며 무심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뭔 일 있었냐?”

“아뇨.”

“그래, 나도 잘 지냈다.”

“네.”

참으로 어색한 대화가 흐른 후, 보조석에 앉아있던 한이가 고개를 돌려 뒤에 앉은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이젠 어디로 가죠?”

다들 눈을 굴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마땅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몇몇 장소가 거론됐지만, 다들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선 머물던 집으로 돌아가 챙길 수 있는 만큼의 식량을 챙겼다. 그리고 옷가지와 이런저런 물품 등도 밴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니 이놈도 많이 상처 입었네.”

성배는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페인트가 벗겨진 밴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네, 우리 대신 좀비랑 싸워주기도 하고 진짜 동료 같아요.”

소희는 밴의 찌그러진 곳을 만지며 말한 뒤, 운전석에 올라탔다.

아이들은 잠시 진모의 손을 잡고 집 앞에 서서 집을 바라보았다.

특히나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아이들도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아빠, 여기보다 더 좋은 데로 가여?”

예지의 질문에 진모는 예지의 머릴 쓰다듬으며 대답해주려 했지만, 정배가 선수를 쳤다.

“예지야, 걱정 마. 더 좋은 집으로 갈 거야.”

진모는 그런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밴에 아이들을 먼저 태우고, 마지막으로 올라탔다.

출발 전 그들은 다시 어디로 갈 건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일단 다들 더 이상 구할 가족은 없는 건가요? 뭐, 친척이라도….”

한이가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던졌다.

다들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한 둘 씩 고개를 저었다.

한이도 잠시 가족생각이 났는지 머뭇거리다 말을 이어 갔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던 자유네요. 아니지, 이런 걸 자유라고 하면 너무 잔인하겠죠….”

“아무렴 어떠냐, 어디든 우리 스스로 지킬 수만 있으면 되지, 뭐.”

덤덤한 표정으로 말한 성배는 창문을 내리고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잠자코 있던 소희가 뭔가 떠오른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성배를 지목했다.

“성배 오빠, 생존자 아파트!”

성배는 갑작스런 소희의 말에 당황해서 자기도 모르게 헛기침을 해대며, 횡설수설 했다.

“크헥! 아오 죽갔네…. 아니 갑자기 거긴 왜?”

당황하는 성배와 상관없이 진모도 성배를 보며 말했다.

“그래! 성배 군. 거기 사람들이 다 착했다며, 의사도 있고, 집도 많고 말야. 우리가 무슨 나쁜 사람도 아니고 가서 있게 해달라고 부탁 좀 하면 안 되나?”

“아니, 아저씨 그러니깐 거기인….”

성배의 말을 자르고 한이마저 거들었다.

“형, 아, 진짜 거길 왜 몰랐을까요? 거기 가서 뭐, 우리도 열심히 도우면서 살면 되죠!”

나라는 아직 성배의 얘기를 듣지 못한 터라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궁금해 했다.

소희가 웃으며 성배에게 들었던 얘기를 나라에게 해주었다. 물론 성배는 모두에게 희선과 관련된 얘기는 하지 않았었다.

나라도 대충 성배가 어디서 지내왔는지 듣게 되자 좋은 곳 같다며 그곳으로 가길 원했다.

“성배 씨, 그렇게 좋은데 알면서 왜 숨겼어요?”

성배는 모두의 적극적인 반응에 어쩔 줄을 몰랐다.

‘아, 나 이 사람들 진짜.’

속으로 모두를 원망하며 성배는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아니, 거긴 안 돼.”

“왜요? 성배 씨한테 다들 잘해줬다면서요. 이렇게 험악한 사람한테도 그렇게 따뜻하게 해줬으면 우리가 가면 오히려 더 좋아할 거 같은데요.”

나라가 꼬치꼬치 따지며 말했고, 뒤이어 한이도 성배를 설득하려고 했다.

“형, 뭐 때문에 그러는 건데요? 거기 뭐 애인이라도 만들어 놓고 왔어요?”

성배는 괜히 언성을 높이며 한이를 나무랐다.

“아니, 이 자식아! 뭔 애인이야 애인은. 지금 인마, 세상이 좀비로 뒤덮였는데….”

