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로 뒤덮인 세상-27화 (27/36)

14화 - 다시 만난 가족

성배는 밤새 잠을 푹 잤는데도 오늘따라 이상하게 몸이 뻐근함을 느꼈다.

그는 간단히 세수를 하고, 희선의 방문 앞에 잠시 서 있다가 이내 집 밖으로 나갔다.

마침 집 앞을 지나가던 이웃이 성배에게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성배 씨, 좋은 아침입니다.”

“네, 좋은 하루 되세요.”

성배가 머물고 있는 곳은 좀비로 뒤덮이기 이전의 일반적인 인간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워낙 외진 곳에 있던 아파트라 주변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간혹 좀비들이 나타나도 건장한 남자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성배의 기억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지만, 그는 그곳에서 희선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나날을 보내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배는 오늘따라 왠지 모를 불안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성배는 깨어난 후, 한 번도 나가 본적 없는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특별히 나가지 못하는 규칙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말로만 들은 좀비의 무시무시함이 성배는 은근히 신경이 쓰였었다.

게다가 희선과의 즐거운 시간들에 취해 그는 굳이 바깥세상을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바깥세상이 끌렸다.

그는 보초를 서고 있는 사람들에게 간략한 주의사항을 들은 후, 조악한 방패와 짧은 곤봉을 받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성배는 처음엔 아파트 주변만을 맴돌다가, 먼 곳에 있던 주차장까지 걸어가게 됐다.

주차장에는 이런저런 차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성배는 자신도 모르게 밴 앞에 가서 멈춰 섰다.

‘이야, 이게 연예인들이나 탄 다는 그 밴이구나. 나도 참 타보고 싶었는데….’

밴 앞에 서서 담배 한 대를 꼬나물고,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기분 좋게 한 대 빨고 있던 그의 귀에 어디선가 낯선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성배는 피우던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버리고,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크으으으”

어디서 나타났는지 좀비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성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좀비를 처음 본 성배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이게 좀비구나. 차암, 아름답게 생겼다."

좀비에 대한 기억은 잃었어도 차성배는 차성배였다.

얘기로만 들었을 때는 좀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막상 좀비를 보자 별 두려움 없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좀비가 성배에게 덤벼들자 그는 방패를 들어 좀비의 공격을 막고, 보초들이 알려준 대로 곤봉으로 좀비의 머리통을 여러 번 내리쳤다.

‘별 것도 아니네. 괜히 긴장 했잖아.’

좀비 한 마리를 성배가 쉽게 처리하고 뒤돌아서는데, 주차장 입구로 두 마리의 좀비가 뛰어 들어왔다.

“크아아악!”

방금 처리한 좀비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빠른 좀비의 움직임에 당황한 성배는 우선 앞서 다가오는 좀비를 방패로 후려친 다음 곤봉을 눈에 박아 버렸다.

좀비 한 마리가 쓰러지자, 바로 뒤에 있던 좀비의 공격이 시작됐지만, 무기가 없는 성배는 우선 자동차 지붕 위로 올라갔다.

좀비는 계속해서 손을 뻗으며 성배를 위협했고, 성배는 잠시 좀비의 손길을 피하다 발로 좀비의 머리를 거세게 차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차에서 뛰어 내리며 방패로 좀비의 머리를 가격했다.

좀비는 뒤로 잠시 밀렸다가 다시 성배를 향해 달려들었다.

성배는 방패가 거추장스러운지 그냥 던져버리고, 좀비의 복부를 걷어찼다.

좀비는 그 자리에서 뒤로 넘어졌고, 성배는 주변에 있던 큼지막한 짱돌을 집어 좀비의 위에 올라타서 머리를 짱돌로 찍어 버렸다.

십여 차례 찍는 과정에서 좀비의 피가 성배의 얼굴에 잔뜩 튀겼다.

그 순간.

성배의 머릿속에 그간 잃어버렸던 좀비와 할루신, 임진모, 강한, 윤소희, 박정배 그리고 권나라에 대한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성배는 얼굴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대충 문질러 닦고 일어났다.

잠시 서서 멍하니 있던 그는 옆에 세워져 있는 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씨발, 지금 생활이 참 좋았는데…, 생각이 나버렸네.”

성배는 그동안 생존자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지냈던 자신을 생각하며 헛웃음을 짓더니 혼잣말을 구시렁거렸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주자장을 빠져 나온 그는 자신이 머물던 희선의 집으로 돌아갔다.