“그래요 한이 씨. 그건 너무 억지죠. 누가 이런 조폭을 좋아해요.”

나라의 직선적인 말에 성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추측을 하지 않도록 빨리 뭔가 둘러대야 했다.

순간적으로 느끼한 표정을 지은 성배는 목소리를 중저음으로 깔며 나라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봤다.

“나라야, 이게 다 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나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성배를 봤다.

“아니, 생존자들 모여 사는 아파트에 가자는데, 그게 저한테 무슨 문제라고 절 위해서 못 간다는 거예요?”

나라의 계속되는 추궁에도 성배는 화내지 않고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띠며 부드럽게 말한다.

“아 글쎄, 다 이유가 있다니깐. 우리 나라는 그냥 나만 믿어.”

우리 나라란 말에 나라는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아니, 왜 우리 나라라고 해요? 그리고 날 위해서라면 당장 그 곳으로 가요. 난 지금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는 게 소원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의 계속되는 투정에 성배는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실을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 나 진짜 미치겠네. 이 차성배가 삼각관계라니….’

성배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어설픈 핑계거리를 떠올렸다.

“사실, 이런 이 얘기는 내가 모두한테 안 하려고 했는데, 거기도 지금 포화상태야. 나도 사실 죽을 위기였으니깐 받아 줬던 거지…. 나 간다니깐 다들 얼마나 좋아 했다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성배는 어색한 거짓말이 들킬까봐 조마조마 하고 있었다.

“아, 그랬군요. 형, 진작에 말씀하시죠. 우리가 무슨 민폐까지 끼쳐가며 의지할 곳을 찾을 정도는 아니잖아요.”

한이의 말을 받아 진모도 한 마디를 보탰다.

“그래, 성배 군이 마음이 은근히 여려서 우리가 걱정할까봐 잘 지내왔다고 했나보네, 지금 보니깐 거기서 은근히 눈칫밥 좀 먹었나본데. 거, 사람들 참.”

‘죄송합니다. 희선 씨, 그리고 아파트 주민님들, 나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소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난 또 그것도 모르고 괜히 생존자 아파트 얘길 꺼냈네요. 성배 오빠 정말 죄송해요.”

‘그게… 괜찮다. 소희야….’

나라는 긴 한숨을 쉬며 성배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성배를 안고만 있었다.

성배의 얼굴이 하필이면 나라의 가슴에 파묻혔지만, 그는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성배에게 다른 의도는 물론 없었다.

한동안 말 없던 나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엔 희미하게 눈물이 맺혀있었다.

“성배 씨, 미안해요. 이유가 어찌됐건 죽을고비도 넘기고, 또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그렇게 눈치 보며 지내왔다니…, 저는 그것도 모르고 따뜻한 샤워나 침대 때문에 투정이나 부렸으니.”

‘권나라, 이 자식 역시 나를….’

사람들이 한 마디 할 때마다 속으로 사과를 한 성배는 이 분위기를 빨리 희석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자, 자 나는 괜찮아. 난 우리 진모 아저씨, 착한 동생 한이, 귀여운 소희, 우리 정배랑 막내 예지, 그리고 나라까지 진짜 이렇게 다 모인 것만으로도 난 지금 너무 행복해. 그러니깐 일단 출발하자. 가다보면 또 좋은 생각이 날 수도 있잖아.”

모두들 성배를 딱한 눈으로 보며 계속 그를 위로했지만, 정작 성배는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소희가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 시켰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출발한 차는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동안 모두가 성배를 기다렸던 곳을 지나, 큰 길로 나간 차는 길바닥에 널려있는 시체는 최대한 피해가며, 망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애썼다.

물론 그렇게 피해도 피한 곳에 있던 다른 시체를 밟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좀비인지 사람인지 또한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소희는 그것이 아직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작은 배려라고 생각하고 조심스레 운전을 했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도로를 달리던 그때, 갑자기 보조석에 앉아있던 한이가 혼자 입을 씰룩거리며 미소 짓다가 진모에게 물었다.

“근데 아저씨, 아까 아무도 손을 안 들었는데 왜 내려 라고 하신 거예요?”