성배가 집에 돌아오자 희선은 그의 얼굴에 묻은 피를 보며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다.

“성배 씨, 이게 어디서 이렇게 되신 거예요?”

성배는 대답 대신, 희선을 꼭 한 번 안아주었다. 그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희선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한다.

“이제 때가 됐군요.”

성배는 아무 말 없이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을 닦고 나왔다. 그리고 희선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닌 가 봅니다.”

희선의 표정은 의외로 덤덤했다. 그 표정이 오히려 성배를 더욱 미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성배는 이곳에서 살 수 없었다.

그를 기다리는 새로운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다.

성배의 정신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희선의 동생과 의사를 비롯한 그곳에서 성배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에게 작은 송별회를 열어줬다.

간단한 반찬으로 차려진 밥상이었지만, 상황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만찬일 수도 있었다.

이젠 오히려 입장이 바뀌어 성배가 사람들에게 바깥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사람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아니, 어떻게 벌써 인간이 그렇게 변한 거죠? 정말 이해가 안 돼요.”

희선이 어떻게 그런 인간들이 있냐며 성배에게 묻자, 성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원래 좀비보다 인간이 더 무서운 겁니다. 인간들은 상황에 따라 바로 자신의 추악한 본성이 드러나거든요. 그래서 제가 인간들을 잘 안 믿었었죠. 근데, 좀비 사태 이후로 오히려 제 주변엔 좋은 사람들만 나타나서….”

성배는 희선을 보고 말끝을 흐렸다. 희선은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하며 성배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송별회가 끝나고 성배는 자신의 물건을 챙겼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처음 일행과 헤어진 곳의 주변에 있던 매장이나 큰 건물들을 설명했다.

마침 그 곳을 잘 아는 사람이 꽤나 상세하게 지도를 그려줘서 가는 길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성배는 끝으로 그곳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가능하면 아무나 들이지 마시고요, 절대로 혼자 다니지 마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성배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여기 분들은 제발 미치지 않길 바랍니다.”

성배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알았다고 하며, 걱정 말고 잘 가라고 그를 입구까지 배웅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고, 성배와 희선만이 남아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럼, 잘 가세요. 차로 데려다 드린대도 굳이 걸어가신다니 어쩔 수 없네요.”

“뭐, 얼마 안 걸릴 건데요. 괜히 차로 가다가 좀비라도 만나면 여기 사람들한테 피해 주잖아요. 저야 뭐 워낙 좀비를 많이 죽여 봐서 괜찮아요.”

“혹시라도 그곳에서 일행 분들 못 만나면, 다시 돌아오세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그 사람들한테 버림받으면 갈 때도 없어요.”

희선은 뭔가 말하려다 머뭇거리며, 그냥 웃음만 지어 보였다.

성배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잠시 매만지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배트를 흔들어 인사를 하며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아침이 밝았지만, 그들의 집 분위기는 어제와 다를 바 없었다.

아이들은 울다 지쳐 잠이 들었지만, 진모와 한이, 그리고 소희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도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

소희는 한이의 얼굴에 몇 시간 전 발랐던 연고를 닦아내고, 다시 새로 발라주고 있었다.

한이는 어제 새벽부터 지금까지 두 주먹을 꼭 쥔 채, 풀지 않고 있었다.

진모는 그런 한이를 보며 차마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진모는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시 끊으려고 노력 중이었던 담배를 힘없이 입에 물었다.

그의 뒷모습은 실직한 가장의 뒷모습처럼 한없이 좁고 처량해보였다.

한이의 얼굴에 연고를 다 발라준 소희도 마당으로 나왔다.

진모의 옆에 선 소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저씨, 우린 이제 어떻게 해요?”

“후우우우, 글쎄 솔직히 아무 것도 떠오르질 않아. 그냥 소희 양하고 나라 양하고 한 군한테 아무 것도 도움주지 못해서 미안해.”

소희는 여러 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금 같은 세상에선 힘이 최고에요. 아저씨가 저희보다 어른이라고 해서 무조건 미안해하지 마세요.”

진모는 고개를 돌려 소희를 가만히 응시했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녀는 아이처럼 순수한 아가씨였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진모는 문득 걱정스러웠다. 편의점에서 처음으로 창을 들던 소희가 생각나 더욱 가슴이 아파왔다.