한이의 질문에 진모는 자신의 머릴 긁으며 멋쩍은 듯 답했다.

“그거, 사실 우리 안에 있는 내면은 원하지 않았을까 해서.”

진모의 대답을 들은 한이의 표정이 조금은 경직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도 솔직히 망설였어요. 물론 나라 씨도 결과적으로 안전했고, 뭐 제가 좀 다친 것 말고는 의외로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런 놈들 때문에 우리가 왜 도망가야 하는지 조금은 화도 났었고요.”

진모가 창을 열고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한숨인지 담배를 피우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가는 호흡을 내뱉었다.

“후우우우, 그놈들은 거기서 또 다른 여자들한테 분명히 몹쓸 짓을 하겠지…. 그 여자한테 가족이 있다면 우리처럼 또 괴롭히고 폭력을 쓰겠지.”

이번엔 나라가 나지막이 한 마디 한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정말로 우리가 다 죽인다면, 우린 그들보다 나은 사람인 걸까요?”

운전에 열중하던 소희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이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소희 양, 강당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까 들었잖아. 한 군한테 칼을 들이대고, 여러 명이 성배 군을 공격 했다고…. 그런 인간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야.”

소희는 특유의 밝은 미소를 보였다.

“그래도 가장 나쁜 놈은 죽었고, 나라 언니를 데려가긴 했지만 정말로 아무 짓도 안 한다는 약속을 지킨 남자만 남았으니 그 사람들을 잘 이끌지 않을까요?”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어.”

이번엔 모두가 성배의 말에 집중했다.

“기절했다 일어나보니 가장 친한 친구는 죽었고, 뒤늦게 졸개들 데리고 복수하러 가보니 우리는 사라졌고. 어쩌면 우리가 더한 괴물을 만든 걸지도 몰라. 그놈은… 자칫하면 나도 질 뻔했어.”

성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들 모두는 성배의 얘길 듣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그 사내들이 다시 예전의 정상적인 삶을 찾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대화가 끝나고 그들은 각자만의 시간을 잠시 가졌다.

몇몇은 피곤한 듯 졸기 시작했고, 소희는 계속해서 천천히 조심스레 운전을 해나갔다.

아이들의 장난치는 모습을 한참동안 흐뭇하게 바라보던 성배가 목적지가 궁금한 듯 소희에게 물었다.

“근데 지금 어디 가냐?”

성배가 묻자 소희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요.”

“저거 63빌딩이냐? 근데 저긴 왜 저렇게 화려하지….”

소희와 성배의 대화에 꾸벅꾸벅 졸던 사람들도 일어나서 63빌딩을 쳐다봤다.

“저거 그냥 불만 켜져 있는 걸까요?”

“글쎄, 한 군, 혹시 저기 가본 적 있어?”

“아뇨, 그냥 지나가면서 보기만 했는데 왠지 그때보다 오늘이 더 화려해 보이는데요.”

진모와 한이의 대화에 나라도 끼어들었다.

“저도 근처를 자주 지나다니긴 했는데. 한이 씨, 말대로 평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불빛이 많이 켜져 있는 것 같아요.”

모두들 63빌딩을 쳐다보며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주변의 많은 건물들이 대부분 불을 켜두지 않아 서울의 밤은 평소보다 훨씬 어두웠지만, 이상하게도 63빌딩만큼은 예외였다.

성배는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63빌딩을 좀 더 자세히 쳐다보며 물었다.

“근데 소희 넌 무슨 생각으로 저길 가려고 했던 거냐?”

“아니 그냥, 최대한 잘 뚫린 길만 찾아서 가다보니 멀리서 유독 밝은 건물이 보이더라고요. 제가 63빌딩 가본 적도 없고 해서 이상하게 끌렸어요.”

“그래, 잘했다. 또 어떤 일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63빌딩이 왠지 이 차성배를 부르는 것 같다.”

성배의 허세에 모두들 이젠 그러려니 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동안 떨어져 지내서 그런지, 어쩌면 그들 모두는 성배의 허세가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새벽이 지나가고, 아침이 다가왔다.