“들어가자, 한 군한테 죽이라도 좀 끓여 먹이고, 우리도 밥은 먹어야지.”

“네, 죽은 제가 끓일게요.”

소희가 한이에게 줄 죽을 끓이고, 진모가 대충 밥을 지어 아침상을 차렸다.

한이는 입맛이 없었지만, 죽을 끓인 정성을 생각해서 억지로 입에 밀어 넣었다.

그건 진모나 소희도 마찬가지였다. 배고픔조차 느껴지지 않았지만, 최대한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먹는 밥이었다.

한동안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리던 밥상에서 한이가 덤덤히 한 마디 꺼냈다.

“소희 씨, 죽 잘 끓이시네요. 술술 넘어가는데요.”

“원래 죽은 술술 넘어가요.”

얼굴이 퉁퉁 부은 한이의 어색한 유머와 그걸 받아 주는 소희의 황당함에 진모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흐흐, 하하!”

진모가 웃자 한이와 소희도 각자의 얼굴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셋은 그렇게 잠시 미친 사람들처럼 웃어댔다.

한바탕 웃고 나자, 그들의 기분은 조금 치유된 것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들고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던 진모가 역시나 입을 열었다.

“강덕 고등학교면, 대충 걸어서 30분이면 갈 거고, 차로 가면 뭐 5분이면 갈 거야.”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던 소희가 거실 한편에서 자고 있던 아이들을 보더니 이내 좌우로 저었다.

“아니에요. 우리끼리 가서 뭘 어떻게 해요?”

“그럼 나라 양은? 우리 살리자고 자기 희생한 나라 양은 구해줘야 될 거 아냐….”

“어제도 봤잖아요. 우린 두 명이나 총을 들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인간들 말대로 우린 서로가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아요. 결국 총 들고, 창 들고, 칼 들고 가서 또 어제처럼 인질로 잡힌 나라 언니 앞에서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예요.”

잠자코 듣던 한이가 얼굴이 아픈지 인상을 쓰며 말한다.

“하아, 성배 형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 같은데….”

성배의 얘기가 나오자, 다시 대화는 끊겼다.

소희는 빈 그릇을 치우며 자릴 피했고, 한이는 결국 피곤을 못 이기고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갔다.

진모는 잠시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산탄총을 챙겨들고 일어났다.

“아저씨, 오늘은 좀 쉬세요. 우린 일단 좀 자야 돼요. 그렇게 기다려도 안 오던 성배 오빠가 설마 오늘 오겠어요?”

진모도 몸이 무거운지 산탄총을 내려놓고 거실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럼, 딱 두 시간만 자고 다녀올게. 소희 양은 한 군을 잘 부탁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유일하게 성배 군을 기다리는 거니깐.”

그 말을 끝으로 진모는 금세 잠들어 버렸고, 소희는 아이들이 일어나면 먹을 만한걸 대충 준비해두고 나서 역시 방에 들어가 피곤한 몸을 눕혔다.

보통 때 같으면 가장 활기차야 될 시간에, 오늘 그들은 전부 잠들어 있었다.

성배는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 가고 있었다.

지도를 그려준 사람이 워낙 자세히 그려준 탓에 그는 어려움 없이, 원래 목적지였던 마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 그 아저씨 참, 무슨 김정호도 아니고 지도를 이렇게나 자세히 그렸어. 덕분에 잘 왔습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린 성배는 마트를 그냥 지나가려다 왠지 모르게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마트는 역시나 텅텅 비어 있었다.

성배는 마트 안을 대충 둘러봤다.

비누 몇 개를 챙겨 건빵 주머니에 넣고 나가려던 성배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보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안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이야! 시원하구만.”

잠시 차가운 냉기를 만끽하던 그는, 다시 마트를 나가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오자 성배는 걷는 속도를 높였고, 밴이 서 있던 도로 바로 앞까지 갔을 땐,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분이 됐다.

‘설마….’

성배는 속으로 분명히 밴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곳에 도착했다.

역시나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의 얼굴엔 허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본 성배는 근처에 있던 식당의 야외 탁자에 칼과 배트, 산탄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의자에 삐딱하게 걸터앉아 탁자에 다릴 올려놓고 담배를 한 대 꼬나물었다.

‘에휴, 그럼 그렇지, 누굴 원망 하겠냐. 내가 너무 늦었는데….’

성배는 헤어진 일행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담배를 천천히 빨았다.