영등포와 여의도를 이어주는 서울교 부근에 도착하자, 소희는 천천히 차의 속도를 늦췄다.

그들의 앞에는 여의도로 진입하는 서울교가 있었고, 좌우로도 서울을 달리는 큰 도로가 있었다.

뒤쪽으로는 곧바로 주거지역과 상가들이 있는 영등포였다.

“소희 양, 왜 멈춘 거야?”

“혹시요. 서울교 위에 방어벽 같은 게 있으면 섣불리 차로 갔다가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잖아요. 뭐 워낙 넓은 다리라서 고립될 일은 없겠지만, 조심하는 차원에서 미리 좀 보고 가려고요.”

소희의 조심성에 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소희야, 그게 좋겠다. 어차피 여기서 대충 봐도 다리 위에 차들 때문에 진입하기가 쉽진 않아 보이는데.”

한이가 주변을 경계하며 차에서 내려 망원경을 이용해 서울교 부근을 관찰했다.

서울교 위에는 소희의 예상대로 바리케이드와 모래주머니로 방어벽이 단단히 쌓여있었고, 차로 진입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한이는 좀 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다리 위에는 많은 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아마도 좀비 사태 초기에 여의도가 안전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여의도로 진입하려다 실패한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좀비도 몇 마리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시커먼 새도 몇 마리 주위를 날고 있었다.

한이는 다시 밴에 올라타 상황을 설명했다.

“일단 차로 가는 건 무리일 거 같고요, 좀비도 몇 마리 있네요. 그리고 까만 새가 몇 마리 날아다녀서 그런지, 어쩐지 좀 으스스하네요.”

“그래? 한 군, 나도 좀 볼께.”

진모가 한이에게 망원경을 건네받아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다리 위를 관찰했다.

“그러네, 차로는 도저히 못 들어가겠는데.”

진모는 창을 닫고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장시간 앉아 있어서 몸이 뻐근했는지 성배는 차에서 내려 가볍게 주위를 달리며 몸을 풀었고, 나라와 소희도 내려서 스트레칭을 했다.

아이들은 새벽 내내 장난을 치다가 골아 떨어져서 그런지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차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한이와 진모는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았다.

“아저씨, 차를 이 근처에 숨겨두고 저랑 둘이 걸어서 갔다 오실래요? 성배 형은 아무래도 좀 자야 할 것 같고, 어차피 여기서 둘이 빨리 걸으면 20분 정도면 충분 할 거 같은데요.”

“그것도 괜찮은데, 다른 다리로 가보는 건 어때? 여의교라던가.”

“여의도로 통하는 다리는 전부 방어벽이 있지 않을까요? 처음엔 분명히 여의도 지역을 안전하게 지켜려고 하는 움직임이 기사로 많이 나왔었거든요. 물론 의외로 여의도 지역도 빨리 좀비가 생기긴 했지만요.”

“하긴 그렇겠다. 저렇게 방어벽이 단단한데 다른 다리도 마찬가지겠지.”

“근데 전 계속 그게 궁금했는데, 여의도는 왜 저렇게까지 단단히 방어를 하고도 좀비가 생긴 걸까요? 설마 할루신을 저 안에서 누가 맞은 것도 아닐 텐데요.”

“뭐 그런 거 아닐까? 물렸는데 안 물린척하고 몰래 들어간 사람들이 결국 좀비로 변했다던가. 어차피 한, 두 명만 변해도 근처에 한, 두 명이 물리면, 다음번엔 네 명이 되고, 그 다음엔 여덟 명.”

진모는 고개를 저으며 양 팔을 천천히 좌우로 벌렸다. 그는 그때의 비극적인 상황을 상상하는 듯 보였다.

“그러네요. 하긴 편의점에서 처음 모였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거라곤 상상조차 안 했잖아요.”

그때 차 밖에서 나라와 소희의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한이와 진모는 황급히 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뭐에요? 왜들 그래요?”

“한 이씨! 저… 저기.”

소희는 다리 반대쪽 상가지역을 가리켰다.

소희가 가리키는 곳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 십여 명이 소희와 일행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미동도 없이 한동안 소희와 일행을 쳐다보다가 이윽고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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