‘보자, 분명히 한이 자식은 날 기다리자고 했을 거야. 근데, 소희가 그랬겠지. “우린 예지부터 구해야 될 거 같아요.” 그러자 진모 아저씨는 “아냐, 그래도 우리 성배 군을 기다려야지.” 라고 했을 거야. 그때 싸가지 없는 권나라가 등장해서 “그딴 건달 기다리지 말고, 예지 구한 다음에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죠.” 라고 결정타를 날린 거지.’

성배는 그렇게 자신을 두고 떠났을 거라고 상상했지만, 오랜만에 나라를 비롯한 모두를 떠올리자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성배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기다리던 사람은 아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껄렁해 보이는 사내 둘이 좀비의 목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성배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사내들을 쳐다봤고, 사내들은 성배를 의식하며, 가던 방향을 바꿔 성배에게 다가왔다.

성배 앞에 있던 탁자 위에 좀비 머리를 건방지게 던져 놓더니, 앞에 있던 무기들을 보며 성배에게 시비를 걸었다.

“야, 이건 뭐야. 요즘 왜 이렇게 총 들고 다니는 인간들이 많아.”

“아저씨, 여기 무기 상점이에요? 이거, 이거! 샷건이잖아. 이거 얼마에요?”

성배는 콧방귀를 끼며 귀찮다는 듯 대꾸한다.

“가던 길 가라.”

사내들은 탁자 위에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앉아있는 성배가 거슬렸는지,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가던 길 못 가겠는데요. 씨발! 샷건 사기 전에는요.”

성배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미동도 없이 대꾸했다.

“형이 지금 누굴 생각하고 있었거든. 근데 그 인간이 날 버리고 떠났단 말야. 그래서 조금 화가 날 거 같아. 그러니깐, 뒤지기 싫으면 가아.”

순간 사내 하나가 탁자 위에 있던 산탄총을 집어 들었고, 다른 사내는 칼을 들었다.

총을 든 사내가 성배를 조롱하며 총을 장전했다.

“이 병신 새끼. 뭔데 이렇게 느긋해.”

사내는 성배를 향해 총을 겨누며 위협했다. 하지만 성배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말했다.

“총알 빼놨어, 이 씨발놈아. 마지막 경고야, 그냥 가라.”

그러자 칼을 든 사내가 욕을 하며 성배에게 칼을 휘두르려고 자세를 잡았다.

“아니, 근데 이 개새끼가 좆나 똥폼 잡네!”

사내가 칼을 휘두르려는 찰나, 성배가 먼저 탁자를 발로 강하게 밀어 그 사내가 사내구실 할 수 있는 유일한 신체부위를 탁자 모서리로 찍어 버렸다.

“끙.”

알아들을 수 없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사내는 다리에 힘이 풀린 채 뒤로 나자빠졌다.

그리고 곧바로 일어나 산탄총을 들고 있던 사내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챈 성배는 그의 머리를 탁자에 강하게 짓눌러 버렸다.

사내들은 성배가 자신들의 상대가 아님을 직감하고, 양손을 정면으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며, 더 이상 덤비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성배는 그런 사내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형이 아까 말했잖아. 가던 길 가라고.”

“네, 죄송합니다. 저희는 이만….”

“잠깐, 기다려.”

사내들이 사과를 하고 가려는데 성배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어이, 너 맨 처음에 나한테 뭐라 그랬냐?”

성배가 사내 하나를 가리키며 묻자, 그 사내는 당황해하며 연신 사과를 했다.

그러나 성배는 손을 저으며 다시 물었다.

“아니, 그거 말고 인마. 아까 총 들고 다니는 인간들이 어쩌고 했잖아.”

사내는 그제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아, 그건 제가 본 게 아니라, 친구가 어제 총 들고 다니는 여자를 봤다고 해서 그런 건데요.”

총 든 여자란 소리에 성배의 미간이 꿈틀했다.

“그래그래 가봐, 알았어.”

사내들은 성배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다급하게 뛰어서 도망갔다.

‘총을 든 여자라….’

성배의 표정은 금세 아주 밝아졌다. 그는 다시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발도 까딱거리던 성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기분이 좋아졌다. 헤어진 그들을 만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헤어졌던 그들을 기분 좋게 기다리던 성배 앞에 잠시 후 진모가 나타났다.

성배와 눈이 마주친 진모는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서서 한동안 성배를 바라보았다.

성배는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진모의 얼굴을 보고, 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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